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는 저자 강인식이 중증의 혈우병을 갖고 있는, 그래서 10대의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야 했던 박현묵이라는 사람을 만나 묻고 들은 이야기다. 아니, 이 문장은 불완전하다. 박현묵은 극한의 치료 기간에도 톨킨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번역해 커뮤니티에 게시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정식으로 출판 번역을 한 번역가이며 기적처럼 신약을 만나 이제 원하던 것을 하나씩 이루고 있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대학생이다. 강인식 저자가 “나는 현묵의 스토리가 ‘장애인의 인간승리’로 소개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것은 ‘매우 드문 어떤 기적’에 관한 이야기다. 한편으론 ‘공부의 본질’에 대한 탐구일 수도 있다.”(9쪽)라고 말하는 이유다.
한편 이 놀라운 이야기에 대해 장강명 작가는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박현묵을 영웅이라고 부르련다”라고 추천사에 썼다. 강인식 저자는 이 추천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말했고, 당사자인 박현묵은 민망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책에 그 말이 안 들어갔으면 좋겠다고도 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박현묵은 “아픈 것으로 나 자신을 정의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 자신의 지금을 ‘만전(충전이 다 된 상태라는 뜻)’이라고 말하는 사람, 늘 자신의 나태함을 경계하고, 자신에게는 시간이 많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며 그런 의미에서 ‘영웅’이라는 장강명 작가의 말은 더할 나위 없이 옳은 것이다.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사람
2021년 여름 내내, 매주 수요일마다 박현묵 님의 집에서 인터뷰를 진행해 완성된 책이에요. 처음에는 기사를 위한 만남이었다가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바꿔먹었다. 방송 기사로 쓰기엔 현묵의 이야기는 너무나 깊고 컸다”(245쪽)고 하셨죠. 어떻게 첫 만남에서 그런 확신이 온 건가요?
강인식 : 우선 서울대에 굉장히 재미있는 친구가 들어왔다는 제보를 받았어요. 아파서 중고등학교를 하루도 다니지 못하고 방에만 있었고, 그러다 갑자기 19살쯤에 신약을 만났고, 1년 동안 대입 준비를 해서 서울대에 지원한 학생이었는데 압도적이었다고요. 심지어 그러는 동안 번역을 했고, 톨킨 책의 오류까지 잡아냈다는 거죠. 정보는 그것뿐, 성별과 이름, 나이도 몰랐고요. 결국 현묵이를 찾는 데 다섯 달이 걸렸어요.(웃음) 입시 정보니까요. 마침내 현묵이와 연락이 닿았는데요. 얘기를 해보니까 하루의 이야기는 너무 단편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더라고요. 톨킨에 초점을 맞추려니까 현묵의 이야기가 부각이 안 되고, 반대로 하면 흔한 장애인의 인간 승리 같은 이야기고요. 그래서 아예 책을 쓰자고 제안을 했어요.
박현묵 님은 어떠셨어요? 책 제안을 받았을 때 부담이나 고민은 없었나요?
박현묵 : 부담이 없지는 않았는데요. 그냥 무시했어요. 부담은 나중의 일이라고 생각했고, 지금은 그냥 이야기를 털어놓는 게 재밌었거든요. 당장 ‘썰’을 푸는 게(웃음) 재미있었기 때문에 생각은 나중으로 미루자, 하는 심정이었죠.
강인식 : 저는 현묵이 성격의 가장 큰 장점이 이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망설일 때 가장 큰 스트레스가 생긴다고 하거든요. 현묵이는 어떤 걸 할 때 망설이는 시간이 짧은 편이에요. 주치의였던 김준범 선생님 말씀이, 현묵이는 아플 때마다 거의 사망 직전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아픈 거잖아요. 그런 사람이 한국에 한 번도 번역되지 않은 책을 꾸준하게, 3년동안 96번이나 번역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는 건 굉장히 놀라운 일이죠. 그런데 현묵이는 단순하고 심플하게 결정을 한 거예요. 저는 현묵이가 그런 성격 덕분에 1년 안에 검정고시든 한국사능력시험이든 수능이든 번역이든 진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고민에 함몰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경험이 있잖아요. 아플 때가 있고요. 그럴 때 대개는 거기에 묻혀 있게 되거든요. 그런데 현묵이는 달랐어요. 그게 엄청나게 감동적이었고요. 처음 만남에서 그런 면을 강렬하게 느껴서 책을 써야겠다, 확신했어요.
고민을 많이 하지 않고 그냥 해버리는 자신의 성향을 박현묵 님은 스스로 어느 정도나 인식하고 계셨던 거예요?
박현묵 :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사실 ‘내가 정말 그런가?’하는 느낌이었어요.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기 자신은 다르기도 하고요. 더군다나 저는 다른 사람과 저 자신을 비교해 볼 일이 없다시피 했거든요. 10대의 거의 대부분을 집에서, 가족만 보며 지냈고요. 비교 대상이 없으니까 내가 그렇게 고민을 짧게 하는 편인가, 하는 생각이나 자각을 해볼 일이 전혀 없었죠.
강인식 :저는 이 친구가 알에서 막 깨어난 공룡 같다고 생각했어요. 자기가 얼마나 성장할지 모르는 것 같았거든요. 기본적으로 아주 스마트한 두뇌를 타고 났는데 말이에요.
이런 장면이 떠올라요. 주치의 김준범 선생님께서 치료 과정에서 일어나는 몸의 변화를 기록해보자고 했더니 박현묵 님은 그것을 아주 학문적으로, 과학적으로 접근하더라고요. 기본적으로 탐구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어렸을 때부터 많이 느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박현묵 :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평생 본 게 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요. 확실히 뭔가 관심이 생기면 일단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경향은 있었고요. 또 저에게는요.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어요.
남는 게 시간이라니. 책에 “나태함에 대해 이렇게 적대적인 태도를 지금껏 본 적 없다”(268쪽)는 문장이 있죠. 아마 박현묵 님이 갖고 계신 ‘시간이 많다’는 감각은 ‘내가 할 수 있을 때는 최대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인 것 같기도 하네요.
강인식 : 정확하게 제가 생각하는 것을 말씀해 주신 것 같아요.
박현묵 : 말씀처럼 정말 그렇게 생각했나 싶기도 하네요. 다만 확신은 안 서요. 그저 한창 인터뷰를 하던 기간에는 어떻게든 내가 겪었던 그 경험과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자고 생각했거든요. 지난 6-7년의 시간을 최대한 그대로 체험할 수 있게, 내가 느꼈던 걸 다 말하자고 생각했어요. “나의 10대는 나태함에 아픔이 양념처럼 뿌려진 상태” 같은 말은 정말로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했던 말이에요.
그러니까 스스로 나태함을 엄청 경계해 왔다고 할 수 있을까요?
박현묵 : 경계라고 표현하면 많이 쑥스러워요.(웃음) 경계라면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열정적인 노력을 했을 것 같은 느낌이잖아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쨌든 나에게 나태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자각은 했어요. 그게 다예요. 예를 들어 내가 지금까지 웹 서핑 말고는 한 게 없다는 느낌을 갑자기 받을 때가 있어요. 그런 생각이 들면 나태하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동안 번역을 붙들고 있었던 것도 이것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또는 할 수 있는 것 중에 그나마 생산적이라고 평할 수 있는 활동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나마 생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은 이거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었죠.
강인식 : 현묵이는 계속 그 부분을 걱정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이야기의 본질은 여기에 있으니까요. 제가 ‘아픈 데도 참는 장애인 이야기’를 할까봐 염려스러웠던 거죠. 실제로 저에게 두 번 정도 정색하고 “당신한테 할 얘기가 있다”면서(웃음) 얘기를 하더라고요. 약간 위엄이 느껴지는 말이었어요. 그래서 그 점을 명심하고 인터뷰를 했죠.
현묵의 지적 탐구가 시작되면 ‘장애의 시계’는 어느덧 천천히 갔다.(중략) 그리고 ‘현묵의 시계’가 돌기 시작했다. 저 심연에서 올라오는 잔인한 고통도 그때만큼은 현묵의 육체에서 빠져나와 그 옆자리로 가 앉아 있었다. 현묵은 톨킨의 원문과 번역서와 영영사전과 영한사전을 무한히 탐색했다.” _(270쪽)
톨킨을 처음 만났을 때
제가 준비했던 질문도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커뮤니티에 번역을 올리는 동안에 실은 몹시 힘든 치료를 경험하고 계셨잖아요. 어쩌면 번역에 몰두한 것이 그 시기를 지나오게 했던 원동력이지 않았을까 생각했거든요. 아픔이나 처한 상황을 잊게 하는 힘이었을 거라고요. 하지만 결코 그게 아닌 거예요.
박현묵 : 잊는 것과는 달라요. 저는 아프면 머리를 못 써요. 당장 이 아픔을 견디는 데 온 신경이 다 가니까 지적 활동은 전혀 못하죠. 제가 번역 활동을 한 건 말씀드렸듯이 그나마 생산적이고, 주변에 떳떳하게 보일 수 있는 일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는 활동이었기 때문이고요. 그것 역시 심적인 여유가 있을 때나 했던 거예요.
강인식 : 현묵의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신약을 만나기 전에, 일상이 100이라면 90은 아픈 상태였다고요. 그러니까 틈이 되게 작은 거였고, 현묵이는 그 틈에 천착했던 것 같아요. 가령 다른 사람이 10시간을 쓸 수 있다면 현묵이는 1시간밖에 쓸 수 없으니까, 그 1시간에 나태한 것을 몹시 경계했던 것 같고요. 그때 생산적인 일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꾸준하게 했던 것 같아요. 거기에 톨킨이 엄청난 동기부여를 했던 거죠. 현묵의 말 중 아주 인상적이고, 오랫동안 생각한 말이 있는데요. 현묵이는 자신이 아무리 중증의 혈우병 환자고, 희귀한 케이스라도 자신에게 과학적으로 기대되는 수명이 일반인보다 짧지 않다, 그러니까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인식이 꽤 분명한 편이었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오늘 고통을 좀 잊으려고 어떤 일을 했던 게 아니에요.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거고, 그런 면에서는 현묵이의 말이 너무너무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강인식 기자님의 방금 말씀에 덧붙이고 싶은 말씀은 없으세요?
박현묵 :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매일매일이 고통스러웠던 건 아니었어요. 아픔마다 편차도 크고요. 또 많이 겪다 보면 익숙해지거든요. 제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겪는 제일 큰 고통이 뭐냐면요. 매일 예습을 하는 것, 과제물을 준비하는 것, 수업할 거리를 준비하는 것이에요. 그게 굉장히 힘들어요. 하지만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이런 과제 활동을 일상적으로 해온 사람은 이게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겠죠. 마찬가지 같아요. 제가 육체적으로 아픈 게 다른 사람에게는 엄청 힘들게 살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겠지만 저는 자주 겪다 보니까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저희 어머니가 제 삶의 100에 90은 아팠다는 말씀을 했다고요?(강인식 :그보다 더 심하게 말씀을 하시긴 했지.) 저한테는 사실 60 정도가 정신이 멀쩡한 기간이었어요. 나머지 40은 아파서 머리를 굴릴 여유가 전혀 없는 기간이고요.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 중에 톨킨을 만났어요. 그 정도의 깊이 있는 지적 활동이 가능한 영역을 만난 것도 대단히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박현묵 님께 왜 톨킨이었는지, 이 세계가 현묵 님께 어떠한 매력과 열정을 주었는지 직접 듣고 싶었어요.
박현묵 : 그 부분은 최근에 생각이 정리됐어요. 제가 톨킨을 처음 만났을 때 느낀 감정은 딱 이거였어요. ‘정복할 맛이 있어 보이는 산이다.’ 첫인상은 어려웠어요. 책도 두껍고요. 당장 『반지의 제왕』 1권만 봐도 본편이 나오기는커녕 프롤로그도 엄청 길고, 생소한 얘기들이 잔뜩 이어지잖아요. 말하자면 체급이 다른 상대였는데요. 저는 그것에 혹했어요. 또 저에게는 뭔가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거라면 죽기 전에 한번쯤은 다 섭렵해보고 싶어 하는 성향이 있어요. 톨킨을 딱 그런 마인드로 접근했던 거죠. 사실 그런 작품은 많아요. 그렇지만 톨킨은 파고들 거리가 더 많았어요. 흔히 판타지물 얘기할 때 작품의 세계관의 넓이나 깊이 얘기를 하잖아요.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 정도의 스케일을 가진 작품은 많거든요. 양적인 방대함만 따지면 말이에요. 그렇지만 어느 작가가 언어까지 구체적으로 구축했겠어요. 심지어 톨킨은 통시적인 변화까지도 주려는 시도를 많이 했고요. 그렇기 때문에 팔거리가 많았던 거죠.
확실히 지적 자극에 아주 민감하신 분 같아요.
강인식 : 현묵이가 영어를 잘하는데요. 영어를 어학 쪽으로 접근한다기보다 언어학 쪽으로 접근한다고 보거든요. 기호학, 언어학에 취향이 분명한 것 같고요. 그 취향이 톨킨이라는, 언어학적으로 아주 예민한 문학가를 만나 궁합이 딱 맞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마침 커뮤니티에서 현묵이 이상으로 활동하는 멘토들을 만날 수 있었고요.
강인식 기자님은 박현묵 님이 커뮤니티에서 만난 ‘테시’, ‘베렌’, ‘MW’ 등의 존재를 단순한 동기부여 이상의 의미 즉, 멘토로 평가하기도 했잖아요. 박현묵 님은 그런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현묵 : 동의해요, 물론 당사자분들께 그렇게 말씀드리면 아마 손사래를 치실지도 모르겠어요.(웃음) 어쨌든 저한테 그분들은 일종의 롤모델이긴 했어요. 대단한 선배 ‘톨키니스트’ 분들은 장문의 고찰과 분석을 여럿 남기기도 했고요. 보통 사람들은 접근하지 못하는 대단히 찾기 힘든 자료에 접근해서 그 내용을 설명해 주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내가 저 정도의 소양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죠. 많이 알고, 아는 것을 총체적으로 고찰할 수 있고, 심지어는 톨킨이 제시하지 않은 이면의 설정까지 추론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에 끌렸어요.
강인식 : 저는 이 대목에서 삶의 에너지가 제일 강하게 느껴졌어요. 현묵이는 전부 동의하지는 않았는데요. 저는 좀 더 솔직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10대 후반의 눈에는 사회적으로도 번듯한 직업을 가진 ‘성덕’의 존재는 틀림없이 엄청난 가슴의 울림이 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10대의 박현묵을 움직여줬던 아주 강력한 힘이었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발적으로 번역을 올리던 데서 시작해 이제 『끝나지 않은 이야기』 번역본을 출판한 프로 번역가가 되셨어요. 그렇다면 선배 톨키니스트들에게 어느 정도 다가갔다고 느끼시나요? 성취감도 있을 것 같은데요.
박현묵 : 사실 제가 느꼈던 건 성취감과는 정반대였어요. 번역 제의를 받았을 당시에 제 머릿속에는 ‘과연 내가 공식적으로 대중에게 보일 번역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뿐이었죠. 그동안처럼 저 혼자 아마추어로 번역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타이틀을 내가 가지면 되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죠.(웃음) 그런 고민이 있긴 했어도 번역을 하면서는 당장 이 이야기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이 재미있었어요. 그러니까 역시 이번에도 다른 고민은 잠깐 미뤄두고 눈앞의 당장 재밌는 일에만 집중을 했고요. 새벽에 방에서 컴퓨터 켜 놓고 활자를 보면서 사전 찾고, 고민하고, 번역을 하면 다른 생각 없이 모니터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덕분에 공식적인 역자 타이틀을 다는 것에 대한 부담은 잊을 수 있었던 거죠.
강인식 :그렇게 말하니까 더 대단해 보이네요.(웃음) 즐기는 자를 당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지금 모니터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는 표현을 하잖아요. 그렇게 딱 붙어 있을 수 있는 힘이 현묵이한테 있어요.
놀라울 정도의 단순함
그밖에 강인식 기자님이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알면 알수록 놀라웠던,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박현묵 님의 태도는 무엇이었어요?
강인식 : 가령 ‘밀사’에 관한 단어들이 있어요. 현묵은 그것에 참조가 될 만한 단어, 참고가 될 만한 단어들을 쭉 정리하고 그것들을 하나 하나 따져가며 자신의 번역에 일관된 가치로 설정을 해서 번역했거든요. 자신의 번역이 다른 번역가보다 대단한 번역은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는 틀림없게 하겠다고 한 그 부분이 저는 제일 놀라웠어요. 현묵이 말한 게 ‘레퍼런스’거든요. 기본적으로 어떤 단어의 번역에 있어서도 톨킨의 아들인 톨킨 크리스토퍼부터 한국 번역가로 이어져온 그 레퍼런스를 모두 신경 쓰면서 자기 번역에 적용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잖아요. 사실 논문을 그렇게 쓰려고 해도 정말 힘들거든요. 심지어는 긴 기사를 그렇게 쓰는 것도 아주 어려워요. 근데 그런 개념을 스스로 구축해서 번역을 했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죠.
박현묵 님도 책 작업을 하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거나 확신을 갖게 된 자신의 면모가 있었을까요?
박현묵 : 저도 어렴풋이 품고 있던 생각이라 동감한 것이 한 가지 있어요. 긍정적이라고 한 부분이에요.
"나와 김 교수가 똑같이 감탄한 것이 있다. 그것은 현묵의 긍정적 사고 그리고 놀라울 정도의 단순함, 바로 낙천성이었다.”(49쪽)는 문장이 있죠. 박현묵 님은 비교군이 없었기 때문에 몰랐다고 하시지만요.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는 성향이나 성격은 분명해요. 이런 면은 어디서 영향 받았다고 생각하세요?
박현묵 : 어려운데요.(웃음) 일단 낙천적으로 생각하면 어쨌든 멘탈에 유익하잖아요. 그래서 저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있고요. 어머니께서 저한테 “내가 옛날에는 네가 아프게 태어나서 되게 슬프고 힘들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 정도부터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마음가짐을 바꿨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그런 얘기를 꽤 여러 번 하셨는데요. 잘은 몰라도 그 얘기가 좋더라고요. 그때부터는 확실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다는 가치관이 정립된 것 같아요.
강인식 :한번은 현묵이가 너무 아파서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을 가야 했대요. 거의 정신을 놓을 정도로 아픈 날이었는데 현묵이 엄마를 올려다 보면서 “엄마 걱정하지 마라, 나 안 죽는다” 이런 얘기를 했대요. 그래서 어머니가 되게 놀라셨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현묵의 병이 사실은 모계유전인 병이거든요. 모계 유전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가정의 파괴 혹은 비극의 시작이 되는 경우가 아주 많아요. 그래서 처음에 그 얘기를 할 때 너무 겁나고, 어려웠는데요. 놀랍게도 어머니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것이 크게 가족을 지배하지 않는 거죠. 그때 이런 낙천성이야말로 진짜 모계유전이다, 생각했었어요.
최근 일간지 인터뷰에서 “흥미가 동하는 건 언어학, 음성학, 역사언어학”이라고도 하셨더라고요. 번역도 계속 할 계획이신가요? 앞으로의 일도 궁금합니다.
박현묵 :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당장 구체적으로는 생각을 안 해요. 사실 그것 외에 하고 싶은 일이 있느냐 하면 또 고민이긴 하죠. 저는 미래를 생각해 둔 게 없어요. 다만 하고 싶다고 생각해둔 것을 못하고 죽지는 않는 것 정도가 바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중앙도서관에서 마침 제가 보려고 하고 있던 톨킨 책 몇 권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일단은 그거를 꼭 정주행 해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장차 톨킨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러니까 작품 외적으로 좀 알아보고 싶어요. 아마 그런 게 모여서 좁은 의미의 꿈들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아직은 미래에 무엇을 하겠다, 그런 식의 것들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강인식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0.1그램의 희망』과 『꿈보다 열정』을 썼다. |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