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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규 소설가 “식물처럼 연애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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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적확하게 이해한다는 건 가능한 일일까? 2021년 조선일보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등단한 소설가 윤치규의 첫 단편집 『러브플랜트』에는 사랑하는 상대를 백 퍼센트 이해하는 ‘좋은 남자’가 되고 싶지만, 뜻하지 않게 자꾸 어긋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어딘지 낯설지 않은 이들의 어설픈 모습은 작가 자신의 단면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낮에는 은행에서 일하고, 밤에는 소설 쓰는 30대 이성애자 남성”이라 칭한 그는 앞으로도 당사자성이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잘 쓰는 것보다 오래 쓰고 싶어 

은행에서 가계 대출 업무를 담당하신다고요. 오늘은 쉬는 날인가요?

네, 휴가를 냈어요. 직장 동료들은 인터뷰 가는 줄 모르고요. 그냥 쉬는 줄 알고 있어요(웃음).

신춘문예에 당선되기 전까지 직장과 합평 수업 양쪽에서 ‘독특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것 같아요. 소설과 금융은 양극단의 일처럼 느껴지니까요.

직장에서는 은근한 무시가 있었어요. 자격증 따고 승진 시험 준비해야지, 무슨 소설이냐는 식이었죠. “대리님, 소설 쓴다면서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이따금 부끄럽고, 때로는 모욕감이 들기도 했고요. 반대로 합평 모임을 가면 “상근직으로 근무하면서 소설까지 쓰다니 대단하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종종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요즘은 독자와 작가 사이의 간극이 좁은 시대이다 보니 회사에 다니면서 등단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분들께 좋은 롤모델이 되고 싶어요. 

지금은 어때요? 평가가 달라졌나요?(웃음)

직장에서 “너는 꿈이 있는 친구였구나, 예술가였구나”라면서 추켜세우실 때가 많아요(웃음). 특히 연세가 높으신 상사분들은 신춘문예를 마치 과거급제처럼 생각하시더라고요. 등단이 직장 생활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죠.



신춘문예 2관왕에 올랐어요. 계속 낙방해서 마음을 내려놓던 차였다고요.

문학과지성사에서 합평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 소설을 배웠어요. 5년 정도 준비했는데, 두 번째 해부터 최종심에 올라가다 보니 계속 기대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매달렸는데요. 매번 최종심에 낙방하면서 ‘내가 넘지 못하는 벽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던 차였어요. 마음을 완전히 놓고 있을 때 당선이 되었죠.

사관학교를 나와 장교로 근무했고, 지금은 은행원으로 일하고 있죠. 이력이 독특한데, 소설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나요?

어릴 때부터 유일한 취미가 소설을 읽고 쓰는 거였어요. 인터넷에 추리소설을 연재하기도 했는데요.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서 추리소설 쓰는 걸 그만뒀어요. 원래 소설 속 인물을 굉장히 쉽게 죽였는데, 이제 누군가가 죽는 설정은 도저히 쓸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러면서 한번 진지하게 소설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단편을 습작하면서 앞으로 소설 쓰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군대도 소설을 쓰려고 그만두었죠. 직업군인으로 일하면서 습작할 시간을 내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4시에 문을 닫는 은행에 취직하면 소설을 더 많이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은행원이 됐어요. 은행원은 4시부터 개인 업무가 시작된다는 걸 몰랐죠(웃음).

등단을 준비하던 시간은 어땠어요?

합평 모임에서 만난 문우들이 다 좋은 사람이어서 즐거웠어요. 저는 소설가가 되는 데 제일 중요한 건 좋은 문우를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문우는 내 소설을 읽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죠. 독설하는 사람은 최대한 멀리해야 해요. 글 쓰기는 괴롭고 힘든 일이잖아요. 습작생일 때는 자꾸 소설을 쓰고 싶게 만드는 게 중요한데, 소설을 나쁘게 평하는 사람을 만나면 점점 더 쓰기 싫어지거든요. 저는 문우들의 피드백을 통해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조선일보>에 연재한 ‘일사일언’ 에세이에서 “직장생활을 병행해야 더 열심히 소설을 쓰는 부류”라고 했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내가 소설을 잘 쓰는지, 내 소설이 좋은지에 대해 자기확신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도망칠 구석이 필요해요. 저는 방어기제가 있어야 더 즐겁게 소설을 쓸 수 있더라고요. ‘내가 부족한 건 전력투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만약 전업작가를 지향했다면 지쳤을지도 몰라요. 제 성격상, 어떤 작품이 독자의 호응을 얻는지 분석하고, 트렌드를 따라하려고 노력했을 테니까요. 아마추어리즘으로 즐겁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썼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래 쓰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무대에서 내려오지만 않으면 누군가는 제 소설을 읽어줄 거라 생각해요.



사랑이지만, 결국 관계에 대한 이야기

「일인칭 컷」은 비혼식을 계획한 여자친구 ‘희주’와 ‘나’의 이야기입니다. 얼핏 평등한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미묘하게 다른 지점에 서 있는 남성과 여성의 위치가 선명하게 보이는 점이 인상깊었어요.

한창 미투 운동이 활발했고, 회사에서도 사내성폭력 이슈가 많았던 때에 처음 썼던 작품이에요. ‘남성으로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호기롭게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쓰면 쓸수록 나는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결말이 나왔죠. 사실 결말을 쓰면서 너무 아쉬웠어요. 어떤 사건을 겪고 남자 주인공이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평소에도 그런 성찰을 할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누나가 세 명 있는데요. 누나들에게 늘 부채감이 있었어요.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차별받는 모습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면서 ‘나는 의식있는 남자야, 나 정도면 괜찮지’라고 생각했거든요. 분명 젠더 문제에 있어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인칭 컷」을 쓰면서 비로소 이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의식이 있는 것과 실제로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완벽한 밀 플랜」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현영’을 자신이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결혼을 추진한 남성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걸 깨닫죠.

사랑을 할 때 흔히 그런 착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상대방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기를 바라고, 그게 디폴트로 받아들여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결혼을 해도 상대와 닿을 수 없는 간격이 있고,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잖아요. 상대방이 나의 기대에 맞춰 행동해주길 바라는 건 욕심일 뿐인데 그걸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상태에 대해서 써보고 싶었어요.

「러브 플랜트」에는 이혼한 남녀가 등장합니다. 꽃집을 운영하는 남자 주인공 ‘백현준’이 ‘고백할 때 제발 꽃 사지마 공포증’을 앓고 있다는 설정이 재미있었어요.

제가 근무하는 은행 앞에 실제로 꽃집이 있었거든요. 그곳을 지날 때마다 한 번쯤 꽃집에서 일하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요. 어느 날 트위터에서 “제발 고백할 때 꽃 선물하지 말라”는 트윗을 보게 된 거죠(웃음). 요즘 ‘고백으로 혼내주기’라는 말도 있잖아요. 저는 그 말을 맨 처음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어요. 이 소설은 좋아한다는 고백도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시작하게 된 이야기였죠. 사실 제 소설에 나온 남자들은 모두 육식남이었던 것 같아요. 마초적이고 학습된 남성성이 있죠. 남자라면 으레 먼저 고백해야 하고, 완벽한 밀 플랜을 짜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요즘은 ‘초식남’이 대세라고 하는데 저는 그걸 뛰어넘어서 식물의 상태로 있는 게 제일 안전하고 맞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식물의 방식이요?

육식동물이 목표를 정하고, 사냥하는 방식이라면 식물은 다르잖아요. 묵묵히 기다리고, 한 자리에 머물러 있고 어디선가 날아오는 벌, 나비, 바람 같은 걸 통해서 번식하고요. 지금의 남성성은 식물과 같은 방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주인공을 꽃집 주인으로 설정했어요. 



세 개의 단편 모두 연애의 뒷면, 실패한 연애담을 다루고 있어요. 작가님의 지난 연애들은 어땠나요?

황지우 시인의 시 ‘뼈아픈 후회’ 중에 이런 구절이 있죠.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웃음).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저도 자기중심적이고 미숙한 연애를 많이 했어요. 나만의 연애 플롯을 설정해 놓고, 상대가 거기에 맞지 않으면 인연이 아니라고 단정하곤 했죠. 상대방을 사랑한 게 아니라, 연애를 하고 있는 나의 몰입 상태에 더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책 말미에 실린 에세이에서 “쓰고 싶은 게 있다면 역시 연애뿐이다”라고 했어요.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는 당사자성이 있는 소설만 쓰거든요. 『러브플랜트』에 실린 세 단편도 ‘30대 중반의 이성애자 남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무엇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나온 발화였어요. 저는 역시 연애 이야기가 제일 재밌어요. 요즘은 이성애자 남성이 주인공인 연애 이야기가 드물기도 하고요. 연애라고 표현했지만 실은 ‘관계’죠. 저는 타인과의 관계가 늘 어려운 사람이라서 앞으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더 쓰고 싶어요.

출간을 앞두고 버킷리스트를 쓰셨다고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첫 번째는 김연수 작가님, 황정은 작가님, 강경석 평론가님께 성덕의 느낌으로 책을 보내드리는 거였어요. 그래서 출간되자마자 세 분께 메일을 보냈는데 모두 흔쾌히 받아주셨어요. 다음으로 인터넷서점 판매지수 5천 달성하기, 2쇄 찍기, ‘문장의 소리’ 팟캐스트 출연하기, 마지막으로 <채널예스> 인터뷰가 있었습니다(웃음).

마지막 항목은 급조된 거 아닌가요?(웃음)

진심이고요. 사실 <채널예스> 인터뷰를 하게 될 줄 몰랐어요. 어느 정도 연륜이 있는 작가들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이번 책이 아니더라도 첫 정식 소설집이 나오면 꼭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일찍 이루어지다니, 영광입니다(웃음).

남은 버킷리스트 중 반드시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요?

2쇄 찍기! 출간 전에는 몰랐는데, 2쇄 찍는 게 정말 어려워요. 여러분, 꽃피는 봄에 『러브플랜트』를 읽어주세요. 연애세포가 되살아날 거예요.

달달한 연애소설이라고 하기엔 뒷맛이 씁쓸한 걸요?

분명 초콜릿인데요. 카카오 100% 초콜릿입니다(웃음).



*윤치규

2021년 <서울신문> 및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데뷔 후 현대문학, 악스트, 문장 웹진 등 문예지에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낮에는 은행에서 일하고 밤에는 소설을 쓴다. 재능보다 열정으로 쓰는 편. 사회화된 IN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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