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서를 숱하게 읽은 부모라도 실전 육아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내 아이의 오묘한 기질은 육아서에 소개되어 있지 않다. 부모만이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다. 매달 평균 400여 명의 아이와 부모를 만나 상담하는 홍순범 서울대학교 소아정신과 교수는 『엄마의 첫 공부』에서 "애착, 훈육, 자립, 이 세 가지 개념을 잘 이해하는 부모라면 육아의 단계마다 찾아오는 불안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0세부터 3세는 '애착'의 개념으로, 4세부터 12세는 훈육, 13세부터 18세는 '자립'의 기준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양육해야 한다는 것. 즉 발달 단계를 이해하면 육아가 훨씬 쉬워질 수 있다.
"화가는 삼원색만 쓰지 않고 여러 단계의 색깔을 적절히 섞어서 쓰죠. 카멜레온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점진적인 변신이 필요합니다. 1단계와 2단계의 차이는 애착에 전적으로 비중을 두었다가 점차 훈육에도 신경을 쓰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1단계에서 애착이 잘 형성되었으면 2단계에서 훈육이 더 수월할 것입니다. (97쪽)"
육아의 원리를 알면 흔들리지 않는다
육아서를 읽는 부모 독자들이 많아졌습니다.
네, 기본적으로 부모님의 지식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하지만 이 수준과 대비하여 아이를 키우는 게 쉬워졌느냐 하면 그렇진 않아요. 한동안 학교에 가서 부정기적으로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선생님들의 요청으로 갔죠. 그런데 학교에 가보면 대학 병원 외래 진료를 주기적으로 받아야 할 만한 아이들이 있는데도 부모님들이 상담을 거부하세요. 이 정도는 전혀 상담을 받을 만한 정도가 아니라고 하시면서요. 어떻게 보면 병원에 오지 않으려고 하는 분들이 가장 힘든 케이스예요. 그래서 책을 쓴 거죠. 좀 쉽게 아이들을 양육할 수 있도록 예방책을 드리는 마음으로요.
기본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시겠네요.
그렇죠. 몸이 아픈 아이들의 경우에도 보편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알고 양육을 하면, 모두가 응용할 수 있습니다.
'애착-훈육-자립'이라는 육아의 3원칙, 즉 육아의 기본 중의 기본을 집약해 알려주고자 『엄마의 첫 공부』를 쓰셨다고 밝히셨습니다.
병원에서 많은 아이들을 보는데, 바로 앞에서 진료한 아이의 부모에게 한 말과 다음 차례의 부모에게 한 말이 같을 때가 있어요. 왜 그럴까 생각해 봤어요.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알아야 하는 지식들이 있는데, 이 공통적인 지식을 놓치고 있는 부모들이 많다는 거죠. 육아 정보는 정말 많습니다. 넘칠 만큼 쏟아지죠. 그런데 한 개인의 자녀 교육 성공담이 반드시 바른 양육 방법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나 배경이 다양하고 변화무쌍하기 때문이에요. 아이를 키우며 맞닥뜨리는 상황도 비슷합니다. 환경이 다르니 변수도 많죠.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양육 상황에서도 한결같이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 책들이 있습니다. 바로 육아의 원리를 알고 있는 책이죠.
예비 부모들이 먼저 읽으면 좋을 책이라고 하셨습니다.
미리 알고 있으면 아이의 성장에 맞게 양육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지금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읽어도 좋습니다. 아기, 어린이, 청소년 어느 연령의 아이를 키우고 있든 상관없습니다. 매듭이 이미 엉킨 뒤라도 그 매듭이 언제, 왜 엉켰는지 알면 풀 수 있기 때문이에요.
'육아의 규칙이 바뀌는 시기가 세 번 있다' 이 문장이 이 책의 키 포인트가 아닌가 싶습니다. 훈육을 해야 할 시기에 여전히 애착으로 아이를 대하는 부모들이 있고, 반면에 애착을 해야 하는 시기를 건너뛰고 훈육을 시작해서 아이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죠. 좋은 음식이라도 그것만 먹으면 편식입니다. 그리고 모든 시기에 모든 영양분이 똑같이 필요한 건 아니죠. 아이의 연령이나 발달 단계에 따라 필요한 영양분이 다르듯이 부모의 양육 태도도 바뀌어야 합니다. 간혹 부모에게 너무 의존하는 아이를 봅니다.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초등 4~5학년까지 부모의 주요 목표는 훈육인데, 열다섯 살 청소년을 다섯 살 아이에게 하듯이 일일이 일정을 조정해주고 훈육으로만 일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면 청소년기에 고민해야 할 정체성과 추상적 사고 능력을 키울 기회를 박탈당하게 하는 거죠. 바른 육아는 시간적 변화에 기초합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는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0세부터 3세까지 조부모가 육아를 담당했거나 부모의 사회생활 등으로 부모와의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아기 때 부족했던 애착의 후유증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후에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전문적인 도움도 필요하고요. 반대로 아이가 어린이일 때 부모가 적절한 훈육에 소홀해서 청소년기 때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죠. 중간부터 잘하는 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변신은 무죄입니다. 변신하지 않으면 유죄죠. 일단 깨달은 다음부터는 아이의 상황에 맞게 부모가 양육 태도를 분명하게 가져야 합니다.
책의 3부 「훈육」의 타이틀이 '부모가 가르치는 만큼 잘 자라는 아이들'입니다. 섣부른 칭찬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고 때로는 아이의 숨통을 조이는 칭찬도 있다고 하셨어요. 아이들도 부모가 하는 칭찬이 진심인지, 습관적으로 하는 것인지 알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똑똑할 때가 많아요. 진짜 칭찬과 가짜 칭찬을 잘 구별해요. 자기가 잘하지 않은 걸 이미 알고 있는 아이는 칭찬받았을 때 오히려 기분이 좋지 않아요. 자기가 상처받을까 봐 부모가 거짓말했다는 걸 알게 되죠. 그 사실을 안 아이는 부모의 배려에 고마워할까요? 대개는 비참한 기분을 느낍니다. 섣부른 칭찬이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셔야 해요. 그리고 순전히 우연으로 인해 성과가 났다면 칭찬이 아니라 축하를 해줘야 합니다.
아이의 자질에 관해 너무 많이 칭찬하는 건 좋지 않다고요?
똑똑하거나 착하다는 칭찬이 그렇습니다. 아무런 계기도 없는데 굳이 이런 칭찬을 계속해주면 아이는 오히려 아이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불안해질 수 있어요. 그리고 아이에게 만날 착하다고 말하는 것도 좋지 않아요. 계속 착하게 굴어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고 느낄 수 있으니까요.
올바른 칭찬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이가 정말로 잘했을 때 칭찬하려면 아이에게 관심을 갖고 유심히 지켜봐야 해요. 평소에 신경 써서 아이를 보고 있다가 뭔가 조금이라도 잘한 걸 발견하면 칭찬해주면 됩니다. 유튜브만 보던 아이가 어쩌다 혼자 책을 읽을 때, 친구들에게 말 한마디 안 걸던 아이가 쭈뼛쭈뼛 말걸 때 놓치지 않고 칭찬해주면 됩니다. 그리고 칭찬의 초점을 아이의 주도성에 맞춰야 해요. 그리고 표현도 구체적으로 하면 좋죠. 이를테면 "어려운 문제였는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답을 구해냈구나. 정말 멋있다"라고 말할 수 있겠죠.
책을 보면 상벌에 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적게 다루셨어요.
이미 많이들 아시지만, 훈육이라는 것이 아이를 혼내는 게 아니고 아이를 가르치는 일이잖아요.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강조하기보다 부모가 아이를 양육하며 해야 할 것을 다루려고 했어요. "아빠한테 한 번 호되게 혼나고 정신을 차렸다"는 이야기는 흔하지는 않지만 존재해요. 그런데 "아빠한테 '맨날' 맞아서 내가 정신을 차렸다"는 이야기는 여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체벌은 이미 법으로 금지됐어요. 당연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이죠.
아이와 부모에게도 궁합이 있다
2008년에 첫 책 『인턴일기』를 쓰셨고 2009년부터 ADHD, 틱, 우울증, 조울증, 자폐증 등을 가진 아동을 치료하고 계세요. 간혹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병원마다 증세를 파악하는 기준이 달라서 혼란스러워합니다. A병원에서는 경증이니까 지켜보라고 하고, B병원에서는 100% 자폐증이니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자폐증이라는 게 결국 상호 작용 발달이 어려운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우리가 '발달'을 말할 때, 다 정도의 문제로 봅니다. 예를 들어 운동 발달이 좀 부족한 아이를 살필 때, 걷지도 못하는 아이들부터 운동 신경이 부족한 아이들까지 넓은 스펙트럼으로 보잖아요. 자폐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다양한 단계가 있습니다. 딱 자폐증이라고 나올 정도의 커트라인을 넘느냐 안 넘느냐에 따라, 치료를 해야 하고 안 해도 되지 않는 거죠. 설령 경계에 있는 아이라서 전문가의 의견이 조금 엇갈리더라도 발달이 눈에 보이게 늦는 경우에는 치료를 염두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의 경우 3차병원이지만 경증인 아이들이 오는 경우도 있나요?
물론 있습니다. ADHD인 것 같아서 부모님이 아이를 데려왔는데, 부모님의 기준이 좀 맞지 않거나 훈육을 너무 엉뚱하게 하고 있는 경우도 있어요. 또, '틱' 같은 경우는 뚜렷하게 눈에 보이는 증상이니까 무척 심각한 상황으로 여기는 부모님들이 있는데, 틱은 많은 부분 스트레스와 관련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잘 조절하면 약물 치료 없이 호전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치료 효과가 각별하게 좋은 예가 궁금합니다.
사례별로 너무 달라서 한가지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아이와 부모에게도 궁합이 있긴 합니다. 스타일이 잘 맞을 수도 안 맞을 수도 있어요. 이를테면 목소리나 행동이 큰 편인 아빠에게서 굉장히 여린 마음을 가진 아이가 태어날 수 있어요. 이런 경우 아빠는 특별히 본인이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는 아빠의 큰 목소리에 상처를 받아요. 서로의 기질을 좀 파악할 필요가 있죠. 부모가 아이를 잘 키웠다고 쓴 책들이 많은데, 많은 경우에는 그 부모와 아이의 궁합이 굉장히 잘 맞아요. 그래서 누구에게나 적용하긴 어렵기도 하죠.
내 아이의 기질을 잘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타인으로부터 반대되는 평가를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가 본 아이, 제3자가 파악한 아이의 모습이 다를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실제로 상황별로 다를 수 있어요. 우리가 '페르소나'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잖아요. 집에서는 뭐든지 느리게 행동하는 아이가 학교에서는 바지런하고 대답도 잘하는 모범생일 수 있어요. 그건 사회적인 능력이죠. 집에서는 걱정이 많이 되는 아이인데 밖에서는 제 할 일을 잘하면 그건 능력으로 봐야 해요. 사람들은 내 아이를 괜찮다고 말하는데, 부모는 아이가 불만족스러우면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게 좀 많구나, 기대가 많은 편이라고 해석할 필요가 있어요.
교수님께서는 자녀를 키우면서 어떤 마음가짐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나요?
글쎄요. 딱 하나를 꼽긴 어려울 것 같아요. 다만, 지금 질문을 받고 생각해보니 '재미'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아이들과 재밌는 시간을 보내자는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비단, 어디를 놀러 가서 대단하게 재미있게 놀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그냥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더라도 기왕이면 좀 재밌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합니다. 왜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났는지 떠올려보니, 얼마 전에 아이가 부모님을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우리 아빠는 재미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해요. 그랬더니 다들 놀랐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아빠가 흔하지 않아서일까요?
그런 거 같아요. 아빠라는 사람이 재미있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평소에 저는 아재 개그를 자주 하는 편이에요.(웃음)
자녀가 사춘기를 겪고 있을 때, 무척 힘들어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많은 육아서를 보면 일단 아이가 말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입을 꾹 닫고 있는 자녀를 그냥 지켜만 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부모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세상이 끊임없이 변하듯 부모님도 세상을 넓게 보도록 애써야 할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는 분명히 변화의 시기가 있고, 변화해야만 아이가 성인으로 자립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도 어떤 목표를 세우면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때까지 힘든 것도 견디고 참아야 하잖아요. 아이도 그 시기를 보내야만 하는데, 부모가 원하는 방향대로 가지 않더라도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지켜봐 주시는 게 좋죠. 부모가 시야가 넓어야 아이에게도 다양한 옵션을 이야기해줄 수 있고 대화가 가능하고 비전을 줄 수 있으니까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커서 자녀 양육에 자신을 못 갖는 경우도 많습니다. 내 아이에게 비슷한 상처를 줄까 봐 너무 미리 걱정하는 부모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받은 상처의 종류와 내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무척 조심스럽긴 한데요. 근본적으로 접근해보면 부모에게서 받았던 상처가 자신의 기억을 통해 조금은 왜곡돼 있는 경우도 있어요. 현실과 그 사람이 받아들여서 기억하고 있는 현실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이 심리적 현실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갖고 상담을 받는다면, 그 상처를 잘 해결할 수 있습니다.
*홍순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전공의 과정을,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소아정신과에서 전임의 과정을 마쳤으며, 현재 소아정신과 진료교수로 일하고 있다. 여러 학술 논문과 전문 서적의 출간에 참여하였고, 대중 서적으로는 갓 의사가 되었던 시절의 초심을 기억하고자 쓴 『인턴일기』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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