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전,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백팩을 메고 출판사 미팅룸으로 들어섰다. 일주일에 두 번, 독거노인을 위해 반찬 봉사를 하고 오는 길, 아무리 바빠도 꼭 챙기는 스케줄이다. 박용만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메뉴는 오이생채무침과 과일 샐러드. 칼질만큼은 셰프가 부럽지 않다. 박용만은 올해 초 산문집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를 썼다. “대기업 회장이 쓴 책이니 당연히 대필 아니겠냐?”는 오해를 받아 곤혹스러웠지만 그는 꽤 오랫동안 글을 써온 글쟁이다.
그늘이 있었기 때문에 양지의 감사함을 알다
첫 책입니다. 저자, 작가라는 타이틀로 불리는 기분은 어떠신가요?
적응하는데 힘들었어요. 기업 활동은 소비자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오는데, 책은 시간이 한참 걸리더라고요. 책이 일단 서점에 깔려야 하고 또 독자들이 그 책을 읽어야 반응이 오니까요. 그리고 선입견이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어요. 당연히 대필일 거라고 생각하고 아예 책을 집어 가시질 않더라고요. 그러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한두 개씩 리뷰도 생기고 적응이 됐어요.
인터뷰도 많이 안 하셨더라고요.
과연 책을 홍보하는 게 맞는 건가, 싶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고요. 많은 사람이 책을 읽어주시면 좋지만, 책을 팔기 위해 내가 애쓴다는 것이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좀 주저하다가 이 책이 팔리면 인세로 뭘 할 것인가? 생각해봤어요. 제가 용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니까,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반찬 값에 보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보니 책을 알리는 일이 좀 괜찮아지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인터뷰도 하고 그랬습니다.
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제 닉네임이 YM인데요. 딱 YM이다! 음성 지원되는 책이라고 하던 걸요.
제목에 관한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당신에게 그늘이 있냐?”는 질문도 들으셨다고요.
제목은 출판사에서 정해줬어요. 가끔 책을 보면, 내용은 이게 아닌데 왜 제목이 이렇게 달렸지? 싶을 때가 있어요. 제가 제목을 정하면 어색할 수도 교만해 보일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부탁을 드렸는데 다행히 좋은 제안을 주셨어요. 제가 글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가깝게 표현한 제목이거든요. 제가 그늘이 많아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삶은 객관적인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잖아요. 다만 그늘이 있었기 때문에 양지의 감사함을 더 알게 됐어요.
책을 내자는 제안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여러 출판사에서 이야기를 주셨어요. 그 중에는 제가 글을 쓴다는 사실을 모르고 연락을 주신 곳도 있었고요. 시간만 조금 내서 인터뷰를 해주면 만들어준다고 해서 쉽게 거절했죠. 또다른 출판사는 적당히 써주면 우리가 만져주겠다고 하셔서, “제가 만약 책을 내면 한 글자도 못 고칩니다”라고 말했죠. 그런데 막상 책을 내려고 보니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때 친한 작가가 마음산책 출판사를 소개해줬어요. 글을 몇 개 보내 드렸더니 “일단 글을 쭉 써보시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쓰기 시작했죠.
집중해서 글을 쓴 기간은 언제인가요?
작년부터 썼죠.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지면서 약속이 줄줄이 취소되는 거예요. 집에 앉아서 쓰기 시작했는데 굉장히 즐겁더라고요. 거의 보름을 밤낮 가리지 않고 썼어요. 허리가 너무 아파서 아침에는 지팡이를 집고 일어나야 할 정도였는데, 그래도 좋았어요. 책의 분량 80%를 6개월 동안 썼는데 600쪽이 넘었던 거 같아요. 책은 많이 덜어낸 거예요.
요즘 이렇게 두꺼운 산문집은 잘 나오지 않아요.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대필에 대한 경계심이 있어서인지 요만한 사이즈로 내고 싶진 않은 마음도 있었어요. 내용을 많이 담고 싶기도 했지만 이 책이 세상 밖으로 나갈 때까지만 해도 두껍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초고를 가장 먼저 읽어본 분은 아내분이라고요?
일단 쓰면 봐달라고 했어요. 아내가 빼라고 해서 뺀 부분도 많아요. 원래 제 사생활 이야기가 더 많았는데, 이렇게까지 다 이야기할 필요가 있냐?는 질문에 동의가 됐어요. 그리고 아이들 이야기도 썼는데 나중에는 뺐고요. 이미 성인이 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부모가 다시 할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배려할 필요가 없게 해야 한다
기업인 박용만으로서의 이야기는 많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수술을 많이 하신 줄은 몰랐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안 가본 과가 산부인과 말고는 없으실 정도라고요.
네, 그런데 끝인 줄 알았는데 또 생겼어요. 밤에 코를 심하게 골지 않는 편인데, 심장 박동을 체크하는 기기를 차고 잤는데, 그래프가 이상한 거예요. 기계가 망가졌나 싶어서 회사에 기기를 보냈더니 수면 검사를 해보라고 해요. 검사를 해보니 중증 수면 호흡 장애라고 합니다. 제가 잠을 잘 때 호흡이 1시간에 38회나 멈춘다는 거예요. 길게는 50초까지 멈추고. 지금은 산소를 공급하는 기계를 달고 자요. 벌써 한달이 됐어요.
통증이 올 때는 어떻게 하나요?
가능한 한 무시해요. 물론 쉽지 않지만 아픈 곳에 온 신경을 집중하면 고통은 더 커집니다. 반대로 고통을 받아들이되 마음 주머니 속에 처박아 버리면 훨씬 덜 아파요. 곧 통증이 덜해질 거라는 믿음은 약과 치료 자체 못지않은 효과를 나타내요. 고통을 의식의 주머니에 애써 넣어두고 ‘곧 가시겠지, 내일이면 좋아질 거야’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잠시 통증이 잊힙니다.
사람을 각별하게 좋아하는 면면이 책에 많이 담겼습니다. 기업을 운영하면서 사람에 관한 문제 때문에 갈등도 많이 겪으셨을 텐데요. “역시 사람을 품는 것이 제일 좋았다(316쪽)”고 밝히셨습니다.
갈등이 왜 없었겠어요? 정말 많았죠. 제 성향이 이래도 조직 내에는 일종의 규범이 존재하잖아요. 앞서가야 우수한 사람으로 평가를 받으니, 요구 받는 일을 열심히 했는데 점점 자신이 없어지더라고요. 변하지 않는 건 사람에 관한 투자를 단단하게 해야 경영이 지속가능하다는 사실이에요. 제가 그룹 회장이 됐을 때, 따뜻한 성과주의를 두산의 철학적 방향으로 내놓았어요. 그런데 참 힘들게 하더라고요. 의미를 자의적으로 판단해 온정주의로 평가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회장으로 지내다 보니 어느 한계를 넘게 됐어요. 그 다음부터는 철학적 생각이 가능해지기 시작했고요. 결국은 선택의 문제예요. 만약 저에게 경영을 다시 하라고 한다면 제 선택에 맞는 경영을 할 겁니다.
분노를 내면 안된다고 강조하셨어요. “리더의 분노는 감정적인 이유에서도 자제되어야 하고, 전략적인 이유에서라면 원천적으로 없어야 하는 것이다.(201쪽)”라고 쓰셨습니다.
제 성격이 다혈질이에요. 성취지향이고 반응이 빠르고, 안 되면 될 때까지 하는 편이에요. 저도 젊었을 때 화를 많이 냈어요. 제 화의 근원이 뭔지 아는 동료들은 저에게 감정적 앙금이 많지 않지만, 자꾸 화를 내는 건 그 자체로 옳지 않아요. 제가 낸 화조차도 분노의 영역까지 가면 정당하지 않은 거거든요. 가만히 살펴보니 분노를 남발하는 상사가 정말 많아요. 부당한 분노, 계획된 분노 등 너무 많은데, 정당하지 않은 분노를 파보면 모두 갑질이에요. 전 갑질을 정말 싫어합니다. 생리적으로 거부 반응이 심해요. 회사 안에서 성희롱 사건이 생기면 굉장히 단호하게 대응했어요. 성희롱은 성인지감수성 이전에 부당한 권력으로부터 발생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갑질을 ‘정말’ 싫어하는 상사는 흔치 않습니다.
제가 다른 그룹의 회장처럼 자랐으면 몰랐을 수도 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여기서 실패하면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하는 불안을 늘 갖고 살았어요. 처지가 다르지 않으니까 감정적인 어려움을 공유하니까 알 수밖에 없죠. 또 구성원의 복지에 관심이 있다고 해도 공감하지 못하면 배려하는 차원이잖아요. 구성원들은 배려가 필요 없어요. 고용은 약속이니까요. 약속에 의해서 노력을 제공하는 것이고 회사는 보상을 하면 돼요. 공동체의식이 생기면서 소속감이 생기는 거지, 맨 처음은 약속이에요. 배려가 무슨 소용이 있어요. 공감하지 못할 때 배려가 되는 건데, 구성원은 배려가 고맙지 않아요. 약속을 지키는 게 중요하죠. 성평등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성 차이에 대한 배려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배려할 필요가 없게 하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을 좋아하시나요?
진실한 사람이 좋아요. 역량이 조금 떨어져도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함께 일하기 좋죠. 수리 능력은 뛰어나도 소통 능력이 어려우면 힘들어요. 대개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정치적이에요. 정치적이라서 진실하지 못한 거죠. 나를 잘 보이기 위해 포장을 하잖아요. 그런 사람은 예측가능하지 않죠.
평소 골목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으시죠? 예술을 직업으로 삼으면 어땠을까요?
1992년이었을 거예요. 상무 시절이었는데 그때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어요. 내적 갈등이 너무 심해서 아내한테 “나 그냥 사진할래”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아내가 처음엔 좋다고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해서 그때 주저앉았죠. 후회는 안 해요. 마음먹고 나서 열심히 일했으니까요.
독실한 가톨릭 신자시죠? 국제봉사활동을 전개하는 몰타기사단(구호기사단) 한국지부가 설립된 2015년부터 초대회장을 맡고 계십니다.
저는 봉사활동을 조직적으로 키우는 데는 큰 관심이 없어요. 몸이 움직여질 때까지 땀 흘려 일하고 싶어요. 동시에 봉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지나친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돼요. 너무 힘들어 하는 것도 원하지 않아요. 우리의 작은 봉사로 그분들의 삶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30대, 40대 독자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일하지 말고 놀라는 게 아니고요. 거울의 자신을 볼 때 편안했으면 좋겠어요.
두 번째 책도 염두에 두고 계신가요?
뭘 써야 할지 아직 모르겠지만 에피소드가 많아요. 300쪽은 더 쓸 수 있는데, 똑같은 책을 또 쓰는 건 아니라면서요. 더 고민해 봐야죠.
*박용만 서울 명륜동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보스턴대학교 경영학 석사를 거쳐 한국외환은행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두산에 입사해 식품, 출판, 광고, 건설, 중공업 등 여러 사업 부문을 거치고 두산그룹 회장을 지냈다. 현재는 두산 인프라코어 회장직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겸하고 있다. 호기심 넘치는 ‘얼리어답터’이자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대기업 CEO로 잘 알려져 있지만 쉬는 날엔 혼자 골목골목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실바노’라는 세례명을 가진 신실한 가톨릭 신자로 국제적인 구호 봉사단체 ‘몰타기사단’ 한국 지부를 이끌며, 매주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아마추어 요리사로 봉사에 매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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