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시간을 함께한다. 가벼운 애정이나 호감만으로는 유지할 수 없다. 성실과 노력은 기본. 과정 속에서 여러 기술과 인격을 성장시킬 수 있고, 몸이나 머리를 쓰는 만큼 마음을 쓰게 되는 일. 황선우 작가가 말하는 일과 사랑의 공통점이다. 사랑의 결정적 순간에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일에 대한 사랑을 마음껏 표현하기 위해서 우리에겐 용기가 필요하다. 황선우 작가의 새 책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는 그런 용기를 주는 책이다. 일에 관한 글을 쓰면서 일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더 또렷해졌다는 황선우 작가를 만났다.
‘일하는 50대 여성들은 어디에 있을까?’
단독 화자가 되어 쓴 첫 책이에요.
세 번째 책이지만 처음처럼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했어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김하나 작가와 함께 썼고 『멋있으면 다 언니』는 인터뷰집이었으니까요. 공저자나 인터뷰이들의 이름에 의지할 수 없다는 자각이 책에 대한 애착과 책임감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출간 당일에 2쇄를 찍었다고요. 소식 듣고 어땠나요?
예상보다 빠르게 중쇄를 찍어서 깜짝 놀랐어요.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이나 『멋있으면 다 언니』 때도 반응이 빨랐는데요. 이런 반응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앞으로의 목표로 삼지 않으려고 해요. 대신 힘을 빼고 느긋하게 다음 책을 준비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독자들의 호평이 눈에 띄더라고요. 독자의 어떤 반응을 볼 때 특별히 반가운가요?
일하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더 아끼게 되었다는 반응,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같이 읽고 싶다는 이야기, 자기 일의 사랑하는 부분을 돌아보게 됐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기쁘죠. 일하는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일에 대한 글을 묶은 책이에요.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거나 흐릿한 감정이 또렷해지기도 하는데요. 책을 쓰면서 새로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요?
앞으로도 일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또렷해졌어요. 자연스럽게 내 일의 미래를 생각하게 됐고요. ‘결혼하지 않은 40대 여성들은 어디에 있을까?’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썼다면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를 쓰고 난 후, 앞으로 한동안은 ‘일하는 50대 여성들은 어디에 있을까?’라는 질문을 계속할 것 같아요.
제목을 보고 가슴이 뛰었어요. 사랑 에세이 같기도 한데요. 어떻게 나온 제목인가요?
조금만 진지해도 ‘오그라든다’는 말을 듣기 쉬운 요즘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일에 대한 사랑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많지만, 제가 지금까지 일하며 만난 수많은 여성이 이미 자기 일을 사랑하고 있었어요. 일을 둘러싼 환경이나 일의 조건과는 불화할 수 있겠지만요. 일을 사랑한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며 자기를 검열하는 사람도 있었는데요. 여성들의 이런 마음의 한 부분을 함께 들여다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은 제목이에요.
‘너무 크고 뾰족하고 울퉁불퉁한 사람들에게’라는 문장을 오래 들여다봤어요.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진 ‘한 사람’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뜻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요. 어떤 의미인지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한국 사회는 틀에 박힌 모습을 강요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특히 여성들에게 생김새부터 행동, 역할까지 많은 것들을 강요하는데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많은 여성이 사회가 원하는 기준을 내면화하는 동시에 의문을 품는 것 같아요. 사회가 말하는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고 애쓰다가 자신을 미워하기도 하고요. 이런 과정을 지나오면서 지쳐 있을 여성들에게 달라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차별을 거듭 경험하다 보면 지칠 때가 있어요. 피해를 자각하되, 피해자 정체성에 사로잡혀 피폐해지지 않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까요?
일상을 정성스럽게 영위하는 데 집중해야 해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것들을 애써 찾고, 좋은 곳에 자신을 데려가고, 좋아하는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많이 웃어 두면 분노해야 할 때도 더 잘 분노할 수 있어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렸으면
“타인에 대해 내리는 평가를 보면 평가 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평가하는 사람이 보일 때가 많다.(42쪽)”는 문장이 인상 깊었어요. 책에서 말한 것처럼, 각자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용으로 타인을 평가하게 될 텐데요. 동료 또는 선배로서 누군가를 평가해야 할 때 주로 떠올리는 기준이 있나요?
요즘 자주 하는 생각인데요. 문제를 만들지 않는 사람보다 일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충분히 공유한 다음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 괜찮은 동료가 아닐까 싶어요.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책을 읽으면서 나를 드러내고, 타인과 연결되는 일의 중요함을 느꼈어요. “과거에 나를 드러내는 걸 지독하게 꺼렸던(37쪽)” 사람으로서 여전히 다른 사람 앞에 나서기를 주저하고, 네트워킹에 소극적인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요?
저에게 네트워킹이란 없던 연결을 만드는 일이라기보다 내가 이미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프리랜서가 되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와 같은 질문이 중요하고 절실해졌죠. 조직에 있으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동료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지만, 프리랜서는 애써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볼 수 없거든요.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다른 사람 앞에 나서기를 주저할 때도 있는데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렸으면 좋겠어요. 혼자 모든 것을 잘하려고 하기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나눠 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회사 안 다니는 거 너무 좋아. 근데 너는 웬만하면 오래 다녀(70쪽)”라는 문장을 보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기분으로 조용히 웃었어요. 이 복잡한 마음에 대해 더 듣고 싶어요.
막연하게 퇴사 이후의 삶을 두려워하다 쫓기는 마음으로 그만두기보다는 자기 일의 본질을 파악하고, 회사 밖에서 어떤 형태로 자기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탐구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말이에요. 회사를 나온다 해도 은퇴 전까지 일해야 하니까 회사에서 충분히 일을 경험한 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늦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책의 한 파트가 끝날 때마다 긴즈버그, 비비안 마이어 등 우리가 아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나와요. 김하나 작가가 대미를 장식하는데요. 글을 본 김하나 작가의 반응은 어땠나요?
예전에 김하나 작가가 추천사를 쓴 책이 있는데요. 그 책 띠지에 이런 문구가 있더라고요. ‘마거릿 애트우드, 조이스 캐럴 오츠, 김하나 추천!’. 그 띠지를 봤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고 해요. (웃음) 저에게 ‘도대체 기준이 뭐냐?’고 묻기도 했는데, 앞서 말한 책의 띠지와 비슷한 기준 아니었을까요?
조금씩 각도를 바꿔가며 해내는 사람
‘황선우의 일’을 이야기할 때 ‘인터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옛날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떠들거나 인터뷰이의 이름을 열거하기보다는 인터뷰어의 일하는 환경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더 이야기하고 싶다.(155쪽)”고 했는데요. 단서를 붙였어요. ‘후배들이 먼저 물어볼 때까지 기다리겠다’고요. 책을 보고 궁금해할 후배들을 대표해 묻고 싶어요.
매체의 권위가 해체되고 민주화된 가장 대표적인 장르가 인터뷰 아닌가 싶어요. 만인의, 만인을 향한 인터뷰가 가능한 시대라고 할까요? 인터뷰어의 소속과 관계없이 좋은 인터뷰를 수행하고 정돈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과 기술이 더 필요하고 돋보이는 시대가 됐다고 생각해요. 인터뷰뿐만 아니라 콘텐츠 산업 전반에 일어난 변화이기도 하고요.
잡지 에디터로 커리어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요?
언론사 공채 시험을 보다가 가장 먼저 합격한 잡지사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아마 다른 회사에 먼저 합격했다면 그 회사의 미디어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고, 그러다 지금처럼 책을 쓰게 됐을 수도 있겠죠. 천직을 찾은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이 있다기보다 우연이 겹치고 시간과 노력이 쌓여서 각자의 커리어가 된다고 생각해요.
새로 도전하고 싶은 영역의 일이 있다면요?
제가 어떤 제안을 받고 고민할 때 김하나 작가가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지금까지 해오던 일에서 각도를 조금 바꾸는 쪽의 일을 하라’는 건데요. 올 한 해 동안 김하나 작가와 함께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타이포잔치 2021)’에 글 작가로 참여하고, 직접 낭독한 목소리로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오디오북을 만든 것도 도전과 결심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해내면서 이룬 일들이었어요. 각도를 바꾸면서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새로운 일을 계획하기보다 받은 제안을 잘 선별하고 새로운 방향의 일들을 골라서 충실히 해내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앞으로 더 용기 내고 싶은 상황이나 사람이 있을까요?
저보다 어린 세대들을 피상적으로 단정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그렇게 되기 위해 그들과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면 용기 내 다가가고 싶어요.
일을 사랑에 비유한 대목이 좋았어요. 여성들에게 일이란, 자기 삶을 책임 있게 사랑하는 방식(13쪽)이라고도 했는데요. 내 삶을 책임 있게 사랑하기 위해 어떤 태도로 일하면 좋을까요?
상대를 위해 무조건 희생하는 사랑이 좋은 사랑은 아니잖아요. 일도 비슷한 것 같아요. 아낌없이 나를 쏟아보고, 때로는 나를 지키기 위해 싸우기도 하면서 일과 건강한 관계를 맺으면 좋겠어요.
*황선우 잡지 만들고 인터뷰하는 일을 20년 했고, 그중 패션매거진 《W Korea》에서 가장 오래 일했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에디터 시절 배우고 익힌 콘텐츠 제작과 큐레이션 기술을 다양하게 활용하며 일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펜유니온 TV]를 운영하며, 쓴 책으로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김하나와 공저)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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