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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소복이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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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복이 작가는 자신이 쓴 첫 에세이 『만화 그리는 법』을 읽고는 “어? 이거 사랑 이야기잖아?”라고 생각했다. 유유출판사의 땅콩문고 시리즈를 좋아해 단번에 출간 제안을 수락한 실용 에세이. 쓰면서는 고되기도 했지만 15년째 만화를 그리는 이유를 깨닫게 한 책이다. 만화, 친구, 가족에 관한 사랑이 담긴 『만화 그리는 법』은 만화가를 꿈꾸지 않는 사람도 왠지 그림을 그리고 싶게 만든다. 



일기를 쓰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책에 이런 챕터가 있죠. “그림이랑 똑같이 생겼네요!” 와, 정말 책에서 나오신 줄 알았어요. 

(웃음) 자주 들어요. 하지만 찬찬히 보면 달라요. 제가 그린 만화 속 제 모습이 저와 똑같이 보이는 건 제가 정말 그렇게 생겨서가 아닐 거예요. 만화 속 제 캐릭터가 제 삶을 개성 있게 살아주고 있어서죠. 

작년에 『만화 그리는 법』 출간 제안을 받고 반가워하셨다고요.

네, 너무 좋았죠. 사공영 편집자님이 제안해주셨는데 너무 감사했어요. 처음에는 제가 좀 헤맸거든요. 실용적인 책을 써야 하는데 초고를 너무 에세이 느낌으로 써서 중간에 다시 썼어요. 편집자님이 틈틈이 만화에 관한 궁금한 점을 질문해 주셔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만화로 일기 쓰는 만화가”라고 스스로를 설명하셨어요. 만화가가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림일기를 쓰는 일이라고요.

제가 성인이 돼서 그림일기를 처음 쓴 건 2003년 6월이에요. 몇 년 후면 20년도 더 된 일이죠. 지금까지 1,085편의 그림일기가 모였어요. 만화가가 되고 싶은 분들께 그림일기를 쓰라는 이유를 하는 건, 매일 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알게 되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음악, 책,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또 웃기는 사건을 그리고 우울한 감정을 그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생각이 정리돼요. 만화 속 내 모습을 보는 일로 나의 다른 가능성도 찾을 수 있고요. 저 역시 그림일기를 통해 첫 그림 일이 들어왔어요. 

첫 작품이 2007년 새만화책에서 나온 『시간이 좀 걸리는 두 번째 비법』이에요. 출판사에서 만화를 그리는 법을 배우셨다고요.

새만화책 출판사는 조금 독특한 곳이었어요. 만화가 지망생들을 교육해서 책을 출간하기도 했는데 저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고 장래희망이 만화가도 아니었어요. 당시 남자친구가 만화가여서 만화를 접하게 된 경우인데, 그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면 만화가가 안 됐을 것 같아요. 그때까지는 만화를 특별하게 좋아하지도 않았고 그림을 좋아한다고 하기도 애매했거든요. 

서른이 넘은 나이에 만화가가 되셨어요. 그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제가 졸업할 무렵에는 벤처 회사가 유행했어요. 컴퓨터 관련된 회사를 세 군데 다니다가 첫 책을 내고부터 전업작가가 된 셈이에요. 직장인에서 작가가 되니까 좋더라고요.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회사까지 달리기를 안 해도 되고 싫어하는 사람이랑 점심을 안 먹어도 되고. (웃음) 그림을 그려주면 쌀도 받고 돈도 벌고요.



힘을 보태고 싶은 작업들

월간지 『우리농』 소식지에는 15년째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요. 장기 연재의 비결이 궁금해요. 

직장 생활을 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무언가를 꼬박꼬박 해내는 일에 익숙한 것 같아요. 마감을 딱딱 잘 지키는 건 아니지만 해야 되는 것들은 해내는 거예요. 참여연대 소식지 『참여사회』에는 ‘이럴 줄 몰랐지’라는 두 쪽짜리 일상 만화를 연재하는데 올해로 벌써 4년이 됐어요. 이런 단체에서 만드는 책들은 아무래도 생각이 잘 통하니까요. 이야기를 풀어내기가 부담이 없고 쉬운 편이에요. 연재는 아무래도 마감이 제일 중요해요. 이 마감일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돌아오니까요.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은데 저도 잘 못해요. (웃음) 

『고래가 그랬어』에서도 두 번의 긴 연재를 했어요. 어린이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제가 얼마전 성미산마을 근처로 이사를 왔는데요. 나무를 깎는 일을 하는 남편이 동네 아이들과 워크숍을 하는데, 한 아이가 “소복이 작가가 우리 동네로 이사 왔다”는 말을 남편에게 하더래요. (웃음) 아, 『고래가 그랬어』 를 읽은 독자가 여기에 있구나 싶어서 반가웠죠. 

어린이 만화를 그릴 때는 특별히 염두에 두시는 것이 있나요?

『고래가 그랬어』를 만드는 김규항 발행인이 해준 말이 기억에 나는데요. 어린이 만화를 그린다고 특별히 다르게 그리지 말라고, 아무것도 제한하지 말고 그리고 싶은 만화를 재밌게 그리라고 했어요. 주인공만 성인에서 아이로 바뀌는 정도이지 특별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없어요. 

연재를 수락하는 기준이 있다면요? 

원고가 있는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는 책인 경우에 원고가 너무 좋으면 일단 해요. 작년에 나온 『어린이 마음 시툰 : 우리 둘이라면 문제 없지』는 너무 즐겁게 만든 책이에요. 김용택 시인이 뽑은 다양한 동시들을 한 편당 16컷 정도의 만화로 만드는 작업이었는데, 이 책을 만들다 시를 사랑하게 됐어요. 『흥미진진 핵의 세계사는 핵무기에 관한 책인데 이 책도 원고를 받자마자 하고 싶었어요. 만화를 어떻게 그려야 할지 잘 떠오르진 않았지만 세상을 좀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하는 이야기에는 기회가 닿는 한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책 표지에 그 '앗! 만화가인데 굶어 죽지 않았다니!’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요. 다양한 컷 중에 이 그림을 실은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 가면 꼭 듣는 질문이 “얼마 버냐?”는 말이에요. 그러면 저는 “많이 번다”고 해요. 만화가, 예술가들이 돈을 벌지 못한다는 시각이 어릴 때부터 있다는 게 좀 싫어요. 제가 벌만큼 번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놀라요. 책에도 썼지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했고 해봤더니 굶어 죽지 않았어요. (웃음) 

강연 요청을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읽고 놀랐어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잘하는 편은 아니에요. 하지만 찾아주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출간된 책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으로 하고 있어요. 저는 강연비를 무조건 여행비로 써요. 지방 강연을 많이 다녔는데 아이랑 남편이랑 갈 때도 있고 친구랑 갈 때도 있어요. 친구한테 “강연 시간에 아이만 봐줘라, 그러면 내가 여행 경비 다 낼게”라고 말하고 가요. (웃음)



일단 그리면 잘 그리는 거다

하루에 3시간 집중해서 일하는 게 목표라고 쓰셨어요. 작업이 좀처럼 풀리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책상 한쪽에 재밌는 책을 여러 권 올려 놓고 손이 가는 대로 읽어요. 책을 읽다 보면 작업에 자극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질문을 많이 해요. 친구한테도 아이한테도 자주 물어보는 성격인데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스스로에게도 계속 질문해요. 그러다 보면 실마리가 풀려요. 

어두운 이야기를 그린 작품 속에서도 약간의 낙관성이 느껴져요. 작가님의 성격이 반영된 걸까요?

글쎄요. 기본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지만 마냥 낙천적이거나 그렇지 않아요. 때때로 회의감이 생기고 우울하기도 한데, 이런 불안과 우울이 심해질 때는 감당할 수 없는 영화나 책을 보지 못해요. 그래서 어두운 소재의 이야기를 할 때 너무 심하게 우울하게 그리진 않으려고 해요. 저 같은 사람도 볼 수 있으면 해서요. 그리고 전 스스로에게 관대한 편이에요. 한 페이지를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면 넘어가지 못하는 작가가 있고 그렇지 않은 작가가 있는데, 전 후자예요. 만화가가 되어야지 하는 큰 열망이 없는 상태로 시작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편안한 것 같아요. 

2017년에 출간된 『소년의 마음』으로 부천만화대상 어린이만화상을 수상하셨어요. 성인 독자에게도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인데, 남동생에 관한 이야기라고요.

어릴 적 작은 아파트에서 다섯 식구가 살았어요. 방이 없는 동생은 거실 한쪽에 작은 상을 펴 놓고 그림을 그렸죠. 그때 우리들은 각자의 힘든 마음을 안고 살기 버거웠어요. 어느 가족 누구도 가장 어린 사람의 마음을 감싸 주지 못했죠. 『소년의 마음』 은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소년의 이야기인데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사람에게 위안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그렸어요. 

『만화 그리는 법』으로 소복이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된 독자라면 다음 책으로는 어떤 작품을 읽으면 좋을까요?

글이 많지 않은『소년의 마음』 도 편하게 읽으실 것 같고 작년에 나온『구백구 상담소』를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이 책에는 몇 년간의 제 삶이 다 들어간 만화라서요. 



만화가를 꿈꾸지는 않지만, 소소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예전에 제가 친구한테 “그림에는 그린 그림과 안 그린 그림이 있다. 그리면 잘 그리는 거다”라는 말을 했대요.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해요. 처음부터 잘 그려야겠다고 생각하기보다 매일 꾸준히 그리는 게 중요해요. 기술적으로 잘 그리지 못한다는 두려움을 버리고 못 그린 그림이라도 매력 있는 그림을 그려보세요.



* 소복이(만화가)

동시에 빠져들어 시를 쓰듯 만화를 그려 보고 싶은 만화가다.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지금은 만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면서, 독특하고 깊이가 느껴지는 그림에 인문적 감수성을 더해 내는 흥미로운 작업을 하고 있다.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 환경 운동 단체인 ‘녹색연합’ 등에 만화를 연재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소년의 마음』, 『애쓰지 말고, 어쨌든 해결 1, 2』, 『구백구 상담소』, 『어린이 마음 시툰, 우리 둘이라면 문제없지』, 『이백오 상담소』, 『두 번째 비법』 등이 있고, 『우리집 물 도둑을 잡아라』, 『인권도 난민도 평화도 환경도 NGO가 달려가 해결해 줄게』 등에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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