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 소설가의 글을 처음 읽은 것은 누군가 보내준 링크를 통해서였습니다. 2018년 단편 『일의 기쁨과 슬픔』 이 공개된 창비 웹 사이트의 서버를 다운시키던 무렵이었어요. 모니터 화면으로 글을 읽으며 그 신선함에 감탄했습니다. 이후 ‘ㅇㅇ의 기쁨과 슬픔’ 이라는 말을 종종 변주하여 따라 씁니다. ㅇㅇ 에 어떤 단어를 넣든, 그에 대한 현실적이고 균형감 있는 시선을 갖게 됩니다. 일하는 일상에서 유지하고 싶은 태도이기도 합니다.
장류진 소설가는 같은 제목의 단편집을 출간한 직후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후 1년여 만에 첫 장편 『달까지 가자』 를 발표한 장류진 소설가를 두번째 작업실 인터뷰에서 만났습니다.
(인터뷰 내용에 소설 결말에 관한 이야기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멀리 가지 않는 상상’이 빚어내는 이야기
장류진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감탄합니다. 스토리는 오늘의 현실에 단단히 바탕을 두고 있으나 뻔하지 않은데 (신작 『달까지 가자』 에 등장하는 은상 언니가 주인공 다해에게 “넌 내가 그렇게 뻔한 소리를 할 것 같니?”라고 할 때, 작가님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 『달까지 가자』 47쪽) 그 스토리를 끌고 가는 개별 장면의 디테일한 묘사는 극히 사실적이기 때문이죠.
이 기발한 이야기를 만드는 영감을 어디서 얻는가, 사소하고 놀라운 디테일을 어떻게 수집하고 기록하는가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2019년 말 출연한 팟캐스트 <듣똑라>에서 진행자들이 비슷한 질문을 던졌을 때 장류진 작가는 머릿속에 남는 이미지 장면의 파편들에서 영감을 얻고, 메모는 잘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회사를 떠나 전업 작가로 1년 이상을 보낸 지금은 달라진 점이 있을지, 다시 첫 질문으로 건네 보았습니다.
이야기의 영감은 어디서 얻으시나요. 여전히 메모나 기록은 하지 않으시나요?
여전히 메모는 잘 안 씁니다. 일기도 써 본 적이 없고 블로그도 안 해요.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이루어져요. SNS 계정은 있지만 일상의 생각을 정리해서 올리거나 하지는 않고요, 머릿속에서 혼자 SNS를 하는 것 같아요. (웃음) 멍 때리면서 쓸데없는 생각, 잡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 중에 계속 생각나는 장면들이 있어요. 왜 자꾸 생각이 날까, 자꾸 떠오를까,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거죠. 이야기를 만들려고 하다 보면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아이들이 인형 놀이할 때, 얘는 이런 애래, 오늘은 뭐했대, 하고 설정하듯이, 마인드맵 그리는 것처럼 생각을 이어 가요.
SNS에 순간순간 기록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생각이 멈추거나 분절되지 않고 하나의 스토리로까지 길게 이어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이야기를 만들 때, 멀리 가지 않는 상상을 합니다. 누가 나한테 100만 원만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달까지 가자』 로 발전했다면,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는 여행을 간 후쿠오카의 공원에서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을 보면서 상상이 시작되었어요. 후쿠오카는 여행지보다 살기에 좋은 도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여기에 사는 제 또래 한국 여자를 떠올렸어요. 그 여자는 왜 도쿄도 아니고 후쿠오카에 살까? 누구랑 살까? 혼자 살까? 결혼을 했나? 생각하다 보니 주인공은 엉뚱하게 남편이 죽었다는 설정이 되었죠. 또 외국에 살면 지인들을 놀러오라고 초대하잖아요. 그럼 이 사람도 친구들을 초대할까? 누굴 초대할까? 이렇게 생각이 뻗어갔던 거예요. 세계 자체는 일상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지만, 처음 생각의 시작에서는 멀리 간 거죠.
호기심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기록은 하지 않지만 호기심을 갖고 주변을 관찰하시는 거군요. 결국 관찰과 호기심이 출발점이고, 거기에 끝을 맺는 힘이 더해질 때 무언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써낸 첫 두 권의 책엔 작가님이 IT 기획자로 일하실 때의 일상이 녹아 있어서 신선했고요. 이제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시면서 일상이 바뀌었는데, 앞으로는 소설 속 배경이 되는 일상도 달라질까요?
아직 모르겠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바로 소설집 출간 관련 일정을 정신없이 다녔고 또 바로 장편을 쓰기 시작해서 그동안은 달라진 것을 의식할 겨를이 없었어요. 물론 달라지긴 달라졌겠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크게 달라질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안락한 세계, 낭떠러지 위에 선 사람들
“평생을 저 작은 돌멩이처럼 아슬아슬한 감각으로 살아왔다. 언제나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달까지 가자』 330쪽)
“야! 니가 그럴 자격이 왜 없냐? 그럴 자격 있다. 누구든 좋은 걸, 더 좋은 걸 누릴 자격이 있어.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 (194쪽)
『달까지 가자』의 세 주인공 은상, 다해, 지송은 스스로를 ‘우리 같은 애들’ 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것 같은 (“저 사람과 나는 다르다. 다른 세계를 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 『달까지 가자』 104쪽) 안락한 세상을 넘보지 못할 것으로 여기지만, 잠깐 열린 이더리움이라는 기회에 올라탄 덕분에 안락한 세상의 한 부분을 처음으로 경험합니다. 다해가 인피니티풀에서 인피니티라는 단어에 대해, 더 좋은 것에 대한 욕망을 생각할 때, 그리고 학자금을 갚고 대출잔금: 0 이라는 숫자를 오래도록 내려다보다 ‘애초부터 이런 기분으로, 이렇게 홀가분한 발걸음이 기본인 상태로 살아갈 수 있는’(170쪽) 사람들의 삶을 상상할 때, 주인공들은 바로 내 주변에 있을 것 같은 같은 사람들이 됩니다.
첫 단편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 실린 『도움의 손길』의 주인공 ‘나’는 비교적 안정적인 세계에 진입해서도 항상 낭떠러지에 서 있는 듯한 불안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드디어 갖게 된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거실에 그랜드 피아노를 들이지 않듯’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정을 하기도 하고요. (『일의 기쁨과 슬픔』 142쪽)
안락한 세계, 낭떠러지 끝에 선 불안감이라는 맥락이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어느 일간지와 인터뷰할 때, 작가님은 좋은 대학 나오고 취직도 그렇게 힘들진 않았을 것 같은데 뭐가 그리 힘드셨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렇게 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등 교육을 받았고, 정규직 직장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고등 교육 받고 정규직으로 일했다고 해서 모두가 단일한 경험을 하는건 아니잖아요.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나를 막아줄 네트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이후 계속 그런 감각을 가지고 살아왔던 것 같아요. 많이들 그랬듯 IMF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었던 영향이 컸죠.
그래서일까요. 기댈 곳 없이 언제든 떨어져 내릴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달까지 가자』 의 세 여성은 달달한 결말을 맞습니다. 한편, 은상이 큰 돈을 벌어 퇴사한다는 소문을 들은 다해의 팀장은 인생 삼불행 이야길하죠. 뛰어난 재능을 타고 나는 것, 부모형제의 권세가 대단한 것, 어린나이에 출세하는 것이 인생의 세가지 불행이며, 은상은 그중에서도 가장 불행할 수 있는 어린 나이의 출세를 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그게 부럽나? 그게 좋을 것 같아?”로 시작하는 긴 독백은 무려 두페이지를 넘겨 이어집니다. (288-290쪽)
팀장이 길게 늘어놓는 이야기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 이야기였어요. 그 많이 들어본 이야기에선 주인공들이 그러다 결국 불행해졌다고 결론이 났을 것 같고요. 『달까지 가자』의 결말은 그와 달랐는데도 팀장의 말에 제법 긴 지면을 할애하신 이유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그렇게 길게 쓸 생각은 처음엔 없었어요. 소년등과일불행만 알고 있었는데, 글을 쓰려고 찾아보니 나머지 두가지가 너무 좋은 것들이고, 그래서 웃긴 거예요. 이게 왜 불행이야, 최고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이런 식으로 흘러가던 이야기는 보통 죄를 받으면서 끝나잖아요. 재물을 탐하고,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욕망한 것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벌을 받으면서 끝나죠. 그런데 왜 그래야 되지? 누군가에겐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을 바랬다고 죄를 받아야 되나? 내 소설이니까 나는 그렇게 안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애초부터 설탕에 굴린 이야기를 쓸 생각이기도 했고요.
살면서 ‘너한테 그정도면 충분하다’ 는 말을 많이 들어왔을 것 같은 세 명이 모두 좋아하는 것을 얻는 결말을 즐겁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다해는 결국 회사에 남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조직에 어떻게든 남아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나왔으니까, 계속 있는 사람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게 가장 큰 요소는 아니었고요.
다해는 정말 말도 안되게 적당한 시기에 빠져 나와서 돈을 벌고, 책 한 권 분량을 난리난리를 치고 나왔는 데도 일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잖아요. 이제 빚이 없고, 집도 방 하나 큰 걸로 갔고, 마음이 편해지기는 했죠. 하지만 난리를 치고 3억이란 돈이 생겨도 삶이 크게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누군가에겐 그냥 주어지는 것을 왜 다해는 이 난리를 치며 모든 걸 걸어야만 얻을 수 있느냐는 생각을 했거든요. 반대로 이 돈이 만약에 없었으면? 소설에선 돈을 주잖아요. 그래서 다해도 이제 좀 회사 다닐 맛이 난다고 할 만큼 숨통이 트이지만, 그 돈이 없었으면 다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런 것도 생각하게 하고 싶었어요.
결말이 너무 드라마틱해 버리면 이런 생각들을 해보긴 어렵겠네요.
껍데기는 해피엔딩이지만, 이 소설이 완벽한 해피엔딩일까 생각해 보기도 해요. 이런 행운이 주어지지 않을 경우를 생각하면 찝찝하죠. 설탕이나 단 걸 많이 먹고 나면 입안이 텁텁하잖아요. 그것도 소설의 일부라고 생각했어요. 은상 언니가 다해에게 집을 사라고 조언하는데 다해는 안 샀고, 주인공 셋은 200만 원대에 팔고 나와서 돈을 벌었지만 이더리움은 지금 가격이 훨씬 더 올랐어요.이렇게 생각하면 누군가에겐 해피엔딩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해피엔딩이라는 틀에 갇히지만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작업이 시작된 순간들, 그리고 작업이 직업이 될 때
작가님도 소설 속 인물들처럼 불안함을 안고 안락한 세계로 진입해 가던 직장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나에게는 소설이 있었다’고, 『일의 기쁨과 슬픔』 작가의 말에 쓰셨죠. 안나에게 조성진이, 거북이알 에게 거북이가, 장류진 작가님껜 소설이. 작가님의 일상에 소설은 언제, 어떻게 등장했나요?
생각을 글로 정리하거나 글로 쓰는 걸 좋아했어요. 그런데 저는 일기도 안쓰니까,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쓸 일이 없는 거예요. 대학 다니면서는 전공이 사회학과다 보니 내내 글을 썼는데 IT 업계에 들어와서는 글을 쓸 일이 없으니까, 쓰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어요. 열망은 있는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 문화센터 강좌를 둘러봤더니 수필 쓰기, 시 쓰기 … 여러가지가 있었어요. 한창 한국 단편 소설에 빠져 있을 때라 그 중 소설 쓰기가 끌렸어요.
작가님의 재능과 결심이 가장 중요했지만, 그 시기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도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그때 젊은 작가들이 활발하게 등장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수필이나 시를 쓰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그럴수도 있어요. 그때가 젊은작가상 1,2 회가 시작되던 시절이었어요. 김애란 작가님 대상 타셨을 때. 그때 한국 단편 소설을 정말 많이 찾아 읽었어요.
판교에서 일하면서 강북에 위치한 한겨레문화센터를 꾸준히 다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은데요.
집에서도 거리가 멀긴 했죠. 하지만 너무 재미있었어요. 토요일마다 수업을 들었는데 일주일 동안 그날만 기다렸어요. 처음엔 3개월 강좌를 한번 듣고 소설 한편 가져올 생각이었는데 강좌에 가보니 사람들이 서로 다 아는 사이더라고요. 등록하고 끝나면 또 등록하고, 그렇게 계속 다닌 사람들이라서요. 처음엔 저 사람들은 어떻게 서로 다 알지 그랬는데 저도 나중에 그 중 한 명이 되어 있었고(웃음). 처음에 두 번 연달아 듣고, 이후로는 한 번 듣고, 한 번 쉬고 하면서 들었어요. 지금은 문화센터에 플랜카드가 걸려 있어요.(웃음)
그렇게 강좌를 듣던 회사원이었는데, 이제 전업 작가가 되셨습니다. 전업 작가가 되신 후 1-2년 정도 흘렀으니 작업이 직업이 된 이후의 변화에 대해 다시 여쭤보고 싶어요. 전환을 결정할 수 있었던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명확해요. 복수의 출판사와 복수의 책 계약이 있었다는 것. 『일의 기쁨과 슬픔』 을 내면서 그만두었는데, 복수의 계약이 있으니 할 일이 없진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들 책 잘될 것 같다고 하니까 잘되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고요. 그리고 그중 하나가 장편이라는 것. 장편은 회사다니면서는 아무래도 어렵겠더라고요. 회사 생활을 좋아했었고, 그만두지 않아도 된다면 계속 다녔을 거예요. 둘 다 할 수 없고 반드시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상황이라 결정할 수 있었죠. 정말 갖기 힘든 기회를 잡은 거잖아요.
지금 내가 손에 쥔 가능성이 얼마나 얻기 힘든 기회인가를 알면 용감해지는 것 같아요. 전환 이후 일상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일어나자마자 첫 일과를 글쓰는 것으로 하려고 하고, 그건 잘 지키고 있는 편이에요. 따로 작업실이 있진 않고 집에서 작업하는데, 출근 준비하듯이 일어나서 샤워하고 옷도 나름의 분류에 따라 츄리닝에서 다른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웃음) 커피 마시면서 글을 쓰기 시작해요. 9시 반에서 10시 사이.
딱 출근하시는 거네요!
네, 회사 다닐 때도 그 시간쯤 출근했으니까 비슷하죠. 그렇게 시작해서 배고플 때까지 써요. 1~2시 정도까지 쓰고, 밥 차려 먹고 나면 오후엔 잘 안쓰고요. 회사를 안 다니는데 이정도 여유는 가져야겠다, 매일매일 반차같은 느낌으로 살자, 그렇게 생각해요.
매일이 반차라니! 예술가들이 파격적이고, 아주 특별한 재능을 가진 특별한 사람이라는 상이 지배적이었다면, 이제는 직업인으로서 규칙적으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상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이제 프리랜서가 된 거니까요. 일이란 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기획자로 일할 때도 업무가 하나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좋아하는 업무가 있고 그냥 해야 하는 업무가 있었는데, 소설가도 그런 것 같아요. 소설 쓰는 일만 하는 건 또 아니니까요. 메일 답장도 하고 거절도 해야 하고, 책이 나오면 홍보도 해야 하고요.
기획자로 일할 때 저는 시나리오 그리는 걸 제일 좋아했어요. IT 서비스 화면의 플로우를 그리는 거예요. 싫어하는 사람은 똑같은 걸 몇 백장 그린다고 싫어하는데 저는 좋아했어요. 이걸 누르면 여기로 가겠지, 이 경우엔 여기로 보내 볼까? 사람들이 이 버튼을 눌러보고 싶겠지? 생각하는 알고리즘이 소설이랑 비슷한 면이 있어요. 음, 그리고 제일 싫어하는 건, 내가 하겠다고 한 일도 아닌데 설득 논리를 만들어야 하는 종류의 일이었어요.
지금은 제일 싫어하시던 종류의 일은 안하셔도 되겠네요.
맞아요. 그리고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없기도 해요. 출판계에서는 저자를 (손을 높이며) 이렇게 (존중) 해주시더라고요. 처음엔 선생님, 하고 부르시는 것도 너무 놀랐는데, 출판계에선 자연스러운 호칭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 쿠션 덕분에 일하면서 기분 나쁘게 대하는 사람은 없는데, 아직도 적응이 완전히 되지는 않았어요.
작가님은 IT 회사의 천재 개발자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제품을 직접 만들어 내는 분.
(웃음)
모든 작업이 직업이 되진 않지만
작가님은 ‘사회학을 공부하고 IT 회사에서 일하면서 글을 쓰다 작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다 보니 어린시절의 이야긴 거의 들어보지 못한 것 같아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엔 뭔가 주어지면 잘 쓴다는 말은 들었던 것 같아요. 글쓰기에 관한 숙제는 재밌게 했고요. 그보다 더 어린 시절엔 외향적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학기 초에 교과서를 받으면 국어책과 사회책은 다 읽어보는 아이. 박완서 선생님의 『그 여자의 집』은 하이라이트 부분이 교과서에 실려 있는데 그걸 읽곤 전체 소설을 찾아 봤지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은 하이라이트도 아니고 전개만 실려 있었는데, 너무 궁금해서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어요. 여기서 끊는다고? 말도 안돼! 하고 서점으로 달려가 어린이용 책을 사와서 정신 없이 읽던 기억이 있어요.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소설을 탐독했던 강렬한 경험이었죠.
이야기와 서사를 좋아하는 어린이였군요.
맞아요. 지금도 기억나는 책이 있는데, 지경사에서 낸 아동 소설 시리즈예요. 우리나라 작가들이 쓴, 어린이와 청소년 중간 쯤의 아이들이 읽기 좋은 창작 소설들인데 제 책장 한칸 가득 꽂혀 있었어요. 스토리가 재밌어서 많이 읽었는데, 아마 제 나이 또래고 책을 좋아하는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공유하는 시리즈일 거예요. 이야기도 좋아했지만, 활자 중독이었던 것 같아요. 아침밥 먹으면서 조간 신문을 넘기고, 소설도 좋아했지만 뭐든 그냥 다 읽었어요.
그런 특징이 미래로 연결된다는 생각을 해보시진 않았나요?
신문 읽는 걸 좋아하니까 기자가 되고 싶다, 이런 생각은 했었죠. 6학년 특별 활동으로 문예반을 하면서 MBC 에서 개최한 ‘소리글짓기’ 에 공모할 소설을 쓴 것이 인생 최초의 소설이기도 했는데, 소설을 쓰는 미래를 생각해 보진 않았어요.
모든 작업이 직업이 되진 않지만, 작업 없이 직업이 시작될 순 없는 것 같아요. 지금 인터뷰를 하고 계신 ‘스토리 스튜디오’ 에 오는 청소년들은 글쓰기, 영상 찍기, 만들기, 그리기 같은 좋아하는 작업을 하러 여기에 오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해 해요. 내가 지금 이걸 해도 되는건가 하는 죄책감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도 많은 편이고요.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하는, 하지만 이 좋아하는 일이 꼭 내 직업이 될지는 모르겠는 청소년들에게, 뭐라고 조언해 주시겠어요?
저는 하고 싶은 일을 늦게 깨달은 편이라 그런지, 자기 자신이 뭘 하고 싶어하는지 일찍 깨달은 10대 아이들의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런 사람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요. 그래서 <고등래퍼>도 정말 열심히 보거든요. 하지만 해주고 싶은 말은 - 저는 현실적인 사람이니까요 - 비겁할 수 있지만, 마음의 분배, 라고 할까요. 무언가가 너무 좋아도 그것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만족할 만한 걸 만들지 못했다고 해서 인생의 실패라거나, 이것만 바라봤는데 잘 안 되다니 나는 망했어, 라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것을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걸 하지 않을 때, 손에서 놓고 있을 때의 나도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을 쥐고 있지 않을 때의 나도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내 맘대로 될수 있는 일이 아닌데 안 되었을 때 상처받는 것이 너무 속상하니까. 그리고 더 건강하기도 하고요. 그것을 하지 않을 때도 잘 살아갈 수 있어야 하잖아요.
마음의 분배. 적절하게 와 닿는 말이네요.
그런가요?
좋아하는 일에 마음을 전부 쏟지 말고 다른 곳에 분배해 두라는 말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반대로, 좋아하는 일에 일부 마음을 분배해 둬도 괜찮아, 라는 말이 될 것 같아요.
“넌 내가 그렇게 뻔한 얘길 할 것 같니?”
일찍 성공하면 불행하다. 더 많은 것을 탐하면 벌을 받는다.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 꿈을 쫓아 뛰어들어라. 그동안 여러 차례 들어온 충고와 조언들이 누군가에게는 지금도 기준과 격려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일찍 성공한 것이, 더 좋은 것을 바라는 것이 왜 불행이죠? 하고 되묻는 목소리가 반가운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더 좋은 것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달콤한 결말을 선물해 준 소설이, 좋아하는 일에 마음을 전부 쏟지는 말고 마음을 분배해 두라고 조언하는 장류진 작가의 말이 그 누군가에겐 다른 곳에서 듣지 못한 위로와 격려가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1990년대 말 경제 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은상이와 지송이, 다해들이 자랐습니다. 2010년을 지나며 경쾌하게 등장한 젊은 작가들 덕분에 장류진이라는 회사원이 소설을 다시 발견했고, 마침 열린 소설 강좌에 등록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 누군가 장류진 작가의 소설을, 그의 말을 읽고 있을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 어떤 문장이 가 닿을지, 어떤 말에 밑줄을 긋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영향을 받고, 다시 어떤 영향을 남기며 살아간다는 것.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 듯하지만,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들은 그만큼 다양한가요.
뻔하지 않은 이야기들, 조금은 의외의 대답들을 더 많이 들어 보고 싶습니다.
*장류진(소설가) 1986년에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 국문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2018년 단편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 등이 있다. 제11회 젊은작가상, 제7회 심훈문학대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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