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괴물 백과』,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괴물×과학 안내서』 등 괴물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채집, 소개해온 곽재식 작가가 토종 괴물과 신라 시대의 해적이라는 매력적인 두 소재를 결합시켰다. 신나게 모험하는 이야기, 바다와 해적 그리고 괴물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더 많이 쓰였으면 한다는 곽재식 작가는 『크리처스 1 신라괴물해적전 : 장인 편 上』을 그 도약의 장으로 삼은 듯하다. 그는 덕담꾼 소년 '소소생', 절세미남 사기꾼 '철불가', 신라의 해적 중 가장 세력이 강한 해적 무리의 강인한 두목 '흑삼치', 해적이지만 재산을 백성들에게 나누기도 하는 의로운 해적 '고래눈' 등 강렬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거인 괴물 '장인', 뿔에 먹이를 꿰어 먹는 '적각어', 두꺼비의 몸에 긴 꼬리와 나비의 날개가 달린 '노채충' 등이 등장하는 이 신나는 소설 안에 독자를 단단히 묶어 놓는다.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후련한 이야기,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이야기,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신기한 모험담을 원하는 분들'에게 이 작품을 권하고 싶다고 말하는 곽재식 작가. 그가 정은경 작가와 함께 쓰고, 안병현 작가가 그린 한국형 판타지 시리즈의 처음을 알리는 책 『크리처스 1 신라괴물해적전 : 장인 편 上』는 모험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다음을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야기다.
해적의 시대가 있었다
신라시대의 해적과 괴물이 등장하는 이야기예요. 이 시리즈의 기획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제가 원래 신라 시대의 해적을 주제로 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어요. 비슷한 배경을 소재로 다룬 소설도 몇 번 썼죠. 다채롭게, 신라의 해적을 배경으로 웃긴 것도 써보고, 해적 이야기니까 범죄물처럼 어두운 것도 써보고, 미스터리 느낌으로도 써보자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는데요. 그런 중에 작년 말, 출판사에서 괴물을 소재로 한 무언가를 저와 해보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어요.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시리즈를 해보면 좋겠다는 얘기였죠. 신라의 해적을 판타지 느낌으로 엮어서, 해적들이 항해 중에 마주친 머나먼 섬에서 괴물을 만나는 이야기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전부터 갖고 있었거든요. 마침 출판사의 제안을 받고 기왕 괴물 이야기를 한다면 전부터 생각해온 신라의 해적을 접목시켜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에 경험도 없고, 자신도 없어서요. 정은경 작가님과 함께 하게 됐죠.
정은경 작가님과 함께 하는 작업은 어떠셨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진행이 됐을까요?
제가 전체적인 배경과 인물, 줄거리를 잡았어요. 들어가야 하는 내용, 꼭 필요한 장면 등을 시놉시스로 써서 정은경 작가님께 드렸죠. 그것을 보고 정은경 작가님께서 소설을 완성하시는 방식으로 진행을 했어요. 그러다 보면 정은경 작가님에게도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마련이잖아요. 그러면 작가님과 제가 함께 협의해서 이야기 진행했죠. 대체로는 정은경 작가님 뜻대로 됐고요.(웃음) 예를들어 『크리처스 1 신라괴물해적전 : 장인 편 上』의 시작 장면이 해적에서 잡혀서 죽기 직전의 모습이잖아요. 저는 그냥 처음부터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는 이야기로 드렸었는데요. 정은경 작가님이 앞부분에 그 장면을 연출하자는 아이디어를 주신 거예요.
작가님께서 특별히 신라의 해적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이유도 궁금한데요.
일단 해적 이야기가 재미있지 않습니까.(웃음) 해적은 예전부터 영화나 모험담의 소재로도 많이 활용됐죠. 해적 이야기라면 흔히 16-17세기의 카리브해를 배경으로 한, 유럽의 해적을 많이 생각하는데요. 사실 신라 말의 한반도에도 해적이 득실득실했던 시대가 있었거든요.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국판 해적 이야기를 만들면 한국 독자들에게 더 가깝게 느껴지는 동시에 카리브해의 해적 이야기와는 느낌이 다른 참신한 이야기를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신라 때 해적이 많았군요. 잘 몰랐던 사실이에요.
학교 다닐 때, '바다의 왕자' 장보고에 대해 배우잖아요. 장보고가 바다의 왕자가 되려면 그가 싸우던 상대가 있어야겠죠. 그게 바로 해적 같은 사람들일 테고요. 그렇다면 그쪽 이야기도 나름대로 있지 않을까, 라고 저는 예전부터 생각했었어요. 실제로 찾아보니까 신라 말부터 후삼국에 이르는 시기까지 한반도 주변에 해적이 들끓어서 골치 아픈 시대가 있었더라고요. 심지어 일본까지 그 해적들이 많이 지나가서 당시 일본 사람들이 한반도에서 넘어오는 해적들을 '한구'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있고요. 그 사실이 신기하니까 그동안 하나씩 시도를 해본 거예요. 진지한 것도 써보고, 웃긴 것도 써보고요. 그러다가 이런 판타지도 기획을 하게 됐죠.
한국식 판타지가 넓어졌으면
확실히 한국적인 토종 괴물이 다른 곳도 아닌 신라를 배경으로 등장하니까 새롭게 읽히는 부분이 있었어요.
괴물 같은 경우는 예전보다는 한결 가까이 다가온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한국적 판타지를 시도하고 계시거든요. 그렇다고 해도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의 괴물이나 한국의 판타지가 아직까지는 신선하게 느껴지죠. 그런 것도 소설 쓰는 입장에서는 도전해보고 싶은 이유가 돼요. 한편, 해적 소재는 그에 비해 더 신선한 것 같거든요. 특히 신라의, 진짜 해적이 있던 시대를 소재로 한 해적 소설은 더 드물죠.
좀 오버하는 얘기인 것 같기도 한데요.(웃음) 제가 품고 있는 꿈이 신라시대의 해적을 소재로 한 여러 형태의 소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일본 같은 경우, 사무라이나 낭인들이 칼싸움하는 이야기가 하나의 장르처럼 있거든요. 요즘은 조금 죽은 느낌도 들지만, 전통적으로는 칼싸움하면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험담이 만화나 소설, 영화로 많이 나왔어요. 그것처럼 한국에서는 해적물이 작가라면 누구나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것으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는 꿈도 품고 있습니다. 너무 과대 망상인 것 같아서 이런 얘기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 하네요.(웃음)
해적과 신라 시대에 대한 남다른 마음을 갖고 계셨군요.
해적이 작품 소재로 활용되지 못하는 게 아쉽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신라 시대 말기에 해적들이 준동하던 시기가 있었다는 걸 생각해보면요. 배를 타고 망망한 바다를 모험하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모험담들이 재미있게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옛날 기록에도 그런 이야기가 많지는 않지만 단면을 볼 수 있는 것들이 꽤 있어요. 신라의 어떤 상인이 어느 섬나라에 갔더니 희한한 보물이 있었다더라, 이상한 섬에 갔더니 이상한 괴물들이 살고 있었다더라, 이런 식으로 이야기의 단편이 옛 기록 속에 조금씩 남아 있거든요. 그런 생각이 널리 퍼져 있던 시기가 정말로 있었던 거예요.
한국 사람들이 배를 타고 떠나는 얘기, 신비의 섬을 찾아서 낯선 곳을 탐험하는 얘기, 모험하는 얘기가 전통과 멀다고 무심코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요. 굳이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다른 소재도 얼마든지 해볼 수 있죠. 이 가능성을 예전부터 많이 생각하고 있고요. 그래서 꾸준히 시도하는 중이에요. 해적이라는 소재를 이렇게 꾸준히 들이밀면(웃음) 언젠가는 훅 다가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렇게 되면 한국식 판타지의 범위도 한결 더 넓어지고, 더 다채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흥미롭게도 여성 해적 대장이 둘이나 등장하죠. 흑삼치와 고래눈이라는 캐릭터 자체도 아주 매력적이고요. 이들 캐릭터에 대해서는 어떤 구상을 하셨던 건가요?
여성 해적은 해적 이야기의 주요 소재 중 하나입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있거든요. 가령 중국에는 '정일수'라는 해적이 있었어요. 아주 유명한 중국 해적인데요. 유럽에서는 보통 '마담칭'이라고 하죠. 마담칭은 18세기 경에 활약한, 엄청난 세력을 자랑했던 아주 악명 높은 여성 해적인데요. 이 해적이 말년에 해적 사업을 싹 정리해요. 손을 씻은 거죠. 그리고 자신의 고향인지 그냥 좋아하던 마을인지로 가서 아주 평화롭게 살다가 세상을 떠나요. 해적계의 이상향 같은 인물인 거예요.(웃음) 그 외에도 여성 해적 이야기는 워낙 중요한 소재 중 하나고요. 더군다나 신라는 여왕도 있던 시대니까요. 이런 인물들의 등장이 자연스러웠죠.
활용하지 않으면 잊히는 이야기들
이야기를 강렬하게 만드는 요소라면 해적과 더불어 얘기해야 할 것이 괴물이거든요. 작가님이 특별히 소개하고 싶었던 괴물도 담았나요?
'장인'은 1권의 중심 소재로 나오는 만큼 이야기하고 싶기도 했죠. 원래 중국에 있던 이야기인데요. 그들은 신라를 '바다 건너 있는 신비로운 먼 나라'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신라에 가면 다시 동쪽으로 멀리 갈 수 있는데 거기에는 장인들이 사는 나라가 있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거인들이 신라에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신라 사람들은 요새를 지어서 방비를 잘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가 중국의 이야기 책 같은 데 실리기도 했어요.
사실 장인은 한국 괴물에 관심 있는 분들은 거의 다 아는 소재인데요.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한국식 판타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던 것 같아요. 신라에서 떨어진 외딴 곳에 거인들이 사는 나라가 있고, 그들과 신라 병사들이 대치하고 있다는 이야기 소재가 한때는 많이 알려진 이야기였는데 현대까지 오지 못하고 단절된 거죠. 사실 그런 것들이 많아요. 꼭 일제가 탄압을 해서, 단절을 시키려고 해야만 단절이 되는 게 아니에요. 그냥 많이 활용을 안 하다 보면 잊히잖아요. 아무리 한때 유행했던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에요. 장인도 그런 소재라서 소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주인공 '소소생'은 '덕담꾼'이에요. 덕담꾼이란 사람들을 웃기는 이야기를 하는 직업인데요. 이를테면 지금의 소설가나 작가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는데요. 참신하고 이상한 직업을 넣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쇼 비즈니스라고 할까, 코미디언이라고 할까, 이런 게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았거든요. 삼국 시대나 신라 시대 기록에도 그런 사람들이 활동했다는 단편적인 기록들이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 마술사 같은 사람들이 공연을 열심히 했다, 하는 식으로요. 일본의 '신서고악도(信西古樂圖)'라는 책에 '신라악 입호무'라는 것이 나와요. 그 부분의 삽화를 보면 마술 장면 같은 것을 연출하는 춤이 있거든요.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신라에서 유행을 했기 때문에 일본으로 건너가 책에도 기록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러니까 이런 공연이 신라에 많았다고 한다면, 웃고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가 있지 않았을까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어요.
아마도 신라에서 '덕담'이라는 말은 안 썼을 것 같아요. 근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덕담이라는 말이 지금의 농담, 만담의 느낌으로 사용이 되는 구절이 있더라고요. 조선 시대에 전통적으로 했던 '덕담'이라는 말과 지금의 어감이 다른 것도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그걸 좀 당겨왔어요.
<크리처스> 시리즈는 어느 정도나 기획되어 있나요?
2권까지는 다 되어 있어요. 완결 내용이 다 나와 있고요. 3권 이후의 이야기를 열심히 가고 있는 중이죠. 아직 끝을 알 수는 없는데요. 예상으로는 약 10권 정도까지 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독자 분들께서 많이 읽어주셔야 합니다.(웃음)
2권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요. 독자 분들에게 힌트를 좀 주세요.
당연히 장인이 나와서 난리가 나야겠죠. 저는 제목이 정직하게 중심 내용을 관통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소설은 그런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제목이 '고래의 사랑'이라면 고래도 나오고 사랑도 나오는 게 제 소설에는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아저씨가 그냥 사랑하는 이야기인데 고래하고 비슷해서 고래의 사랑이다, 이런 것 말고요. 그러니까 1권 제목에 '신라괴물해적전'이라고 되어 있으니 신라도 나오고 괴물도 나오고 해적도 나와야죠.(웃음) 또 부제에 '장인 편'이라고 있기 때문에 장인이 중심 소재로 나와야 합니다. 장인은 등장도 안 하고, 그냥 장인 같은 해적이 있어서 그걸 상징하는 건 제 소설이 아닌 것 같아요.
1권을 보면 장인이 무시무시한 거인으로 암시되어 있잖아요. 따라서 2권에서는 장인이 나와서 활약을 할 텐데요. 장인이 어떻게 활약을 하겠습니까, 과학 수사를 하겠습니까 사람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겠습니까.(웃음) 그 덩치와 무서운 품성에 맞는 그런 난리를 일으킬 거고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2권이 훨씬 재밌을 것 같아요.
계속해서 쓰는 마음
작가님의 이토록 다양한 관심사와 활동은 어떻게 가능한 건가요? 괴물에 관한 책도 여러 권 출간하셨고, 환경과 관련한 책도 출간하셨잖아요.
제가 4대 보험 받으면서 하는 직업은 환경 공학을 가르치는 일이에요. 환경에 관한 것이 한 덩어리고요. 나머지 한 덩어리가 소설가이자 작가인 건데요. 진짜로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보통 크게 대박이 안 터진 작가들이 이것저것 합니다. 아시겠지만 대박이 터진 작가는 굳이 이것저것 이렇게 할 필요가 없어요.(웃음) 저는 아무래도 SF를 제일 많이 썼거든요. 그런데 문예지나 과학 잡지 등에 실린 것을 기준으로 하면 추리 소설을 제일 많이 썼어요. 원고가 빌 때마다 열심히 쓰다 보니까 그렇더라고요. 그런 게 중박 작가의 운명이죠.
이렇게 말씀은 하시지만 계속해서 쓰는 마음, 소설가로 하고 싶은 것이 분명히 있으실 것 같은데요.
저는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하는 이야기인데 진심이기 때문에 또 말씀드리면요. 소설은 지어낸 이야기잖아요. 실제로 있는 이야기가 아니고, 거짓에 가까운 것이죠. 그런데 지어냈을 뿐이지만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주인공, 이 사람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어요.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잖아요. 가까운 친구나 친척이더라도 그 사람이 아주 잘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진심으로 잘됐다고 편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그런 경우도 물론 있지만 상당히 자주 배 아픈 마음이 들게 마련이고요. 그 사람이 잘 됐다는 생각을 기쁜 마음으로 하더라도 동시에 나는 왜 이 모양이지, 하면서 그 소식을 순수한 즐거움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는 때가 비일비재하거든요. 그런데 이야기가 흘러와서 결말을 잘 맺었을 때는 '이 사람 참 잘됐다'고 느껴요. 그러니까 남의 행복에 진심으로 공감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거죠. 그게 소설이 줄 수 있는 아주 좋은 것, 소설의 가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 형태의 소설을 쓰면서 그렇게 삶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감, 기쁨을 독자 분들에게 심어주는 것을 목표로 부단하게 정진하고 있어요.
앞서 해적 이야기가 더 많이 작품으로 다뤄지면 좋겠다는 꿈에 대해 말씀하셨잖아요. 같은 맥락에서 지금 사람들이 비교적 관심을 덜 가지고 있는 소재들이 작가님께는 많을 것 같아요. 또 다른 얘기도 있으세요?
조선 시대를 생각하면 왠지 쇄국 정책 때문에 다른 나라와 교류를 못했고, 그래서 기술 문명에 빨리 다가가지 못했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요즘은 조금 달라진 것 같은데요. 의외로 진짜 안 쓰던 소재가 조선 시대 사람들이 총을 쓰는 이야기예요. 사실 조선 시대에 총이 굉장히 많이 퍼져 있었어요. 임진왜란 이전에도 총과 비슷한 무기를 사용을 했었고, 특히 임진왜란 이후로는 조총에 호되게 당한 후로 총이 굉장히 많이 퍼졌어요. 이후에는 칼을 쓰는 사람들보다 총을 쓰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고 할 정도죠. 그런 게 저는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재밌잖아요. 조선 시대의 신분제 사회, 뭔가 '공자왈 맹자왈'하는 분위기를 바탕으로 하는 동시에 총과 같은 기술적인 내용이 조합된 명사수에 관한 이야기도 붙여볼 수 있고요. 어떤 장군이나 포도대장 같은 사람이 범죄자들을 잡으러 다니는데 엄청난 명사수라더라, 라는 식의 이야기도 신선하면서 재밌을 것 같아요.
역시 대단히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네요.
광해군 시기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어요. 광해군이 궁궐에 귀신이 많다는 생각에 되게 시달렸다고 해요. 실록에는 광해군이 나쁜 짓을 많이 저질렀기 때문에 그에 원한이 맺힌 귀신들이 자기에게 복수하러 온다는 망상에 시달렸다는 것을 암시하는 톤으로 설명이 되어 있거든요. 명확하게 그렇게 적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얼핏 드는 대목이 있어요. 그래서 광해군이 궁궐에서 귀신 쫓는 의식을 되게 많이 벌입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되게 싫어했다는 이야기가 실록에 남아 있어요.
그 의식의 내용이 약 20명 정도의 사람들을 선발해서 총을 쏘게 한 겁니다. 총 쏘는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귀신을 쫓을 수 있다고 광해군은 생각했던 거예요. 그럼 저는 거기서부터 상상을 해보는 거죠. 광해군은 그 의식을 화포장이라고 하죠, 총 만드는 기술자들한테 하도록 시켰거든요. 이게 재미있는 거예요. 총 만드는 기술자들이 졸지에 귀신 쫓는 부대로 편성이 된 거니까요. 더 들어가면 약간 <고스트 버스터즈> 같은 느낌도 나겠죠. 원래는 화약이나 총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는 기술자인데 갑자기 귀신을 쫓아내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어떤 일이 생길까, 그런 걸 생각해 볼 수 있잖아요. 그 기술자가 사실은 겁이 많은 사람이면 어떨까요. 임금의 명령을 거역할 수도 없고, 그래서 맨날 무서워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는 이야기라면요. 저는 그런 소재가 재미있을 것 같아요.
*곽재식 공학 박사이자 SF 소설가,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세상의 모든 호기심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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