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글 쓴 사람은 잊히고, 문장만이 남을 때가 있다. “노무현 정부는 왼쪽 깜박이를 켜고는 줄곧 우회전해왔다”도 그런 문장 중 하나다. 이 말을 누가 최초에 했는지는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많고, 아는 사람 중에서는 서강대 손호철 교수가 한 말로 기억하는 이도 있다. 사실 이 문장은 2004년 9월 23일 <한겨레>에 김종엽 한신대 교수가 최초로 썼다. 좀 더 정확히 쓰자면, 원문은 “내 보기에 노무현 정부는 왼쪽 깜박이를 켜고는 줄곧 우회전해왔다”이다.
사회학이라는 다소 건조한 학문을 연구하면서도 김종엽 교수의 문장에는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수사가 넘친다. 그의 문장은 수십 년간 여러 매체에 사회 현상을 분석하면서 단련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좌충우돌』은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써온 칼럼을 묶은 책이다. 이 시기는 일반적으로 좌로 분류하는 노무현 참여정부와 우로 분류하는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때이기도 하다. 제목이 ‘좌충우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월호 사건으로 시끄럽고 지방선거를 앞둔 5월, 한신대 연구실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세월호 사건에서 유념해야 할 것
어떻게 지냈나.
강의도 중반 이후로 넘어갔고 날씨도 포근해서 평화로운 일상이어야 하지만 세월호 때문에 심란하다. 돈을 조금 보내고, 분향소 들렸다. 그외에는 일반인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사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을 써 보자 해서 썼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있다.
나중에 물어보고자 했지만, 말이 나온 김에 질문해 보겠다. 세월호를 둘러싸고 의제가 바뀌는 것 같다. 사기업의 잘못, 국가의 대처, 이제는 종교 문제까지 나왔는데 사회학자로서 어떻게 보고 있나.
언급했던 의제 모두 일리 있다. 다만 학자가 이런 경우에 조심해야 한다. “거 봐라, 내가 말한 게 맞았지?” 이런 태도다. 사태를 이해하는 데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안 된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한 사람 관점에서 보면, 선령 제한을 철폐한 신자유주의적 조치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관료개혁을 요구한 사람이라면 관피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참여정부 인사라면, 청와대 재난관리 시스템을 이명박 대통령이 없애고 박근혜 대통령이 제대로 복원 안 한 것에서 원인을 찾을 것이다. 맞는 지적이긴 한데 지식인이 이 사태로부터 배우는 게 더 중요하다. 아직 이야기되지 않은 부분을 밝히려 노력해야 한다. 결론이 쉽게 나더라도 들쳐 보면, 간단하지 않다. 가령 선령 제한 철폐도 그렇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선령을 제한하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다. 선령 제한을 지난 정권이 풀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검사가 안 되는 상황이 더 문제였다. 이렇게 좀 더 복잡하게 봐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도 그렇다. 이준석 선장이 계약직이고, 계약직이 충성심이 약하다는 지적인데. 비정규직 문제가 중요하지만, 세월호에서는 비정규직인 사람이 헌신적으로 구조하다 죽기도 했다. 이것 때문이라고 몰아서 이야기할 수는 없다. 공부하는 사람은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책에 실린 내용 중에서 사회학이 폭로의 깊이가 깊다(231쪽)고 했는데.
사실 사회학이 전문적인 학문으로써 능력은 다소 떨어진다. 세월호를 다시 예로 들어보자. 사회학자가 배를 전문적으로 알지는 못한다. 대신에 기술적이거나 제도적 차원을 넘어서는 큰 문제를 짚어낼 수 있는 학문이다. 또 한 가지는 사회학자가 돈이나 권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한국은 특수한 분야 전문가, 지식인이 국가와 기업에 포섭되어 있다. 이번 세월호에서 특징적인 게 커뮤니케이션 수준에서 정부가 전문가 집단을 잘 통제했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통제가 무너진 건 언론사가 가진 특종과 보도를 향한 본능 때문이다. 잘 찾아보면, 박근혜 정부에 옹호적일 거라 짐작되는 언론도 불리한 사실을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성공하는 게 전문가 커뮤니케이션이다. 사건 초기에 몇몇 전문가가 TV에 출연했지만 자취를 감췄다. 외국에 있는 전문가를 찾아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왜 그런가.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 굉장히 많은 연구비가 기업과 국가로부터 나온다. 대부분 전문가가 교수 아니면 연구원이다. 연구비가 없으면 개인의 수입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연구팀의 존속이 어렵다. 이공계는 더 심하다. 이런 구조적인 원인 때문에 입을 닫는다. 찾아보면, 각종 규제 완화와 관련해서 유수한 대학에서 보고서를 냈다. 이른바 선박전문가, 해양전문가라는 사람이 세월호 원인이 되었던 규제 철폐를 지원해주는 보고서를 썼다. 논문에 최소한 도망갈 구멍과 양심을 지키는 구절이 남아 있긴 했다. 사회학이 여기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사회학이 전문성 떨어지는 학문처럼 보이지만 전문성에 매물되지 않고 큰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지난 10년간 쓴 글을 모아 낸 이유
『좌충우돌』은 10년 동안 쓴 칼럼을 모은 책이다. 책을 엮으면서 학자로서의 삶과 칼럼니스트로서의 삶을 되돌아봤을 것 같다.
서문에서도 썼듯 유통기한이 지난 글이다. 재고 정리하는 기분도 들었고. 그리 매력적인 책은 아니다. 이런 책을 내야 하나, 내고 싶은가, 하고 스스로 확신도 없었다. 이렇게 미루다 보니, 지난번에 낸 칼럼집으로부터는 12년 만에 냈다. 그럼에도 책으로 낸 건 자신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특히 작년 대선이 끝나고 비판적 시민으로 어떻게 살았는지를 되돌아보고 싶었다. 연구논문이나 강의로는 비판적 시민으로의 삶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칼럼을 묶어 보니 10년을 무슨 생각하면서 살았는지 드러났다. 나를 되돌아보는 데 좋은 수단이 됐다. 모아놓고 보니, 너무 지난 일이라 출판사가 안 내 줄 것 같았다. 출판사에 미안하기도 해서 손을 보겠다고 결심했다. 어떤 방향으로 손을 볼까 고민하다 '돌아보기'라는 식으로 현재성을 불어 넣어봤다. 개인적으로는 책이 작년에 나오길 바랐다. 만으로 50이 되기 전에 내고 싶었다. 출판 일정이 마음대로 되진 않았다.
유통기한이 지났다곤 해도 칼럼에서 제기했던 여러 문제가 아직 우리 사회에서 풀리지 않은 듯하다. 교육 문제도 있고 세월호 사건과 천안함 사건의 유사함을 지적하기도 한다.
중고등학교 교육은 패턴은 비슷해도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좋아졌는지는 모르지만 끊임 없이 변천했다. 대학은 10년 전과 비슷한 문제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 천안함에 대해서 많이 쓰진 못했지만 세월호와 유사한 면도 있고 다른 면도 있다. 천안함은 국가기구 안에 있는 사람이 많이 희생됐다. 그 상황에서 국가에 책임을 묻기가 어려웠다. 국가 자신이 크게 손상을 입었으니까. 일부 사람이 사고라고 주장했고 정부는 북한이 했다고 결론 내렸다. 군대 내부에서 슬픔, 고통을 유발한 원인을 적으로 돌리고 싶은 열망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 세월호는 국가가 방치해서 사람이 죽은 모양이다. 구조적으로 유사한 면이 있더라도 정서적으로 파장이 컸다.
두 사건의 가장 큰 공통점은 전문가가 완전 포섭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때도 문제 제기를 한 학자가 재외학자였다. 캐나다, 미국에 있는 한국인 학자가 문제제기를 했다. 사회학자가 문제제기를 해도, 사회 관계를 이야기할 순 있어도, 전문적인 사실을 말하는 건 해당 분야의 전문가의 몫이다. 국내 많은 지식인이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도 전문가가 침묵한다. 진상조사 위원회가 어떤 식으로든 꾸려질 텐데, 유가족은 국가 중심으로 이루어지면 곤란하다고 말한다. 이런 문제가 있어서다.
책이 다루는 세월이 10년이다. 10년 동안 어조나 논조가 점점 격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노무현 정부 때는 양가감정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매력적인 인물이다. 정책적으로는 심하게 화나는 부분도 있고, 실망도 있었다. 정권을 이명박 정권에 내준 데 대한 분노도 있었다. 이런 감정이 글에 많이 실렸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로 왔다.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항상 발견했던 건 기대수준이 낮았는데도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일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험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격하게 썼다. 당시 반새누리 정서를 가진 지지자 중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나는 안 그렇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사건이 이명박 정부 때, 노무현 정부 때 일어났으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을 하는데 이런 질문에는 현 정권에 면죄부를 주려는 심리가 있다. 문재인이 대통령이었다고 해도 생겼을 수 있다. 지금보다 낫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소한 언론보도를 이런 식으로 내진 않았을 것이다.
언론 보도라 함은 사건 발생 초기부터 수백 명의 잠수부를 투입했다는 등의 과장 보도 말인가?
그런 것도 있고 오보도 있었지 않나. 의제를 호도하기도 했고. 심한 경우 막말까지 했다. 정부가 여러 가지 정보를 관리하려 하는 부분은 이해할 수 있다. 언론에 폭격을 맞아서 정부가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사실 관계는 분명히 파악해야지. 조금 더 조심스럽지만, 다른 정권이었다면 은폐나 조작을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물론, 김대중 정부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정권 교체 없이 20년간 이어졌다면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가장 합리적인 건 5년마다 정권을 한 번씩 바꿔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에 안 바꾼 건 국민 입장에서는 실책이다.
고도성장 끝난 한국사회에 필요한 건 연대
뒤르켐을 전공했다. 뒤르켐에게서 어떤 매력을 느꼈나.
원래는 보다 큰 스케일로 논문을 써 보려고 했다. ‘사회 이론과 도시’ 이런 주제였다. 베를린과 짐멜, 빈과 프로이트, 파리와 뒤르켐을 고민하다 축소했다. 프로이트에 관해서는 조그마한 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과거에는 사회학에서 이론을 많이 다뤘는데 요즘은 양적 방법론, 경험적 연구가 주를 이룬다고 들었다. 리오타르가 말했던 ‘거대서사의 종말’이 사회학에도 적용되는가?
사회학에서 큰 담론은 꾸준히 있어 온 편이다. 20세기말의 유명한 지식인들은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의 사람이다. 예컨대 하버마스는 1928년생이다. 지금 주도적인 사람들은 1940년대 초반 생들이다. 울리히 벡이 그렇다. 다만 1950년대, 1960년대 태어난 사람에게서 거대 담론이 나올 수 있을까. 가능성은 있겠지만,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사회학 자체가 위축됐고 사회학 외에도 기초 학문이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니 점점 더 배출하기 어려워진다. 한국에서도 사회학과 폐과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다. 그런 면에서는 낙관하기는 어렵다.
뒤르켐 하면 ‘연대’가 떠오른다. 한국사회에는 아직 ‘연대’가 생소한 것 같은데.
한국 사회에 연대가 없다. 뒤르켐을 연구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뒤르켐이 살았던 시대에 프랑스 사회가 연대가 넘쳤을까? 프랑스 사회도 어려웠다. 뒤르켐이 살던 시대 프랑스에는 연대주의 운동이 있었다. 뒤르켐은 정치운동이자 사회운동 진영의 중요한 이론가였다. 프랑스식 복지 국가로 이동하는데 이 연대주의 운동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사회도 이전에는 사회적 연대 없이 굴러왔다. 지금은 한계에 부딪쳤다. 박정희 시대에는 내가 다른 사람과 연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잘 살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보다 더 잘된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각자는 어제의 자신보다 나아졌다. 당시에는 현재의 불만을 시간 속에 펼쳐서 긴장이나 갈등을 없애는 식이었다. ‘100만 불 수출’ 이런 걸 정해놓고 우리 사회가 저기로 가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려면 경제성장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는데 이제 안 되는 상황이다.
박정희 후반과 전두환 집권기는 대략 10% 성장했는데 지금은 1~2% 성장하고 있다. 가계 부채에 의한 성장을 제외하면 제로 아니면 약간 마이너스다.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건 미래를 당겨다 쓴다는 뜻이다. 과거엔 개인의 기대수준과 현재 처지간의 간극을 성장을 통해서 메웠다. 즉 미래의 성취에 대한 기대로 현재를 견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미래를 약탈함으로써 해소하려고 한다. 그게 부채이다. 이제는 그런 간극을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성장은 덜 해도 사회적 유대와 재분배로 해결한다거나 자원을 더 사회적으로 순환시키는 방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연대가 중요하다.
뒤르켐에게 ‘연대’가 한 축이라면, ‘열광’도 한 축이다. ‘열광’ 하면 곧 있을 월드컵이 생각난다.
지금을 2002년 월드컵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있었다. 월드컵이 열리던 도중에 벌어졌고 잊혔다. 월드컵이 끝나고 가을이 지나고부터 폭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왜 사후에 폭발력이 생길 수 있었을까? 월드컵이 끝난 다음 무심했다는 죄의식이 사람들에게 굉장히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열광과 관련해서 우리가 이해를 달리 해야 하는 게 열광이 즐거운 일에만 일어나는 게 아니고 슬픈 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사실이다. 축제가 꼭 기쁨의 축제만 있는 게 아니라 슬픔의 축제도 있다. 세월호를 둘러싼 추모도 일종의 열광 상태다. 끓어오르고 격앙돼 있고 커뮤니케이션이 폭발하고 있다. 이게 먼저 있고 월드컵이 있는데 월드컵이 훨씬 차분해지지 않을까 예상한다. 사람들이 월드컵으로 세계인과 즐기는 것과 세월호의 슬픔을 적절하게 조율하려 할 것이다.
2002년과 2014년 차이 중 하나가 SNS일 것 같다. SNS로 즐기는 모양새도 달라질 것 같은데.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해서 보면 SNS가 분산적이다. 그런데 눈사태 효과가 있다. 예를 들어 파워트위터리언은 팔로어가 몇 십 만이다. 커뮤니케이션 지형이 많이 변했다. 사회를 많이 바꿀 것 같기도 하지만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에서 드러났듯, 조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상당히 많은 돈과, 그것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특정한 키워드로 방향을 갖고 전략적으로 홍보하면 조작 가능하다.
2014 지방선거는 투표율 올라갈 것
오늘이 5월 21일이다. 지방선거는 어떤 분위기로 치러질까.
슬퍼서 행동하고 싶은 욕구가 있을 것이다. 내게도 고등학생 딸이 있는데,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애가 그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다 9시, 10시쯤에 “아빠 배가 기울어”라고 전화가 왔다면 뭐라고 했을까. 네가 판단해야 한다고 했을지, 방송에서 말하는 대로 선실에 있으라고 했을지, 무조건 밖으로 나오라고 했을지, 답이 안 떠오른다. 답이 안 떠오른다는 의미는 어떤 답도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일 텐데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고통스럽더라. 리본 달고, 성금 내고 추모하는 자리에 가고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가 있다.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투표를 선택하려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투표율이 올라가면 새누리당이 불리해질 것이다. 전체적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이 유리하겠지만 300명이 죽어야 야권이 유리해지는 이 구조라면 야권도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야권이 한 건 없지 않나.
칼럼에서 김대중, 안철수 등 인물평을 썼는데 적확하면서도 재밌던데, 인물평을 써 볼 생각은 없나. 앞으로 어떤 글을 쓸 계획인지.
인물론 쓰면 책 잘 팔린다. 그런데 흥미로운 인물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 쓸 생각은 없고. 앞으로 분단체제론에 관해 써보고 싶다. 지금까지 분단체제 하면 분단 문제 중심으로 이해했지만 이제는 분단체제 속에서 살면서 사람이 가지는 생활양식, 가치관, 아비투스 이런 것에 관심을 가져보려 한다. 분단체제 속에서 우리 사회에 어떤 특이한 삶이 나타나는가, 이런 걸 써 보려 한다.
- 좌충우돌김종엽 저 | 문학동네
『좌충우돌』은 노무현정부의 출범으로 이명박정권이 막을 내렸던 10년간 여러 지면의 칼럼과 논평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분석하고 진단해온 사회학자 김종엽의 글을 묶은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지난 글을 묶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글 쓴 시점과 사건의 변화에 따라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한번 사건들을 적극적으로 점검하는 피드백의 글쓰기를 시도해, 그때와 지금이 어떻게 같고 또 다른지 새롭게 되새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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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하영 ‘‘하루키, 베르베르, 진중권 책은 꼭 소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