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에 미국으로 이주해 성장한 김주혜 작가는 그러나 자신의 한국인 정체성과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들려준 독립운동가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내내 간직하고 있었다. 심한 인종 차별을 경험하고 회사를 그만둔 뒤 고독하게 소설을 쓰던 시절, 여러 편의 단편을 에이전트에게 보냈지만 원하는 답을 받지 못했다. 결국, 에이전트로부터 "장편을 써보라"는 말에 낙심한 김주혜 작가는 마음을 가다듬으려 함박눈이 내리는 공원에 갔고, 그곳에서 호랑이와 마주친 사냥꾼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수십 년의 세월과 여러 등장인물이 마음속에서 별자리처럼 그려지는 듯했다."
600쪽 분량의 장편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은 191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한 '각자의 방식으로 용감'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미국에서 출간된 이후 수많은 언론의 찬사를 받았고, 10여 곳이 넘는 나라에 판권이 팔렸다. 2022년 9월에는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문학 작품에 수여하는 '데이턴문학평화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미국에서 영어로 쓴 작품이지만 무엇보다 가장 많이 의식한 독자는 한국의 독자였다는 김주혜 작가. 그는 소설의 의미를 정확히 읽어주는 한국 독자들에게서 커다란 위로와 사랑을 느꼈다고 말했다.
"저는 배고픔을 너무 많이 겪은 사람입니다. 소설 속에 정호가 너무 배가 고파서 등에 식은 땀이 쫙 내려간다고 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제가 다 경험했던 거예요. 상처가 많이 있는 사람인데요. 한국 독자 분들이 보여주신 엄청난 사랑 덕분에 제가 많이 치유가 됐습니다. 받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사랑을 한국 독자 분들이 채워주셨습니다.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러요. 감사합니다."
흥분과 두려움
한국어판 출간에 대한 소감이 남다르실 것 같아요. 책이 한국에 출간되면 좋겠다는 기대도 하셨을 것 같은데요. 어땠나요?
일단, 그런 기대 같은 건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각박한 환경에서 책을 썼습니다. 너무나도 고독하게, 저 혼자서 에이전트 한 사람만 만족시키기 위해 읽고 쓰고 또 쓰는 과정을 반복했어요. 그러다 미국 출판사에 이 소설을 팔았을 때만 해도 판권이 이렇게 많은 나라에 팔릴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또 판권이 팔리기 시작했을 때도, 물론 간절히 한국에 팔리기를 원하지만,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기대도 하지 않았어요. 바람만, 소망만 있었죠.
놀랍게도 한국에도 판권이 금방 팔렸는데요. 그런 다음에는 우려가 됐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쓰면서 가장 인정받고 싶었던 분들이 재미 교포 분들, 그리고 한국의 독자 분들이었거든요. 그분들의 시각을 굉장히 의식하고 썼습니다. 미국 시장의 구미에 맞게 단순화하고, 소설화한 게 있지만요. 제가 정말로 인정받고 싶었던 분들은 한국의 독자 분들입니다. 다행히 걱정에 비해 너무나도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셨어요. 덕분에 정말 여러 번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의 인터뷰를 읽거나 행사에 오신 한국 독자 분들께 하고 또 하는 말인데요. 정말로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를 드립니다.
작가님의 깊은 진심이 느껴져요. 그 중,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얘기는 무엇이었나요?
일일이 다 말할 수 없는데요. 특히, 기억나는 것 하나는 "이 책은 정말로 한국 사람이 쓴 것 같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의 정체성과 진심을 알아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또 하나는 "이 책의 작가는 정말 애국자다, 애국심이 나타난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이건 정말로 과분한 칭찬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 말에 정말 감사했어요. 너무 흥분되었고요. 사실은 엄청난 무서움입니다. 앞으로도 더 잘해야 하니까요. 이 두려움을 무릅쓰고 계속 해야겠죠.
이 이야기를 시작하실 때 600쪽에 달하는 소설이 될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처음에 어떤 이야기를 상상하셨는지 궁금해요.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장편 소설을 집필할 때 저는 시작점이 다른 예술 작품이에요. 음악이나 발레처럼 다른 장르의 예술 작품에 감동을 받고, 저런 감동을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되거든요. 그럼 제가 이걸 하는 거예요. 소설의 배경에는 저의 외할아버지 이야기도 있었고, 한국인이라는 저의 뿌리도 있었지만요. 이 이야기로 이러한 감정을 안겨야겠다, 생각하게 된 것은 안톤 브루크너의 제8교향곡입니다. 이 곡을 만 14살 때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처음 연주했었는데요. 20년이 넘은 지금도 저한테는 가장 중요한 예술적 경험 중 하나입니다. 그때 이 곡이 온몸을 관통한 거죠.
이 곡은 부르크너가 인생의 거의 마지막에 쓴 교향곡이에요. 부르크너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는데요. 그러니까 이 사람의 삶의 깊이와 깊은 신앙, 그에 따르는 인간으로서의 절망 등이 다 녹아 있는 곡이고요. 이 곡의 결말 부분에서는 모든 시련과 고통, 좌절을 겪은 후 결국 신에게로 향하는 그런 감동을 줍니다. 이 세계와 우주, 신, 신앙이 모두 하나가 되는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이런 감동을 책으로 써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긴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었겠네요.
그렇죠. 조금 더 설명하자면 대성당에 비교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특히 그 곡의 4악장이 마치 대성당의 벽처럼 느껴져요. 대성당을 지을 때 한쪽 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쌓은 다음 다른 쪽 벽을 쌓는 게 아닙니다. 기초, 둘레를 점점 쌓아 올리는 거죠. 그러면서 벽이 어디에서 멈춰 천장과 만나느냐를 다 생각하고 있어야 해요. 하나씩 쌓아가면서 그곳에 도달하는 거죠.
마찬가지로 여기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과 세월은 시작부터 알고 한 겁니다. 정확하게 어디에 창문이 들어가고, 스테인드글라스에 어떤 색이 들어갈 거라는 걸 다 자세하게 알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건 하면서 알아내고요. 그렇지만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에 도달하느냐, 그리고 그 도달점의 감동이 어떤 것이냐는 첫날부터 알고 시작했습니다.
이게 문화적 시각이구나
『작은 땅의 야수들』이라는 제목이 정말 좋거든요. 제목도 처음부터 생각하신 건가요?
제목은 저의 에이전트 '조디 칸' 씨가 지은 것입니다. 저는 원래 '사랑과 시간'이라는 제목을 생각했어요. 사실 이 책의 주제가 시간과 사랑입니다. 시간이 변질하는 것, 그리고 시간도 변질 못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거든요. 그런데 에이전트께서 그 제목은 안 된다고 했어요.(웃음)
지금의 제목은 소설 속에서 일본인 '이토'가 한 말에서 따왔어요. "어떻게 이 작은 땅에서 이런 어마어마한 용맹한 맹수들이 번성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이나 서양 독자들은 '야수들'을 어려운 시절에 처해 점점 야만적으로 변해가는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이 작고 척박한 땅에서도 너무나 기개있고, 용맹하게 꿋꿋이 살아오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을 야수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국 독자 분들은 다 저와 같이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자랑스럽다, 우리 선조들은 작은 땅의 야수들이다'라는 댓글을 보면서 이게 바로 문화적 시각이구나, 참 놀랍다, 생각했어요.
한국의 문화 안에 깃든 호랑이에 대한 내용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호랑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 맞다, 그런 게 있었지, 떠올릴 수 있었거든요.
번역가 님도 번역을 하는 내내 호랑이 사진을 곁에 두셨다고 해요. 제가 작품에서 억지로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호랑이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호랑이 이야기가 정말로 한국의 정서, 우리 선조들의 정서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우리에게 호랑이는 야만적인 존재가 아니잖아요. 한국에서 호랑이는 용맹하고, 은혜를 갚고, 필요하면 싸우기도 해요. 우리도 투쟁하지 않습니까. 그게 우리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 호랑이 이야기를 무척 많이 읽고 자랐습니다. 서점에 가면 세상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책을 읽었는데요. 호랑이 나오는 전래 동화가 정말 많았어요. 그 덕분에 제가 자연을 사랑하고, 작가가 된 겁니다. 그 이야기들에 푹 빠졌으니까요. 사실, 한국 역사에서 호랑이는 사람을 해치는 맹수였습니다. 그런 일이 안 일어날 수는 없죠. 비좁은 땅에서 거대한 포유류와 인간이 공존하는데 마찰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국가 차원에서 호랑이 소탕을 하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화에 전해 내려오는 호랑이는 굉장히 긍정적인 존재입니다. 익살스럽고, 어느 면에서는 귀엽기도 하고요. 따뜻하고 인정이 있으면서 절대로 비겁하지 않습니다. 한국적인 정서가 넘치는 영물이 호랑이입니다.
번역 이야기를 꼭 해야 하는데요. 문장만 보아도 엄청나게 정성을 들여 번역하셨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책에 수록된 「옮긴이의 말」을 보니 '은실', '월향', '옥희' 등 등장인물의 한국 이름도 번역가 님이 만드신 거라고 하더라고요. 감탄했어요.
그냥 직역으로, 무미건조하게 외교나 경제적인 내용을 번역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건 번역가 님과의 합작입니다. 박소현 선생님께서 너무나도 훌륭히 이 작업을 해주셨어요. 박소현 번역가 님은 예술가이십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영어로는, 예를 들어 '옥희'는 'Jade(제이드)', '월향'은 'Luna(루나)', '돌쇠'는 'Stony(스토니)'로 썼어요. 순우리말 이름을 상상하면서 지은 것이죠. 조정래 선생님의 『아리랑』을 보면 등장인물 중 하나가 '보름이'입니다. 저는 사실 루나를 보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랬는데 번역가 선생님이 제안을 해주셨어요. 제이드를 '옥이'로 번역하기보다 '옥희'로 해보자고요. '월향' 역시 저는 보름이라는 이름을 생각했지만 평양 기생의 첫째 딸인,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딸이었다면 이 정도 화려한 이름은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동의했습니다.
작가님 역시 한국어를 잘하시잖아요. 번역된 한국어판을 읽으면서도 새로운 즐거움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영어 문장 가운데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척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재미가 있어야 쓸 기운이 나고요. 그런데요. 한국어판에서는 좋아하는 문장이 다릅니다. 어감이 다르고, 강조할 수 있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그럴 거예요. 한국어판에서 제가 사랑스럽게 여기는 문장들이 바뀌었어요. 그 맛을 음미할 수 있어서 저로서는 너무나도 기뻤죠.
특별히 떠오르는 문장이 있으세요?
21쪽의 문장인데요. '그 작고 얌전한 불빛은 마치 두꺼운 겨울 솜이불같이 그들 모두를 뒤덮어 보호해 주고 있는 이 깜깜한 어둠에 맞설 뜻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문장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보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아요. 기다려봐요, 문장의 핵심이 나올 테니까, 하고요. 또 '작고 얌전한 불빛'이라는 말, 얼마나 귀엽습니까. 이렇게 의인화가 가능한 게 한국어입니다. 우리나라 사상이 그렇습니다. 한국 정서가 불빛도 얌전할 수 있고, 호랑이도 인간화 되고 그렇잖아요. 사물이나 자연도 더불어 사는 겁니다. 그걸 존중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거죠. '두꺼운 겨울 솜이불 같이'도 그래요. 제가 영어로는 '퀼트'라고 했는데요. 그것을 두꺼운 솜이불이라고 번역하니까 더 잘 알 것 같아요. 영어보다 더 감칠맛이 나고요. 그래서 이런 하나 하나를 너무나도 좋아하면서 읽었습니다.
역사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
작가님께서 모든 인물에게 깊이 애정을 갖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어떤 인물도 그냥 도구가 되게 하거나 소홀하게 대하지 않으시더라고요. 심지어 '정호'의 아버지가 아내 '순영'을 생각할 때마저도 애정 어린 시선이 담겨 있죠.
모든 등장인물, 악당까지 포함한 모두에게 제 영혼의 한 부분을 찢어서 주지 않은 인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인물이 안 나오니까요. 어떻게 입체적인 인물이 나오겠어요. '성수'나 '이토'까지도 전부 김주혜 영혼의 한 조각을 갖고 있는 부분이 있고요. 그래서 어떤 인물도 미워하지 못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등장인물 중에 저와 가장 비슷한 인물은 '명보'입니다. 명보는 이상주의자입니다. 제가 이상주의자예요.(웃음) 약간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어서요. 순진하게 타인을 도와야 한다고 믿고요. 어린 시절에는 길거리의 쓰레기를 줍고 다니고, 뭐 하나라도 있으면 주변에 나눠주고 그랬어요. 그런 면에서는 명보가 저랑 가장 닮은 인물입니다.
작품에는 실제 존재했던 역사 속 인물로 연상되는 사람들이 곳곳에 등장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는데요. 한편으로는 왜 실명으로 등장시키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어요. 이유가 있었겠죠?
제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건 역사가 아니라 스토리니까요. 실제 존재하는 역사적 인물들을 등장시키면 제 의도대로 인물들을 움직일 수 없었겠죠. 그 사람들이 실제 갖고 있던 특징들을 그대로 갖고 와야 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나혜석, 이 사람은 안중근, 이렇게 하지 않았어요. 또 하나의 이유는, 여러 인물들을 복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명보 같은 경우도 사실 여러 인물을 합친 사람이거든요. 그렇게나 헌신적으로 전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에 기여하던 사람이 한 명만 있었던 것이 아니잖아요. 진정한 사대부 의식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 그 당시에 굉장히 많았어요. 따라서 이 사람은 이런 역사적 요소를 따오고, 저 사람은 이런 성격을 따오고, 생김새는 내가 상상하기도 하면서 썼던 거예요.
그런 역사의 인물들이 여러 곳에 다양하게 섞여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작가님의 취재와 조사가 방대하고 깊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원래 역사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어렸을 때도 역사책을 즐겨 읽었죠.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게 '역사는 흐른다'로 계속되는 동요가 있는데요. 그걸 계속 부르면서 돌아다니기도 했어요. 한국의 역사는 아주 흥미진진한 전개의 연속이었습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말이에요. 그만큼 역사 속 인물들, 사건들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이 소설을 쓰면서 그런 것들을 즐겁게 담을 수 있었어요.
한 가지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는 것은, 한국어로 직접 연구를 했다는 부분이에요. 번역된 자료나 미국 사람이 한국에 대해 쓴 자료 등도 참조를 했지만 제가 가장 많이 본 것은 한국 사람이 그 당시 직접 쓴 것 자료였어요. 그것이 도움이 굉장히 많이 됐습니다.
'종말이 눈앞에 닥쳐온 듯한 지금 같은 시대'(185쪽)라는 문장이 나오죠. 묘하게도 그 문장에서 지금을 생각하게 돼요. 물질적인 풍요나 자유에 대한 감각 등 이전 시대보다 진보했다고 할 만한 부분이 있지만요. 지금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심지어 기후위기 등으로 자연과 많은 동물들이 고통받고 있잖아요. 결국, 지금 같은 시대에 약 100년 전 시대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새로운 의미를 가져온 것 같아요.
제가 의도한 바를 너무나도 그대로 느끼셨습니다. 저는 그저 한반도에서 100년 전에 일어난 일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나간 게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소재로 써먹은 게 아니고요. 한국 역사를 알리는 동시에 세계적인 이야기를 써서 지금의 물적, 영적 환멸의 세상을 맞이한 세계인들에게 제발 꿋꿋이, 양심 있게 살아달라고 간청한 겁니다. 명보가 그러는 것처럼 말이죠.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듯이 이러한 멸망의 세계, 종말을 앞둔 시기에도 우리는 신의를 버리지 않아야 해요. 사랑과 우정, 충심, 용기를 잃으면 안 됩니다. 한국이 나라를 되찾은 건 그걸 믿고 행동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죠. 나라를 되찾아야 하는 상황은 더 이상 아니지만 지구인으로서 행동해야 해요. 우리가 잘 살아야 합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방법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인생의 모든 아름다움과 사랑
이 작품을 하나로 보듬어주는 문장이라고 느낀 문장이 있어요.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용감한 거지'(429쪽)라는 문장이었는데요.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하는 작품 속 인물들의 편을 들어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했어요.
맞습니다. 그 시대에는 엄청난 용기를 가지고 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게 세상 이치 같아요. 한편으로 그 시대에 대해 얘기를 하자면요. 연구를 하는 동안 가장 저의 심금을 울린 것은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녀노소, 이데올로기, 정파, 계층 등에 상관없이 모두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라를 찾은 겁니다. 그것을 우리가 기려야 합니다. 또한 그 정신을 지금 현실에서 다시 되새겨야 해요.
소설 전반에서 3인칭으로 서술하다가 딱 두 챕터에서 '나'로 화자가 설정이 되어 있어요. 한 명은 '정호' 한 명은 '옥희'였는데요. 두 챕터만 화자를 다르게 두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네, 이 이야기가 두 세대, 반세기를 거쳐 많은 등장인물이 수를 놓잖아요.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두 주인공이 정호와 옥희라는 의미입니다. 소설의 중간에서 정호가 떡 하니 '나'로 나타났을 때 왜 정호 혼자만 그렇게 등장할까,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다 가장 마지막에 옥희도 '나'가 됩니다. 결국 정호에게 화답하는 게 옥희였다는 뜻입니다.
각 인물들에게 어떤 결말을 줄 것인가를 고민하지는 않으셨어요? 나쁜 사람이 항상 처벌받는 것도 아니고 선한 사람이 항상 좋은 결말을 맞지도 않거든요. 그게 삶이기도, 삶의 이해할 수 없는 면이기도 하지만 말이에요.
각 인물의 결말에 대해서 고민한 적이 조금도 없습니다. 처음부터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지를 알고 있었거든요. 중간 부분에서는 바뀌기도 했지만 결말들은 거의 바뀌지 않고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썼어요. 예를 들어 약 20쪽 분량의 '프롤로그'를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첫날 단숨에 썼어요. 근데 보시면요. '그건 야마다 소위의 삶이 끝나기 직전 그의 눈앞을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잊지 못할 형상들 중 하나가 될 것이었다'(32쪽)라는 문장이 있죠. 저는 야마다가 어떻게 죽을지 알고서 그 첫날에 이 문장을 쓴 겁니다. 나중에 집어넣은 게 아니고요.
말씀처럼 현실은 우리가 바라는 것과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할 때,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끝까지 최선을 다했어요. 때문에 결말이 좋든 나쁘든 그것을 다 수용하는 것 같습니다. 또, 저는 인생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그 부분에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바라는 인생과 현실로 이루어지는 인생 사이에는 격차가 심합니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아름다움과 사랑이 그 사이에 있습니다. 그 안에서 고통과 함께 사랑과 아름다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주혜 세계가 열광하는 한국적 서사를 다룬 데뷔 소설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1987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아홉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로 이주해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했다. 친환경 생활과 생태문학을 다루는 온라인 잡지 <피스풀 덤플링>의 설립자이자 편집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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