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편집 『묘비 세우기』를 묶으며, 정은우는 "요즘 나는 처음이라는 단어를 덜 버거워한다"고 썼다. 늘 처음처럼 어려운 소설 쓰기. 불신과 신뢰 사이에서 헤매면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이야기로 쓰이기를 기다리는 인물들 덕분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도 남은 삶을 이어가야 하는 사람들. 차별을 감수하며 미국, 일본 등 낯선 땅으로 향해야 했던 사람들. 자신이 모르는 삶을 이해하려 애쓰며, 정은우의 소설은 담담하게, 멀리 간다.
엉덩이를 붙이고 미련하게 쓴다
데뷔작부터 묶은 첫 단편집이에요.
단편 소설로 데뷔했지만, 어쩌다 보니 장편 소설 『국자전』으로 독자들을 먼저 만났어요. 코로나19 시기에 시간이 생겨서 그럼 뭘 할까 하다가 장편 소설을 투고한 것이었거든요. 어떤 독자분들은 장편 소설을 먼저 읽고는 제가 단편으로 데뷔했다는 걸 알고 놀라시더라고요. 단편 소설로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줘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장편 소설과 단편 소설의 차이가 궁금해지네요.
정말 달라요. 장편 소설이 극영화를 찍는 느낌이라면, 단편 소설은 사진 작업 같아요. 수백 장의 사진을 찍은 뒤에 몇 장을 골라서 등장인물들의 여러 면모를 보여줘야 하죠. 음악으로 치면 장편은 교향곡처럼 쭉 이어지는 느낌이라면, 단편은 3분짜리 곡들을 길게 이어 붙인 느낌이에요. 계속 분위기를 전환하면서 써야 해서 퇴고도 더 어려워요. 그 과정이 참 재미있고요.
쉽지 않은 작업이겠네요. 어떻게 지치지 않고 그 과정을 이어가나요?
무조건 미련하게 6~7시간 엉덩이를 붙이고 써요.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무릎에 물이 차는 거 아세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때까지 앉아서 써요. 하나의 장면이 끝날 때까지요. 이건 루틴이 아니라 그냥 한심한 것 같네요.(웃음)
이번 소설집에는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는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그런데 한 인터뷰에서 작가님은 "애도에 관한 소설이지만 애도에 치우치지 않길 바랐다"고 했어요.
소설에 대한 저의 태도와도 맞닿아 있는 말 같아요. 소설은 살아 있는 사람이 쓰죠. 그것을 살아 있는 사람이 읽고요. 저는 소설이 시간에 저항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러닝 타임이 있어서 상영이 끝나면 영화관을 나가야 하지만, 소설은 사람마다 읽는 속도가 다르고 되돌아가서 다시 읽을 수도 있잖아요. 상실 이후의 시간은 어떨까요? '애도'는 사회적으로 늘 시간의 종결을 강요하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빨리 슬픔을 끝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고 하니까요. 「묘비 세우기」의 연주에게는 함께 살던 재언을 상실하고 애도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아요. 그럼에도 그 시간을 '애도'라고 칭한다면, 연주에게 그건 폭력이죠.
"상실을 겪은 인물이 지나치게 담담하다"는 평도 들었다고요. 그렇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재언과의 시간을 돌아보고 할 일을 해나가는 연주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해요.
연주는 재언을 완전히 떠나보내는 게 아니라, 그 이후에도 함께 살아간다고 생각했어요. 소설의 마지막에 연주가 재언의 물건을 정리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만약 '쓸모'를 기준으로 하면 재언의 짐은 모두 버려야겠죠. 그렇지만 연주는 버리지 않는 것을 택해요. 재언의 삶을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한다면 연주 자신의 삶조차 부정하는 게 되니까요. 결국 이 이야기는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작가님의 소설은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 독특해요. 인물들은 격렬하게 감정을 쏟아내기보다 생활에서 그 감정들을 감당해 나가죠.
원래 저는 고등학교 때 영화를 공부했는데요. 수업 시간에 한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시나리오에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서 흔히 '인물이 눈물을 흘린다'고 쓰지만, 사실 사람은 정말 슬픈 순간에는 울지 못한다."
정말 그렇잖아요. 사람들은 큰 사건을 겪을 때 슬픔이나 분노를 바로 느끼기보다는 다른 감정을 먼저 느낀 다음에 나중에서야 깨닫죠. 시간이 지나 안전한 순간이 와야만 그제야 눈물을 흘리고요. 상실이 닥쳐올 때, 제 소설의 인물들에게는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요. 간신히 지켜온 생활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상황이니까요. 그래서 인물들은 우선 생활을 지키는 것을 택해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요?
소설을 읽으면서 '이건 정말 내 이야기 같다'고 밑줄을 그은 장면들이 많았어요. 특히, 「사계」에서 신혼부부 명조와 미주가 변두리 청약 아파트에서 살게 되는 건 정말 현실적인 상황이잖아요.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늘 부동산 이야기를 해요. 게다가 최근에 전세 사기 대란도 있어서, 채팅방에 모여서 열심히 정보를 나누죠. 「사계」의 명조와 미주도 본인들이 원하는 삶을 향해서 정말 개미처럼 노력해 온 사람들인데요. 한 친구가 소설을 읽고는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어리석냐. 이 청약 아파트는 딱 봐도 돈이 안 되잖아"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두 사람이 주어진 선택지 내에서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내렸다고 생각해요. 청약 아파트에 당첨됐을 때만 해도 몇 년만 변두리에서 참고 살면 미래에는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겠지 생각해요. 그런데 예기치 않게 코로나19가 터지죠. 요즘에는 누군가 어떤 선택을 해서 실패로 돌아가면, 쉽게 그 사람 탓을 하잖아요. 그렇지만 그걸 어리석다고만 할 수 있을까요?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관계들도 흥미로웠습니다. 「피존」에서 수진은 재영을 취미 커뮤니티에서 만나 가까워지지만, 일터에서 함께 일하게 되면서 미묘한 감정이 오가는데요. 결국 수진이 던진 한 마디로 재영은 회사에서 해고를 당해요. 수진의 선택을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법학자 켄지 요시노가 『커버링』에서 이렇게 말해요. 사람들은 소수자에게 정체성을 드러내는 건 상관없다고 하면서도, 주류에서 벗어난 표현을 하면 바로 억압한다고요. 수진은 재영보다 앞 세대로서, 소수자성을 드러냈을 때 받는 불이익을 잘 알고 있고 체화하고 있어요. 직장에서도 자기의 삶을 이야깃거리로 삼지 못하고 숨기죠. 결국 사회적 압박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 동성 연인과 헤어지게 되고요. 반면, 재영은 "왜 이게 부끄러워요?" 하면서 더욱 드러내는 사람이에요. 수진의 눈으로 보면 재영의 행동이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 같아서 무책임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운 거예요. 저는 수진이 실수가 아니라 경고의 의미에서 재영에게 불이익이 될 말을 했다고 생각해요.
고유한 인물의 이야기를 전하는 일
소설을 읽으면서 '차별'의 문제를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이지의 다카코」와 「심해로부터」는 3대에 걸쳐 제주 4·3 사건 등 인물들이 겪는 역사적인 차별을 다룹니다. 각 세대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기에 까다로운 작업이었을 것 같은데요.
이 소설을 쓰고 나서 주변에서 "4·3 이야기죠?"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물론 4·3 이야기이지만, 그렇게 규정하면 제 꿈에 다카코가 나와서 양산으로 때릴 것 같았어요.(웃음) 작가로서 다카코와 미노루가 거대 서사에 짓눌리지 않고 고유한 인물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인물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하려고 했나요?
처음부터 4·3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동안 4·3에 관련된 논문이나 영화 등을 찾아보면서 이야기를 쌓아두고 있었는데요. 특히, 임흥순 감독님의 다큐멘터리 <비념>이 인상적이었어요. 일본으로 건너간 생존자 할머님들은 인터뷰 내내 말을 할 때마다 일본어가 먼저 나오게 된다며 답답해 해요. 단지 일본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에는 내지 출신 한국인 앞에서 제주말을 쓰는 순간 차별과 탄압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인터뷰가 일본어로 진행되는데, 가끔 제주말이 파편처럼 일본어에 섞여 나와요. 진술만 봐도 단순하지 않죠. 눈빛이나 표정을 포함하면 더 복잡해지고요. 보통 우리는 피해 진술을 들을 때 그 말이 매끄럽고 균일하게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두서없이 횡설수설하면 듣지 않아요. 질서와 규칙이 없고 혼란스러워서 한 번만 듣고 이해하기 어려우니까요. 그런 장면을 떠올리면서 소설을 썼던 것 같아요.
「심해로부터」에는 다카코의 남편 미노루의 이야기가 이어지는데요. 미노루는 오키나와에서 차별을 겪고 일본 본섬으로 이주한 사람이에요.
오키나와인들의 역사에 대한 논문이나 문학 작품을 많이 찾아 읽었어요. 거기에 오키나와인들이 조선인과 맺는 애증의 관계도 나오는데요. 본토의 차별을 받는 피해자라는 점에서 비슷한 처지이지만, 서로 자기네 처지가 낫다고 하는 기이한 갈등 관계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미노루가 직장에서 조선인 동료 한 씨와 맺는 미묘한 관계도 소설에 썼어요. 그렇지만 막상 소설을 쓰기 시작하자, 지금까지 조사한 것들을 다 잊어버려야 했어요. 이 인물들보다 거대 역사 자체가 주인공이 되어버릴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그냥 미노루와 다카코의 이야기를 쓰자고 생각했어요.
차별받는 위치에 있다고 해서 인물들의 모습이 단일하지는 않잖아요. 「복된 새해」에서 병서를 보고 그렇게 느꼈어요. 다문화 가정 2세로서 차별을 겪는 당사자임에도 일터에서는 구조적 차별에 묵인하는 복합적인 인물이죠.
사실 주변에 병서 같은 인물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차별을 비판하고 문제 제기를 하는 인물보다, 오히려 차별받고 싶지 않으니까 어떤 집단에 적극적으로 소속되겠다는 사람들이요. 병서는 아마 고향에서 차별을 받다가 서울로 와서 '이제야 여기서 내가 한 자리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공사 현장에서 내부 고발이 일어났을 때, 소장은 가장 먼저 병서를 의심하죠. 저는 병서를 '시트콤에 나오는 애 같아' 하면서 굉장히 귀엽고 안쓰럽게 봤어요. 유서를 쓰고 죽겠다는 사람이 계속 실수나 하고, 미용실이 보여서 머리나 깎고.(웃음)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발레를 굉장히 좋아해요. 발레를 하기 전에는 광화문 우체국으로 신춘문예를 접수하러 갈 때 다리를 후들거리며 걸었거든요. 그런데 발레를 하고부터 글쓰기가 안 풀리면 바로 몸을 움직여요. 발레를 하다 보니 몸의 언어가 소설의 언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치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계속 동작을 연습하고 도전하는 일. 용기가 필요한 일. 앞으로 그런 것들을 써보고 싶어요.
*정은우 소설가. 2019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 소설 『국자전』 등을 썼고, 제46회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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