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소설을 읽었던 분들만큼이나 제 소설을 전혀 읽지 않았던 분들이 이 산문을 읽고 ‘이렇게 소설 쓰기가 자신에게 중요했다고 얘기하는 사람의 작품을 한 번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 마치 하이퍼링크처럼 지금까지 썼던 소설과 이 글이 그런 식으로 조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내들의 학교』, 『미스 플라이트』, 『서독이모』 등 다양한 여성들의 복잡한 삶을 직시하는 소설을 발표해온 박민정 소설가는 첫 번째 산문집 앞에서 깊이 고민하고, 크게 용기내야 했다. “특출나지도 않고, 허약하고, 용기도 없던 한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용기 내서 소설을 발표하는 작가가 되기까지” 그 자신이 겪어내야 했던 일들에 대한 고백, 소설가로서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창작의 고민들을 모두 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침내 『잊지 않음』이라는 책을 세상에 낸다. “백 가지 고민들”에도 불구하고 이 글들이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 소설을 읽는 사람, 소설가의 삶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가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끄러움을 무릅쓰는 느낌
첫 산문집이에요. '들어가며'에서 "작가에게 산문집이라는 형식은 정말로 큰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7쪽)라고 쓰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용기를 내야 했던 걸까요?
소설을 발표할 때도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는 얘기는 해왔던 것 같아요. 소설을 발표해올 수 있었던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라는 말을 친한 소설가들과 하곤 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쓰고, 발표해온 것은 부끄러움을 무릅쓰는 느낌과 같았죠. 또 산문보다는 소설로 먼저 독자 분들께 인사를 드려왔기 때문에 산문집을 내는 데 여러 차원의 용기가 필요했어요. 제 소설에 드러난 화자의 욕망이나 트라우마가 작가인 나 자신의 못남으로 읽힐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고요. 작가와 화자가 엄격히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중요한 모토로 삼고 작품을 쓰고 있는데요. 산문을 통해서 소설적인 역량 부족이 나라는 사람의 역량 부족과 연결이 되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소설가가 쓴 산문이라는 점에서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산문집을 출간했어요. 출간을 결심했던 마음에 대해서도 듣고 싶어요.
한 번은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다양한 매체에 글을 발표하면서 글이 쌓이기도 했고요. 한편으로는 이 글들이 나의 글이라는 것 외에 어떤 주제로 관통될 수 있을지 고민이 있었거든요. 지금이야 편집부에서 구성을 잘 해주셨지만, 보시면 아시듯 책이나 영화에 대한 글, 인터뷰 등 아주 다양한 글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박민정이 쓴 글에 누가 관심을 가질까, 같은 두려움과 그로 인해 필요한 용기가 저에게 있었어요. 그 외에도 백 가지 고민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짧은 기간 쓰인 글은 아니라고 느꼈어요. 시간의 두께가 느껴지기도 했고요. 방금 이야기한 ‘용기’라는 점과 함께 생각한다면 그렇게 출간된 산문집을 품에 안은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도 궁금해지는데요.
이 책은 저의 자전적 요소들을 많이 밝힌 글들이고, 그 부분에서 걱정이 컸는데요. 생각보다 책을 받아보니 좋았어요. 작업할 때는 그렇게 못나 보일 수가 없는(웃음) 문서들이 책으로 묶이니까 다시 보이더라고요. 내용만큼이나 물성이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도 했고요. 책이 나오고 나면 이건 정말 나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거든요. 많은 분들이 책을 만들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는 것을 알게 돼요. 덕분에 박민정이 여기저기 썼던 글이 누구에게 읽힐까, 했던 그 걱정이 책의 물리적인 형태를 보고 조금 해결되기도 했어요. 앞으로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는 산문집도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작가님은 소설을 쓸 때도 제목을 먼저 정해두고 쓰는 편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이번 산문집 제목은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이번에는 제목이 늦게 나왔어요. 편집부에서는 ‘타인의 역사, 나의 산문’이라는 제목을 추천했었는데요. 저는 제목이 짧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어떤 분이 블로그에 제 소설에 대한 리뷰를 올리신 걸 봤어요. 그 분께서 이 인터뷰를 보시고 제가 그 글에 영감을 받아 만든 제목이라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는데요.(웃음) 리뷰에 ‘잊지 않는 글들’이라고 쓰셨더라고요. 그걸 보고 『잊지 않음』이라는 제목이 됐어요. 거의 출간 직전에 있었던 일이에요.
실패를 예감하고도 한다
첫 부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어요. 먼저 박서원 시인이죠. 산문집을 어떻게 묶을지 고민할 때 다른 누구도 아닌 그를 가장 앞에 배치한 데에는 작가의 분명한 의도가 있었을 거라 생각했어요.
산문집을 기획하면서 제일 공들여 쓴 글이기도 하고, 첫 부분에 배치되면 좋겠다고 의견을 드렸던 것이기도 해요. 저는 박서원 시인의 산문집을 시집보다 먼저 봤는데요. 여성 작가에게 부여되는 이미지가 많이 왜곡되어 있다는 걸 뒤에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나는 작품을 쓰는 작가로서 어떤 식으로 나 자신을 독자에게 어필할 것인가 생각할 때 박서원 시인의 『천년의 겨울을 건너온 여자』라는 책을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박서원 시인의 시들은 시 자체로 정말 훌륭한 작품임에도 이 사람의 불행이 지나치게 그의 작품을 먹어버리는 느낌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어떤 선언처럼 그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고 싶었어요.
같은 글에서 최은영 소설가와의 남다른 인연도 등장하는데요.
최은영 작가는 그런 박서원 시인의 시를 제게 알려준 사람이니까요. 고등학교 때부터 같이 글을 썼던 친구이자 저보다 2년 먼저 대학생활을 시작한 언니예요. 제가 대학에 가니까 기숙사에 책을 상자로 보내줬어요. 거기 박서원 시인의 시집도 있었죠. 그런 마음이 이후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언니들이 책을 엄청나게 보내준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했었기 때문에 박서원 시인 산문집을 얘기하면서 최은영 작가 이야기를 한 것은 한 부분도 빠짐없이 제게 너무나 중요한 이야기들이었어요. 이 글의 제목이 ‘여성시라는 장르규칙’이잖아요. 약간 비꼰 제목이기도 하거든요. 수업에서 독해했던 것처럼 여성 시인의 시를 그 사람의 삶에 어떤 폭력이 있었는지를 살피는 게 과연 여성시의 장르규칙일까, 하고 되물었던 과정들이 제게 있었던 거죠. 이 글이 책의 첫 부분에 배치됨으로써 『잊지 않음』이라는 산문집이 새롭게 옷을 입은 계기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소설가 박민정에 대한 궁금증들이 생기는 문장들이 많았어요. "내게 글쓰기는 실패를 예감하고도 수행할 수밖에 없는 행동이다"(57쪽)라는 문장이 있거든요.
저는 대체적으로 모든 일에 대해 잘 될 거라는 낙관을 하지는 않는 편이긴 해요. ‘실패를 예감하고도 한다’는 것은 글쓰기뿐 아니라 아주 많은 일들에 붙이는 수식인 것 같고요. 특히 글쓰기가 그렇죠. 사실은 2014년에 책 출간을 한 뒤로 쭉 내가 내 작품의 부족한 면을 알고 있더라도 부족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작품을 사서 보는 독자가 있는데 생산자로서 할 말은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조금 더 갔으면 어땠을까, 같은 생각들. 하지만 잘될 거라고 생각해서 하는 것보다 이쪽이 제게는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작가라는 정체성을 계속 유지하는 일은 앞이 보이지 않는데 막막한 미래를 향해서 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런 마음을 담아 쓴 문장이었어요.
기존에 발표한 소설 바깥의 이야기들도 많이 등장해요. 작가님들은 워낙 소설의 의도나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많이 질문 받으시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셨던 건가요?
저는 소설을 쓸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다른 작가 분들도 요즘은 작가노트를 많이 쓰시는 것 같은데요. 저에게는 이것이 너무 재미있는 과정이에요. ‘이런 생각으로 썼어. 이걸 알아줘’가 아니라 별개의 스토리로 작업하는 것 같거든요. 영화 같은 장르에서도 외전이나 프리퀄처럼 작품의 유니버스를 보여주는 콘텐츠가 많잖아요. 마찬가지로, 말하자면 미국식(웃음) 재미일 수 있는 거죠. 저작권에 대한 각성이기도 하지만요. 내 작품을 가지고 이리저리 놀아보고 싶다고 생각한 작가들의 시도라고 봐주시면 좋겠어요. ‘들어가며’에서 “다 까발려 보여주지만은 않겠다”고 한 것은 제 인생에 대한 이야기였지, 작품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얘기하고 싶어요. 그래서 매번 그 작품의 작가노트를 마련해왔어요. 다 가지고 있어요.
작품을 발표하면 그 작품이 닫힌 채로 있는 게 아니라 열린 상태로, 발표 이후에 덧씌울 수도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문학을 공부하면서도 왜 문학은 인터랙티브가 안 될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연극은 관객이 무대에 올라가서 극의 내용을 바꿔버리기도 하잖아요. 베르톨트 브레히트나 귄터 그라스 같은 작가들이 놀라운 게, 사회를 변혁시키겠다는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작품만으로도 굉장한 감동과 몰입의 차원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점이거든요. 흔히 사회적 발언이 센 작품은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그 지점을 돌파한 작가들인 거죠. 저도 내가 주장하고 싶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동시에 작품성을 훼손하지 않는 작품을 쓰는 게 관건이었어요. 그러면서도 문학에서는 그 작업이 다른 장르보다 어려울 것 같다는 고민을 했던 것 같은데요. 작품활동을 하는 지난 10년의 변화를 보면서 생각을 많이 바꾸기도 했어요. 뉴미디어가 등장해서 독자와 창작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도 있게 됐으니까요.
여성작가이기 때문에
소설가로 10년 이상 작품활동을 하면서 어떤 고민은 해결됐을 테고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고민들도 있을 텐데요. 가령, “여성작가로서 쓸데없이 가져야 하는 압박과 죄책감으로부터는 조금 자유로워지고 싶다.”(204쪽)고 하신 부분이 있거든요. 이 문제는 해결이 됐나요?
현실에는 수많은 여성이 존재하잖아요. 여자들의 싸움만 해도 얼마나 대단한가요. 엄마와 딸의 관계만 해도 너무나 넓은 스펙트럼이 있죠. 그런데 너무 단순하게 읽히곤 해요. 소설 속 어떤 인물은 폭력적이고, 어떤 인물은 어리석죠. 이에 대해 ‘여성작가이면서 여성을 어떻게 그렇게 그릴 수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거든요. 올바른 여성만을 등장시키는 게 소설일까, 하면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당연히 다른 사람의 삶을 건드리고, 누군가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을 쓰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은 평생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다만 여성작가이기 때문에 여성 인물을 어떤 식으로 그려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면 그것은 벗어 던지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주변 인물이나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일들을 소설에 변용했을 때 갖게 되는 걱정도 솔직하게 담으셨잖아요. 소설가로서 갖고 있는 망설임이랄까, 경계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듣고 싶어요.
책에 친구 ‘정희기’, 동생 ‘박민지’와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죠. 제가 계속해서 괜찮은지를 묻잖아요. 저한테는 너무 미안한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어쨌든 제가 쓴 소설의 내용을 모델이 된 사람에게 일일이 확인하는 과정은 정말 중요했고요. 그 과정이 제게도 좋았던 것 같아요. 윤리의 문제를 넘어서 그것 역시 작품 활동의 일환으로까지 느껴지더라고요. 묻고, 그에 대해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고, 당신에게서 따온 모티브니까 직접 보라고 확인하는 과정이 말이에요. 다행히 그동안 불편함을 느낀다고 말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는데요. 그 과정이 정말 의미 있었어요. 그래서 실명을 다 언급하고, 실제 일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코멘트 하는 식으로 소설집의 작가의 말에 싣기도 했었죠. 지금은 현실의 일을 쓴다는 것이 더욱 복잡하고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긴 해요. 이번 산문집에 등장하는 글도 모두 등장한 분들에게 양해를 구한 것인데요. 누군가를 찬사하고, 칭찬하는 글이라도 상대에게 확인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쓰는 모든 소설이 그렇듯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항상 뒤늦게 슬퍼진다.(165쪽)"라는 문장도 날카롭거든요.
사실은 저도 제가 쓴 문장에 상처를 받거든요. 첫 책을 냈을 때는 길을 가다가도 한번씩 멈춰서 숨을 골라야 했어요. 내가 쓴 문장이 너무 폭력적이어서요. 내가 쓴 문장에도 내가 상처를 받는데 그것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것은 너무 당연한 거죠. 더구나 ‘이게 나인 것 같아’라고까지 느낀다면 상처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진을 찍는 일도 어떤 방식으로든 그 순간을 폭력적으로 박제해버리는 일이 아닐까 하는데요. 사진 너머에 아주 많은 맥락이 있을 수 있는데 한 장의 프레임으로 남겨버리면 몇 십 년 후에는 그렇게 편집된 장면 하나만 남는 거잖아요. 마찬가지로 소설도 현실을 박제하고, 편집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요. 아무리 해도 매우 폭력적인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저는 내가 하는 일이 그만큼 정의롭고, 진정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행복하고 건강해야 글을 쓴다
한편으로는 “많은 선배들이 불행은 네 글의 재산이 되어줄 것이라고 했”(234쪽)다던 말도 생각하게 되네요.
그런 말을 듣고,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저 역시 너무 오랫동안 행복한 사람은 글을 못 쓸 거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삶이 편안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는 것에 대해서 부채감을 느끼는 작가들을 봐왔고요. 심지어 어떤 사람은 문학을 하기 때문에 불행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은 행복하고 건강해야 글을 쓴다는 쪽으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불행이나 폭력의 경험은 그 자체로 없어야 하는 일들이었고, 일어났다면 그것을 작품으로 변주해서 극복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작품을 위해 그 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게다가 오랫동안 소설을 쓰는 선배 작가님들을 보면 다들 운동 많이 하시고(웃음) 좋은 것 챙겨 먹으시잖아요. 그게 왜 그렇게 금기였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나의 오랜 친구 민정이’라는 최은영 소설가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잖아요. 인터뷰 초반에 작가님은 최은영 작가님이 준 영향이 이후의 자신을 쓰게 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최은영 작가님은 박민정 작가님의 행보를 보고 “내 마음속에서 오래 숨죽이고 있던 목소리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227쪽)고 썼거든요. 이 글을 받고 어떠셨어요?
원래 발문을 실을 계획이 없었는데요. 예전에 허수경 시인의 시집에 신경숙 소설가가 발문을 쓴 적이 있어요. 싸우기도 하고, 함께 시래깃국 끓여 먹으며 화해하는, 너무나 소소한 두 사람의 이야기였는데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그러면서 은영 언니에게 청탁을 한 거죠. 정말 금방 써서 글을 보내줬어요. 너무 고맙죠. 지금은 많은 분들이 최은영 소설을 좋아하시잖아요. 저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는데요. 글에는 제 싸이월드 글을 보고 가진 생각들을 적어줬지만 저 역시 언니의 글을 보면서 ‘어떻게 한 줄을 써도 울컥하게 만들까’ 생각하곤 했어요. 은영 언니는 진짜 자기 자신 같은 글을 써요. 그에게는 변하지 않는 모습이라는 것이 있고요. 이 사람의 너무나 진정한 마음,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행동과 일치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이 제게는 당연하게 느껴지죠. 이번에 언니의 글을 보고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있고요. 역시 산문의 매력은 말 못했던 것을 고백하는 것이구나(웃음) 생각했어요.
'나가며'에서 "글을 쓰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233쪽)라는 문장이 등장해요. 과연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요?
작가인 친구들 중에 재능 많은 친구들이 있어요. 천희란 작가는 노래를 정말 잘해요. 거의 가수 수준이거든요. 그림 잘 그리는 친구들도 꽤 많고요. 운동을 정말 잘하는 친구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정말 그런 게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맨날 친구들한테 말해요. “나는 이거 아니었으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라고요. 정말 떠오르는 게 없어요.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지만 저 스스로는 진짜 글이라도 썼으니까 이렇게 살았지, 하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몇 년 전에 내가 절대 못할 것 같은 일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수영과 운전에 도전했어요. 남들은 아주 쉽게 하는 것조차 잘 못해서 일찍 포기해왔거든요. 안 될 걸 알면서도 했던 건 오직 글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도전을 했던 건데요. 지금은 운전은 하게 됐어요.(웃음)
*박민정 1985년 서울 출생. 중앙대 문창과와 동 대학원 문화연구학과 졸업.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단편 소설 『생시몽 백작의 사생활』이 당선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아내들의 학교』, 장편소설 『미스 플라이트』 『서독 이모』가 있다. 2015년 김준성문학상, 문지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8년 『세실, 주희』로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2019년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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