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천지혜는 매일 카페에 앉아 글을 쓰는 사람이다. 주로 웹소설이나 드라마 대본을 쓴다. 때로는 시와 에세에를 쓰는 날도 있다. 장르는 다르지만 그가 글을 쓰는 목적은 같다. 누군가 듣고 싶어하거나,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쓴다는 것. 천지혜 작가의 신작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는 사랑에 서툴었던 시절, 작가가 듣고 싶었던 위로를 담았다.
나를 위로하면서 쓴 글
웹소설, 드라마 대본, 시, 에세이까지 여러 분야의 글을 쓰셨죠.
글만 써서는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잖아요. 글밥 먹고 살려면 다양한 일을 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로맨스 소설, 웹소설 등이 밥을 지어먹기 위해 쓰는 글이라면, 시집이나 에세이는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서 쓰는 글이에요.
이번 책은 자아 실현의 영역이겠네요. 사랑에 관한 에세이입니다.
제가 겪은 연애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담았어요. 실연당하고, 소개팅이 망하는 등의 괴로운 순간부터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 느낀 설렘까지요. 책의 가제본이 나왔을 때 남편에게 보여줬더니 정말 좋아하더라고요.(웃음)
남녀 간의 사랑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도 많았어요.
결혼 전에는 마음이 늘 불안했어요. 수입도 들쑥날쑥했고, 번아웃으로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외부적인 요인으로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 힘쓰는 날이 많았죠. 제주도에 내려가서 살거나, 전혀 해보지 않았던 장르의 글을 써보는 것 처럼요. 그때의 마음이 글에 묻어난 것 같아요. 이 책에는 제가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어서 쓴 글이 많아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쓴 글이 독자에게도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제주도에 머물면서 웹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했다고요. '웹소설'이라는 장르에 도전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원래 홍보 기획 A.E, 마케터로 일했어요. 그러다 번아웃이 찾아왔고, 당분간은 일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퇴사하고 제주도에 휴식을 취하러 떠났죠. 제주에 있는 동안은 열심히 놀기만 했어요. 특히 책 읽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매일 책을 읽다 보니 어느 순간 글이 쓰고 싶어졌고, 덕분에 습작 소설 3편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그때가 2013년이었는데요. 웹소설이라는 개념이 막 생기던 시점이라 네이버에서 누구나 웹소설을 올릴 수 있는 '챌린지 리그'를 운영하고 있었거든요. 거기에 그동안 쓴 소설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3개월 뒤 네이버에서 연락이 왔어요. 정식 연재를 해보자고요. 그렇게 데뷔작 『블러셔와 컨실러』를 연재하면서 웹소설 작가가 되었죠.
삶의 어떤 경험이 웹소설 작가가 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세요?
수많은 연애를 하면서 겪은 시련과 괴로움?(웃음) 그 경험들이 데뷔작을 쓸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 같아요. 또, 저는 상업적인 기획에 굉장히 익숙한 사람이거든요. 대학생 때부터 홍보와 관련된 공모전을 섭렵한 공모전의 여왕이었고, 홍보 업무로 커리어를 시작했으니까요. 그래서 웹소설을 쓸 때도 마케터의 관점에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포인트를 잡으려고 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운이 좋았죠. 네이버에서 정식 연재의 기회를 주지 않았더라면 전업 작가로 살지 못했을 거예요.
웹소설 작가들의 인터뷰를 보니 웹소설을 잘 쓰는 비결로 "독자가 좋아하는 걸 써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요즘 독자들은 어떤 작품을 좋아하나요?
트렌드를 파악하는 방법은 간단해요. 웹소설 플랫폼의 랭킹을 보시면 됩니다.(웃음) 요즘은 제목에 '집착광공(상대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는 인물)' 같은 키워드를 노골적으로 넣어주거나, 제목만 보고도 내용을 유추할 수 있게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소설이 인기가 많더라고요.
웹소설 창작에 관한 강의도 하시죠. 수강생들에게 꼭 가르쳐주는 웹소설 쓰기의 팁이 있다면요?
저는 훅(Hook)을 강조해요. 피터팬의 후크 선장이 갈고리로 낚아채는 것처럼, 독자의 마음을 낚아서 끌고 올 수 있는 포인트를 꼭 넣어야 한다고 말하죠. 이 이야기의 다음 편이 소비될 수 있게 하는 훅을 엔딩마다 집어넣어야 독자가 계속 소설을 이어서 보거든요. 그게 강렬한 대사든, 장면이든요. 만약 웹소설을 열심히 써봤는데 이야기가 너무 재미없다고 느껴진다면 대중에게 인기가 높은 콘텐츠들의 훅이 무엇이고, 어떻게 쓰였는지 분석하면서 보는 연습을 해보세요.
내 글의 독자를 만날 때까지
2015년 연재한 웹소설 『금혼령, 조선혼인금지령』이 MBC 드라마로 제작돼 지난 1월에 막을 내렸어요. 작가님이 직접 대본을 쓰셨는데요. 드라마 집필은 어떻게 시작된 작업인가요?
처음 『금혼령, 조선혼인금지령』을 쓸 때부터 영상화를 목표로 하고 있었어요. 드라마를 쓰는 건 오랜 꿈이기도 했고요. 이 작품을 구상하고, 드라마로 만들기까지 총 9년이 걸렸는데요.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다면 드라마 대본에는 도전하지 않았을 거예요.(웃음) 수정을 너무 많이 해서 나중에는 정말 좋았던 버전이 무엇이었는지 찾을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과거 드라마 기획PD로도 일을 하셨죠. 기획PD라는 직업이 생소한데, 어떤 일을 하셨어요?
현장에서 드라마가 제작되는 전 과정을 지켜보면서 공부를 해야 좋은 대본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일을 시작했어요. 기획PD는 책의 편집자와 비슷한 역할이에요. 드라마가 될 수 있는 좋은 원작을 찾아서 구매하고, 가장 적합한 대본을 써 줄 드라마 작가를 섭외하고, 실제로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현실적인 문제들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죠. 예를 들어 대본에 "개울물에서 신발이 떠내려온다"라고 써있는데, 날이 추워서 개울이 다 얼었다면 작가에게 해당 장면을 수정해 달라고 요청하는 식이죠. 때로는 각 장면에 맞는 내레이션을 쓰기도 하고요. 드라마가 완성될 때 필요한 것들을 기획하고, 현장에서 조율하는 게 기획PD의 역할이에요.
웹소설과 드라마는 완전히 다른 장르인데요. 드라마 대본을 쓰면서 특히 신경 쓴 점이 무엇인가요?
웹소설 『금혼령, 조선혼인금지령』은 섹시 코미디 장르라고 생각해서 야한 애드립이 많았어요.(웃음) 드라마에서는 전 연령층이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내용을 순화하려고 노력했죠. 또, 드라마가 12부작으로 결정되면서 원작의 방대한 서사를 압축하는 데 시간을 많이 쏟았어요. 원작자의 입장에서 '스토리 전개가 너무 빠른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다행히 웹소설을 모른 채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 분들께 재미있다는 평을 많이 들어서 다행이었죠.
관심있는 분야가 생기면 서슴없이 도전하는 편이시죠?
안 될 거라는 생각을 별로 안 해요. 제가 한참 마음이 힘들 때 시 창작 클래스를 다녔어요. 거기서 선생님이 인정하지 않는 시들을 계속 썼죠.(웃음) 수업에서는 "쓰레기통에 버리세요"라는 평을 받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너무 재밌어서 편집자에게 시를 보여줬어요. 그랬더니 시집을 내보자고 하더라고요. 덕분에 『이 詩국에 방구석 신혼여행』을 출간할 수 있었어요.
글은 취향을 타기 때문에 무조건 좋은 글이란 없어요. 악평을 들었다고 해서 낙담할 필요가 없는 이유죠. 저는 제 글을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찾아다니는 편이에요. 웹소설로 작가 생활을 시작한 것도 도전을 두렵지 않게 만든 요인 중 하나이고요.
웹소설 작가의 어떤 면이요?
저는 순수 문학 작가가 과로로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웹소설 작가들은 과로사 했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요. 업무량이 어마어마하거든요. 분량으로 따지면 1년에 책 3권 이상의 글을 쓰는 셈이니까요. 일을 미룰 수도 없죠. 꼼수로는 절대 버틸 수 없는 마감이 꼬박꼬박 찾아오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치열한 분야에서 실력을 쌓았기 때문에 다른 일에 도전할 때 머뭇거림이 적은 것 같아요. 웹소설도 썼는데, 다른 것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웃음)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의 '발걸음', '상상은 현실이 된다', '질문들'과 같은 글을 보면서 일에 대한 작가님의 고민과 불안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차기작은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까, 지금까지 써놓은 작품들 중 어떤 이야기가 제작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많이 해요. 좋게 말하면 기대감이고, 나쁘게 말하면 불안감인데요. 웹소설이든 드라마든 결국 성실해야 쓸 수 있기 때문에 늘 같은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영양제를 먹고, 운동을 하고, 매일 일정 분량의 글을 쓰면서요.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독자님들, 사랑하게 될 줄 알았습니다. 독자님들도 저를 사랑하게 되겠죠?(웃음)
*천지혜 서울에서 자라났고, 건국대 소비자 정보학과를 졸업했다. PR인이자 마케터, 웨딩 스타일리스트로 다양한 커리어를 쌓다가 모든 걸 다 때려치고 제주도로 내려가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쓴 첫 소설 『블러셔와 컨실러』로 네이버 웹소설에 데뷔했다. 프레인에서 홍보 기획 AE로, FNC 엔터테인먼트에서 드라마 기획 PD로, 키이스트에서 소속 작가로 일했고, 현재는 드라마 제작사 본팩토리에 소속되어 있다. 소설, 드라마를 넘나드는 전방위 크리에이터로 미디어, 장르 구분 없이 재미있는 글을 쓰는 것이 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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