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여름의 SF 소설은 변두리에 서 있는 다양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영화를 공부했던 그는 소설을 통해 기억과 변화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리시안셔스」로 2021 SF어워드 중단편 우수상, 「복도에서 기다릴 테니까」로 제8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수상했다.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몇 분, 출근 준비를 하기 전 한 시간, 주말 도서관에서 보내는 한나절. 연여름의 SF는 일상의 틈에서 탄생한다. 평소 그가 장 보러 오가는 길을 함께 걸으며, 일상 속의 그를 사진에 담았다.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동네 도서관. 평일에는 집과 회사를 오가는 루틴한 삶. 가장 좋아하는 일이 글쓰기다 보니 다른 것은 저절로 단순해진다는 그의 하루를 가만히 따라갔다.
"글쓰기를 위한 에너지를 비축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과 회사 외에는 돌아다니지 않게 됐어요. 글은 주로 출근 전에 써요. 퇴근하고 나면 아무래도 집중력이 떨어지더라고요. 그렇다고 무언가를 애써 참을 만큼 좋아하는 것이 따로 있는 건 아니에요. 언제나 글쓰기가 가장 큰 취미이자 즐거움이죠."
SF 소설을 쓰는 그가 처음부터 소설가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이십 대 내내 열렬히 사랑했던 건 영화였다. 주성치 영화부터 벨라 타르 영화까지 스타일을 가리지 않고 폭넓게 영화를 좋아했고, 시나리오를 썼다. 그러나 시나리오는 한 편의 영화가 되어야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글이다. 늘 독자에 목마를 수밖에 없었고, 마음껏 썼을 때 읽어줄 누군가를 꿈꿨다.
"시나리오는 투자자를 만나고 영화로 제작되어야 그 글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잖아요. 그렇다 보니 제 글을 일반 독자분들에게 보여준 경험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소설은 쓰면 독자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혼자 소설을 쓰다가 텀블벅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장르 소설 공모전에 소설을 내보기도 했죠. 그렇게 한 편씩 쓰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연여름의 SF 소설은 먼 미래의 세상에서 인물들이 만드는 섬세한 관계를 포착한다. 미래 사회에서 특권을 지닌 '인간'은 배제된 존재를 '반려인'으로 기르기도 하고, 성간 여행 중인 비행선에서 만난 안드로이드 승무원과 인간은 서로를 기억하게 된다. 인간과 비인간을 오가며 기억과 변화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은 어떻게 탄생하는지 물었다.
"배운 것이 시나리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이끄는 건 인물과 대사잖아요. 그렇다 보니 저도 소설을 쓸 때 늘 인물에서 출발해요. 한 인물이 처한 상황을 먼저 떠올리고 하나씩 뻗어 나가죠. 인물을 이렇게 저렇게 돌려보면서 헤매다가 거기에 맞는 세계관을 중간중간 쌓아가요. 그래서 고치는 데 시간을 많이 들이는 편이에요."
이십 대가 영화로 채워졌다면, 삼십 대는 소설을 마음껏 좋아하며 보냈다. 도서관은 그가 소설을 읽으며 영감을 충전하는 장소다. 영화만큼이나 그의 독서 목록은 다채롭다. 시나리오를 배울 때부터 여러 번 읽었던 안톤 체호프의 소설부터 미야베 미유키의 미스터리 소설, 동시대 한국 소설까지, "정말 취향이 없어요"라고 고백할 정도로 많은 책을 읽고 사랑한다. 글이 막혀 풀리지 않을 때 안식처처럼 향하는 장소도 도서관이다.
"글이 막히면 도서관에 가요. 대신 분류 번호 800번대 소설 코너를 피해서, 사회 과학 책이나 에세이를 읽죠. 플롯이 있는 작품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으니까 거리를 좀 두어야 하더라고요. 생각을 떨어뜨려 놓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들여다보고 있으면,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있어요. 그렇게도 안 나오면 단순 노동을 하죠. 집에서 마늘을 까거나 밤을 다듬는 등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는 반복적인 일을 해요."
소설에 푹 빠져 읽을 때만 해도 자신이 소설가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는 작가. 소설 쓰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자신이 SF로 분류되는 이야기를 쓸 줄은 몰랐다. 처음으로 완성한 단편 소설 「시금치 소테」는 드라마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SF적 설정을 추가한 작품이다. 장르 소설 플랫폼에 게재할 때만 해도 '이걸 여기에 올려도 되나?' 주저했지만 독자들이 작품을 좋아해 주었다. 지금은 영화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어딘지 애매한 경계에 놓인 소설을 쓰는 것을 정체성으로 받아들였다. 떨리는 첫 소설의 순간, 무엇이 동력이 되었는지 물었다.
"무엇보다 끝까지 쓰는 거예요. 영화 학교를 다닐 때, 선생님이 가장 많이 한 말씀이 '잘 쓰든 못 쓰든 끝까지 완성을 하라'는 것이었거든요. 또, '쓰는 것보다 두 배로 읽고 많이 써라'라는 조언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몸의 습관으로 체득된 것 같아요. 길든 짧든 써놓은 작품이 많아지면 결국 그게 제 총알이 되어주더라고요. 영화인이 되진 못했지만, 학창 시절에 얻은 가장 좋은 자산 같아요."
브릿G에 올라온 연여름의 작품에는 항상 독자의 댓글이 달린다. 그리고 댓글 아래에는 끝까지 읽어준 마음에 고마움을 전하는 작가의 답글이 빠짐없이 달려 있다. 독자가 다음이 궁금해서 얼른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작가. 다행히 첫 단편집 『리시안셔스』의 여운을 잊지 못하는 독자들을 만족 시킬 이야기들이 대기하고 있다. 과학소설작가연대 작가들과 쓴 초단편 앤솔러지, 이삼십 대 청춘의 이야기를 다룬 경장편 소설. 회사, 집 그리고 도서관을 오가며, 조용하지만 꾸준히 연여름의 세계는 아름답게 확장되고 있다.
*연여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에서 연출과 시나리오를 공부했다. 자신과 세상을 향한 의심이 많으며 겁도 많아서 소설을 통해 질문 또 질문하는 습관이 있다. 기억과 변화, 떠남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SF 앤솔러지 『나와 밍들의 세계』에 단편「시금치 소테」로 참여했으며 『리시안셔스』로 2021 SF어워드 중단편 우수상, 『복도에서 기다릴 테니까』로 제8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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