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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가 부탄을 사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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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부탄 전통복 키라를 입은 고은경, 이연지, 김휘래 저자

첫 눈이 오는 날은 국가의 공휴일로 지정되고, 국왕이 주인 없는 떠돌이 개의 안위까지 생각하는 나라. 환경과 동물을 위해 1년에 100일은 채식을 하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탄소 흡수량이 탄소 배출량보다 많은 나라가 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라는 수식어로 유명한 부탄이다. 부탄인과 결혼해 정착한 최초이자 유일한 한국인 이연지, 일을 하러 왔다가 부탄과 사랑에 빠진 고은경, 유엔 부탄 국가사무소에서 국가 단위 개발조정분석가로 일한 김휘래는 환대와 배려, 사랑의 마음을 알려준 부탄에 대해 책을 쓰기로 결심한다. 유토피아, 행복한 나라 등의 단순한 표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탄의 아름다움이 이 책에 담겼다. 『우리는 부탄에 삽니다』의 초판 인세 전액과 수익금 일부는 부탄의 산간 오지 학교, 청소년 약물중독재활센터에 기부될 예정이다.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부탄에는 다양한 얼굴이 있다 

책을 쓴 계기가 궁금해요. 세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하나로 모였나요? 

은경 : 팬데믹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코로나블루가 느껴지던 무렵, 휘래 님과 글램핑 여행을 떠나게 됐어요. 그때 부탄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끼리만 알고 있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휘래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뜻이 잘 맞았죠. 

연지 : 저는 집필 제안을 받았어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데, 은경님 가족이 식사를 하러 왔거든요. 휘래님과 글램핑 다녀왔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함께 부탄에 대한 글을 써보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셨어요. 듣자마자 너무 기뻤죠. 마침 써 둔 글이 있었거든요. 언젠가 식당에 오신 손님께서 저에게 부탄에 대한 글을 쓰면 좋겠다고 하셔서, 1년간 A4용지 20장 남짓한 분량의 글을 느리게 쓰고 있었어요. 식당 일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게 힘들어서 한동안 포기했는데, 색다른 제안이 온 거죠. 너무 좋아서 제가 쓰다 만 원고를 바로 보여드렸답니다.(웃음)

휘래 : 부탄에서 산다고 하면 다들 물어보거든요. "부탄은 정말 행복한 나라야?"라고요. 단순한 질문이지만, 단순하게 대답할 수는 없는 질문이에요. 여기에 답하기 위해 책을 썼어요. 미디어로 보여지는 단편적인 모습의 부탄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일하고 살면서 느낀 특별함을 나누고 싶었죠.  

부탄에 산다고 하면 "부탄은 정말 행복한 나라야?"라는 질문이 따라온다는 답이 인상적이네요. 세 분은 어떠세요? 부탄에 가보기 전,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었나요? 

은경 : 히말라야 산 속 어딘가에 있는 작은 은둔의 나라요. 신비로운 느낌이 있었죠. 실제로 거주해보니 부탄은 정말 역동적이에요. 도시화로 인해 곳곳이 공사 중이고, 자가용 차량도 급격히 증가했죠. 국가에서 차량 수입을 일시 중지시켰을 정도로요. 반면, 수도 '팀푸'를 벗어나면 목가적인 농촌이 펼쳐져요. 부탄에 오기 전 상상했던 신비로운 이미지가 많이 남아 있죠. 특히, 마을마다 내려오는 전설이 많은데요. 구전으로만 이어지고 있어서 그 이야기들을 기록해 보존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척 빠른 속도로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거든요. 

휘래 :두 가지의 정형화된 이미지였어요.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샹그릴라'라는 찬양과 '물정 모르는 가난한 산골 나라'라는 폄하의 이미지 말이죠. 살아 보니 부탄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에 너무 다양한 얼굴을 가진 나라예요. 부탄은 찬란한 유토피아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탄의 사회경제적 노력을 단순히 '외부와 단절되어 있어서'라는 말로 단정할 수도 없죠. 저희의 책을 보시면 부탄의 다양한 얼굴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연지 :저는 인도에서 대학을 다녔는데요. 옆 자리에 한국인처럼 생긴 여학생이 앉아있어서 "어디서 왔어요?"라고 물었더니 부탄에서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때까지 저는 부탄이라는 나라를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학교에서 남편을 만나 부탄에 가기 직전까지도, 그 나라에 대한 이미지는 백지 상태였죠. 제가 부탄에 거주한 10여 년의 세월동안 많은 게 변했지만, 여전히 부탄 사람들은 친절하게 저를 배려해주세요. 자연과 환경도 변화가 거의 없고요. 변화가 느리기 때문에 부탄에 살면서 '나는 지구에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이구나'라는 걸 자주 깨닫는 것 같아요.


부탄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 절벽 위에 지어진 '탁상사원' 

모두 달릴 때 멈춰서 질문하는 나라

책을 읽으며 부탄 사람들의 배려심,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높은 자존감에 놀랐어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원천은 무엇일까요?

은경 : 문화 깊이 뿌리내린 불교의 영향인 것 같아요. 살생하지 않는 마음,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하는 마음은 모두 불교 철학에서 기인한 거죠. 음주 문화에도 특이한 점이 있는데요. 부탄 사람들은 첫 잔의 한 방울을 손가락으로 튕겨서 허공으로 날려보냅니다. 우리나라의 '고수레 풍습'처럼 자연의 신에게 예의를 갖추는 거예요. 술 한잔을 마실 때도 자연을 섬기는 마음이 느껴지죠.

휘래 : 동감해요. 불교에서는 삶을 ‘고해(苦海: 고통의 바다)’라고 하잖아요. 저는 부탄 사람들의 마음이 불교에 뿌리를 둔 '측은지심(惻隱之心)'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해요. 나 이외의 것을 생각하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요. 자연 또한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부탄의 광활한 자연을 보면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되거든요. 자연의 일부인 나를 겸허하게 바라볼 수 있는 거죠. 

연지 : 저는 부탄인의 배려심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고 싶어요. 몇 년 전, 부탄에서 중국과의 축구 경기가 열린 적이 있어요. 그때 부탄이 패했는데, 남편이 "오늘은 우리 엄마 마음이 편하시겠다"고 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물어보니 사연이 있었어요. 남편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프리카의 어느 국가가 부탄으로 친선 축구 경기를 하러 온 적이 있었다고 해요. 부탄은 피파 랭킹 최하위인 국가여서 승리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날 경기에서 뜻밖에 이긴 거예요. 모두 기뻐하는 와중, 어머니의 표정이 좋지 않으셨대요.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힘들게 온 손님들이 이겨서 돌아갔으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생각하신 거죠. 이렇게 부탄 사람들은 나의 이익보다 타인, 동물, 자연을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마인드가 부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죠.

권위의식 없이 국민을 섬기는 국왕의 모습도 마음에 남았어요. 

휘래 : 부탄의 유일한 국제공항인 '파로 공항'에 도착하면 건물에 왕과 왕비, 왕자의 사진이 방문객을 반겨요. 그뿐 아니라 식당, 마트, 친구의 집 등 어디를 가도 국왕 가족의 사진을 볼 수 있죠. 부탄에서는 국왕이 어떤 영화배우보다 더 인기있는 스타이자, 존경을 받는 존재예요. 국민들이 리더를 이렇게 진심으로 좋아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요? 저는 그동안 국왕이 보여준 진실한 행동들이 자연스레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든 거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도 감동한 일화가 있죠. 부탄에 처음 코로나 확진자가 생겼을 때, 제 이름으로 작은 박스 하나가 도착했어요. 면역력 향상에 좋은 꿀과 강황가루, 마스크, 손세정제가 담긴 선물로 국왕의 사무실에서 보낸 거였죠. 저는 부탄 국민도 아니고, 단지 외국인 신분의 실무진일 뿐인데,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챙기는 섬세한 리더십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어요.

은경 : 코로나19 기간에 국왕의 리더십이 빛나는 순간이 아주 많았어요. 국민을 살피기 위해 평소보다 훨씬 더 자주, 더 힘들고 고립된 마을로 순방을 다녔고요. 비가 오는 날 우산도 없이 국경 야산의 경비 초소를 돌아보고, 허름한 산 속 오두막집 앞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 왕의 모습이 공개돼 국민을 숙연하게 했죠. 코로나19로 인해 외출 금지령이 내려졌을 때도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어요. 평소 부탄인들은 길거리에 떠도는 개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데요. 사람들이 집밖을 못 나가게 되자 국왕이 길거리 개들에게 먹을 것을 배급하라는 명을 내린 거예요. 정부 보살핌의 영역 안에 주인 없는 개도 들어가 있다는 걸 알고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코로나 락다운에 개들을 보살펴주는 국왕의 모습을 담아 널리 알려진 그림 <왕과 개> © Kezang Wangmo

부탄은 법적으로 환경 보호와 동물 복지에 힘쓰고, 교육과 의료 서비스가 무상으로 제공돼요. 'GDP(국내총생산)'가 아니라 'GNH(국민총행복)'로 국가의 성장을 판단하죠. 세계가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은경 : 부탄에는 고기를 팔지 않고, 먹지 않는(신심이 깊은 사람의 경우) 기간이 정해져 있어요. 음력 1월과 4월 한 달간, 매월 음력 1일, 8일, 15일인데요. 모두 합하면 1년 중 100일은 일부러 육식을 하지 않는 거죠. 금욕으로 지구 환경을 지키고,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을 생각하고, 소화기관에도 휴식을 주기 위함이에요.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하는 건강한 문화라고 생각해요. 

휘래 : 부탄은 남들이 다 뛰고 있는 육상 경기장에 멈춰 서서 질문을 던지는 나라예요. "그래, 경제 성장 중요하지. 그런데 왜 중요한 거지?"라고요. 부탄은 이미 1970년대부터 경제적 지표에 치중한 성장 개념에 질문을 던졌던 나라예요. 저는 남들이 모두 뛰어갈 때, 잠시 멈춰 서서 질문을 던지는 부탄의 용기와 태도를 배우고 싶어요.


(왼쪽부터) 부탄 전통복 키라를 입은 고은경, 이연지, 김휘래 저자

첫눈이 내리는 날, 다 함께 쉬는 나라 

부탄은 쉽게 여행을 떠나기 어려운 나라인데요. 그럼에도 부탄을 가야할 이유를 꼽아주신다면요. 

연지 : 부탄은 직항 비행기가 없고, 자유 여행이 금지되어 있고, 관광객에게 세금을 부과해서 여행을 하려면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되죠. 그럼에도 왜 가야하냐고 묻는다면 그곳이 부탄이기 때문이에요.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의식적으로 다음 세대를 위해 지금 있는 것들을 보존하는 풍경을 보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 아닐까요? 

은경 :수도 '팀푸'에서는 신축 건물도 전통 양식으로 짓고 건물의 높이 제한도 있어요. 그래서 부탄에 오면 동화 속의 작은 마을에 온 듯한 느낌이 들죠. 또, 수도를 벗어나면 국토의 70%가 산림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태초의 자연, 신비로운 호수 등은 생태 관광지로서의 잠재성이 아주 큰 풍경이에요. 물론 인프라가 부족하고, 관광세가 최근 하루 200달러로 인상되었기 때문에 선뜻 여행을 권하기에는 주저하게 되지만,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는 분들께는 잊지 못할 여행지가 될 거예요.

휘래 : 저는 많은 나라를 여행했는데, 부탄은 그 중 가장 특별한 분위기를 가진 나라였어요. 말로는 그 느낌을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요. 부탄에 처음 입국할 때, 저는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간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2년 간의 부탄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올 때도 비행기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난 시간이 모두 한낮의 꿈 같았거든요. 마치 동화 속 어느 한 대목에 살다 나온 느낌이었죠. '첫눈이 내리는 날은 공휴일로 지정되는 나라'라는 문장에서 느껴지듯 부탄은 정말 특별한 분위기를 가진 나라입니다. 꼭 한 번 가보시기를 추천해요!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휘래 : 부탄은 저에게 특별한 나라입니다. 세계 어디서도 받아보지 못한 환대를 느끼게 해 준 나라이고, 특별한 친구들을 만나게 해 준 나라죠. 그런 부탄을 한국 독자에게 소개할 수 있어서 무척 기쁩니다.

연지 : 『우리는 부탄에 삽니다』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독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부탄에 사는 한국인의 이야기를 즐겁게 읽어주세요.

은경:이 책에 비춰지는 모습이 부탄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세 사람의 관점에서 써내려간 부탄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지만, 이걸 통해서 더 많은 분들이 부탄을 알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은경

제주 섬에서 나고 자라 세계를 누비며 활동하는 17년 차 국제 활동가로, 지리학을 전공하여 세계 여러 지역을 답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봉사단원을 시작으로 유네스코, 유엔개발계획 등 유엔기구 및 국제 NGO 활동을 해오다 2019년 코이카 활동을 계기로 가족과 함께 부탄에 들어와 아이를 키우며 국제 활동을 하고 있다.



*이연지

여행이 좋아 한국에서 관광학을 공부하다 사람의 마음이 궁금해 인도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후, 마음이 예쁜 동반자와 인생이라는 여행을 부탄에서 함께하고 있다. 부탄에서 결혼하여 정착한 첫 한국인으로, 이곳에 살며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를 담았다. 10여 년간 부탄에 살면서 경험한 부탄 가족과 문화, 그리고 가게를 운영하며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다.



*김휘래

스리랑카, 영국, 인도를 거쳐 부탄에 왔다. 책이 출간된 현재는 네팔에 있다. 남아시아 지역 전문가이며 농업과 기후 변화를 연구한다. 부탄 내 유엔 활동을 총괄하는 유엔 부탄 상주조정관실에서 개발 조정분석가로 일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온 동료들, 부탄의 동료들과 함께 부탄을 위해 일하며 느낀 특별함, 그리고 '행복한 나라, 부탄' 뒤에 숨어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우리는 부탄에 삽니다
우리는 부탄에 삽니다
고은경,이연지,김휘래 저
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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