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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정 “에세이는 자기 인생을 팔아서 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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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키워드는 공정과 성장인 것 같아요.” 정문정 저자는 말했다. ‘무례한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던 전작(『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나를 키우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성장의 출발점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은 그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자연스레 ‘공정’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거듭 들여다봐도 시대는 불공정했고 그 속에 기회를 갖지 못한 청춘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정문정 저자는 “더 좋은 곳으로 함께 가자”고 이야기한다. 



에세이, 인생을 팔아서 쓰는 장르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 나온 지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책이 나온 2018년은 저한테 정말 선물 같은 해였어요. 그 책으로 인해서 새로운 기회도 많이 얻었거든요. 그러면서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게 됐어요. 졸업하게 된 거죠. (웃음) 또 2019년은 아기 엄마로 살았어요. 회사를 졸업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된 것들이 있었고, 2020년은 그것들을 정리하면서 이 책을 쓰는 시간이었어요. 

전작이 엄청난 사랑을 받았잖아요. 이번 책을 준비하시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어느 정도 잘 돼야 될 텐데’라는 생각에 부담감도 조금 있었지만, 어느 순간 마음을 약간 내려놨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제 평생에 팔 책을 이미 판 거예요. (웃음) 그렇게 생각하면 판매량에 대한 생각보다는 조금 더 정돈된 느낌, 조금 더 성숙한 느낌의 글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그런 고민도 조금 있었어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러려면 계속 책을 쓰는 방법도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 에세이는 자기 인생을 팔아서 쓰는 장르예요. 자기의 인생, 사고방식, 생각 같은 것들을 온전히 압축해서 어떤 변화들 속에서 조금씩 나오는 것인데 ‘과연 1~2년 사이에 이전의 책에서 움켜쥐지 못했던 것들을 풀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았어요. 독자들이 ‘이 작가가 조금 더 성숙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네, 문장이 조금 더 좋아졌네’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성숙의 측면에서 접근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엄청 부담을 갖지는 않았어요.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은 동명의 칼럼에서 시작된 책이었죠. 이번 책은 어땠나요? 

이번에는 ‘나를 키우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변한 저의 시각에 대해서 써보자고 생각했고요.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같이 좋은 곳으로 가자’는 거였는데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다는 느낌을 계속 받게 됐어요.『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쓸 때는 제가 ‘갑질’이라는 키워드에 굉장히 집중했었어요. 갑질이라는 것을 체감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칼럼을 썼던 거고, 갑질 또는 무례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나를 지킬 것인가에 조금 더 집중해서 책을 썼던 거예요. 이번 책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요즘에는 불공정이라는 화두가 굉장히 많아지고 있잖아요. 

‘공정’은 이번 책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네. 심지어 제가 아이를 낳고 나니까 더 많이 느껴져요. 책에서도 저희 남편 이야기를 했는데, 저희 남편은 정말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에요. 연애를 할 때 ‘저 사람은 책을 읽지 않는데 어떻게 저렇게 성숙하고 삶의 지혜가 있을까’ 신기했어요. 그런데 결혼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거죠. ‘저 사람은 주변에 ’책 같은 사람‘이 참 많았네, 그러니까 굳이 책으로 간접 경험할 필요가 없었네’ 하고요. 그런데 저는 간접 경험을 해야만 했던 사람인 거예요. 그래서 아이를 낳고 나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됐던 것 같아요. ‘나는 간접 경험을 해서라도 그런 것들을 쌓았고, 남편은 간접 경험을 하지 않아도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렇게 불공정한 시대에 기회가 없는 젊은 친구들은 나처럼 고민하고 있는 경우가 많을 텐데 그 친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지?’ 어떻게 하면 돈 없고 빽 없는 친구들에게도 ‘우리 더 좋은 곳으로 가자,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그게 저의 가장 큰 고민이고 화두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좋은 곳으로 가자』가 책의 제목이 되었군요.

언론에서는 자꾸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말하고, 어떤 수저를 타고 나지 않으면 끝장인 것처럼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어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도 ‘아니야, 내가 살아보니까 그게 아니야’, ‘물론 그건 중요하지,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야’라고 말해줘야 하는데 ‘돈이 최고야, 부모 잘 만나는 게 최고야, 네가 노력해봤자 닿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라고 말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그런 생각들이 책에 실렸고, 이것을 가장 포괄하는 말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니까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말을 거는 이야기더라고요. 그 문제의식이 있어서 제목을 그렇게 짓게 된 거예요.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떤 곳이 ‘좋은 곳’일까요?

좋은 곳이라는 건 굉장히 주관적이잖아요. 나에게는 좋은 환경이 다른 친구에게는 좋지 않은 환경일 수도 있죠. ‘더 높은 곳으로 가자’고 하지 않고 ‘더 좋은 곳으로 가자’고 한 이유는, 어쨌든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믿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었어요. 연애든, 직장이든, 결혼이든, 어떤 환경에서든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있어요. 이것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을 때, 여기보다 좋은 데로 못갈 것 같을 때, 그럴 때 우리가 괴로워지는 거거든요. 그런데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을 약간 버틸 수 있어요. 이게 임시라고 생각하면.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믿기 힘든 이유는 뭘까요?

요즘은 더 좋은 곳이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믿는 것은 굉장히 나이브하고 순수한 사람의 착각처럼 사람들이 이야기하잖아요. ‘그렇게 있다가는 아무것도 안 돼, 여기에서 더 망하는 거야’라고 자꾸만 협박하고 위협하고요. 지금 ‘영끌’이라는 말로 부동산과 주식 열풍이 불고 있는데, 그런 것을 소비하는 가장 큰 논리는 불안감 조성인 것 같아요. 지금이 아니면 끝장이고, 지금이 아니면 더 나빠질 거라고 압박을 주는 거죠. 저는 ‘아니야, 더 좋은 곳이 있을 수 있고 분명히 이게 끝이 아닐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더 좋은 곳이 있다는 걸 상상할 수 있어, 그건 누군가가 단정하는 객관적인 건 아니야, 너의 삶에서 더 좋은 곳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시니컬하게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책에서 개인적인 경험을 솔직하게 들려주셨어요. 굳이 드러내거나 자세하게 말하고 싶지 않으셨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지난 시간들로부터 자유롭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죠. 

맞아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저는 글을 쓸 때, 다시 떠올려서 지금의 감정이 움직이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절대 쓰지 않아요. 그건 저의 원칙이에요. 지금 너무 뜨거운 것이라면 이미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는 소리예요.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리 쿨한 척 쓰려고 해도 나의 입장으로만 쓸 수밖에 없어요. 내가 비극의 주인공, 피해자가 돼요. 그런데 객관화를 하고 거리를 둔 다음에 쓸 수 있는 글은 분명히 달라요. 

객관화, 거리두기를 위해 노력하시는 부분이 있나요?

그걸 위해서 항상 저 자신에게 물어봐요. ‘이걸 쓸 때 더 이상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이제 이것 때문에 괴롭지 않니? 확실하니?’ 하고요. 그렇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서만 글을 써요. 객관화되고 거리두기를 했을 때 사람들에게 가 닿을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게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예술가가 씹어 삼켜서 자기 것으로 소화했을 때 줄 수 있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해요. 

앞서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하셨죠. 두 번째는 뭔가요? 

저는 솔직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 솔직함을 무기로 쓰지는 않아요. 제가 어떤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무언가를 말하기 위함이에요. 분명한 의도가 있어요. 예를 들어서 요즘 친구들이 (현실이) 너무 불공정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제가 가난했던 이야기를 넣어요. 제가 너무 가난하고 불쌍했던 사람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그 이야기를 쓰는 게 절대 아니에요. 목적의식 없이 솔직함만을 무기로 쓰면 그 글은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보는 사람들이 지겹고 지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솔직하지만 목적의식 없이 솔직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 데는 자기연민이 깃들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책의 내용에 따르면, 작가님은 경제적/문화적 자본이 풍부하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하셨어요. 주변에는 ‘너는 다 이룰 수 있다,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해주는 어른도 없었고요. 그런데 주저앉지 않고 더 좋은 곳으로 가셨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요?

일단 첫 번째는요, 그게 중요하다고 믿는 마음을 버리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자기한테 없는 게 보이면, 그걸 자꾸 의식하는 게 괴롭기 때문에, 별 거 아니고 필요 없는 거라고 생각해버려요. ‘여우와 신 포도’ 이야기처럼 ‘그거 별 거 아냐, 해봤자 아무것도 아냐’ 하고 생각해버려요.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게 중요하다는 걸 잊어버리면 안돼요. 중요하다는 걸 아는데 지금 가질 수 없다면 간접적으로라도 어떻게든 가져야 되니까, 저는 그러려는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책 같은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책을 굉장히 많이 읽었어요. 문화 자본이나 인맥 자본이 없는 사람들이 그것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면, 가장 먼저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책인 것 같아요. 굳이 사지 않아도 도서관에 가면 읽을 수 있잖아요. 자꾸만 ‘안 된다’고 하는 말들을 들으면 책에서 ‘된다’고 하는 말들을 많이 읽었어요. ‘안 된다’는 말들 때문에 마음이 조금 더러워지는 날이면 ‘된다’는 말들을 통해서 다시 원점으로 만들고요.


 

책에서 “긍정의 말들로 채워진 부적”이라고 표현하셨죠.

네. 그런 부적을 많이 모으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가능하면 나와 비슷했던 사람들을 많이 찾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저한테는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자기연민에서 벗어나려는 연습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20대 때 저의 투쟁 같은 것이었어요. 취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자기연민이 가장 최악인 것 같아요. 자기를 불쌍하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나아갈 수가 없어요. 누군가가 도와주려고 하더라도 자꾸만 ‘네가 뭘 알아?’ 하는 식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멀어지게 해요.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어떤 노력들을 하셨어요?

책으로라도 간접 경험을 했던 것이 한 흐름이었고, 두 번째는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으면 그런 사람들이 근처에라도 있는 환경으로 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 언저리라도 가려고. 예를 들면 독서모임을 간다든지, 익숙한 곳을 떠나서 나를 특이하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 있는 거예요. 여기보다 조금 더 다양성이 확보될 수 있는 곳으로, 의식적으로 계속 갔던 것 같아요. 여기에서 ‘안 된다고’ 하는 말들과 여기보다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계속 ‘그래, 이게 끝이 아니야’, ‘이게 다가 아니야’ 하는 말들을 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사랑하는 이에게 말하듯이

전작과 이번 책 모두 안타까움에서 출발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초년생 또는 청년들을 보면서 느끼는 안타까움인데, 그들 안에서 ‘과거의 나’를 보시는 것 같아요.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은 제가 팀장이 됐기 때문에 쓴 책이에요. 팀장이 되지 않았다면 안 썼을 거예요. 제가 사회초년생일 때 괴로웠던 것들을 팀장이 된 후에 어떤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걸 보면서 ‘이게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이고, 나 또한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망가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객관화되는 지점이 있었어요. ‘사회초년생들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고 또 상사들도 저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분명히 있구나,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지?’ 싶었던 거예요. 저는 항상 글을 쓸 때 안타까움에서 출발하고 ‘어떻게 해야 되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이번 책도 그런 거죠. 모든 에너지가 기본 원리가 낙차에서 얻어진다는 거잖아요. 저는 낙차를 굉장히 많이 경험했어요. 

어떤 면에서 그런가요?

대구에서 서울로 와서 낙차를 경험했고, 돈이 아예 없는 상태에서 메뉴판에서 가격부터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됐고, 내가 선망하던 직업도 가졌고, 아이 엄마가 되었고... 이런 식으로 전후의 삶의 격차를 경험하다 보니까 보이는 것들이 있었어요. 디테일한 말로 그것들을 이야기해주고 싶었어요. 훈계의 방식이 아니라, 디테일 없는 조언이 아니라, 최소한 내가 알아냈던 방식에서 자기연민하지 않고 우월감을 가지지 않는 방식으로 말해주고 싶었어요. 

그런 이유에서 개인적인 경험을 들려주신 건가요?

제가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이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동시대에 사는 사람으로서 저는 되게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제가 어떤 사회적인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저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니고 끝도 아니라는 말을 계속 해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하는 이야기가 안타까움에서 끝나면 안 되잖아요. 제 모토 중에 하나가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한다’는 것인데,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할 때 ‘너무 안타깝고 슬프지만 받아들여’라고 말하지 않을 거잖아요. 절대로. 우리 아이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을 거잖아요. 사랑하는 사람한테 말하듯이 한다면, 그게 다가 아니고 끝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는 것 같아요. 

회사 생활과 관련해서 디테일한 조언들도 많아요. “그 사람, 영원히 네 위에 있지 않다”는 말도 그 중 하나예요. “어떤 상황도 삼 년은 안 간다”는 거죠. (웃음)

진짜 그렇더라고요. 물론 3년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게 영구하지는 않다는 거예요. 지금 당장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더라고요. 

퇴사는 ‘1년 동안 버틸 수 있는 자본을 만들고 나서’ 하라는 말씀도 해주셨죠. 

제가 살면서 실수했던 것들 또는 잘못된 선택을 했던 것들을 돌아보면 항상 너무 절박했어요. 그 절박함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생각해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박함은 결국 돈에서 나오거든요. 일단 1년치 생활비 정도만 있어도 비굴하지 않게 회사를 다닐 수 있고,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조금은 여유를 가진 상태에서 다음 스텝을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자본이 없는 상태에서 홧김에 그만두고 나면, 여기에서 굽신거리기 싫어서 그만뒀는데 더 굽신거려야 돼요. 누군가한테 돈을 빌려달라고 굽신거리든, 아니면 더 안 좋은 곳에서 굽신거리든. 그 굽신거리게 되는 게 사람의 영혼을 굉장히 파괴해요. 그래서 인간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주 최소한의 자기 자본금이 있어야만 해요. 그러니까 더럽고 치사해도 일단은 1년치 생활비, 힘들면 최소한 6개월의 생활비는 모은 다음에 다음 스텝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버려진 사람’이 아니라 ‘생존한 사람’이에요

「버려진 게 아니고 발견되었다」라는 글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인생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돌아보며 내 식으로 해석해낼 때, ‘발견되었다’라고 쓸 수도 있는 것에 굳이 ‘버려졌다’고 쓰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본다”고 쓰셨습니다. 

조해진 소설가님의 『단순한 진심』을 읽으며 깨달은 건데, 그 책을 읽고 한동안 너무 기분이 좋고 설렜어요. 한편으로는 ‘내 아이에게도 이 말을 꼭 해줘야지’ 싶었어요. ‘어떤 것들을 볼 때 당장 ’버려졌다‘고 생각하더라도 ’발견됐다‘고 말할 수 있어, 네가 철도에서 발견됐다고 해서 철도에 버려진 건 아니잖아?’ 하고요. 우리가 그런 말들을 계속 해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희극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애써 거부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왜 그럴까요?

그걸 통해서 어떤 힘을 얻는 거죠. 그런데 굳이 안 내도 되는 상처를 낼 필요는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굳이 받지 않아도 되는 상처를 피할 수도 있는데, 그걸 너무 자기 캐릭터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버려진 사람의 힘으로 갈 수 있는 건 모 아니면 도인 것 같아요. 정말 위대한 예술가가 되거나, 증오와 미움의 힘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그런데 그런 사람은 소수인 것 같아요. 오히려 ‘이게 다가 아니다’라고 생각했을 때 볼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주변을 봐도 ‘발견됐다’고 쓰는 사람들이 결국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더라고요. ‘버려졌다’는 생각을 가지고 높은 자리에 올랐더라도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지는 못하더라고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자기가 피해자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어떤 말도 들을 수 없는 거죠. 내가 제일 피해자인데 어떻게 다른 피해자들의 말이 들리겠어요. 그래서 피해자의 관점에서 벗어났을 때 보이는 게 있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어요. 저도 한때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죠. ‘왜 나에게는 이런 조건밖에 주어지지 않았지? 왜 나는 버려진 걸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그 시기를 지나고 와서 보니까, 거기에만 사로잡혀 있었다면 이런 글을 쓸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것 또한 나의 힘이잖아요. 

힘이라고요?

그걸 나의 힘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어떤 식으로든 나아갈 수 있어요. ‘버려진 사람’이 아니라 ‘생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위대한 사람인 거예요. 대단한 사람인 거죠. 이미 존재 자체로 대단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조금 더 자신 있게, 조금 더 가뿐하게 할 수도 있어요. 이미 커다란 걸 이뤘으니까 이제부터는 부담을 조금 덜 갖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전작은 ‘무례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나를 지킬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하면 나를 키울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제 책이 단순한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자기계발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죠. 자기계발이라는 건 결국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건데, 제가 말하는 자기계발은 나를 희생해서 조직에 무언가가 되라는 게 아니에요. 그냥 지금의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면 되는 거예요. 나를 지금의 환경보다 조금 더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거죠. ‘나를 키우는 법’에 대해서 가장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나는 버려진 사람이 아니니까 포기하지 말고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조금 덜 지치고 조금 더 오래 가기 위해서 ‘요령’도 더하고, 말들의 ‘부적’도 많이 가지고서 담백하게 갔으면 좋겠고요. 그런 마음들이 위로가 되면서도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자 힘이 되면 좋겠어요. 




*정문정

대구에서 태어났고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했다. 잡지 기자로 시작해 기업 브랜드 홍보팀장, 대학내일 디지털미디어파트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십 년간 다양한 채널의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었다. 대학내일 20대 연구소와 함께 책 『20대를 읽어야 트렌드가 보인다』 『20대가 당신의 브랜드를 외면하는 이유』를 썼다. 전작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은 누적 판매부수 50만 부를 넘어섰으며 아시아 6개국(중국, 일본, 태국, 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에 판권이 수출되었다. 『빅이슈』 『언유주얼』 『포포포 매거진』, 브런치 등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했으며,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배워서 남줄랩], [잠깐만 캠페인], [열정 같은 소리]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을 지침으로 삼고 있다. 막막한 순간에 누군가 내게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말들을 모으고 쓴다.



더 좋은 곳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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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정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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