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세계 정상급 클래식 연주가들이 많다. 임효선 피아니스트도 그 중 한 명이다. 특히 2007년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퀸엘리자베스에 당당히 입상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미 그녀는 서울예고 재학 당시 최연소로 동아콩쿠르에 입상, 서울대 수시입학 후 세계최고의 명문인 커티스 음대에서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하는 등 명연주가로 입지를 탄탄히 다져나갔다. 지금은 경희대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외국에서 활동했던 임효선 피아니스트는 귀국 후 한국에서도 연주를 이어가고 있다. 오는 5월 29일에는 ‘루드비히 트리오’의 피아니스트로 무대에 선다. 그녀와 트리오를 이끄는 두 멤버의 이력도 화려하다. 아벨 토마스(Abel Tomas)와 아르나우 토마스(Arnau Tomas)는 저명한 현악 4중주단 ‘카잘스 콰르텟’의 멤버이면서 친형제다. 임효선 피아니스트와 토마스 형제로 이루어진 ‘루드비히 트리오’ 공연은 한국에서는 처음이다.
루드비히 트리오 내한 공연이 성사되기까지
5월 29일에 루드비히 트리오 내한 공연이 있는데요. 피아노 트리오에 관해 소개 부탁합니다.
다른 악기가 될 수도 있지만 보통은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이렇게 세 명이 함께 하는 삼중주를 말해요. 피아노 트리오는 챔버 뮤직(chamber music), 실내악인데요. 살롱 안에서 소규모로 하던 연주가 발전해 온 게 실내악입니다.
세 명 조합이 특이합니다. 임효선 피아니스트와 나머지 두 분은 스페인 뮤지션인데요. 아벨 토마스와 아르나우 토마스는 친형제이기도 하고요. 세 분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
두 형제가 카잘스 콰르텟으로 15년 이상 활동해 오고 있었어요. 이 그룹과 연주할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잘 맞아서 트리오로 한 번 해 보자고 해서 루드비히 트리오가 만들어졌어요. 음악적으로 서로 배울 점이 많아요. 제가 한국에 귀국한 지 2년 반 정도 됐고 이 그룹으로는 5년 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트리오 이름이 루드비히인데요. ‘루드비히’는 베토벤 이름입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베토벤 곡만 연주하나요?
베토벤 곡만 아니라 모차르트, 브람스 곡도 연주해요. 이름 짓는 게 중요한 일이잖아요. 세 명 모두 고민하다, 아마데우스 콰르텟도 있는데 루드비히라는 콰르텟이나 트리오는 없더라고요. 세 명 다 베토벤을 가장 좋아해서 ‘루드비히 트리오’라는 이름을 짓게 됐네요. 저희는 연주할 때 베토벤 곡은 하나씩은 했어요. 이번에는 베토벤 초기 곡을 연주합니다. 내년에는 베토벤 프로젝트라고 해서 베토벤 전곡을 시리즈로 연주할 계획을 갖고 있어요.
이번 공연에 연주할 곡을 정할 때 어떤 점을 고려했나요.
화려한 곡도 좋지만, 음악적으로 깊이 있는 곡을 좋아해요. 그러다 보니 고전 로맨틱 장르를 선호한답니다. 우선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곡을 고려했고요. 우리가 좋아하는 곡으로 연주할 때 관중도 제일 좋아하더라고요.
한국 관객은 열정적
한 달 전에 스페인에서도 연주를 했는데, 현지 반응은 어땠나요?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스페인에서도 다양한 공간에서 연주해요. 큰 홀에서도 하지만 작지만 의미있는 곳에서 연주하기도 하고요. 바르셀로나에 팔라우 데 라 뮤지카라는 곳이 있는데요. 홀을 보기 위해 관광객이 티켓을 끊어서 볼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에요. 2,000석 규모인데요. 이런 곳에서도 연주했어요. 이미 이 두 형제는 바르셀로나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인지도가 높기에 관객이 많이 찾아와요.
한국과 외국에서 클래식을 즐기는 관객 반응 사이에 다른 점이 있을까요?
기본적으로는 저희 연주에 관심 있어서 보러 왔기에 호응도는 비슷합니다. 잘하면 당연히 박수가 많이 나오고, 저희가 잘 안 되었다고 느낄 때 관객도 그렇게 느끼죠. 한국 관객은 환호성을 지른다든지 기립박수를 친다든지 하는 게 특별해요. 이렇게 호응을 보내면 외국 뮤지션들도 좋아해요. 아무래도 무대에서는 반응이 확 오면 힘이 나거든요. 이에 비해 독일 사람들은 얌전하고, 묵직하고요. 나라마다 다른 점이 있는 듯해요.
한국에서는 클래식 공연에 갈 때는 좋은 턱시도를 빼 입어야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클래식을 다소 부담스럽게 여깁니다. 외국은 어떤가요.
외국 생활을 많이 했고 특히 독일에서 오래 살았는데요. 독일이 패션 감각이 별로에요. 겉치장보다는 내실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이들이 클래식 공연 갈 때는 깔끔하게 정장 같은 걸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화려하다기보다는 격식을 차리면서도 즐기는 문화에요. 한국이라고 해서 특별하지는 않아요. 클래식이 18세기, 19세기부터 계속 되어 온 문화니까 이런 문화가 계속 이어지죠. 클래식 볼 때는 어느 정도 갖춰 입어야 한다는. 다만 한국은 클래식이 상류층에만 국한되었다는 이미지가 아직은 있는 듯해요. 한국 민요를 보통의 한국사람들이 불렀듯, 유럽에서는 클래식이 그렇거든요. 그 사람들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많이 접했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음악이에요. 클래식 음악이 발전된 게 한국은 50년 정도인데, 아직은 이미지가 상류층 음악이라는 게 있어요. 앞으로는 클래식이 많은 사람에게 조금씩 더 확산이 되면 좋겠어요.
세계 3대 콩쿠르,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입상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입상했는데요.
김연아가 올림픽을 위해 몇 년을 준비해왔듯, 저도 마찬가지에요. 제가 참가했을 때만 해도 4년에 한 번씩 열리던 콩쿠르이었어요. 역사와 전통이 있는 3대 콩쿠르 중 하나죠. 3대 콩쿠르가 쇼팽 콩쿠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그리고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인데요. 쇼팽은 폴란드에 있고,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에 있는데 퀸엘리자베스는 유럽 중앙에서 열려요. 그리고 앞의 두 콩쿠르는 한 작곡가 위주인데 퀸엘리자베스는 여러 곡을 두루 쳐야 하죠. 그런 면에서 중요성이 큰 콩쿠르이에요.
그때 이야기를 해주세요.
우선 DVD 심사로 서류로 뽑아요. 뽑힌 뒤에는 1차만 2주에 걸쳐 연주를 해요. 연주하기 한 시간 전에 프로그램 6개를 내면, 심사하는 분들이 그 중에 몇 개를 골라요. 사람을 극도로 몰아세우는 콩쿠르이죠. 본선 때는 12명이 경합하는데 2명씩 6일에 걸쳐 해요. 1주일 전에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곡을 줍니다. 어려운 곡이죠. 곡을 외워서 오케스트라랑 리허설하고 연주하죠. 이렇듯 콩쿠르가 1달에 걸쳐 열려요. 끝나면 쉬고 싶은 마음밖에 안 나는 콩쿠르이에요. 한국인으로서 입상해서 기뻤죠. 한국에서도 이 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뉴스에도 속보로 나왔대요. 그 전에도 제가 한국 음악계, 한국 학생들에게 조금은 인지도가 있었는데, 이 콩쿠르에서 입상함으로써 사람들이 더 인정해주고 인지도도 높아졌죠. 외국에서도 연주 잡을 때 훨씬 쉽게 잡히고요.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이 됐죠.
피아노를 하다 중간에 포기도 많이 하잖아요. 교수님은 중간에 고비가 없었나요?
계속 하기 위해서는 노력, 재능, 열정이 합쳐져야 하는데요. 그 세 가지를 갖추려고 노력했어요. 좋아하는 걸 하니까 그렇게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오히려 외국에서 약간의 인지도가 생기고 연주하면서부터 “한국에서 먼 곳에서 부모님과 떨어져서, 친구도 별로 없고, 연주를 계속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슬럼프라고도 할 수 있는데, 불안감이 계속 될 때 조금 힘들었어요. 지금은 만족하는 게 교수 생활을 하면서 학생에게 영향도 많이 받고 줄 수 있는 것도 있고, 연주 생활도 유지할 수 있어요. 평소에 티칭에도 관심이 많았거든요.
연주가로서의 삶, 교육자로서의 삶 사이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어렵지는 않나요.
연주가로서의 삶이 없다면 교육자로서의 삶이 존재할 수 없어요. 피아노를 잘 칠 수 있기 때문에 그걸 가르칠 수 있죠. 연주력이 먼저 오는 건 당연하고요. 두 가지는 뗄 수 없는 상호보완 관계에요. 티칭이 제 삶에 활력소를 줘요. 너무 많아지면 정신적으로 피곤해질 수도 있겠지만요. 연습할 때도 지금은 가르치기 위해 분석을 하다 보니, 시간도 줄어들고 좀 더 효과적으로 연습할 수 있어요. 제 연주를 객관적으로 불 수도 있어요. 이런 식으로 두 가지가 시너지 효과가 나죠.
학생을 가르치면서 교수님의 학생 시절을 떠올리기도 할 텐데요. 교수님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제 제자들은 정말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선생님 입장에서는 열심히 하는 애들이 예쁘죠. 저는 학창 시절에 친구와 많이 어울렸어요. 서울대 입학하고 반년 다니다 커티스 음악원이라는 소수 인원만 뽑고 전액 장학금을 주는 미국에서는 유일한 음악대학에 갔어요. 전교생이 100명 조금 넘는데요. 좋았던 점이 한국에서는 경쟁이 많았는데 그곳은 윈윈이었어요. 서로 정보 공유도 하고 서로 잘 되기를 원하는 분위기가 있었죠. 연습도 많이 하고 음악 이야기도 많이 했어요.
외국에서 했던 연주를 한국 관객에게도 보여주고파
스케쥴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방학에 외국 연주를 많이 잡아 놓고요. 이번 여름 방학에 스페인에서 마스터클래스를 하고 폴란드에서 챔버 패스티벌 하고 이런 식으로 캘린더 정리를 잘해야 하고요. 한국에서도 이제 연주를 많이 하고 있는데요. 한국에서는 최대한 학기 중에 연주를 하려고 해요.
외국 생활을 많이 하다 보면 외로울 것도 같은데요.
독주회가 제일 심할 수도 있지만 협연 끝나면 혼자 밥 먹기 싫어져요. 호텔에 들어오면 “관객들은 가족끼리 공연 보고 맛있게 밥 먹는데, 나는 머하는 거지?” 하는 기분이 살짝 들어요. 한국 들어오니, 좋은 사람이 많아서 외국 있을 때보다는 외로움을 덜 타는 듯해요. 하지만 사람이 원래 같이 있어도 외롭고, 혼자 있어도 외로워요. (웃음)
연주 없을 때는 어떻게 지내요?
여행 좋아하고요. 바쁠 때는 되게 바쁜데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있기도 해요. 그렇게 3일 정도 지나면 지루해져요. 그리고 많이 못 읽긴 하지만 시간 날 때 3~4권씩 책을 쭉 읽기도 하고요. 미국에서는 영어를 열심히 해서 영어책 읽을 수준이었는데 독어로는 그런 수준까지는 아니었어요. 독일에서 영어 책 구하기도 힘들고 해서 책 읽는 습관이 사라졌는데요. 한국 돌아온 뒤로, 내가 원하는 책을 집을 수 있다는 게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네요. 가벼운 책으로는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을 좋아하고요.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헤르만 헤세요.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읽으면 슈만이 떠올라요. 슈만이라는 작곡가에는 자아분열적인 면이 있었는데요. 헤르만 헤세도 그런 것과 싸우고, 부디즘을 다루기도 하고 했죠. 헤세 읽으면서 감동 많이 받았어요.
이번 공연에서 특별히 한국 관객과 소통하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끝으로 한 말씀 부탁합니다.
외국에서 오래 활동하다 보니, 제 활동을 국내 팬에게는 많이 알리지 않았어요. 외국 연주와 한국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활동을 하다 보니, 처음 2년간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죠. 이제는 외국에서 연주했던 모습을 한국 관객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요. 이번 공연이 좋은 계기가 되어서 제 활동을 한국에도 많이 알리고 공유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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