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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나 작가 “생명에 어떻게 계급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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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책 『태도가 작품이 될 때』로 독자의 주목을 받은 박보나 작가. 그는 두 번째 책을 써보자는 출판사의 제안에 억압받는 수많은 생명을 떠올렸다. 전염병과 기후위기, 환경오염이 세상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지켜보면서 필연처럼 하게 된 생각이다.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에는 생명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넘어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세상의 모든 존재를 평등하게 바라보는 작품들이 등장한다. 이름을 빼앗겼거나, 이름조차 없는 존재를 부르기 위해 힘쓰는 미술가들의 외침이다.



우리 곁의 모든 존재와 ‘옆으로 나누는 대화’ 

작가님의 책은 제목부터 인상적이에요. 제목을 짓는 비결이 있나요? 

『태도가 작품이 될 때』는 좋아하는 전시의 제목을 차용한 문장이라서 금방 지을 수 있었는데요. 이번에는 주제가 ‘생명’인 데다 모든 글을 아우르는 제목을 붙이려니 어려웠어요. “이 세상에 남아돌거나 소외되어도 괜찮은 존재는 하나도 없다”는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의 말이 너무 좋아서, 그 느낌을 제목으로 가져가고 싶었죠. 김춘수의 시 ‘꽃’을 보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인간이 꽃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이미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는 생각의 이동을 제목에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번 책에서는 착취와 계급, 환경문제 등을 다루는 미술작품을 통해 지구 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처음에는 죽음에서 시작된 이야기였어요. 출간을 제안받았을 당시, 사무엘 베케트의 『몰로이』를 읽고 있었는데, 주인공이 조약돌을 한 주머니에서 다른 주머니로 옮기는 장면이 있어요. 거기서 문득 버지니아 울프가 자살할 때 호주머니에 돌을 잔뜩 넣고 강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는 게 떠올랐어요. 전혀 상관없는 두 장면이지만, 창작자로서 ‘혹시 버지니아 울프가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 속 한 장면을 생각하고 돌을 넣었을 수도 있을까?’라는 상상을 하게 되더라고요. 출판사 담당자를 만나 그 이야기를 하다가 책의 주제가 ‘죽음’으로 잡혔는데요. 워낙 큰 주제라 글을 쓰기가 어렵기도 했고, 죽음과 생명은 거울처럼 이어지는 이미지이기 때문에 생명으로 확장해나갈 수 있었어요. 

코로나19도 주제의 변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 같아요. 

맞아요. 최근 미술계에도 인류세, 환경 등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죠. 이제 환경에 대한 사유는 단순히 자연보호로 그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을 의미하게 된 것 같아요. 또 책을 쓰는 와중에 에콰도르 출신의 현대미술 작가 ‘오스카 산틸란’과 협업을 했는데요. 이 친구의 작업 중, 젖소의 우유를 입에 머금고 걷다가 길고양이에게 전해주는 퍼포먼스가 있어요. 이러한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생명을 서로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보는 개념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지구 위의 삶을 좀 더 지속해나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옆으로’ 얘기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7쪽)”고요. 옆으로 나누는 대화란 어떤 의미인가요? 

이 책을 쓸 때 영감을 준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가 악마는 다름 아닌 ‘신자유주의의 경쟁’이라고 이야기해요. 착취와 소외를 일으키는 사악한 악마를 등지고, 소외되고 버려진 존재들과 손잡고 나아가는 방식이자 태도를 ‘옆으로 뻗어나가는 대화’라고 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환경보호도 마찬가지죠. 풀이나 나무를 더 심는 식의 환경보호는 중산층의 정원 가꾸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이러한 행동에 앞서 구체적인 질서와 생각을 바꾸는 게 필요하다는 관점에서‘옆으로’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소외된 이웃, 식물, 동물, 사물 등 모든 것을 포함해 옆으로 뻗어나가는 태도가 중요한 거죠.



‘생명’뿐 아니라 ‘비생명’에까지 뻗어 나간 이야기들이 특히 흥미로웠어요. 

이제 미술계에는 인간 중심의 주체에서 타자를 보는 관계를 넘어서서 무엇이든 객체로 동등하게 바라보는 관점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예컨대 조각에 대한 담론이 그렇죠. 과거처럼 인간이 사물을 깎아서 숨결을 불어넣었다는 시각이 아니라 사물 자체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거든요. 인간 중심이 아닌 것으로 주인공을 바꾸었을 때 또 다른 시각을 갖게 되는 새로운 세계관이에요.

“돼지는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가르쳐주려고 이 세상에 온 거 같다”는 작가님의 한탄에 동물에 대한 작업을 하는 조은지 작가가 “돼지는 그냥 잘 살려고 태어났지, 인간을 위해 뭘 하러 온 것이 아니다”라고 대답했다는 대목이 떠오르네요(웃음).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인간 중심으로 사고하는 실수를 늘 반복하게 돼요.

저도 그래요. 여전히 반려동물을 보면 ‘이 아이들이 나를 위로해주기 위해 왔다’고 생각할 때가 있죠. 동물도 나름의 삶이 있고, 취향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인간의 시각에서 그들의 삶을 해석하게 되는 거예요. 한편으로는 동물들도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지 않을까요? ‘왜 내 밥은 조금밖에 안 주고, 매일 TV만 보고 있나’라면서요(웃음). 대단한 노력을 하지는 못하지만, 각자의 관점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자주 기억하려고 해요. 지구도, 동물도, 물건도 무엇 하나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죠.

어떤 장면을 볼 때 특히 슬픈가요? 

생명과 비생명에 관계없이 무엇이든 착취당하거나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모습을 볼 때요. 착취는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서 또 다른 누군가의 자유와 평등을 빼앗는 거잖아요.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보면 성 착취, 노예, 동물학대 등의 내용이 자주 나오는데요. 그렇게까지 해서 돈을 버는 인간의 모습을 볼 때마다 차라리 가난한 게 자랑스럽고 다행인 일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 사회에 사람이 사람을 착취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동물, 식물, 나아가 지구상의 모든 게 착취당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이게 모든 걸 초토화시키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비슷한 맥락으로 작가님의 작품 <코나키나 블루 1>을 보며 서늘한 감정을 느꼈어요. 휴양지에서 들을 수 있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소리의 이면에 그 소리를 만들기 위해 손이 빨갛게 부어 오르도록 찬물을 휘젓는 노동자의 모습이 있었죠. 

온종일 미술관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 중에는 미술 행사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분들이 많아요. 휴가지에서도 마찬가지죠. 예컨대 당나귀 등에 올라타 경치를 구경하는 관광상품을 보고 그저 순수하게 ‘좋은 경험’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어요. 이런 이면들에 대해 날을 세워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고기도 잔인한 도축 과정은 생략한 채, 슈퍼마켓에서 예쁘게 포장된 모습만 보잖아요. 불편하다는 이유로 안 보는 게 최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이면을 알고 나면 더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죠. 안 보고 싶은 순간에도, 감춰진 고통이 보이니까요.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세계 정상들을 향해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외치는 걸 보고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의 주장’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도 많은데요. 방법을 모른다고 외면한 채 아무 것도 바꾸지 않으면 끝은 선명해요. 환경운동가도, 동물보호 활동가도 아닌 제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불편해도 바라보고,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책을 썼어요.



책임감을 나누어 가질 수 있기를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전공을 바꿔 조형예술을 공부하셨어요. 계기가 있었나요? 

글을 쓰고 싶어서 영문학과에 갔는데, 학부 수업이 생각과 많이 달랐어요. 그러던 중 신문방송학을 복수전공하면서 아이디어를 광고 등으로 시각화하는 것에 재미를 느꼈죠. 아빠가 미대를 나오셔서 막연한 동경도 있었고요. 문득 미술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덜컥 미대에 붙었죠. 갑작스럽게 시작된 일이었어요. 원래 뭘 바꾸거나 결정할 때 오래 고민하지 않는 편이에요.

작가님의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미술에세이임에도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처음 글을 연재한 매체가 신문이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희 엄마가 신문을 잘 읽으시거든요. 학력이 높지도, 독서를 많이 하지도 않는 엄마가 읽고 이해해야 하는 글이라고 생각하니 쉽게 쓸 수밖에 없더라고요. 미술의 문턱이 높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어요. 사람들이 미술에 관심을 가져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건 비평과 번역의 언어로 글이 쓰여져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현대미술의 접근성을 높이고 싶다는 약간의 사명감도 있었던 것 같아요.

미술작업을 할 때도 그런 사명감이 있으세요? 

아니요(웃음). 쉬운 작업이 꼭 좋은 작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작업은 문이 여러 개라서 어느 문으로 들어가든 가져갈 수 있는 게 있는 거예요. 글의 영역에서는 ‘시’가 그렇죠. 어느 날은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 반면, 어느 날은 수많은 의미를 찾게 되잖아요. 그래서 미술 작업과 에세이 쓰기는 서로 다른 태도로 작업을 하게 돼요.

“내일은 나와 당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이 폭력적인 속도와 착취의 구조에서 벗어나 한껏 반짝였으면 좋겠다. 그 빛이 환하게 밝힐 푸르른 지구의 미래가 미리 눈부시다.(172쪽)”는 마지막 문장이 기억에 남습니다. 희망에 방점이 찍혔다고 볼 수 있을까요?

막연한 희망이나 긍정적인 약속을 하고 싶지는 않았고요. 약간의 책임감을 나누어 갖고 싶었어요. 미술가는 예쁜 것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여러 관점을 작품으로 펼치는 사람이거든요. 생명과 지구 관점에 있는 작품들을 함께 보면서,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짐을 여러분과 나누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박보나

박보나는 영상이나 사운드, 퍼포먼스와 텍스트를 결합해 예술과 노동, 역사와 개인의 서사에 대한 상황을 만드는 현대미술작가다. 2019년 아시아 태평양 트리엔날레, 2016년 광주 비엔날레 등 국내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2019년에 예술에 대한 에세이집 『태도가 작품이 될 때』를 출간했다.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박보나 저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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