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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모 “음악과 경제 결합을 처음으로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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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음악을 세계 공용어라고 말한다. 국경이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음악은 회화나 문학에 비해서 감상하는 데 필요한 사전 지식이 필요 없다. 그럼에도 모든 창작물에는 그 작품이 탄생하게 된 사회적 맥락이 있는 법. 음악도 마찬가지다. 한 사상가는 이렇게 말했다. 하부토대는 상부구조를 규정한다고.

 

음악평론가 임진모가 쓴 책 『팝, 경제를 노래하다』는 20세기에 전개된 영미 대중음악을 경제 상황에 비추어 해석했다. 이 책에 따르면 비틀스는 어느 순간에 번쩍하고 나타난 천재가 아니다. 물론 그들의 음악적 재능은 훌륭했으나, 전후 영국 경제가 불황에 시달렸다는 사실도 비틀스 탄생에 일조했다. 불황으로 사회적 진출로가 막힌 상황에서 영국의 젊은이들은 대서양 너머에서 활동하는 미국의 로큰롤 스타를 동경했다.

 

고용의 기회를 얻지 못한 가련한 이 젊은이들에게는 멋지게 포마드를 발라 넘긴 헤어스타일과 가죽 재킷 차림을 한 대서양 저편의 미국 로큰롤 스타들이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70쪽)

 

『팝, 경제를 노래하다』는 1970년대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전후하여 20세기와 21세기를 폭넓게 다룬다. 음악적 지식과 함께 정치경제를 꿰뚫는 시선이 없었다면 쉽게 쓰기 힘든 책이었을 것이다. 이게 가능했던 데는 여전히 고전적 평론을 고집하는 임진모의 뚝심 덕분이리라. 이미지와 영상이 범람하는 21세기에도 임진모는 음악을 사랑하는 본능과 사회과학적 통찰력이 기본이 된 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전적 평론가다.

 

임진모06.jpg

 

음악은 결곡 시대 속 산물



주제가 팝과 경제다.


음악 좋아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다. 보통은 멜로디, 구성이 좋다는 식의 예술적 이유로 좋아한다. 음악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과 듣는 사람은 시대 속 산물이다. 음악을 즐기는 데는 예술적 이유만 아니라 사회적, 시대적 이유가 있다. 빼놓을 수 없는 게 경제다. 경제를 중심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영미 팝 음악이 어떻게 동행해 왔는가를 보고자 했다.


처음에는 엄두가 안 났다. 첫째, 시간이 안 됐다. 지금도 방송만 8개를 한다. 글도 써야 하고. 책을 쓰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데 이런 상황에서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둘째, 책을 쓰려면 전문성이 필요하다. 내가 경제를 알아봤자 상식적인 수준에서 안다. 자신감이 결여됐다고 할까. 그래서 경제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기초 자료를 제시하고 각 시대 경제 분위기를 굵직하게 묘사했다. 1950년대 성장, 1960년대 폭발,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 마지막으로 1990년대 경제적 불평등. 자부심을 느끼는 건, 거친 수준이나마 음악과 경제의 결합을 처음으로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에도 이런 책은 거의 없는 듯하다.


영국과 미국만 아니라 대한민국 이야기도 있는데.


그 부분은 강화하려고 했지만 다른 책으로 이야기하려 한다. 괜히 했다가 책 흐름을 깰 수도 있으니까. 사실 우리는 경제상황과 음악이 밀접하지 않았다. 음악은 언제나 쾌락적이거나 언제나 우울했다. 음악이 다양하지 않다. 그래서 책에서는 독자가 기분 안 나쁠 정도로 IMF 때 펑크가 나왔고, 남진과 나훈아를 다루려고 미국 농민 부분을 일부러 다루기도 했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장 중 하나가 남진과 나훈아 부분이다.


미국이 최대강국이라 해도 경제적으로 보면, 1970년대 이후는 쭉 불황이었다. 클린턴 시기 잠시 호황이었고. 이렇게 미국 경제 사정이 안 좋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어두운 부분 분량이 더 길다. 혹시 임진모의 음악적 선호가 반영된 건가.


그렇지 않다. 내가 생래적으로 당기는 음악은, 비틀스 음악이나 펑크까지다. 그 이후로 책을 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전에는 억지, 견강부회라 해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니까 쓰기가 쉬웠다. 1980년대 대처리즘, 레이거노믹스 이 부분부터 잘 써야 하는데 자료가 허약하다. 그런데 우리가 좋은 경제가 기억에 남나? 나쁜 게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20대의 이데올로기가 뭘까? 자아실현이나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취업이다. 어렵게 취업해도 다 관두려 하고. 미래 불안이 육화된 상황인데,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었다. 지금만이 아니라 늘 그랬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마이클 잭슨이 명이라면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것은 암이었다. (161쪽)


그래서인지 브루스 스프링스틴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노동계급의 대변인이다. 서민이 느끼는 경제적 황폐를 주된 소재로 노래했다. 그러니 이 책에서 여러 차례 나올 수밖에 없다. 마지막도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High Hopes’로 했다. 이 가사 죽이지 않나. 이렇게 글을 끝낸 데는 크리스 헤지스의 『미국의 굴욕』이라는 책 덕분이다. 온통 330쪽을 우울한 이야기를 하다 4페이지에서 그래도 우리는 아직 희망이 있다, 이런 책인데. 짧은 4쪽이 주는 파괴력이 엄청나다. 그래서 거기서 힌트를 얻어서, 나도 이렇게 끝을 구성했다.


1970년대 넘어오면 거대담론이 사라지고 문화비평으로 오지 않았나. 지젝, 스튜어트 홀, 프레드릭 제임슨, 이런 사상가로부터 영향도 받았나.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글, 높이 평가하는 게 글이지만 나는 글을 잘 못 쓴다. 글은 정말 아닌 거 같다. 그냥 쓴 거다. 지젝은 무슨 지젝. 그런 이야기하면 욕 바가지로 먹는다. (웃음)


한국 대표 음악평론가로서 삶


오이뮤직 핫뮤직 GMV 등 음악잡지가 다 폐간됐다. 지금 이즘은 14년째 건재하다.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뭔가?


내가 매달 돈을 제대로 내고 있다는 것. (웃음)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내가 돈을 못 벌었다면 사이트 유지 못했다. 매달 300만 원 이상 들어간다. 그보다 근본적인 건, 음악 정보를 공유하고 싶었던 마음이다. 많은 사람이 음악 이야기하고 많이 듣고, 사랑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나는 대중과 함께할 수 있는 음악이 좋다. 마니아 취향을 드러내는 순간, 더 멀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이즘이 욕을 먹는다. 음악 마니아 쪽에서는 너무 뻔한 걸 이야기하고 신조류에 둔탁하다고 비판한다. 충분히 받을 만한 비판이지만, 범대중적인 게 더 중요하다. 방문자 천 명이 더 위대한 사이트일 수도 있지만, 나는 방문자수 10만, 15만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간혹 어떤 사람은 모르는 음악, 모르는 뮤지션을 이야기하면서 우쭐해 하기도 하는데, 이런 게 패망의 지름길이다.


영화 평론가는 우리가 떠올리는 여러 명이 있는데, 음악 평론은 임진모가 독보적이다.
 
아직 미디어 샤워를 못 받아서가 아닐까. 기량 뛰어난 친구가 많다. 내 자식뻘 인터넷 세대가 쓴 글을 읽어보면, 야 이런 생각을 하네, 하며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재야의 숨은 고수가 많다. 앞으로 10년 정도 있으면 부상할 거라 믿는다. 그런 친구가 나오면, 찬사를 보내고 귀농하려고 한다.


미디어 샤워라고 했는데, 사실 영화에 비해서 음악은 지면이 없지 않나.


영화 잡지 쪽도 많이 없어졌지만 음악보다 사정이 나은 건 영화는 차세대 인문학이라는 타이틀을 이미 얻었다. 개인적으로 차세대 인문학은 다소 과잉된 타이틀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쨌거나. 영화 평론가가 아니더라도 소설가, 학자도 영화 평론하지 않나. 이렇듯 담론이 구축되어 있다. 영화 쪽 글쓰기는 확실히 지적인 코드가 있긴 하다. 그런데 음악을 그렇게 쓰는 게 좋은지는 고민해본다. 물론 영국이나 미국 평론가처럼 쓰고 싶은 생각은 있다. 그렇지만 잘못되어서 마니아적 느낌을 줄 경우, 오히려 더 후퇴할 수 있다.


뉴스에서 대중음악을 주제로 한 기사에서 가장 단골 취재원으로 등장한다. 힘들지 않나.


마이클 잭슨 죽었을 때, 일제히 몰려왔다. 지금 레전드를 소환하는 시대고, 나이를 보는 것 같다. 저런 레전드를 젊은 사람이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나. 나이 때문에 피해도 보지만, 덕도 보는 상황이다. 몰려서 피곤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내가 기자 출신이기에 기자들 마음 잘 안다. 힘들지만 성의 있게 답하려고 애쓴다.


지금 K-Pop, 한류 논의가 많다. 지겹도록 많이 들은 질문일 텐데, K-Pop의 힘과 한계를 어떻게 보나.


옛날에는 나도 명과 암을 분리했다. 요즘은 어둠과 빛은 친구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성공과 실패는 서로 사귄다고 표현한다. K-Pop도 똑같다. K-Pop 장르가 획일적이라는 비판이 있는데, K-Pop이 없었다면 한국음악이 바깥에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까? K-Pop 흥행은 우리 문화의 기본을 지켜가는 충실한 과정이다. 하지만 문화의 기본 과정은 장르 다양성이라는 점에서 이제는 음악 내외의 노력이 중요하다.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은 K-Pop을 깎아내리고, 정부 관료처럼 잘 모르는 사람은 K-Pop에 과잉적 편애를 보인다. 이 극단에서 균형을 찾으며 문화의 기본을 빨리 확립해야 한다. 그런데 ‘한계’라는 말은 너무 저널리즘적 접근이다. 솔직히 한계 아닌 게 어딨나.


김동률 서태지 등 1990년대가 귀환하고 있는데.


1990년의 역습이 왜 주목받을까? 가까운 과거 시절을 확보했다는 게 중요하다.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이 돌아옴으로써 아이돌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서태지 음악이 좋다 나쁘다는 개인적 취향이고 이들이 돌아오면서 그동안 부족했던 장르 다양성을 찾아간다는 게 중요하다.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고전적 평론에 충실한 평론가


프로필에 적혀 있는 ‘고전적 평론’은 어떤 의미인가?


평론가의 첫 번째 작업은 뭘까? 비평이든 정보 전달이든 글쓰기로 이뤄진다. 우리나라 평론가 중에 글 많이 쓰는 사람 있나? 글쓰는 사람보다는 방송에서 말하는 사람이 평론가로 보여진다. 나도 방송을 하긴 해도, 힘들지만 여전히 글을 쓴다. 한 달에 원고 10개 이상을 쓴다. 강의도 글쓰기의 연속이고 지금 인터뷰도 글쓰기의 연장이다. 글 없이 방송하면 망한다. 글이 평론의 시작이자 끝, 즉 전부가 글이라는 게 고전적 평론이 의미하는 바다 .


음악평론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몇 가지가 조건이 필요하다. 가장 기본적인 건 음악을 좋아하는 동물적 본능. 음악에 무조건 끌려야 한다. 본능도 중요하지만 평론가가 되려면 음악학과 음악사회과학, 이 두 가지를 갖춰야 한다. 사회를 읽기 위해서는 기본이 역사와 철학. 더 중요한 건 경제학. 이 책이 바로 그 시도다. (웃음) 이 공부를 안 하니 평론이 허술하다. 열심히 음악 듣고, 사회 속에 음악이 있다는 걸 알고 사회과학을 접하면 좋겠다. 그리고 이것을 기본적으로는 글로 풀 수 있어야 한다.


음반 제작, 평론, 방송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그 중심에는 음악이 있다. 앞으로 새로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나.
 
꼰대다, 임진모가 사라져야 음악판이 바뀐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맞는 말이다. 세상의 주인은 20대, 30대지 나 같은 50대가 아니니까. 은퇴를 생각하는 나이이지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나만의 영토는 있다. 그게 바로 역사라는 개념이다. 앞으로 한국대중음악사를 어쨌든 완성해야 한다. 꼭 내가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 부분은 좀 끝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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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경제를 노래하다임진모 저 | 아트북스
『팝, 경제를 노래하다』는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는 이 책에서 1930년대 경제공황기부터 2000년대 세계금융위기까지 경제사를 대중음악을 통해 훑어 내려간다. 지은이는 대공황기의 ‘희망 송’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Over the Rainbow」로 시작해 2000년대 세계금융위기로 경제가 붕괴된 상황이 반영된 그린 데이의 「네 적을 알라Know Your Enemy」로 연결 지으며 책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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