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24는 2015년부터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투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7년간 147명의 젊은 작가들을 소개했고, 180만 9798명의 독자가 투표에 참여했습니다. 올해도 6월 12일부터 7월 9일까지 투표를 진행합니다. 문학의 힘을 믿는 독자분들의 변함없는 응원을 기대합니다. |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6인'에 든 소감
독자분들의 선택을 받는 건 힘든 일이잖아요. 그래서 메일을 받자마자 든 생각은 '아이구 이런, 들러리를 서겠군' 하는 것이었어요. 후보에 걸출한 작가님들이 많으실 테니까요. 적절한 비유는 아닌 것 같지만 어쩐지 초등학교 시절 자가 추천으로 반장 선거에 나갔다가 한 표가 나왔던 때가 생각나네요.(웃음)
첫 책 『시스터』의 기억
첫 책은 이전에 품었던 여러 가지 환상을 확실하게 부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퇴고와 함께 책이 나오기까지 제 머리를 두들기며 외쳐야 했어요. '이것은 더 이상 너만의 것이 아니야'라고요. 그때는 저도 호기롭던 시절이라 '왜 내 것이 아니냐'고 동시에 소리쳤죠. 사실 당시는 그 사실에 좀 뿔이 나 있었어요. 그래서 책이 도착했을 때도 택배 상자를 등지고 누워서 쿨쿨 잠을 자버렸죠. 잠에서 깨서는 밥을 한 그릇 비벼 먹고, 인터넷을 하며 킥킥댔던 기억이 나요.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 상자가 뿜어내는 존재감에 짓눌려 잽싸게 택배를 열고는 아주 비겁하게 몇 달 동안 책을 피해 도망다녔어요. 책의 얼굴을 진지하게 바라본 건 그러고도 몇 년 후였는데 그동안 『시스터』는 정말 저와는 다른 별개의 생명체가 되어있더라고요. 책은 저보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다년간의 경험으로 깊이를 알 수 없는 얼굴을 한 채 무심하게, 놀라서 입을 벌리고 선 저를 지나쳐, 절뚝이면서 걸어갔어요. 몇 차례 그런 만남이 있었어요.
매일 실천하는 글쓰기 루틴
저한테 루틴은 무너지기 위해 존재하는 말인 것 같아요. 글을 쓰는 것은 저를 어르기도 하고 저에게 화를 내기도 하며, 다그치고 방울을 흔들면서 일궈나가야 하는 민감한 작업이니까요. 루틴보다는 그날의 온도와 습도와 분위기를 따지는 편이에요. 다만 글을 쓰기 위해 하는 단 한가지 일이 있다면, 저를 기다려 준다는 거예요. 제가 한눈을 팔 때에도, 낙심해서 넘어질 때에도, 끝없이 헛발질을 하는 때에도 저는 제가 글을 쓰길 기다려요. 제 부모님도 저만큼 저를 기다려주지는 못하실 거예요.
글 쓰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세 가지
강한 체력이라든가, 뛰어난 지성, 시간과 금전적 여유, 예민한 감수성이 있다면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하지만 이런 것들이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지는 않아요. 글쓰기는 내 안의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충동과 의지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죠. 이게 없다면 다른 어떤 훌륭한 조건이 갖춰진다 하더라도 불가능해요. 이야기의 시작점은 늘 불완전하고 휑뎅그렁한 폐허여서 머뭇거리면서도 그곳에 들어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세계를 거듭 들여다보며 나무 한 그루라도 심고 그 폐허를 일구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세운 세계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거듭 다시 세울 수 있는 과단성이 있다면 소설은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를 쓰게 만드는 사소한 것들
제게 전생이 있다면(없다고 생각합니다) 등에 무언가를 맞고 죽은 게 틀림없어요. 등이 열려 있으면 글이 잘 써지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혼자 있을 때, 등 뒤가 벽으로 막혀 있을 때만 글이 잘 써져요. 덕분에 작업실 구조가 비효율적이고 미관을 해치지만 어쩔 수가 없어요.
가장 좋아하는 작가
어떤 작가를 가장 좋아한다기보다 어떤 작가의 특정 작품 한두 권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좋아하는 작품을 두어 권 이야기 하자면 페터 한트케의 『소망 없는 불행』은 여행을 갈 때마다 가지고 가는 책이고요, 로런스 블록의 『살인해드립니다』는 리듬감 좋은 음악을 듣고 싶은데 그러기 힘들 때 펼쳐서 읽어요.
글쓰기 작업에 영감, 도움을 줬던 책.
이번 소설 『러브 몬스터』의 경우에는 많은 책들의 영감을 받았어요. 그 중이 가장 큰 영감을 받은 책은 벨 훅스의 『사랑은 사치일까』입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근본적이고 필연적인 가치인데 어째서 사치처럼 느껴지는가, 하는 고민을 하면서 읽었어요.
작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창작하는 사람들만큼 남의 말을 안 듣는 이도 드물다고 생각해요. 글 쓰지 말고 자기 계발을 하거나 돈을 벌고 취업하라는 말을 두루두루 숱하게 들으면서 다들 이 일을 하고 계실 테니까요. 제가 무슨 말을 한들 안 들으실 걸 알아요. 그리고 그런 태도를 계속 고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를 비롯해서, 여러분이 만들고자 하는 세계는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그 사실이 우리를 불안에 빠뜨리고 움츠러들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요. 그렇다면 흔들리고, 혼란스러워 하면서 세상에 나온 일 없는 그 이야기를 응시하면 되겠죠. 중요한 건 계속 써보는 거니까요. 힘든 시간이시겠지만 다들 건강 챙기시면서 힘내시기 바랍니다!
지금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
요즘 지독한 층간 소음을 경험하고 있는데요. 윗집에서 새벽부터 톱으로 뭔가를 써는 소리가 나요. 못질을 하는 것도 아니고 사포질을 하는 건지 나무를 문지르는 듯한, 톱소리가 몇시간이고 지속되고 있죠. 그래서 저것이 무슨 소리인가, 그만 멈추도록 해야 하는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요.
*이두온 소설가. 198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6년 첫 책 『시스터』를 출간해 한국 하드보일드 스릴러 장르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은 데뷔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장편 소설 『타오르는 마음』, 『러브 몬스터』를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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