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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못 알아듣게 일본어로 랩 했다” - 롸마(R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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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 라마(RAMA)는 국내에서 믹스테잎의 최초 전파자로 알려져 있다. 그가 2013년 느닷없이 < 죄송합니다 >라는 앨범타이틀과 함께 ‘라마’에서 ‘롸마’로 개명한 채 컴백했다. 이름을 바꾼 것도 그렇지만 죄송하다니, 도대체 무슨 연유였을까. 겨울비 내리는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대담하는 내내 롸마는 솔직한 입담을 뽐냈고, 인터뷰어들은 죄송하다는 앨범타이틀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의 유쾌한 에너지를 한껏 선물 받을 수 있었다. ‘겨울비’는 내렸지만, 우리는 슬프지 않았다.


레이블 STGworld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레이블이지만 급여를 지급하거나 영업 활동을 하는 회사 개념은 아니고요. 제가 2009년부터 활동이 정지되어 있었던 만큼 지금의 STGworld는 롸마와 제 4금융을 위해 존재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에스코(Esco)는 결혼해서 잘 살고 있고요.

해외 아티스트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레이블 소속이라기보다는 ‘월드’에 포함되는 관계에요. STGworld안에서 레이블과 모임은 별개로 두거든요. 원래는 다른 아티스트의 앨범도 STGworld에서 내려는 계획이 있었는데 교섭이 있었다가 지금은 중지된 상태에요.

왜 제4금융인가요?

제3금융, 제4금융은 최후의 수단으로 많이 쓰이잖아요. 저도 마지막 수단이라는 의미를 더하려고 써 봤어요. 이름으로 고민을 많이 해 봤는데 RAMA의 약자를 Rama And Money Angels로 넣어도 뜻이 통하더라고요. 대부업 광고 이미지도 나고.(웃음) 대부업체들 광고를 보면 굉장히 친근한 느낌을 사람들에게 어필하잖아요. 역설적인 효과를 노렸죠. 멤버들 콘셉트를 최근의 대세인 섹시함과 거리가 있는 귀여운 느낌으로 잡은 것도 역설의 연장이에요.

7주 연속으로 싱글을 내셨는데, 작업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원래 시작은 ‘7번 승부’라는 프로젝트였어요. 일곱 번째가 앨범 발표였고 여섯 곡을 연속으로 싱글로 냈죠. 하나씩 밟아나가는 단계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활동을 쉬다 보니 이름도 사라진 것 같아서 나름의 잊히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죠. 힙합 커뮤니티 뉴스 란에서의 잦은 노출을 노린 것도 있고요. 사실 그게 제일 크긴 한데(웃음)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 같긴 합니다.


「스타탄생」 싱글 커버에 쓰인 스티커사진은 어떻게 찍게 된 건가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을 많이 하다가 옛날에 유행했던 90년대 스티커 사진을 생각해봤어요. 그 사진은 자기 자신이면서도 자신이 아닌 가공된 모습이잖아요? 지금은 거의 사라져서 일본에서나 여고생들이 하는 키치한 사교활동정도로 인식되고 있는데 이걸 소재로 해도 재밌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스타탄생」이니까 커버에도 스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전에 한창 힙합 아티스트들과 음악 팬들을 떠들썩하게 했던 < Show Me The Money >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송래퍼를 불렀는데, 이 친구가 지금 스나이퍼사운드와 계약이 됐거든요. “형님 제가 뭐든 다 해드리겠습니다” 하던 녀석이 이제 이런 사진은 자기 스웩(Swag)과 안 맞는다고 발을 빼서(웃음) 그래서 그냥 저 혼자 찍었어요.


「스타탄생」의 가사를 통해 보면 요즘 오디션 풍조에 대해 할 말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일단 한 쪽에서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생각할 여지를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싶었어요. 저는 앞으로 이런 현상이 더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제 주변에도 자기가 어디 나왔다 어디 나왔다 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고요. 냉소적으로 읊기는 했지만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곡이에요. 폭소보다는 ‘이게 뭐야!?’ 이러면서 입꼬리가 (손가락을 갖다 대며) 이 정도로 올라가게 만드는 그런.

세 번째 정규 앨범인데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었나요?

아티스트는 대중의 관심과 피드백을 통해 성장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도로변의 잡초처럼 무관심 속에 음악을 하는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힘이 빠지더라고요. 생계활동을 위해 취직도 해보고 레슨 활동도 해보고 했는데 마음이 못 견뎠어요. 결국 다시 한 번 음악으로 승부를 보려고 앨범을 발매했죠.

앨범명이 < 죄송합니다 >입니다. 누구에게 어떤 점이 죄송하다는 건지 궁금한데요.

사람들이 짐작은 하게끔 하면서도 생각의 여지를 줄 수 있는 앨범을 만들고 싶었어요. 앨범에 넣은 얘기처럼 “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올해에도 랩 음악을 계속합니다.”일수도 있고요. “죄송합니다. 라마가 아니라 롸마입니다.”일수도 있고요. 기타 등등 여러 가지로 생각하셔도 좋아요. 죄송합니다. 또 나왔습니다. (웃음)

곡별로 주제와 소재가 다양한데요. 앨범에 대한 콘셉트를 생각하고 잡는 것인가요?

콘셉트라기보다는 이번 앨범은 누적의 결과에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여러 시기에 작업한 곡들을 모은 앨범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3년에 걸쳐 세곡을 만들고 2개월에 걸쳐 나머지 열곡을… (웃음) 시기도 각각 다르고 콘셉트도 다르고. 「시간여행」의 경우는 랩 스타일에서도 차이가 있고 해서 트랙을 배치하는데 애를 먹었어요. 한곡이지만 사실은 세곡짜리 곡이다 보니 작업량은 믹싱도 세배였거든요.

「거 참 잘한다」는 원곡이 무려 1938년 김종조 님의 것인데, 어떻게 찾게 되신 건가요?

빅터 유성기 원반 시리즈라고, 유성기 원판을 나중에 다시 복원한 LP가 있어요. 거기에서 추출한 음원으로 만든 곡이에요. 중구 황학동에 가면 지금도 많아요. 복원에 복원에 복원을 거쳐 만들어진 거죠. 이북 출신에 연고도 없는 분의 곡이라 저작권 협회에 전화했더니 쓰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을 거라는 답변이 와서 쓰게 됐어요.

들어보니 랩이랑 비슷한 형식이더라고요. 운율도 맞고. 박자를 좀 맞추고 리듬도 새로 찍어보고 LP의 다른 트랙에서 추출한 비트를 또 넣어보고 하면서 만들었어요. 힙합이 아무래도 융합의 상징이잖아요. 항상 그 때의 트렌드와 융합하며 발전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과거와의 융합도 담아보고 싶었어요. 앨범에서는 쉬어가는 느낌으로 배치했고요.



앨범에 참여한 알파(Alpha)와 지미 핌프(Jimmy Pimp)는 어떤 사람들인가요?

일단 둘 다 프랑스 사람들이에요. 동료 중에 에스코(Esco)가 언어에 일가견이 있어요. 영어는 물론이고 중국어 일본어 불어까지 다양하게 구사할 줄 알아요. 에스코가 당시 마이스페이스에서 활동을 하면서 지미 핌프를 만났거든요. 글로벌 콜라보레이션을 해보자고 2009년 당시 지미 핌프한테 ‘이런 콘셉트의 곡이 있는데 같이 해보자’라고 제안을 한 게 녹음으로 이어진 거죠. 그러면서 지미 핌프가 알파도 같이 데려오고.

앨범 속지에 지미 핌프와 알파가 참여한 부분은 ‘프랑스어라서…죄송합니다’라고 써져 있고 가사가 생략되어 있던데요.

가사 좀 보내달라고 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이 안 와서…(웃음) 에스코가 해석해보려고 하긴 했는데 랩 언어상 불분명한 부분이 분명 존재하더라고요. 관련학과 교수님들도 은어들이 섞여있다 보니 100% 기술은 힘들 것 같다고 해서 아예 넣지 않는 방향으로 갔어요. 그래도 아는 사람이 들으면 상당히 재미있는 가사에요.

롸마 본인도 일본어 랩을 한 곡이 있습니다. (「Viper music」) 어떻게 넣게 된 건가요?

그게 사실 부끄러운 얘기인데요. 음악계에 데뷔했다가 이제는 망했고 (웃음) 이런 과정들을 랩으로 하려고 했는데 부끄럽고 죄송해서 한국말로는 못하겠더라고요. 사람들이 잘 못 알아듣게 일부러 일본어로 한 거예요. 그래도 라임에 신경을 쓰면서 일본 본토 래퍼가 들어도 ‘이정도면 꽤 하는데?’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했어요.

가사 내용은 ‘믹스 테잎을 발표해서 맨날 놀고 여자 만나다 열심히 작업도 안 하고 망했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왔고 이제 너의 맘에 은밀하게 침투하겠다’ 뭐 이런 내용이에요.(웃음) 일본 래퍼 지브라(ZEEBRA)의 스타일도 오마주했고요.


「시간여행」은 가사의 수위가 상당한데요. 시국적으로도 그렇고 내보이며 마지막으로 고민한 점은 없었나요?

이 곡의 경우는 대선 시즌에 만든 곡은 아니고, 실제로는 2010년에 제작된 곡이에요. 랩 스타일로만 단순히 옛날 스타일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힙합의 역사와 한국의 역사를 동시에 담는 융합적인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어요. 랩 스타일과 비트에는 힙합의 역사가 담겨 있고 가사에는 한국의 역사가 담겨 있죠. 좀 더 소스를 붙여서 과거의 느낌을 더 내보고 싶은 그런 아쉬움은 있어요.

「웃는 남자」는 속된말로 ‘기승전병’의 구조 같은데요. 의도한 건가요?

네 맞아요. 서사 구조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스토리텔링 랩에 있어서의 서사구조를 소위 ‘덕후 문화’적으로 표현한 거죠. 2집의 ‘달콤한 데이트’에서도 비슷한 진행이 있었어요. 이번에는 한 발짝 더 나간 거죠. 우려가 되는 건 랩적인 스킬을 좀 더 보여줬어야 되는데 너무 문학적으로만 접근한 것 같아서… (웃음) 청자들이 생각하는 테크닉은 이런 테크닉이 아니라 다른 테크닉이니까요. 반성하는 중입니다. (*그는 이 ‘랩적인 스킬’을 ‘후루룩짭짭훅짭짭’이라고 표현했다.)


1980~1990년대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는데 개인적인 애착이 담긴 것인지요?

네. 정말 그렇죠. 우리 30대들이나 20대 중후반들이 요즘 소비의 주체로 떠오르고 있잖아요. < 응답하라 1997 >도 그런 것 때문에 반향을 일으킨 바 있고요. 「93년」같은 경우는 그 세대들에게 편지를 보내듯이 가사를 만들어 봤어요. 가사에 ‘블랙죠 초코바’ 같은 것도 나오고요. 그런 세부적인 설정들이 제 또래들에게 ‘아 그 때 그거!’하면서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면 했어요.

가사들이 매우 현실에 가깝습니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주 소재로 삼는 이유가 있나요?

저도 몰랐는데, 제가 리얼리즘적인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있더라고요.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고 서적은 빅토르 위고의 작품을 좋아해요. 상황을 열거하며 세밀한 묘사를 하다가 마지막은 휴머니즘으로 끝내고 그런 구조가 와 닿더라고요. 모티브를 많이 얻었죠. 메시지를 넣더라도 ‘이게 이렇게 됐으니 이건 이렇게 돼야 해. 일어나라 스탠드 업!’ 이런 게 아니라 ‘이런 현상이 있었고 어떠어떠한 것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 쩜쩜쩜’하면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수도 있고 다시 들어보게 할 여지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메시지도 교조적으로 보이지 않고요.

한편으로 사회의 큰 부분을 겨누던 예전에 비해 이번에는 일상에 가까운 느낌이 더 큰 것 같기도 한데요. 시선이 바뀐 이유가 있나요?

사회적 메시지도 담겨져 있지만 그걸 판단하는 건 청자들의 몫이라 생각해요. 이번 앨범에서는 여러 표현을 담아 보고 싶었어요. 향후에는 모더니즘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I don't like’하는 것도 해보고 싶어요. 아무래도 제가 오랫동안 힙합 신에 몸을 담고 있지 않아서 그런지 최근의 경향에 소홀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오는 길에도 최근 음악들 열심히 들으면서 왔어요.

어떤 음악을 들으며 오셨나요?

치프 키프(Chief Keep)를 많이 듣고 있어요. 결국에는 부자가 된다(< Finally Rich >)라는 앨범인데, 이런 식으로도 랩이 가능하구나 싶을 정도로 표현법이 독특해요.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는 리얼하게 랩을 하는 편이잖아요. 치프 키프 같은 경우는 켄드릭 라마와는 상대적인 느낌이 있어요. 그림으로 치면 거칠게 채색됐는데 어디서도 못 보던 그런 그림을 보는 기분. ‘치프 키프는 무조건 구리고 켄드릭 라마는 무조건 최고다’라는 흐름에도 저는 반대에요. 그렇게 말하는 친구들 보면 “와 영어 진짜 잘하나 보네” 싶은 느낌이랄까. (웃음)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켄드릭 라마도 상업적으로 굉장히 영민한 장치들을 많이 사용했거든요. 닥터드레(Dr. Dre)와 애프터매스(Aftermath) 쪽에서 지원사격을 받는다든지 레이디가가와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한다든지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있잖아요. 그런 장치가 없었다면 저는 성공을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평단에 대한 호평도 일종의 현상이었다고 생각하고요. 물론 좋은 앨범이에요. 그렇지만 이 앨범이 2012년 최고의 앨범으로 맨 꼭대기에 있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구심이 있어요. 왜냐면 저는 롸마이기 때문에 라이벌인 라마에 대해서는 항상 비판적인… 죄송합니다. (웃음)


프랭크오션(Frank Ocean)은 어땠나요?

엄청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런 시대에 이런 음악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많이 놀랐어요. 역시 SNS의 힘은 위대하고 (웃음) 잘하려면 트윗도 잘해야 하고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이런 걸 컬트적인 현상으로 보거든요. 문화예술 종사자들이 돌파구를 만드는 방식이죠.

과거만 해도 인기 있던 앨범의 방법론은 백화점식 앨범으로 당시 핫한 래퍼들 다 피쳐링으로 넣고 그런 거였잖아요. 이것저것 다 나열하고 여성 보컬도 들어가고. 이제 그런 시절은 지나간 거 같아요. 그것보다는 팬덤을 구축하는 게 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레이블 중에서는 일리어네어가 그래서 부러워요. 더 콰이엇이 맞팔해줘서 고마웠어요.(웃음)


켄드릭 라마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롸마로 철자를 바꾸었다고 하는데, 순수하게 켄드릭 라마 때문에 바꾼 건가요?

사실 검색어에 오르고 싶었던 이유도 있고요. 켄드릭 라마가 너무 핫하다 보니까 이 상태로는 ‘라마’라고 하면 더 이상 사람들이 나를 떠올리지 못하겠다는 위기감이 있었어요. 인터넷에서도 사람들이 ‘켄드릭 라마 쩐다’, ‘켄드릭 라마 대박’ 이러다가 나중에는 ‘라마 4번 트랙 말이야’ 이렇게 줄이더라고요. 이런 거 보면 저는 굉장히 기대를 하고 클릭을 하는데 막상 보면 그게 켄드릭 라마 이야기고. 이제 라마의 고유명사는 켄드릭 라마가 됐구나 싶었어요. 그럼 내가 롸마로 바꿔야겠다. 그런 거예요.

지금의 롸마를 만든 아티스트나 앨범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 Fear Of A Black Planet >이죠. 힙합 좋아하던 어린 시절. 그러니까 1995년? 1996년? 즈음에 들은 앨범이에요. 어릴 때 뭣도 모르고 들었죠. 1990년 작품이니까 당시에도 올드한 앨범이었어요. 당시 천호동에 미화당 레코드라고 있었거든요. 지금처럼 정보가 많은 시대가 아니다 보니까 커버만 보고 끌려서 골랐죠. 뒷면 커버도 굉장히 독특했어요. 멤버들이 무슨 비밀회의를 하는 그런 느낌?

듣고는 깜짝 놀랐어요. 아무리 힙합이어도 멜로디가 너무 없는 거예요. 시끄럽고 확성기 나오고 (웃음) 스크래치만 1분 내내 하는 곡도 있고. 「Fight the power」라는 곡이 있는데, 선동적이고 노이즈도 강하고 해서 록음악처럼 받아들였던 기억이 있어요. 앨범을 같이 음악 듣는 친구들한테 들려줬더니 아는 척 하는 친구가 ‘퍼블릭 에너미는 정치, 사회적인 이슈를 담고 있는 노래를 하는 팀이야’라고 말해서 한동안 짱박아 뒀던 앨범을 나중에 다시 꺼내서 듣기도 하고 그랬죠. 힙합 장르라고 해서 화롯가에 불 때워 놓고 ‘내가 짱이다, 내 스킬을 아느냐’ 이런 식은 아닌 거 같아서 더 좋았고요.

저한테는 굉장히 의미가 깊은 앨범인 게, 나중에 훌륭한 형이 되면 나도 이런 가사를 써야겠다 했었거든요. 게다가 이 앨범에는 가사집이 있었어요. 교과서 역할을 톡톡히 했죠. 「Burn Hollywood burn」을 들어보면 빅 대디 케인이 구사하는 라임도 상당했어요. ‘Spike Lee’와 ‘Strike me’를 라임으로 배치하는 그런 것들. 이런 건 상당히 수준 높죠. 당시만 해도 어린 마음에 ‘송파구 랩 짱’ 뭐 이런 노래를 쓰고 그랬었는데 (웃음) 3년 즈음 지난 후에는 저도 그 정도로 고난도의 라임을 구사할 수 있었어요. 앨범을 유심히 들어보시면 여러 부분에서 그 시대를 오마주한 부분이 들릴 거예요.


인터뷰: 여인협, 이수호
사진: 윤은지
정리: 여인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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