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 특집] 이미상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

이미상 소설가 (ⓒ 해란)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6인'에 든 소감 

요즘도 잠에서 깨어 '이게 다 무슨 일이지?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하며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주로 제가 작가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인데요. 데뷔한 지 5년가량 되었고, 첫 책도 출간하였지만 아직도 충분히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예스24 젊은 작가상 후보가 된 것도 비슷한 느낌이에요. 소식을 듣고 '이게 다 무슨 일이지?' 하며 아득해졌어요.

첫 책 『이중 작가 초롱』의 기억

첫 책에 수록된 몇몇 원고를 꽤 오래 고쳤습니다. 작년에는 새로운 소설을 거의 발표하지 않고 원고 수정에만 매달렸기 때문에 첫 책을 출간하고 우선은 '살았다!' 싶었습니다. 글을 고치는 일은 끝이 없기 때문에 마감이 없으면 시야가 좁아지면서 괴로운 구멍을 계속 파게 됩니다. 원고를 오래 붙들고 있다고 글이 더 좋아지는 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약간은 강박증이 생깁니다. 그래서 책임 편집자님이 적당한 시기에 끊어주시는 것이 중요하지요. 첫 책을 내고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후련함이 가장 컸고, 뒤이어 괴로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제 책 표지의 질감이 특수 용지를 써서 독특하거든요. 표지의 코트 부분이 오돌토돌해서 손으로 책을 감쌌을 때, 손끝에 가슬가슬한 감촉이 느껴져요. 그래서 출간 후 우울함이 밀려올 때면 표지를 쓰다듬으며 '촉각 테라피(therapy)'를 하곤 했답니다.

매일 실천하는 글쓰기 루틴

철저히 지키는 루틴은 없지만, 대체로 잠에서 깨고 난 직후가 그나마 집중력이 좋기 때문에, 그때는 다른 일을 하지 않고 글을 쓰려고 합니다. 그리고 글이 너무 쓰기 싫으면 억지로 앉아 있지는 않아요. 주로 쓰고 싶을 때 쓰는데, 아직까지는 쓰고 싶은 날이 훨씬 많습니다. 마감 때는 글에 깊이 접속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시간이 어떻게 가는 지 잘 몰라요. 그래서 오히려 중간중간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왼쪽 어깨에 담이 와서 한의원에서 침을 맞아야 하거든요.

글 쓰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세 가지

표현 욕구, (여러 표현 방식 중) 글쓰기를 선호, 충동적 표현에서 정교한 표현으로 가는 고생길을 감내하는 인내력.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우선은 어떤 자극이 나에게 왔을 때, 그것을 내 식으로 바꾸어 무언가로 표현하고픈 욕구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무엇이 글 쓰는 사람에게는 글입니다. 음악 하는 사람에게는 음악이고, 유튜버에게는 영상 콘텐츠인 것처럼요. 그런데 모든 표현이 처음에는 거칠고 상투적입니다. 그것을 시간을 들여 깎아나가는 지구력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세 가지가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

좋은 의자, 편안한 의상,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 나이가 들면서 점점 허리가 아파 의자가 중요해졌습니다. 요즘은 커피숍을 고르는 기준도 커피 맛과 인테리어가 아니라 의자 쿠션의 빵빵함입니다. 여하튼 집에서 익숙한 의자에 앉아, 목의 라벨을 뜯은 편한 티셔츠를 입고 글을 씁니다. 작업을 시작하며 맨 처음 어제 쓴 분량을 검토하는데, 대개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괴로워집니다. 그러면 "아침부터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지 말자!" 외친 후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

오에 겐자부로. 만약 무인도에 가게 되면 고려원에서 나온 오에 겐자부로 전집을 가져갈 겁니다. 좋은 점은 너무 많아서 오히려 말하기가 어려운 데요. 그냥 오에 겐자부로의 글은 읽고 또 읽어도 질리지 않고 매번 새로운 것 같아요. 글이 품고 있는 요소가 풍부하기 때문이겠지요. 한 권을 고른다면 『체인지링』입니다. 오에 겐자부로의 오랜 친구이자 처남인 영화감독 이타미 주조가 자살한 후 쓴 소설입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죽은 친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그것이 제가 이 소설을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말'

'결국 죽는다'가 그런 말인 것 같아요. 그것은 곧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시기가 온다는 뜻이겠죠. 그러니 나아갈 수 있을 때 나아가두자, 어차피 다 끝난다, 그렇게 생각하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글쓰기 작업에 영감, 도움을 줬던 책

조지 손더스의 『12월 10일』. 단편 소설을 쓰면서 많은 도움을 받은 책입니다. 조지 손더스는 단어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 작가로, 어떤 작품은 수년 간 단어를 넣었다 뺐다 하며, 모든 단어가 적어도 싫지는 않은 수준까지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의 소설 속 매 단어가 그렇게 거창하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원어로 읽지 못하는 한계 때문이겠지만) 얼핏 평범하고 심지어 속되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 간극 때문에 도전 의식이 생겨 더욱 파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오래, 그렇게 많은 시도 끝에 살아남은 단어가 얘들이라고? 하며 때로는 원어와 비교하며, 글에 드러나지 않는 작가의 선택을 상상했고, 그 과정에서 소설 쓰기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조지 손더스의 지독한 미니멀리즘에는 한계도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를 실험하는 것과 현대 사회의 복잡성을 상세히 서술하는 것이 동시에 가능한 일인가? 하는 고민을 안겨주었습니다. 끝나지 않는 고민을 안겨주는 책보다 좋은 책은 없는 것 같아요!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제가 조언과 응원을 할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저에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점을 말하고 싶어요. 등단하기 전에 제 글을 열심히 읽어준 소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향해 쓴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썼습니다. 내 글을 심혈을 기울여 읽고 기탄없이 평해줄 딱 한 사람만 있어도 몇 년은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을 찾아내고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지금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

작가가 되면서부터 '책'을 둘러싼 생태계에 한 번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됩니다. 특히, 출판사에서 일어나는 편집자 부당 해고 등 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되는 상황에 민감해요. 그리고 최근에는 도서관의 공공성을 축소하려는 시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근래 마포 중앙도서관장이 구의 도서관 운영에 이견을 표명하면서 파면되기도 하였고요. 공공 도서관은 '아무나'의 장소라고 생각해요. 도서관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고, 해당 지역에 살거나 일하는 사람이면 아무나 공짜로 책을 읽고 빌릴 수 있잖아요. 낮은 이용률을 근거로 도서관을 축소할 게 아니라, 반대로 더 많은 사람이 시민으로서 무상으로 책을 읽고, 정보에 접근하고, 도서관이 제공하는 여러 문화 프로그램을 누릴 권리를 알고,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중 작가 초롱

이미상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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