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며 유가사상은 건국이념이자 통치의 근간이 됐다. 하지만 조선 역시 518년의 왕조를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한반도는 일제강점기와 전쟁 등 혹독한 시련을 보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유가사상은 망국의 사상으로 그 위상이 격하되고 고루한 옛 것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현대에 이르러 유가사상이 재조명되고 있다. 황폐화된 국토를 재건하고 맨손으로 시작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거듭난 우리나라는 물론 최근 20년간 개혁개방정책을 통해 다시금 국제사회에 강대국으로 등장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국이 그렇다. 두 나라의 공통점을 찾자면 과거에는 선비와 대인으로 대표되는 사회지도층을 중심으로 유가경전에 입각한 국가경영이 이뤄져 왔다는 점이다.
자본주의가 불러온 공허함
한국과 중국, 두 나라는 비슷한 시기에 정수를 무시한 채 권력으로 얼룩지고 왜곡된 유가사상이 쇠퇴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후 근현대사는 격변의 연속이었다. 혼돈의 시대에서 재도약의 시대로 넘어갈 즈음 쇠퇴한 유가사상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자본주의였다. 정신적 가치관이 물질적 가치관으로 대체된 셈이다. 돈과 명예가 중시됐으며 한동안 그것은 사회구성원들을 자극하는 적절한 동기부여로 작용하며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두 나라는 모두 자본주의 도입 후 급격한 발전을 이어가며 그 폐해에 대한 대비를 미처 하지 못했다. 대자본의 횡포와 중소기업의 몰락, 실업자의 증대와 빈익빈부익부 심화 등이 그것이다. 물론 제대로 된 자본주의는 그러한 문제들을 바로잡을 기능을 가지고 있다. 시장의 힘과 작동원리를 바로잡아 소외 계층을 배려하는 ‘창조적 자본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압축성장의 후유증은 자본주의의 정도(正道) 대신 투기적 금융자본과 탐욕이 결합된 ‘카지노 자본주의’라는 병폐를 낳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돈과 명예는 더욱더 사회적 계층을 구분하는 잣대가 됐으며, 도덕과 윤리보다 능력이 우선시되는 풍조가 만연해졌다. ‘1등이 아니면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강박은 자라나는 세대의 숨통조차 옥죄었다. 그 결과 배움의 기준은 호기심과 깨달음의 과정이 아닌 성적과 점수라는 결과로 대체됐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청소년기에는 좋은 대학을 위해 공부하고, 대학시절에는 좋은 직장을 위해 공부하고, 사회에 진출한 뒤에는 높은 연봉과 안락한 삶을 위해 야근을 불사하며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노력으로 채워지지 못하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유가사상의 새로운 역할
출세와 성공지향적인 것의 맹점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보다 없는 사람, 낮은 직위의 사람을 굽어보기보다 끝없이 위를 바라보며 더 많은 돈과 자리를 탐하게 된다. 때문에 우리사회의 소위 엘리트 계층이라 불리는 이들의 삶은 꽤나 피곤하다. 추월 당할 것을 염려하는 조바심과 끝없는 경쟁에서 오는 피로감을 못 이긴 이들 중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자리와 직을 목표로 할 뿐, 직업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의식은 실종된 지 오래다.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내 놓은 정치인들의 해법이란 실천 없는 공염불로 반복되고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유가사상의 부활은 우연이 아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근간으로 한 유가사상안에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할 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단지 압축성장의 과정에서 잃었던 정신적 가치를 되찾는 과정일 뿐이다. 최근 이러한 시도를 통해 많은 현대인들이 공허함을 떨쳐버리고 삶의 진정한 목표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아시아가 겪는 혼란에 답을 제시하다
칭화대학교는 중국의 각 자치단체에서 1등이 아니고는 입학할 수 없다는 명문대학이다. 최고 중의 최고만을 모아놓은 곳에서 무려 10년간 인기를 이어간 강의가 <유가경전입문>이다. 중국의 최고 엘리트들이 유가경전에 주목한다는 점은 중국 역시 자본주의체제 도입 이후 겪은 폐해가 심각함을 반증하고 있다. 이 강의를 이끌어 온 인물이 바로 팡차오후이 교수다.
그는 하버드를 비롯해 우리나라의 서울대학교, 대만의 포광대학교에서 중국사상사를 연구하고 강의한 유가사상 전문가다. 헌대 이력이 독특하다. 사실 그의 젊은 시절 연구 대상은 서양철학이었다. 박사까지 마친 후 돌연 연구 주제를 중국사상사로 전환하며 동,서양의 철학과 정신사상을 모두 아우르는 전문가가 됐다. 그의 <유가경전입문> 강의가 오랜 인기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도 유교와 도교, 불교는 물론 서양철학까지 아우르며 현대인이 겪고 있는 마음의 문제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팡차오후이 교수가 자신의 저서 『나를 지켜낸다는 것』을 들고 우리나라를 찾았다. 바쁜 일정을 앞두고 마주한 자리지만 그 표정만은 평온해 보였다.
한국에는 자주 오시는 편이신지요.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한국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2008~2009년 사이 1년 정도 한국에 머문 적이 있습니다. 그 후에도 꽤 여러 번 한국을 방문했죠. 한국은 역사적으로도 중국과 오랜 교류가 있었던 나라입니다. 그렇다보니 한국에 대해 친숙함이 남다릅니다. 많은 중국 사람들이 한국을 좋은 형제의 나라로 인식하고 있죠.
방문 기간 중에 다양한 일정이 잡혀 있을 듯한데요.
많은 일정이 잡혀있죠.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고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인터뷰나 방송출연 역시도 새로운 경험이고요. 특히 방송출연은 이번이 처음이라(그는 인터뷰 당일 <SBS 지식나눔 콘서트 ‘아이러브[人]> 녹화를 앞두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꽤 큰 도전이네요(웃음). 한국에서도 최근 인문학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하기 이전까지는 인문학이 그리 중시되지 못했습니다. 경제발전 이후 현대화가 이뤄지면서 더욱 그랬죠. 그 결과 중국은 최근 20여년간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며 물질적인 부분의 성공은 이루었지만, 정신적으로는 크나큰 공허함에 직면했어요. 그것을 채우는 것이 인문학이었죠. 기업가나 부자들이 돈은 많지만 행복감은 느끼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에요. 그들 역시 인문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중이죠. 그래서 최근 들어 인문학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요.
교수님께서는 젊은 시절 서양철학을 전공해 박사 졸업 후 중국사상사로 연구주제를 전환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문득 공자의 말씀 중 ‘온고지신(옛것을 알고 새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이 떠오릅니다. 그 계기를 말씀해주신다면?
박사학위 과정을 마친 이후에도 채워지지 않은 것이 있었어요. 우울증과 개인적인 아픔들이 있었죠. 그런 문제는 서양철학에서 답을 찾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중국사상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죠. 그런 과정을 통해서 마음의 평화와 위로를 얻게 됐어요. 많은 사람들이 서양의 사고방식과 동양의 사고방식은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쌓인 사유의 정수가 철학이라고 했을 때, 과연 동서양철학은 그 근본조차 다른 것인지, 아니면 삶 속에 적용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차이가 있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서양철학 자체가 이성을 강조하며, 지식을 얻기 위해서 호기심을 바탕으로 배움을 추구하는 것이에요. 동양철학의 경우는 나와 세상의 관계를 생각하고 있죠. 내가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나, 어떻게 보내야하는가를 생각하는 학문이에요. 동양 사람의 입장에서는 서양철학을 봤을 때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를 느껴요. 서양철학으로 동양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는 말이죠. 물론 어느 게 더 낫다는 것은 아니에요. 각각의 장점이 있죠. 무엇이 더 우월해서 대체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중국은 장기간 자본주의 경제를 ‘끝없이 탐욕을 부리며 돈에 눈이 멀어 염치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림으로 묘사했습니다. 이 때문에, 어느 날 중국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도입했을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끝없이 탐욕을 부리며 돈에 눈이 멀어 염치라고는 하나도 없고 의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행위를 당연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중략) 유가에서 말하는 수신의 학문은 원래 명리, 즉 돈과 명예를 거절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돈과 명예에 대해 정확하게 대면하고 분별심을 갖도록 요구했습니다.” (『나를 지켜낸다는 것』中 )
오늘날 아시아, 특히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은 압축적인 성장을 이뤘습니다. 특히 한국과 중국이 그렇습니다.『나를 지켜낸다는 것』중 ‘5강’ ‘치심’에서 자본주의 경제를 ‘탐욕을 부리며 돈에 눈이 멀어 염치라고는 없어도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중국인들이 문제를 언급하셨는데, 한국 역시도 그런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해법은 무엇일까요?
자본주의에는 두 가지 논리가 있어요. 첫 번째는 돈과 권력이 모든 것을 다 압도한다는 거죠. 서양에서는 이런 권력과 돈의 어두운 이면의 문제들을 종교와 자유주의를 통해 해결해 왔어요. 아시아 역시 서양의 종교와 자유주의에 버금가는 것이 바로 전통입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통해 고양된 정신문화를 오늘날 문제에 접목해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 나갈 수 있죠. 전통적인 철학에서 오늘날의 문제를 풀어나갈 열쇠를 찾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나는 동양철학에 대한 갈증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우리 세대가 영혼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진정성 있게 자신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마음 깊은 곳에서 괴로움과 아픔을 겪게 될 것이라 믿게 됐습니다. 누가 우리의 영혼을 구해줄 수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문제이며, 우리 시대에 가장 되돌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근본적인 문제의 하나입니다. 전통을 잃기 시작한 순간부터 우리의 영혼은 뿌리부터 뽑혔고 생명의 정원도 갈가리 찢기고 말았습니다. ‘수신(修身)’을 알지 못한 우리는 바싹 말라버린 대지 위의 풀처럼 고통스럽게 발버둥치다가 절망에 빠진 뒤에야 후회하곤 합니다.” (『나를 지켜낸다는 것』中 )
한국에서는 명문대를 가기 위해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고 대학에 가서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공부하고, 사회에 나가서는 명예와 돈을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 됐습니다. 중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알고 있는데요.
동양의 사상이나 정서적인 면은 가정을 중시하고 자식에 대한 기대가 크죠. 그래서 모든 열정과 돈을 자식에게 쏟아 붓는 경향이 있고요. 역사적으로 중국은 물론 한국 역시 ‘과거제도’를 통해 인재를 선발했습니다. 가정 중심의 문화와 ‘과거제도’의 전통이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처 명예와 돈을 추구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거죠. 중국의 많은 학자들이 그런 문제, 즉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경향에 대해 반대하고 있고, 저 역시도 제자를 양성하는데 다른 방식을 적용하며 바꿔보려 노력해 오고 있어요. 한국도 그런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고 알고 있고요.
인문학적인 가치관이나 윤리가 이젠 교과서에만 존재하는 교육의 문제도 있지 않을까요?
오늘날 한국, 중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서양의 교육방식이 보편화 돼 있어요. 하지만 서양의 교육체계를 받아드릴 때 좋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게 문제죠. 서양의 교육의 장점은 창의력과 호기심을 키우고 선택의 폭이 넓다는 거예요. 단순히 좋은 성적이나 등수만을 추구한다면 호기심은 억제되고 자아발전은 등한시하게 되는 거죠.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추후에도 많은 인재를 발굴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은 국가적인 손실이 될 거에요. 한 통계를 보면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연구개발에 어느 유럽국가보다 더 많은 투자를 했어요.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보다 노벨상 수상자는 많이 배출하지 못하고 있죠. 원인은 결국 앞서 언급한 사고방식의 차이 때문이에요. 한국과 중국,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문제죠.
‘나를 지켜낸다는 것’에서 말하는 유가의 수신(수정, 존양, 자성, 정성, 치심, 신독, 주경, 근언, 치성)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를 따른 삶을 추구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신을 추구하기란 참 어렵지 않을까요?
먼저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해요. 많은 사람들이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삶을 사는데, 그런 삶은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죠. 두 번째 수신을 하게 되면 진정한 자신을 알게 되고 그것을 통해 내게 적합한 삶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어요. 그것을 깨닫게 되면 수신을 실천하는 것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것도 자연스레 알게 됩니다. 제 경우 대학시절 전공이 화학이었어요. 좋은 직업을 얻기에는 좋은 전공이었죠. 하지만 인문학을 선택하지 않고 그대로 전공을 따라가는 삶을 살았다면 전 행복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 이후에도 제가 세 번 정도 전공을 바꿨죠. 물론 바꿀 때마다 스트레스가 컸어요. 전공을 바꾼다는 것은 그때까지 배운 것이 쓸모없어진다는 의미기도 하고, 그 분야에서 형성한 인맥을 잃게 된다는 의미였으니까요. 또 만약 제가 서양철학 박사학위를 따고 그대로 서양철학을 했다면 역시 좋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편안한 삶을 살았을 거예요. 서양철학을 할 때는 주변에 따르는 이들도 많았죠(웃음). 그래서 제가 동양철학으로 방향을 전환했을 때 만류하는 이들도 많았고요. 하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제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찾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현대사회에서 수신을 실천하는 것은 손해라는 생각은 성급합니다. 정작 실천해 보면 생각한 것 이상의 행복을 얻을 수 있고, 나를 정확하게 앎으로서 스스로의 잠재력을 더욱 잘 끌어 올릴 수 있거든요. 지금 동양철학을 연구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
한국에서는 얼마 전 온 국민을 슬픔에 빠지게 한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비윤리적인 기업인을 비롯해 사명감 없는 선장, 무책임한 관료들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는데요. 소위 인재라고 부르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예전에 중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최근 터키에서도 수백 명이 숨지는 탄광 참사가 있었죠? 모두 이해관계자들이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도덕과 윤리를 잊은 상황이라는 점이 비슷합니다. 정부의 관료 역시도 개인적인 권력과 명예, 지위만을 추구했죠. 자본주의의 문제가 이런 부분에서 나타나고 있는데요. 저는 오랜 세월 동안 이런 문제를 바꿔오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오래 전 침몰한 타이타닉 호는 선장과 승무원들이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배와 함께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에 비춰 최근의 참사들을 봤을 때 직업적인 윤리의식과 사명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유가사상에서 ‘충(忠)’이라는 것이 있어요. ‘충(忠)’은 단순히 충성한다는 의미 외에도 직업적인 윤리와 사명감을 뜻하기도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의 목숨을 다해서, 성심을 다해 해야 한다는 거죠. 개인의 이익과 공적인 이익이 상충될 때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다수를 위한 공익을 선택하는, ‘충(忠)’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향이 아닐까요?
『나를 지켜낸다는 것』을 읽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국의 독자 분들께서 이 책을 읽으시고 저와 함께 수신을 하는 기회를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로 인해 자신을 되찾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시기를 바랍니다.
흰 개팡차오후이 저/박찬철 역 | 위즈덤하우스
저자가 2000년대 초반부터 10년 동안 강의했던 칭화대 인문 강의 〈유가경전입문〉을 정리한 책으로, 가장 오래된 자기계발의 코드라고 할 수 있는 수신修身에 대해 유가의 선인들이 성찰한 아홉 가지 덕목을 소개한 책이다. 책이 소개한 수신의 기본 요소들은, 우리가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었던 내외부의 다양한 공격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정신의 병법과도 같다. 직장생활에서의 무기력과 가정에서의 외로움을 느끼는 직장인이라면, 이 책을 통해 자신을 지키는 진짜 자기계발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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