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6세의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뜨. 호화로운 삶을 살았던 그가 마음의 위안을 받았던 공간은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이 아니라 소박한 시골 마을이었다. 집이 경제적 가치로만 치환되는 시대에 우리가 잊은 본질은 무엇일까. 첫 책 『나무의 시간』으로 나무에 관한 방대한 지식을 선보였던 김민식 저자가 이번에는 ‘집’에 관한 사유를 풀어놓았다. 강원도 홍천에서 내촌목공소를 운영하며 나무집을 짓는 저자는 사회가 말하는 집의 의미에 반기를 든다. 새로운 ‘집의 탄생’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본질은 사람, 집은 거주하는 곳이다
독자 리뷰에서 ‘지식의 쓰나미가 덮치는 책’이라는 표현을 봤어요(웃음). 첫 책 『나무의 시간』과 마찬가지로 인문학적 지식이 쏟아지는 책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무수한 건축물을 보며 느낀 것들이 자연스레 글로 나왔던 것 같아요. 지난 40년간 목재 컨설턴트로 일하며 각국의 유명한 건축물을 다 봤거든요. 세계적인 건축가들도 많이 만났고요. 예를 들면 책에서 이야기 한 ‘하이데거’의 오두막집도 출장으로 독일 흑림 지역을 자주 오가면서 여러 차례 가본 곳이에요. 스위스에 있는 심리학자 ‘카를 융’의 취리히 호숫가 돌탑 집,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어머니의 집’도 그렇죠. 저는 어떤 이야기든 직접 보고, 겪은 것만 쓸 수 있습니다.
나무에 이어 이번에는 ‘집’을 이야기합니다.
내촌목공소에 문화, 건축, 학계 등 각 분야에 몸담고 계신 분들이 많이 찾아오세요. 그분들께 목공소를 안내하며 나무와 집 이야기를 했던 게 책으로 만들어진 겁니다. 보통 집을 주제로 한 책은 건축가나 철학가가 펴낸 경우가 많은데요. 저는 건축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평생 집 짓는 현장에 있으면서 목재를 공급했어요. 지금은 손으로 직접 집을 짓고 있고요. 충분히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죠. 무엇보다 기업과 전문가, 언론이 집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볼 때마다 늘 못마땅했습니다. 그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무엇이 특히 못마땅하셨어요?
집은 경제적으로 굉장히 부담스러운 존재잖아요. 그런데 매스컴에서는 달콤한 이야기만 해요. 한국, 일본 등지에서 출간되는 건축 서적도 마찬가지예요. 집을 너무 추상화하고 있습니다. 집은 추상적인 오브제가 아닌데, 대다수의 건축가가 집을 보고 철학을 이야기하죠. 집이 무슨 철학인가요? 그 안에서 안락하게 사는 게 먼저인데요.
사람이 빠져있다는 거군요.
세계 건축가들이 사진에 목숨을 걸어요. 언론이 칭송하고, 훌륭한 건축상을 받았다는 집의 사진을 한번 보세요.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본질을 잊은 채 작품만 하는 거예요. 저는 그런 집을 볼 때마다 사진을 위한 건축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적인 건축물들도 마찬가지예요.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 ‘미스 반데어로에’의 ‘유리 집 판스워스 하우스’는 어떤가요? 20세기 최고의 건축이라고 불리는 집인데, 사람이 살기에는 매우 불편했어요. 유리집 '판스워스 하우스'는 건축주와 소송까지 벌어졌을 정도로요. 세 집 모두 살기 위해 설계했지만, 아무도 살지 않습니다. 뮤지엄이 되었을 뿐이죠. 아이러니한 일이에요.
작가님은 어떤 집을 볼 때 감응하세요?
어느 나라를 가던 토속 건축을 볼 때 가슴이 뜨거워져요. 마을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소박하게 지은 집, 이름 없는 사람들이 살기 위해 지은 집들을 보면 마음이 뭉클하죠. 베르사유 궁전이나 노트르담 대성당 같은 으리으리한 건축물 앞에서는 조그마한 감동도 느껴본 적이 없어요.
“우리 사회 집 짓기의 양태를 바라보는 내 슬픔은 크고 탄식이 깊다(10쪽)”고 하셨어요. 국내의 주택 건축에서 가장 안타까운 게 무엇인가요?
아파트가 주거의 기본이 되면서 단독 주택 문화가 사라졌어요. 그래서 한국의 건축가들은 집 건축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일본은 단층 목조 주택을 짓고 사는 인구가 많기 때문에, 아무리 풋내기 건축가라도 주택을 직접 지어볼 수 있죠. 하지만 우리나라 건축가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드물어요. 학문적인 지식은 많지만, 실무 경험은 부족한 겁니다. 그러다 보니 집을 짓는 소재에 대한 고민도 깊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소재를 보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아파트에 대해 쓴 글 ‘콘크리트 박스 안에서’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아파트 문화를 비판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아파트는 20세기 최고의 건축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환경 문제가 대두되며 콘크리트 주택에 대한 고찰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건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죠. 지난 100년을 돌아봤을 때, 만약 아파트가 없었다면 이 도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시로서는 아파트를 짓는 게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어요.
아파트의 거주 환경을 비판하며 귀농·귀촌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합니다. 언론은 이를 미화하고요. 그런데 지어 놓은 집을 보면 한숨이 나와요. 산 좋고 물 맑은 청정 지역에, 자연을 훼손해가며 지은 건축물이 상업용 컨테이너 하우스이거나, 환경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찍어내듯 짓는 경량 목구조 주택입니다. 집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없이 로망과 효율만 가지고 건축을 했기 때문이에요. 역사상 최악의 건축물이죠. 오히려 아파트에 사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정직한 집에 미래가 있다
책을 쓰며 새롭게 발견하거나 깨달은 바가 있으신가요?
집을 짓는 행위는 ‘배움’을 의미합니다. 한자 ‘배울 학(學)’은 사내가 지붕을 엮어 올리는 모양이죠. 하이데거는 '집을 짓고(building)', '거주하고(dwelling)', '사유하는(thinking)' 것의 본질이 다르지 않다고 했어요. 집 짓는 행위 자체가 인간의 존재이고, 철학의 기본이라는 겁니다.
우리나라에도 놀라운 전통이 있습니다. 뛰어난 인문학자들이 그 당시 최고의 건축을 했다는 거예요. 퇴계 이황이 '도산서당'을 지었고요. 남명 조식 선생은 '산천재'를 지었습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은 '남간정사'를 지어서 제자들을 가르쳤죠. 보통 집은 건축가만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구상에 건축가가 지은 집은 5%가 채 되지 않아요. 책을 쓰면서 결국 집을 짓는 건 ‘인간 본연의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환경이 세계의 중요한 어젠다가 되면서 목재 건축이 주목을 받고 있죠. “한 업종에서만 구닥다리로 머물던 사람이 미래를 이야기하게 되었다(314쪽)”고 하셨어요.
지난 5월에 제15차 세계산림총회가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어요. 5년 주기로 열리는 세계 산림 올림픽이죠. 이번 총회의 포럼에서 중요한 주제는 ‘목재’였습니다.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서는 목재 건축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내촌목공소는 2006년부터 나무집을 지어왔습니다.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목표나 기후 변화, 탄소 중립을 염두에 두고 한 게 아니에요. 생업이었고, 이게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죠. 그런데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세계적인 추세이고 바른길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프랑스는 올해부터 신축하는 50% 이상의 공공 건축물에 목재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지구 이산화 탄소 배출량의 25% 이상을 건축 자재가 차지합니다. 철, 콘크리트 등은 기후 변화의 주범이죠. 지구에서 산소를 배출할 수 있는 건 나무와 숲밖에 없어요. 그 외의 모든 것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합니다. 건축이 탄소 중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목재 건축만이 유일한 대안이에요.
목재 건축을 생각하면 ‘벌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우리나라는 나무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합니다. 잘못된 정보도 많고요. 사실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재를 많이 써야 해요. 그리고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다시 어린나무를 심어야 하죠. 숲은 그대로 두면 산소가 잘 배출되지 않아요. 50년 이상 산 나무는 노령화로 인해 탄소 동화 작용이 더뎌지거든요.
우리나라 건축의 미래는 어떻게 흘러갈까요?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특히 한국의 40대가 저의 이야기에 동의하고, 내촌목공소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사실이 고무적입니다. 20여 년간 아무리 집의 소재가 중요하다고 말해도, 듣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불과 3~4년 전부터 내촌목공소 작업을 진지하게 보는 40대가 많아졌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저는 내촌목공소가 가는 길이 바르고 선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것에서 희망을 느껴요.
“나는 집을 짓는다. 선한 집을 지어야 한다(313쪽)”고 하셨어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선한 집은 무엇인가요?
선한 집을 짓고 싶다는 건 아름다운 집을 짓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선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껴요. 이건 곧 정직한 집을 의미하죠. 정직한 재료로, 잘 만든 집이요.
*김민식 내촌목공소의 목재 상담 고문. 한국의 목재 산업이 활황을 띠던 시절부터 40여 년 목재 딜러, 목재 컨설턴트로 일했다. 나무의 밭으로 꼽히는 캐나다, 북미를 비롯해 전 유럽과 이집트, 이스라엘, 파푸아뉴기니, 뉴질랜드 남섬까지, 그의 나무 여정은 400만km에 이른다. 2006년부터 강원도 홍천 내촌목공소에서 건축가,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목재 컨설팅 및 강연을 해왔다. 저자는 나무와 함께한 오랜 경험, 인문학적 지식으로 나무와 사람, 과학과 역사, 예술이 어우러진 깊고 넓은 나무 이야기를 들려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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