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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대충 살아야 꿈이 보인다 - 하상욱 『서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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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시를 왜 읽을까? 감동받기 위해, 문학적 감수성을 얻기 위해? 누군가 “웃고 싶어서”라고 대답한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고 웹툰이나 코믹소설을 읽으라고 말해야 할까? 하상욱의 『서울 시』를 읽다 보면 “웃고 싶어서”라는 대답이 정답일 수도 있다. 5초만에 읽을 수 있는 ‘서울 시’는 깔깔깔은 아니지만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며 피식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문구를 마음에 새기며, 맺음말에 멈칫 서성이고 있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지난해 여름에 발간된 하상욱의 전자시집 『서울 시』는 출간 10일 만에 3만 건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10만 명 이상의 SNS 유저들이 1,2권을 소장했다. 10~25자짜리 단문 ‘서울 시’는 일본 고유의 문학 장르인 ‘하이쿠(俳句)’와 닮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 시』의 표지를 살펴보자. 지하철노선도를 형상화했다. 정차하는 역은 도시, 현대인, 관계, 공감시집, 페이스북 등이다. 두 번째 페이지를 열면 작가 소개가 나온다. 그런데 작가 하상욱의 전신 사진, 소 사진, 개 사진 뿐이다. 작가의 출생지, 학력, 경력은 찾아볼 수 없다. 텍스트 자체가 부재다. 그렇다면 세 번째 페이지 ‘작가의 말’을 펴보자. 헛헛,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작가다.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독자에게 ‘잘생긴 말 사진’ 하나를 투척해놓는 뻔뻔한 작가다. 하물며 목차는 제대로 실었을까? 역시, 작가의 목을 누군가가 발로 차는 사진이 독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서울 시』는 왜 ‘서울 시’일까? 하상욱 작가는 “시인의 특별한 감성을 느끼는 글이 아닌, 당신의 평범한 감성을 꺼내는 글이 서울 시”라고 말했다. 도시와 서울 시 중, 고심 끝에 고른 제목이다.


현재 전자책 서비스기업에 다니고 있는 작가 하상욱은 마케팅팀 소속으로 서비스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범상치 않은 외모답게 회사에서도 ‘튀는 후배, 튀는 선배’로 유명하다. 『서울 시』가 화제가 되며 회사 내에서 스타가 되었겠다고 물으니, “글쎄요. 워낙 평소에 이상한 일들을 많이 하고 다녀서 그렇게 놀라는 분위기는 아니었어요”라고 말한다. 지인들도 썩 놀라는 반응은 없었다고 한다. 과연, 물건이다! 우연히 페이스북에 올린 네 줄의 시로 ‘작가’라는 호칭을 얻게 됐지만, 크게 놀랍거나 기쁜 일은 아니라는 시큰둥하고 시니컬한 하상욱에게 ‘서울 시’의 탄생 비화를 물었다.




웃기려고 쓰는 글 아니다. 나는 진지하다

평소에도 글 쓰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나? 『서울 시』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건가?

새로운 매체가 생기면 관심을 갖지 않나? 페이스북이 처음 나왔을 때 이것저것 올리면서 지인들의 정보를 공유했는데, ‘서울 시’도 그냥 우연히 올린 건데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회사 단체 메일로도 한 번 보내봤는데, 직원 한 분이 전자책으로 내도 좋을 거 같다는 피드백을 줬다. 사실 처음에는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실현됐다. 아무래도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이 전자책을 유통하는 회사니까 어렵지 않았던 거 같다. 나 혼자 집에서 만들어서 그날 바로 등록하는 절차로 진행됐다(웃음).

이렇게 단행본이 출판될 줄 예상했나?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원래 어떤 계획을 세우는 성격도 아니고 욕심도 없었다. 무료로 이미 공개된 전자책을 누가 과연 사서 읽을까 라는 궁금함이 있을 뿐이었다. 사실 사람들이 살 만큼 좋아해야 그걸 사는 것 아닌가. 『서울 시』가 콘텐츠 개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궁금했다. 출판사 측 말로는 괜찮게 팔린다고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직 모르겠다.

글자수를 맞추고 띄어쓰기를 변형한 것을 보면, ‘서울 시’는 시를 디자인했다는 느낌이 든다. ‘서울 시’를 어떻게 쓰고자 노력했나.

기승전결을 생각해서 썼다. 영감이 떠오르면 한번에 쓰고 그런 게 아니라, 제목을 정해놓고 생각한 후 퍼즐 맞추기 식으로 채워 나갔다. 단어를 집어넣었다가 뺐다를 반복했다. 지금까지 150여 편을 썼는데, 영감이 떠올라서 한번에 쓴 작품은 몇 개 안 된다.

웃음, 유머를 주는 시이지만 가끔 씁쓸한 기분이 들게 하는 시들도 있다. 이를테면 ‘효도’ 같은 작품은 꽤 먹먹하다. 웃음을 장치로 두되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진지하게 다가온다.

‘효도’는 의도하고 쓴 글이다.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신 글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울 시’가 재밌다고 평가하지만 나는 웃기려고 쓰는 게 아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슬픈 이야기를 담으려고 하는데, 99%가 웃음이라면 나머지 1%는 남겨 놓고 싶다. 웃기는 글에서 끝나길 원하지 않는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1%의 가치인데 내 능력에 달려있는 거 같다. 물론, 웃음을 잃고 싶지 않다. 중요한 가치니까.

요즘 웹툰이 대세다. 『서울 시』를 읽으면서 웹툰으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웹툰을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이말년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 나와 성향이 조금 비슷한 것 같다. 이말년의 웹툰은 가볍게 스토리를 이어가지만 깊게 들어가면 포장을 가볍게 했을 뿐, 진지한 내용들도 많다.

『서울 시』에 대한 기억에 남는 서평이 있나?

가끔 ‘서울 시’를 깊게 분석하시는 분들이 있다. 내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서평을 읽을 때 감사하다. 가장 기분 좋은 댓글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 최근에는 어떤 독자 분이 “재밌고 신선한데 책으로서는 가치가 없다”고 써놓은 글을 읽었다. 이 말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남의 생각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대학교 특강 연사로도 활동 중이다. 기업들로부터 『서울 시』를 활용한 제안도 많이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광고를 위한 글이 아니라, 내가 재밌게 쓸 수 있겠다 싶은 건은 수락을 하고 싶은데 아직까지 그런 곳으로부터는 제안을 받지 못했다. 일이라는 느낌이 드는 일은 하고 싶지 않고 내가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대학교 특강을 가는 건, 대학생활을 제대로 누리지 못해서 후회가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 대학생들이 한 번 만나 보고 싶다고 연락이 오면, 웬만하면 다 만나줬다. 대학생들과 함께 일했던 적도 있고. 그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사회적인 요구에 휩쓸려 너무 힘들게 살지 말라”는 이야기다. 요즘 대학생들을 만나면 오히려 제일 꽉 막힌 세대인 것 같다. 기회에 대해서 오해를 하는 거 같아서 슬프다.




꿈을 이룬 건 아니다. 내 인생의 이벤트일 뿐

이야기를 나눠보니, 주관이 매우 뚜렷한 성격인 것 같다. 굉장한 달변가이고.

말싸움, 완전 잘한다(웃음). 논쟁도 즐기고…. 하지만 싸움으로 이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논쟁은 좋지만 싸움이 되는 건 싫어한다. 내 이야기만 하고 내 이야기만 강요하면 싸움으로 번지기 때문에 조심한다. 평소에는 재밌는 말을 많이 하는 성격이지만 한편으로는 차갑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시니컬하고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는 성격은 아니다. 그래도 요즘엔 많이 부드러워진 거다(웃음). 사람들의 속마음을 잘 접근하는 편이라서 지인들에게 연애상담을 많이 해준다. 특히 여자들이 잘 찾는다. 내가 딴 생각을 품었다는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는 호감이 있으면 대놓고 표현하는 스타일이다(웃음).

연애상담, 어떻게 해주나? 독설가인가?

솔직하게 말해준다. 배려 이런 거 없다. 정확하게 이야기해준다. 현실적으로 착각할 만한 이야기를 위로랍시고 해주지 않는다. 그게 맞다고 본다.

평소 취미는 무엇인가? 왠지 독서는 아닐 것 같다.

책 읽는 거 어릴 적부터 정말 싫어했다. 누군가의 생각을 주입하는 것, 그것을 그대로 학습하는 것 싫어했다. 책 안 읽는다고 글을 못 써야 하나?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선입견을 갖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책 읽기 싫어한 어린 시절, 이야기가 궁금하다. 괴짜였나?

외동으로 자라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누군가의 간섭 하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던 거 같다. 주변에 빨리 일탈한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렇다고 절대 휩쓸리지 않았다. 쟤는 쟤고, 나는 나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방황한다고 나도 꼭 방황하라는 법은 없다. 어릴 때 게임을 엄청 좋아했는데 대화집, 공략집을 보면서 실력을 올리는 게 너무 싫었다. 누가 방법을 알려주는 것에 대해 미친 듯이 거부했다. 포토샵도 책 없이 그냥 습득했다. 게임 좋아하는 사람들을 오타쿠라고 부르곤 하는데, 나는 그들이 무조건 오타쿠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타쿠가 나쁜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상욱의 대학생활은 어땠나? 평범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보통 대학생들처럼 영어공부도 하고 인턴도 하고 공모전도 하고 그랬다. 학점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좀 더 대충 살지 못했던 게 아쉽다. 좀 더 대충 살았다면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 더 일찍 찾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다. 더 많은 기회가 있을 수 있었는데 대학생으로서 해야 할 것 같은 일들을 하다 보니, 그걸 놓치진 않았을까. 지금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좀 더 맘대로 살 고 싶다. 일탈하고 싶다 이런 게 아니라, 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다.

디자이너가 될 생각은 언제부터 했나?

어릴 때 꿈은 만화가였다. 만화를 포기한 건 만화가로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다. 요즘 웹툰 작가들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만화를 그리지만, 예전에는 유명 작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만화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난 골방의 폐쇄적인 분위기를 견딜 자신이 없었다. 시각적인 훈련은 돼있다고 생각했고 개성과 아이디어를 발휘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디자이너가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주변 반응은 어떤가? 대학 졸업 후에 계속 직장생활을 해왔는데 갑자기 작가로 데뷔했으니 놀라지는 않나.

워낙에 튀는 스타일이고 이상한 짓(?)을 많이 하는 걸로 유명하기 때문에 반응이라고 할 것도 없다.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반응이다(웃음). 학창시절부터 사회도 많이 보고, 여기 저기에서 노래도 부르고 무대에 자주 올라갔다. 성격이 뭔가를 엄청 노력하고 그러는 성격은 못 된다. 재미있으면 하고 재미없으면 안 하는 스타일이다. 『서울 시』가 출간되어 기쁘지만, 꿈을 이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매우 소중하고 중요한 책이지만, 내 인생 가운데 이벤트 같은 일일 뿐이다.

‘서울 시’의 업데이트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에 따른 부담감도 생길 것 같다.

사람들이 내게 기대감을 갖고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그것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한다. 누군가 기대를 하면 그것을 충족시키려고 무리수를 두는 일도 생기기 마련인데, 그것 때문에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내게 너무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가 실망해서 떠나는 일, 달갑지 않다. 반가운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초심 같은 건 원래 없었고, 지금 이렇게 화제가 된 상황이 ‘되게 좋다’ 이런 것도 아니다. 흥분감 보다는 걱정이 많다. 이런 상황이 자연스럽게 끝나길 바랄 뿐이다.

현재 하상욱의 목표는 무엇인가.

지금처럼 ‘서울 시’를 꾸준히 쓸 건데, 독자들도 언젠가는 재미없어 할 거라 생각한다. 난 시한부라고 생각한다. 때가 되면 미련 없이 관두고 싶은 게 내 목표다. 사람들이 ‘서울 시’를 식상해 하고 기대하지 않을 때 불쾌감 없이 떠나고 싶다.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고 생각하고, 아니 있으니까 빨리 평정심을 갖고 돌아가는 게 나의 목표다. 물론 슬프고 안타깝겠지만 연연해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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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하상욱 저 | 중앙북스(books)
단 두 줄의 짧은 글을 통해 SNS 10만 유저의 머리와 가슴을 관통한 『서울 시』 종이책이 출간됐다. 이 책은 무료로 출간되어 전자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1,2권이 10만 건 이상 다운로드된 컨텐츠다. 하상욱의 시는 짧지만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찰나에 관통하는 순간적인 심상은 읽는 이들에게도 명료하게 다가간다. 본 책은 전자 시집에서 발표된 시와 번외편을 포함해 시는 총 119편, 번외편으로 알려진 카피 같은 산문은 총 54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자책 10권 분량에 달하며, 짧은 전자책을 읽고 아쉬웠던 수많은 독자들을 위한 선물과도 같은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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