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이 장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작가. 그는 최근 시작한 예능 프로그램 <수상한책방 동서남Book>부터 신작 『믿음에 대하여』 까지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 장편 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 등을 썼고, 2022 부커상 인터내셔널에 노미네이트 됐다.
기자 출신 작가들의 특징이 하나 있다. 테이블 위에 슬며시 올려놓은 녹음기를 신경 쓰는 일. 잡지 기자로 일했던 박상영도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기자의 녹음기를 본인 앞으로 끌어당겼다. 지난 7월 소설집 『믿음에 대하여』를 출간하고 박상영은 한 달 내내 인터뷰이로 활약했다. 2016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후 2018년 첫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출간하고, 에세이 한 권을 포함해 총 다섯 권의 책을 쓴 박상영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작가다.
"정말 바빠요. 방송 출연도 많이 하고 행사도 많고. 그래서 일정이 없을 때는 낮에 잠을 엄청 자요. 지금 가장 시간을 많이 쏟는 건 영상화 작업이에요. 소설 한 작품이 영상화가 될 예정이라 크리에이팅 과정에 참여하고 있어요. 또, 내년에 여행 에세이를 낼 예정이라 여행 산문도 많이 써야 해요."
박상영은 KBS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을 시작으로 JTBC 〈방구석1열: 확장판〉, 왓챠 〈조인 마인 테이블〉 등에 고정 출연했고, 한 달 전 새 예능 프로그램 촬영을 마쳤다. 홍대 거리를 지날 때나 헬스장에서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 유튜브에서 '박상영 작가'를 검색해 영상을 몇 편 봤다면 그의 탁월한 입담에 놀랄지도 모른다.
"요즘은 어떤 직업을 딱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세상이잖아요. 예전에는 방송사에 다니는 사람들만 방송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사람들이 영상 매체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처럼, 저 같은 작가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변화라고 생각해요. 비단 소설가뿐 아니고 TV에 나오는 만화가, 교수, 전문 직업인들이 정말 많아졌죠. 처음 TV에 출연했을 때는 너무 가볍게 보실까 봐 걱정했는데, 작품은 진지하게 쓰고 있으니까요. 지금은 편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올봄 박상영 작가는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올랐다. 해외 판권이 15개 국에서 30여 개국으로 늘었고 내년에는 네덜란드, 호주, 벨기에 등 여러 나라에서 북토크를 열 예정이다.
"부커상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땐 불안한 마음이 있었어요. 상을 타면 어떡하지, 못 타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 때문에 너무 괴로웠는데, 지금은 정말 행복하고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생애 이런 경험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정말 감사한 일이니까요."
연작 소설집 『믿음에 대하여』는 『대도시의 사랑법』, 『1차원이 되고 싶어』를 잇는 '사랑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번 소설을 펴내고 나서 그동안 가장 듣고 싶었던 리뷰, '박상영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이렇게 실감나게 잘 쓰는구나'를 들었다.
"사실 지금까지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썼는데, 제가 겪은 이야기를 썼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자이툰 부대에 파병을 간 적도, 영화 일을 한 적도 없는데, 많은 분이 자전적인 이야기로 생각하시더라고요. 취재를 많이 해서 쓴 소설인데 좀 억울할 때도 있었죠. 『믿음에 대하여』는 좀 더 저와 거리가 있는 캐릭터를 쓰려고 노력했어요. '작가의 말'도 일부러 제작 비화처럼 구체적으로 썼고요. 이번에는 타협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인터뷰했던 분들, 감사한 분들, 편집자분들까지 모두에게 원없이 감사드렸죠(웃음)."
박상영은 빠르다. 말도 행동도 회신도 빠르다. <월간 채널예스> 표지 촬영 일정을 묻는 메일에 가장 빠르게 답장을 한 작가도 박상영이다. 그가 속도를 빠르게 내는 일을 살펴보면 모두 협업하는 프로젝트다. 퍼포먼스를 만들기 위해 매일 꼼꼼히 스케줄링을 하는 그의 요즘 고민은 '개인 박상영'의 일상을 찾는 일이다.
"오래전부터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었고 제가 작가인 게 좋아요. 이 직업이 자랑스럽고 다른 모든 직업보다 '소설가'라는 이름이 언제나 제일 앞에 왔으면 좋겠어요. 제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고 소설을 정말 사랑하고 진짜 노력해서 여기까지 온 거라서 제 작품이나 직업 생활에는 후회가 없어요. 다만 너무 달려오다 보니까, 지금은 기름을 다 쓴 열차처럼 일상에서는 좀 불행할 때가 있어요. 일상인 박상영의 삶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에요."
박상영에게 '소설'은 가장 나답게 쓸 수 있는 글쓰기다. 내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면서도 누구에게도 침해받지 않고 쓸 수 있는 세계, 박상영이 정의하는 소설이다. 그는 오래 쓰기 위해 부지런히 척추 운동을 한다. 책은 일 년에 한 권, 그 이상은 출간하지 않으려고 한다. 스스로 어느 정도의 분량을 썼을 때 작가로서 가장 쾌적한지를 알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마음 자체가 재능'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누구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것. 이게 제가 가진 유일한 재능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글을 쓰고 싶다면 작가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쓰는지를 분석하는 연습을 많이 하셨으면 좋겠어요. 이 작가는 왜 이 이야기를 이렇게 배치했을까, 그 의도를 분석하다 보면 도움이 돼요. 무작정 비판적으로 보기보다 왜 사람들이 이 작가의 글을 좋아할까, 그걸 생각하면서 볼 필요가 있어요. 자신의 취향이 아니더라도요. 그러다 보면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도 알게 돼요."
누군가 방송에 나오는 박상영을 보고 소설가가 맞냐고 물은 적이 있다. 빼어난 유머와 애드리브, 달변에 대한 칭찬이었다. 2020년대 독자들은 책 밖으로도 성큼, 자유롭게 외출하는 박상영 스타일을 환대한다. @novelistpark의 중심은 언제나 '소설'이니까.
*박상영 198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에서 프랑스어문학과 신문방송학을, 동국대 대학원에서 문예창작학을 공부했다. 스물여섯 살 때 첫 직장에 들어간 이후 잡지사, 광고 대행사, 컨설팅 펌 등 다양한 업계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넘나들며 7년 동안 일했으나, 단 한 순간도 이곳이 내가 있을 곳이라는 확신을 가진 적은 없다. 노동은 숭고하며 직업은 생계유지 수단이자 자아실현의 장이라고 학습받고 자랐지만, 자아실현은커녕 회사살이가 개집살이라는 깨달음만을 얻은 후 퇴사를 꿈꿨다. |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