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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 “노무현 대통령에게 혼날 때 무덤에 묻히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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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에서 세계정신을 보고자 했다. 독재를 추구한 황제 나폴레옹이 아니라 자유, 평등, 형제애를 추구한 프랑스혁명의 수호자로써 나폴레옹에 반했다. 에릭 홉스봄이 이 시기를 ‘혁명의 시대’로 봤듯, 당시 시대정신은 혁명이었고 혁명은 나폴레옹이라는 인물로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와 시대정신을 잇는 작업에는 비약과 과장도 있겠으나, 대의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많은 사회에서 둘 간 연결고리를 찾는 일은 일반적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김영상 정부는 문민정부, 김대중 정부는 국민의 정부, 노무현 정부는 참여 정부,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 박근혜 정보는 창조경제, 이런 식으로 각 정부는 정체성과 목표를 표현했다. 정체성은 현재, 목표는 미래인데 시대정신은 양자에 모두 걸쳐 있다.

 

시대정신은 모호한 말이다. 대통령 연설은 자칫 추상적이기 쉬운 시대정신을 구체화하는 데 중요한 도구다. 대통령 연설은 연설이라는 행위가 있기 전에 연설문이 존재한다. 대통령이 하는 연설이지만 대통령이 연설문을 직접 쓰지는 않는다. 초안은 여러 명의 연설비서관이 작성하고, 대통령이 보고 개성에 맞게 고친다. 어쨌든 자신의 쓴 글이 곧 시대정신인 자리, 대통령 연설비서관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직업이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힘든 점도 많으리라. 자리가 자리인지라 압박이 굉장할 것이다. 생각해 보라. 글 때문에 학교 선생님에게 혼나는 것과 대통령에게 혼나는 것. 이 둘 중 어떤 게 더 무서울까. 『대통령의 글쓰기』를 쓴 강원국 저자는 “무덤에 묻히는 느낌”이라 표현한다. 게다가 1년 내내 온갖 일정으로 가득한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이니 제대로 된 휴가가 있을 리 없다. 매력적이면서도 힘든 자리를 강원국은 8년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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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김대중 대통령을 3년, 노무현 대통령을 5년 모시며 연설문을 작성했다. 두 대통령은 책을 많이 읽고 달변에 달필이라는 점은 닮았으나 연설 스타일이 달랐다. 상황에 맞게 두 대통령 연설문을 작성하며 겪은 일과 경험을 재료로 글쓰기 책을 완성했다. 『대통령의 글쓰기』는 두 대통령을 추모하는 책이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글쓰기 교재다.

 

글을 먼저 생각하고 시작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는 곳을 알아야 떠날 수 있다. 그래서 끝은 중요하다.
글쓰기는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이다.
첫째, 무엇에 관해 쓰지?
둘째, 시작은 어떻게 하지?
셋째, 마무리는 무슨 말로 하지?
이에 대한 답을 가졌다면 글쓰기는 다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125쪽)

 

많은 글쓰기 교재가 이론과 예시를 함께 담듯, 『대통령의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특이한 점은 위와 같은 이론을 설명하면서 드는 예가 역대 두 대통령의 연설문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은 글쓰기를 배우려는 독자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관심이 있는 독자를 모두 만족하게 할 수 있다.


청와대 출근하자마자 연설문 써

 

책을 쓴 계기는?

 

참여정부 3년 차에 노무현 대통령께서 책을 만들어 보라고 하더라. 글쓰기, 말하기 문화를 넓히는 데 일조하라고. 그 말씀을 들은 뒤 8년 만에 썼다. 언젠가는 써야겠다고 했으나 게을러서 미뤘다. 마침 출판사에서 남이 쓴 책을 내다보니, 나도 쓸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씀하신 게 동기부여라면 출판사에서 일한 게 직접적인 계기인 셈이다.  

 

연설문이 말을 하기 위해 쓴 글이라는 점에서 글과 말을 나누기 어렵다. 그럼에도 제목을 글쓰기로 할지, 말하기로 할지 고민이 많았겠다.

 

여러 의견이 있었다. ‘대통령의 말과 글’, ‘대통령의 언어’를 제안한 사람도 있었고. ‘대통령에게 배우는’이나 ‘전략적 글쓰기’라는 수식을 앞에 붙이자는 의견도 있었다. 최종으로 『대통령의 글쓰기』로 나왔는데 솔직히 맘에 안 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책도 잘 팔리고, 잘 정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어 '노(の)'처럼 '의'가 의미가 모호하다. 문법적으로 맞으려면 ‘대통령에게 배우는 전략적 글쓰기’ 정도가 되어야 한다.

 

연설비서관으로 청와대에 간 계기가 궁금하다.

 

김대중 대통령 때 경제 분야 연설을 쓰던 사람이 관뒀다. 청와대 연설은 연습하고 쓸 수 없다. 4명이 담당하는데, 매일 매일 연설이 있으니 공석이 생기면 누군가는 2배를 써야 한다. 공석 생길 때는 당일에 바로 쓸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나도 출근한 첫날 연설 2편을 썼다. 그래서 이미 연설문을 써서 밥 먹고 사는 사람을 찾는데 한국에 그런 사람이 10명이 안 될 것이다. 찾다 보니, 전경련 연설문을 쓰는 사람이 나였다. 경제 분야라는 점도 같고 해서 물망에 올랐다. 그래서 가게 되었다. 청와대에 인맥이 있다고 해서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글쓰기의 차이


두 대통령 글은 어떻게 다른가.

 

두 사람 차이는 명쾌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남성적이라면 김대중 대통령은 여성적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도달하기까지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니 글이 길다.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문은 노무현 대통령 그것보다 두 배 길다. 노무현 대통령은 단도직입적이다. 과정이 필요 없고 결과를 말한다. 오해가 생길 수 있다. 그럼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위험을 감수한 스타일이었다. 3대 맞더라도 7대 때리면 된다는 식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운동권 출신답게 내지르는 스타일, 김대중 대통령은 교수처럼 친절하게 설명하는 편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만연체, 화려체고 노무현 대통령은 간결체, 건조체. 노무현 대통령은 반복을 싫어하고, 김대중 대통령은 반복을 좋아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인용을 좋아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질색했다. 심지어 속담이나 격언도 못 쓰게 했다. 그래도 두 분 다 일화를 드는 건 좋아했다. 수치, 통계보다는 현장의 이야기를 좋아했는데, 문제는 연설문 쓰는 사람이 예화 찾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책상머리에서 생각하는 건 쉽지만, 그런 사례를 발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거짓말로 쓸 수 없다. 대통령 연설문으로 나가면, 기자가 사연의 주인공을 추적하는 데 거짓말 쓰면 큰일 난다.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으로 글을 썼고, 기업에서도 글을 썼다. 회장의 글쓰기는 대통령의 글쓰기와 어떻게 다른가.

 

2탄으로 쓸까 한다. 명확히 다르다. 대통령은 표를 먹고 사는 사람이라 인기가 중요하다. 국민이 지지하지 않으면 국정 운영을 할 수 없다. 그에 비해 회장은 회사를 소유한 사람이다. 물론 구성원의 동의를 얻고 참여를 이끌어내서 회사를 끌고 가면 성과가 좋다는 건 안다. 그래서 최대한 설득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하라면 하는 것이지’라는 생각이 깔렸다. 구성원을 의식하느냐 안 하느냐가 대표적인 차이일 것 같다.

 

대통령에게 혼나는 것과 회장에게 혼나는 것, 둘을 비교한다면?

 

회장에게 혼나는 게 더 세다. 회장은 내 생계를 쥐고 있는 사람이다. 대통령도 “잘라”라고 소리를 하긴 하지만, 연설비서관이 엄연히 공직이고 공무원이라서 대통령이 자르라고 자를 수 없다. 대통령도 실제로 자른다는 생각으로 한 말도 아니고. 밑에서도 자르라는 소리로 듣지 않는다. 회장이 자르라고 하면 진짜 잘린다.

 

대통령에게 혼날 때 무덤에 묻히는 느낌


과민성 대장 증후군에 걸릴 정도로 긴장하는 날들이 이어졌는데, 글이라는 게 항상 잘 나오는 건 아니지 않나. 글이 안 나올 때 어떻게 극복했나.

 

항상 마감이 있기 때문에 안 나올 수가 없다. 반드시 나와야 한다. 안 나오면 보통 사고가 아니다. 대통령과 약속한 날짜에 항상 나온다. 그럼에도 진짜 안 나올 것 같은 공포에 싸일 때가 있다. 끝은 얼버무리면 되는데, 뭘 써야 할지 모르거나 서두 쓰기가 막막할 때가 문제다. 새벽 3~4시에 혼자 있을 때도 잦다. 진짜 무섭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면 걷잡을 수 없다. TV를 켜도 소용이 없다. 권력의 손에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나. 주변에 이렇게 죽은 원혼이 떠돌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럴 때는 항상 3가지를 취했다. 첫 번째는 지금까지 해결 안 된 적이 없다, 다. 반드시 해결될 것이다는 믿음. 두 번째는 자리를 뜬다. 경내를 돌거나, 밖에 나가서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생각날 때가 있다. 둘 다 안 될 때는, 실제로 그렇게 해도 안 나와서 혼난 적이 있다. 엄청 심하게 혼난다. 물론 대통령이 행사 당일에 말 못하는 경우는 없다. 혼자 가서 즉석에서 하셨다. 한 번 그런 일을 당하면 무덤에 묻히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그런 걸 느낀다. 그렇게 혼나도 며칠 지나면, 대통령이 불러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간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해결된다.

 

공교롭게도 두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살아 계셨다면 어떻게 반응하셨을까?

 

아내가 이야기하더라. 노무현 대통령은 정말 기뻐하셨을 거라고. 본인이 쓰라고도 하셨지만. 본인은 책에 애착이 정말 강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마찬가지였고. 책을 들고 봉하에 갔으면 기뻐했을 것이다. 꼼꼼히 보시고, 지적도 엄청나게 하시겠지. 추측이 아니다. 재임 시절에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책을 몇 사람이 썼다. 이런 게 대통령에 다 보고가 올라간다. 책을 보시고 고생은 했지만 잘 썼다고 한 건 하나도 없었다. 어쨌든 지적은 했겠지만 책 낸 사실에 기뻐하셨을 테다.

 

쓴 연설문 중 가장 잘 썼다고 생각하는 글은?

 

없다. 초안이 그대로 살아남은 게 없다. 초안이 없어지니, 최종적으로 남은 연설문은 내가 쓴 연설문이 아니지. 그래서 내가 최고라고, 최악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책에 ‘독회 제도’에 관해 썼는데 조직이든 글 쓰는 사람이든 혼자 골머리 앓지 말고 도입해 보면 좋겠다. 일종의 협업인데 함께 쓰면 훨씬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청와대 독회 제도를 5년 해보니 효과를 엄청나게 봤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사서 확인하시길, 인터뷰에서 이야기하면 안 되고. (웃음)

 

청와대에서 나온 뒤 대통령이 연설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나?

 

진짜 안 본다. 광복절, 현충일, 국군의 날이 다가오면 무심코 길을 걷다 흠칫 놀란다. 가위눌리듯, 중요한 연설이 다가오면 잠을 못 자는 악몽을 다시 꾸기도 하고. 군대 다시 가는 악몽과 똑같다. 깜짝 놀라다, 아 이제 난 아니지, 하면서 기분이 진짜 좋다. 이제 그런 거 안 써도 되니까. 가끔 기자들이 전화 와서 이번 연설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묻지만, 안 봐서 모릅니다, 하고 대답한다. 내가 미쳤다고 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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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뭘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생각이다.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책상에 앉아서 무슨 글을 쓸지 생각하다 안 나오면 몰두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해 보라. 불쑥 생각난다. 둘째, 독서. 셋째, 메모해야 한다. 무엇을 쓸지 알면 구성을 어떻게 할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나머지는 기교다.

 

많은 글을 썼고, 많은 글을 볼 텐데 개인적으로 어떤 글을 좋아하나?

 

사람에 관해서 쓴 글을 좋아한다. 사람에 관해 쓴 글 중에서도. 도전하고 극복하고 이런 내용의 글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수록 다른 글은 눈에 잘 안 들어온다.

 

요즘 관심사는?

 

글쓰기에 관해서 두 번째 책을 준비 중이다. 글쓰기와 관련한 강연을 할 생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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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글쓰기강원국 저 | 메디치미디어
청와대에서 연설비서관으로 일했던 저자가 8년간 두 대통령에게서 직접 보고, 듣고, 배운 ‘말과 글’에 관한 최초의 책! 대우그룹 회장과 효성그룹 회장의 연설문도 작성했던 저자 강원국은 한국의 정치와 경제 분야 ‘거인’들의 연설문을 책임져 왔다. 연설문의 ‘달인’인 저자는 그간에 온몸으로 체득한 글쓰기 비법을 40가지로 정리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총과 칼이 아닌 말과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지금이 ‘불통의 시대’이기 때문에 두 대통령이 발휘했던 언어의 설득‘력’에 우리는 다시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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