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소설 『경우 없는 세계』를 쓰며, 백온유 작가는 도무지 사랑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떠올렸다. 전작 『유원』, 『페퍼민트』의 인물들은 금방이라도 안아주고 싶은 스스로 성장해가는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신작에서 그는 작가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집을 나가 거리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아이들을 그린다. '가출 청소년'이라는 낙인 아래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그는 인물들이 이해되지 않는 순간들이 많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끝까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하나다. 사랑스럽지 않아도 이들의 삶을 지켜봐 달라고.
끝내 이해할 수 없다는 감정
장편 소설을 마치셨어요. 그동안 유럽 여행을 다녀오셨다고요.
창비청소년문학상의 부상이 '볼로냐 국제어린이도서전'을 보내주는 것인데요. 코로나 상황으로 못 가다가 올해가 되어서야 이루어졌어요. 여행 도중, 『경우 없는 세계』의 마지막 교정을 보고 '작가의 말'을 썼죠. 한국에 있을 때는 여러 일에 치여 있었는데 현실에서 멀어지니 작품이 조금 더 잘 보이더라고요.
『경우 없는 세계』는 성인 문학으로 분류됐어요. 청소년 문학과 성인 문학의 구분이 흐려지고 있지만 어떤 점이 달랐나요?
청소년 문학이든 성인 문학이든 마음가짐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제게는 '어떤 문학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니까요. 물론 아동·청소년 문학을 쓸 때 유의할 점이 더 많아요. 폭력적이거나 적나라한 표현은 미성년자 독자분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거든요. 『경우 없는 세계』는 주인공 인수가 성인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성인 독자를 생각하며 작업했어요.
『유원』이 학교 안 청소년들의 이야기였다면, 『경우 없는 세계』는 집과 가족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유원』과 『페퍼민트』의 아이들은 내면에 큰 분노가 있긴 하지만, 격렬하게 표출하지는 않았잖아요. 그래서 소설 속 어른들이 그 분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아이들을 기특하게 여겨요. 그건 소설 밖 독자분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유원』과 『페퍼민트』를 출간하고 "아이들을 응원하고, 안아주고 싶었다"는 감상을 많이 받았어요. 인물들이 큰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이었기에,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어느 순간 작가인 제가 테두리 바깥의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경우 없는 세계』의 인물들은 분노를 드러내는 아이들이죠. 집을 나와 거리에서 생활하며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고요.
소설가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을 변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정작 저는 소설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고 있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지금껏 사랑할 수 없었던 사람들을 바라보고 싶어졌어요. 이번 소설을 쓰면서도 제가 쓰는 인물들이 도무지 예뻐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어요. '왜 이런 떳떳하지 않은 행동들을 할까, 뒤돌아서면 후회할 거면서. 이게 과연 최선일까?' 끊임없이 질문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독자분들이 엇나가는 행동을 하는 인수를 어떻게 느끼실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어요.
'가출 청소년'에 대한 미디어의 반응은 늘 극단적인 것 같아요. 개인의 일탈로 자극적으로 소비되거나, 막연한 피해자로만 그려질 때가 많은데요. 작가님은 직접 당사자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고요.
사실 청소년보다는, 10대 시절 가출을 했거나 소년원에 가본 경험이 있는 성인들을 주로 만났어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끝까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흔히 사람들은 "얼마든지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함께 일탈하는 주변 친구들부터 끊어라"라고 조언하잖아요. 그런데 가출 경험이 있는 분들은 인간관계를 쉽게 끊지 못한다고 말해요. 어려운 시기에 고독한 생활을 함께 한 사람이니 너무도 절실했다고요. 저 같으면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삶에 도움이 되나?' 생각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제 관점인 거죠. 이야기를 들을수록 '아, 나는 이 사람들을 끝내 이해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찾아왔죠.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었나요?
인터뷰이 중 한 분이 소년원에 6개월 계셨는데 단 한번도 가족이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대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하지 고민하고 있는데 "뭐 이해는 하죠"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순간이 굉장히 마음에 남았어요. 한번도 찾아오지 않는 가족이 있는 공간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심정은 어떤 것일까, 작은 지지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앞으로의 삶에서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을 하게 됐어요.
누구의 죄를 물어야 할까
등장인물을 떠올릴 때 이름을 공들여 짓는다고 하셨어요. 이번 소설에서도 인물들의 이름이 중요하게 다가오는데요.
소설에서 '인수'가 자신의 이름을 오해한 대목이 나오잖아요. 실제로 초등학교 때 한 오빠가 들려준 이야기예요. 한자로 '어질 인', '목숨 수'인데, 어지러운 목숨인 줄 알고 살다가, 나중에야 교회 목사님이 '마음이 너그럽고 덕이 높다'는 본래 뜻을 알려줬다고요. 당시에는 다들 웃었는데, 나중에 떠올려보니 슬픈 이야기더라고요. 처음부터 부모님이 '네 이름은 이런 뜻이 있어'라고 알려줬으면 그런 오해를 품고 살지 않았을 테니까요. 아이에게 작은 배려조차 하지 않는 어른들이 많고 인수의 아버지도 그랬을 것 같아서, 인물의 이름을 '인수'라고 지었어요.
『경우 없는 세계』라는 제목은 말그대로 질서가 무너진 사회를 뜻하기도 하고, 등장인물 '경우'를 말하기도 합니다. 아무도 거리의 아이들을 보살피지 않는 세계에서, 주변을 돌보는 '경우'는 예외적으로 보여요.
'경우'는 유일하게 다른 아이들을 돌보며 은신처인 '행복한 우리집'을 지탱하는 아이죠. 경우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때, 모든 것이 폐허가 되잖아요. 이렇게 경우 없는 세계가 얼마나 슬프고 아픈지를 말하고 싶어서 인물의 이름도, 제목도 경우라고 지었어요. 경우를 일반 학교로 옮겨놓으면 그렇게 특이한 인물이 아닐 거예요. 규칙을 잘 지키고 친구들에게 잘하는 아이는 반에 한 명쯤은 있으니까요. 그런데 가출한 아이들의 무리에 넣으니 예외적으로 보이는 거고요. 소설을 쓸 때, 인수와 성연, 경우는 사실 하나의 인물이라고 상상했어요. 어떤 순간에는 우리가 성연이처럼 비열한 행동을 할 수 있고, 마음을 다잡고 노력하면 경우처럼 행동할 수도 있겠죠. 누구나 지닌 세 가지 얼굴을 세 인물을 통해 비춰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가의 말'에서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다는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쓰셨죠. 사랑을 받지 않아도 사랑을 줄 수 있는 '경우' 같은 아이가 있으니까요.
맞아요.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속으로는 깊은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좋은 어른을 경험하지 못해도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 '경우'라는 인물이 불가능하지 많은 않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특별한 사례가 아니고, 알고 보면 굉장히 많고 우리 삶을 지탱하는 존재들이라고요.
인물들이 나누는 감정은 복잡하고 입체적입니다. 특히 '인수'는 '경우'에게 '너무나 많은 불순물'이 섞여 있어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껴요. 경우의 보살핌을 누구보다 바라면서도 외면하려 하는데요.
소설을 쓰면서도 그 감정이 너무 어려웠어요. 인수는 학교와 가정에서 무시 받으며 살았는데, 경우만은 사람다운 대접을 해주니까 '나를 왜 이렇게 좋아하지?' 의심했을 거예요. 그래서 일부러 상처주는 말을 하면서 경우의 사랑을 시험하죠. 사실 경우도 아이일 뿐인데 아이들은 큰 기대를 하다가, 그게 조금이라도 무너지자 경우를 고립시키죠. 애증을 오가다가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내가 심했구나 깨닫는 것이 인수의 감정이 아닐까 싶었어요. 인수에게 경우는 너무나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에.
세간의 잣대로는 다 같아 보이지만, 아이들의 입장은 달라요. 아버지의 돈으로 무죄 선고를 받기도 하고, 여성 청소년이 겪는 폭력은 남성 청소년들과 다릅니다. 어떤 고민이 있었나요?
뉴스를 볼 때 흔히 말하는 '가출 청소년'은 한 일당으로 묶어버리잖아요.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사람마다 처한 입장이 다 달라요. 어떤 순간에는 피해자였던 인물이 가해자의 위치에 놓이기도 하고요.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세세하게 알리고 싶었어요.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의 죄를 다 합쳐도, 어른 한 사람의 죄보다는 작아 보인다는 거예요. 소설 속에서 어른들은 가정폭력을 저지르기도 하고, 어린 여자아이를 죄책감 없이 성폭행하려고도 하죠. 그러나 정작 재판에 서는 것은 아이들이잖아요. 그게 굉장히 모순적으로 보였어요.
어른이 된 인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요?
제 소설의 공통점이 늘 해피 엔딩인지 새드 엔딩인지 애매하다는 것인데요.(웃음) 저는 항상 결말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경우 없는 세계』에서도 인수가 이제야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정도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물론, 인수가 30대가 되었는데도 왜 이렇게 미성숙하냐, 도무지 정이 안 간다고 보실 수도 있어요. 너무도 당연한 반응이죠. 그렇지만 정이 안 가는 인물이 한 사람을 돌보고, 거기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과정을 지켜봐 주시면 좋겠어요.
*백온유 소설가. 장편 동화 『정교』로 2017년 제24회 MBC 창작동화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첫 장편 소설 『유원』으로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과 제44회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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