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시절부터 보건의료정책에 관심이 많아 전공의 때 ‘대학전공의협의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전문의 취득 후에는 대부분이 밟는 전임의 과정을 선택하는 대신 병원 밖에서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일하고,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직접 출마도 했던 의사 김현지. 그는 자신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낙관적으로 정책을 하는 게 아니라 상당히 비관적이고 회의적인데 끈을 못 놓고 하는 정책가”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책하는 의사로 살겠다고 다짐한 데에는 오직 한 가지, “만인에게 성취 가능한 최선의 건강을 위하여”라는 바람이 있었다.
『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는 그런 그가 정책하는 의사로 활동하며 경험한 이야기들을 담은, 누구나 쉽게 보건의료정책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보건의료정책 입문서’다. 정책의 부조리, 제도의 부재와 차별로 고통을 받는 환자들을 보며 의사로서 느낀 고민을 담았다. 누구든 더 쉽게 건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도 이 고민을 하는 의사 김현지는 현재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언젠가 또 책상 밖으로 나와 정책과 제도를 바로잡는 일을 계속 해나가며 누구든 더 쉽게 건강해질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밝힌다. 김현지는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보건의료정책 입문서
제목을 여러 번 보게 되더라고요. ‘포기할 수 없는’에 방점을 두느냐, ‘아픔’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달리 익히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제목에 저자의 어떤 생각 담은 건가요?
‘포기할 수 없는’에 의미를 둔 건데요.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환자가 치료비 부담으로 치료를 중단하겠다고 하면 아무리 해도 그 환자를 설득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선배나 동기들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정말 많이 했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게 아니에요. 체계나 제도를 바꾸면 환자를 도울 수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한 명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제목에 담은 거예요.
정책하는 의사를 중요한 정체성으로 삼고 활동을 해왔잖아요. 그러다 번아웃을 경험하고, 그간 써온 일기를 꺼내 들어 보면서 책을 써야겠다, 생각했다고 밝혔어요.
의대생 때부터 매일 일기를 썼어요. 일기장이 제게는 환기창 같은 곳이었어요. 그때는 공부에 대한 고민, 환자를 보면서 느끼는 고민 등을 썼죠. 전공의 때는 워낙 장시간 근무를 하니까 그때 느낀 스트레스도 털어놓았고요. 비서관으로 일할 때는 체계나 제도를 바꾸는 게 너무 어려워서 그런 고민도 아주 상세하게 써왔어요. 제가 비서관 생활을 마치고 나왔을 때 심한 번아웃에 시달렸는데요. 역시 환기를 하고 싶어 일기장을 폈다가 문득 이 내용을 엮어서 책으로 쓰면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보건의료정책 입문서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의사들조차도 법, 정책을 너무 딱딱하고 지겹게 여겨요. 그러니 다른 분들은 오죽하겠어요. 하지만 보건의료정책은 생각보다 훨씬 개인의 삶에 가깝게 있거든요. 많은 분들이 보건의료정책에 대해서 잘 알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썼어요.
개인 개인이 보건의료정책을 아는 것이 어떤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고 보세요?
국회는 모두에게 열려 있거든요. 또 정부 부처도 꾸준히 민원을 받아요. 소통 창구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흔히 ‘나는 의료인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인데 정책이나 행정에 내 아이디어를 어떻게 반영시킬 수 있겠어’ 라고 생각하잖아요. 저는 의외로 굉장히 쉽게 반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목소리를 낼 권리가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현재 소아 중환자실이 많이 부족한데요. 막상 소아 중환자의 가족들은 환자를 돌보느라 이에 대한 민원을 제기하지 못해요. 저는 이 책을 읽은 분 중 소아 중환자의 가족이나 관련된 경험이 있는 분들이 있다면 앞으로 적극적으로 입법 기관이나 정부 부처에 민원을 제기하시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어요. 책의 사례들을 보면서 ‘나의 이야기였는데 알고 보니 이런 부조리함이 있구나, 이건 고치고 싶다’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환자 분, 곧 돌아가실 거예요
“나는 환자를 잘 죽이고 싶다”(22쪽)는 말을 해요. 여기서 ‘잘 죽이고 싶다’는 것은 어떤 마음인가요?
요즘 ‘웰다잉’을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환자 입장에서 표현하면 웰다잉이고요. 보건의료 입장에서 말하면 잘 죽이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결국 환자가 웰다잉을 맞을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 그것이 잘 죽이는 의사의 역할인 것 같아요.
잘 죽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바람일 텐데요. 쉽지가 않아요. 책에서도 중환자실에서 일하던 때의 경험들을 소개하면서 잘 죽는 것이 힘든 현실을 보여주고 있어요.
제가 전공의를 하던 때만 해도 ‘연명의료결정법’이 없었어요. 더구나 ‘보라매병원 사건’ 때 연명의료를 중단했던 의사들이 형사처벌을 받게 되면서 의료인들이 굉장히 위축됐거든요. 환자, 보호자와 주치의가 연명의료에 대해 터놓고 논의하기 무척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였죠. 연명의료법이 도입이 된 후부터는 어떻게 환자분을 편하게 돌아가실 수 있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까지는 가능하게 됐는데요. 그럼에도 아직 환자 본인한테 이런 내용을 직접 이야기하는 걸 많이들 꺼리죠. 환자의 심적 부담을 우려하기 때문이에요.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이고요. 좀 더 편하게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명의료 등에 대해 편하게 논의하는 분위기를 가로막는 것은 뭐라고 보세요?
한국 특유의 정서 같아요. 환자가 심적 충격을 받으면 예후가 안 좋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환자한테는 직접 말하지 말고, 환자의 가족들이 결정하게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아직 많거든요. 의료인들 입장에서도 환자의 면전에 “환자 분, 곧 돌아가실 거예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같은 얘기하기는 엄청 부담스럽죠. 학생 때 이런 부분을 교육받기는 하지만 쉽지 않아요. 의료인도 환자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 환자나 보호자들도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더 형성되어야 할 것 같아요.
그밖에 환자에게 어떤 결정권이 있는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연명의료는 꼭 해야 되는 것도 아니지만 꼭 안 해야 되는 것도 아니에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죠. 그 가운데 연명의료를 안 하게 됐을 때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가 있고요. 예를 들면 대부분 심각한 통증에 시달리니까 진통제를 충분히 받는다든가 각종 기회 감염에 노출됐을 때 환자가 가장 덜 고통스러운 치료 방법만 선택한다든가 할 수 있어요. 이렇게 그때그때 상황에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 호스피스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런데 지금까지는 호스피스를 위해서는 무조건 병원에 계셔야 했어요. 아니면 집에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거나 제대로 케어를 받지를 못했죠. 아직 시범사업 단계지만 ‘가정형 호스피스 사업’이 도입이 됐고요. 이건 환자의 집에서 보건의료인들이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시범사업 단계라 혜택을 누리고 계신 분들이 너무 적어요. 빨리 본사업이 되어서 집에서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선택하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회가 같이 끌어안아야 된다
“가난한 사람은 죽을 때조차 남들보다 더 지난하고, 괴로워야 했다”(60쪽)는 문장이 마음에 많이 남았어요. 당장 꼭 바뀌어야 하는데 아직도 너무 제자리다, 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뭔가요?
가난한 환자는 만성질환 관리가 너무 안 돼요. 당뇨, 고혈압은 약만 잘 챙겨 먹어도 조절이 되는 병인데 관리가 안 돼서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분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그런 분들은 합병증 때문에 근로 능력을 상실하고, 그러다 더 가난해지고, 그래서 더 만성질환 관리가 안 되는 악순환에 빠지거든요. 이 부분을 진짜 많이 고민했는데요. 사회 구조의 변화가 필요한데 아직 답을 못 찾았어요. 더구나 전공의를 시작했던 10년 전보다 지금이 오히려 더 악화됐다고 느끼거든요. 빈부 격차는 점점 커지는데 보건의료 차원의 지원은 10년 동안 늘지 않은 거죠. 그러다 보니 격차가 더 벌어지는 느낌이에요.
관련해서 간병 노동을 공식화하고, 급여화해야 한다, “간병인이라는 직업을 보건의료 영역의 중요한 일부로 인정해야 한다”(96쪽)고 주장한 부분도 중요하게 들렸어요.
책에는 너무 무거워질까봐 적지 않았는데요. 2018년 국정감사 때 <서울신문>과 손을 잡고 질의한 내용이 ‘간병 살인’이었어요. 간병 살인이 이전까지 통계가 없거든요. <서울신문> 팀이 거의 10년간 발생한 간병 살인 판례를 직접 법원에 가서 다 찾고, 외워서 나왔어요. 어쩔 수 없이 가족을 살해한 가해자들을 만나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취재해 책으로도 냈고요. 비서관으로 있을 때 저희가 복지부에 그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간병은 엄청난 부담이에요.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엄청난 부담인데 사회는 그 부담을 개인에게만 지우니까 결국 간병 살인 같이 끔찍한 결과가 난다고 생각해요. 정작 그 상황에 처해 있는 분들은 너무 바쁘고 먹고 살기 바빠서 목소리를 내지를 못하니까 그런 분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싶었어요. 개인 간병을 더 이상 개인의 부담으로 줄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같이 끌어안아야 된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뭔가요?
일단 가족 중에 누가 아파도 아무도 일을 그만둘 필요가 없죠. 지금은 간병인을 고용할 정도의 경제력이 없으면 가족 중 한 명, 대부분은 여성이 일을 그만두고 간병하게 되거든요. 그게 사회적 단절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가정 경제도 파탄이 나는 수순이에요. 하지만 간병노동이 급여화 되면 그런 상황을 걱정할 필요가 없죠. 가족이 아파도 정부에서 지원하고, 간병인도 고용해줄 테니까요. 더구나 그렇게 되면 의료인들도 훨씬 수월해져요. 숙련된 간병인이 환자를 케어하고, 병원은 그걸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워할 필요가 없으니까 의료인은 환자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만 집중할 수 있거든요. 지금은 사실 보건의료인들, 특히 간호사들이 간병인의 역할 부담도 같이 지고 있어요. 그런 부담을 덜어내고 본인의 업무에만 집중하게 될 거예요.
‘콧줄’ 사례에서도 생각이 많아지죠. 병원도 조직이고, 수익이 나야 하니까 온전히 환자만을 생각하지 못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는 거잖아요. 의사로서도 고민일 것 같아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병원에 지원 삭감을 하는 기준이 사실 들쭉날쭉해요. 그래서 서울대학교병원 같은 상급종합병원은 병원 내에 자체적으로 보험심사팀 같은 걸 둬요. 심평원이 삭감할 것 같은 것을 병원이 먼저 막는 거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병원 재정이 감당이 안 되니까요. 사실 저는 병원의 보험심사팀이랑 싸우는 게 주업무 중 하나였어요. 교과서적인 근거에 따라 약을 처방했는데 심사팀에서 “선생님, 그 약을 쓰면 지원이 전액 삭감되기 때문에 병원 측이 부담해야 됩니다. 그 비용을 병원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라고 얘기하면 엄청 화가 나는 거죠. 이런 일이 정말 많아요. 그 중 하나가 책에 소개한 콧줄이고요. 그럴 때 의사로서의 결정을 수호하는 해내는 것도 지치죠. 사실 보험심사팀은 무슨 죄가 있나요. 불필요한 감정 다툼이잖아요.
어디서부터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될지 고민이네요.
병원은 일단 수가가 아니면 장례식장, 카페테리아, 식당 같은 임대 사업에서 부수적인 수익을 만들어 적자를 채우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의사가 환자한테만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거든요. 일단 수가가 정상화되어야 하고요. 아까 말씀드렸던 소아 중환자실 같은 경우에는 아무리 수가를 높여도 환자 수 자체가 적기 때문에 병원이 운영하기 어려운 면이 있어요. 이건 수가와 별개로 지원을 해야죠. 결국은 예산의 문제입니다. 한국이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고요. 의료비를 상당 부분을 사용하는 분들은 사실 노동 인구가 아니다 보니까 이분들이 건강하게 치료받으려면 노동 인구가 보험료를 더 많이 내야 해요. 어쩔 수 없이 보험료는 인상해야 하는 거죠. 이런 이야기를 이제는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전 국민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진보성을 믿고 버텼다. 무턱대고 기대하진 않았지만 현실적인 낙관성은 항상 유지했다”(15쪽)고 했잖아요. 그럼에도 이렇듯 당장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할 때 무력감이 들기도 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정책하시는 분들이 다 얘기해요. 뭐가 문제인지도 알고, 뭘 바꿔야 되는지도 아는데 안 바뀐다, 그게 너무 지친다, 라고요. 그게 정책하는 사람들이 감당해야 되는 점인 것 같은데요. 그래도 목소리를 내면 10개 중 1개는 반드시 바뀌거든요. 거기에 감사하고, 그걸 많이 기억하려고 해요. 예를 들면 제가 비서관으로 처음 참여했던 법안이 올해 초에 나온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에 법적 근거로 쓰였어요. 출근하는 길에 그 기사를 보는데 굉장히 뿌듯했어요. 남들은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잖아요. 선언적인 조항이지만 그 하나가 들어간 것만으로 복지부 사업의 근거를 만들어줬고요. 그 사업은 몇 년에 거쳐 전 국민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걸 저는 아니까요. 그런 기쁨이 있어요.
‘경계’ 챕터에는 의사의 근무 현실이라든지 번아웃 문제를 저자의 경험을 기초로 적었는데요. 무엇보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환자를 위해서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야 될 것 같아요.
의사에게도 너무 치명적인 상황이고요. 환자에게도 정말 위험한 부분이에요. 제 생각에는 조용히 넘어가는 의료 사고가 굉장히 많을 것 같거든요. 의료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보건의료인들이 적정 시간 근무하고, 너무 지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저자가 지금 가장 관심 갖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요?
‘의료 전달 체계’예요. 간단히 말하면 누구나 아플 때 꼭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거거든요. 그게 가능하려면 주치의도 있어야 되고요. 1차 의원부터 2차 병원, 3차 병원 각각의 역할이 확실하게 나뉘어져 있어 각자의 역할을 해줘야 해요. 지금은 감기 환자 한 명을 놓고 동네 의원이랑 서울대학교 병원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죠. 환자한테는 선택지가 많아서 좋아 보일 수 있는데요. 감기나 당뇨 같이 간단한 경증 질환 환자들도 상급 병원으로 오니까 역설적으로 많이 아픈 환자들은 정작 꼭 필요할 때 진료를 받지 못하고 오랜 시간 대기해야 해서 치료 예후가 나빠지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고 있어요. 주치의제도가 있고, 1차, 2차, 3차 의료기관의 역할이 분명히 구분되어 있는 것이 의료 전달 체계라고 볼 수 있는데 그걸 개선하는 게 현재는 가장 큰 관심사예요.
*김현지 서울대학교병원 권역응급센터 진료교수. 서울시의사회 정책이사. 내과 전문의이자 우리 모두의 존엄한 삶과 죽음을 위해 보건의료정책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인턴 때부터 전문의가 된 지금까지 요양병원, 중환자실, 응급실, 암 병동 등 다양한 병원을 두루 거치며 수없이 많은 죽음과 마주했고, 다양한 환자들과 만났다. 어떤 이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치료를 거절했고, 또 어떤 이는 그리 힘들게 살려놓았는데도 자살 시도 끝에 차디찬 몸으로 되돌아왔다. 누군가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으니 죽여 달라고 애원했다. 가난한 탓에, 정책과 제도가 미비한 탓에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인간답게 죽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면서 사그라드는 생명 뒤에는 정책의 부조리, 제도의 부재,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점차 깨달았다. 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의사가 병원 안에서 사람을 살리려 애쓴들 사람들은 병원 밖에서 죽어나갈 것임을 알게 되었다. 더 많은 사람을, 사회를 살리기 위해 병원 밖으로 나서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의료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함으로써 보다 많은 이들을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도록 보건의료 정책을 보완하고, 또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금은 잠시 임상 현장으로 돌아와 서울대학교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있지만 그녀의 이상과 목표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 ‘만인에게 성취 가능한 최선의 건강을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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