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통 작가의 첫 번째 연재물인『아만자』는 간결한 그림과 투명한 색채로 우리의 가슴을 놀랍도록 두드리며 살아있으라고 끊임없이 말해준다.
언젠가 옆자리 윤대리의 핸드폰 잠금 화면을 무심코 보다 느낌 좋은 그림에 어떤 작가인지 물었었다. 『아만자』라는 첫 작품을 쓴 김보통 작가인데 윤대리가 아파서 쉰 한 달 동안 이 책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윤대리 덕분에 알게 된 저자는 아버지께서 말기암으로 돌아가시고 그 일을 바탕으로 암환자에 관한 이야기를 간결한 그림체에 담았다. 사실 처음에 암환자라는 이야기에 선뜻 책장이 펴지질 않았다. 그런데 주인공은 의외로 26살. 게다가 그림은 너무나 담담하고 귀엽기까지 했다. 그리고 암을 선고 받은 시점부터 환상 속의 숲과 사막 여행까지, 무거운 주제를 솜사탕 같은 색감과 캐릭터로 풀어주었다.
인터뷰에서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얼굴을 가린다는 저자는 겸손하면서도 곳곳에 위트가 있는, 자기 자신의 그림 같았다. 그런 저자의 첫 작품이 문체부장관상을 받았고 그것에 대해 운이 좋아서 그렇다고만 말씀을 줄이셨다. 만화가가 되기 전에는 매일 출근하고 저녁이면 회식하고 밤에는 퇴근하는, 일반적인 회사원이었다고 한다. 만 4년가까이 일만 하다가 회사를 관두고, 주변의 권유로 만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저는 정말 운이 좋습니다
어떤 분에게 소개를 받으셨나요?
최규석 작가님께서 싹수가 보여서 추천해주신 건 아니고(웃음), 트위터로 놀고 있었는데 그게 불안해 보이셨는지 만화를 그려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주셨습니다. 회사를 다녔으니 회사원 만화를 그려보라고 하셨고, 올레 마켓에서도 회사원이었다는 걸로 연재 제의를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회사원은 안 그리고 싶어서 다른 주제로 시작하게 된 것이 『아만자』입니다.
최규석 작가님은 원래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으신 분인가요?
아니요. 트친. 트위터 친구라고 하잖아요. 서로 얼굴도 모르고. 개인적으로 얘기를 한다는 것도 없었는데 어느 날 마침 올레 마켓에서 신인작가를 모집하고 있었고, 돈을 벌게 해준다니까 알았다고 했습니다.
혹시 평소에 글을 많이 쓰셨나요?
아니요. 회사 다니면서는 그럴 틈이 없었죠. 글 쓰는 걸 좋아한다기 보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화나 영화를 좋아하듯이 저도 그랬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걸 좋아했어요. A4용지 반장 정도에 일종의 시놉시스 같은 걸 만들어 내는 걸 좋아했어요. 가장 오래된 취미였고, 그것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원래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셨나요? 트위터에서 그림을 그려주셨다고 들었습니다.
학창시절에는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의무교육과정 동안에는 대부분 그리지 않듯이 저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중학교 때까지만 열심히 그렸던 것 같습니다.
『아만자』, 즉 암환자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지요. 사실 저도 읽기 전에는 무거운 주제에 망설여 지기도 했습니다만 단순하면서도 섬세한 그림체, 숲이야기 등에 완전히 빠져 읽게 되었습니다. 아직 못 읽으신 독자 분들께 작품 소개 부탁 드립니다.
『아만자』를 소개하자면, 개인적으로 주인공인 젊은 암환자가 모험을 하는 활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슬픈 만화일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그릴 때도 이건 『캐리비안 해적』이나 『해리포터』같은 모험만화라고 생각하고 그렸습니다. 다소 유쾌한 주인공이나 희망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모험을 한다는 마음으로 본다면 결말까지 보시고 모험만화라고 생각해주십니다.
암환자를 동정의 대상이나 신파의 도구로 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실제 암환자 분들에게도 단지 눈물만 유발해서 본인들만 더 비참하게 만드는 만화는 그리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암환자 분들도 재미있게 보셨다고 하셨고, 호스피스센터에서도 활용이 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암환자뿐 아니라 가족분들, 주위분들이 암에 걸려서 투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해를 넓히길 바랬습니다.
숲으로 가는 구성이 참 좋았습니다. 극심한 고통을 함께 느끼다가 한 순간 탁 풀리는 느낌이 들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신 건가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굉장히 즉흥적이었습니다. 올레마켓 담당자분을 만나서 주제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자 주제가 너무 어두울 것 같다고 걱정하셨습니다. 그때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지어냈고, 그 이야기를 받아 주셔서 그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야기라는 것은 무의식이 반영이 되어서 나온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면서도 이야기는 결론을 내리지 않고 진행이 되었고, 그렇다 보니 더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이 단순하면서도 표정 묘사가 탁월합니다. 이런 표정은 어떻게 연습하시는 건가요?
그림이 단순한 거는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표정연구는 아무래도 제 표정을 보고 연구해요. 모니터에 비치는 모습을 그릴 때도 있고, 사진을 찍어서 보고 그릴 때도 있습니다. 참 그리고 대부분 만화가분들도 그럴 텐데 어떤 표정을 그릴 때 그 표정을 짓고 그림을 그립니다. 방긋방긋 웃는 그림을 그릴 때는 방긋방긋 웃게 되지요.
트위터에 술병 그리기도 하시고 여러 그림을 올리시는 것을 봤습니다.
트위터에서 술병 백장 그리기는 NC소프트에서 바 틸트 사장님과 같이 연재합니다. 술집에 한번 놀러 갔다가 성향이 완전히 정반대인 사장님이 의외로 잘 맞았습니다. 또한 그런 분과 함께 작업을 하는 건 매우 재미있었어요. 특히 연애상담이란 건 관심도 없는데, 관심 없는 영역을 해보는 것도 연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에 작업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음. 멍을 때리고 있는 시간도 작업시간으로 봐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멍 때리는 동안에도 구상을 하기도 하니까요. 일단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으로 본다면 일어나서 3-4시간을 빼고는 계속 그 앞에 있습니다.
처음 본 핸드폰 그림도 작가님께서 그리신 비둘기 만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어디에 그리신 건가요?
홈페이지에 나는 비둘기라는 10컷 만화를 그렸는데 최규석작가님께서 그것을 보고 만화를 그리고 싶어한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제가 제일 처음 그렸던 만화가 『나는 비둘기』입니다. 회사 다닐 때 회사 다니기 싫어서 혼자서 이런 게 재미있겠는데 하면서 그렸습니다. Botong.co.kr. 도메인 3년 사놓았습니다.
『아만자』를 읽으면서 제 삶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만 한다고, 일종의 다짐 같은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만자』전체에서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도 이런 건가요?
제 만화의 메시지가 굉장히 노골적이죠. 심지어 100화는 제목이 하고 싶은 말입니다. 맨 마지막 대사가 “살아, 눈부시게”입니다. 항상 메시지는 일괄적입니다. 그냥 피동적으로 남의 인생사는 것처럼 생존하지 말고 전부 깨지고 박살이 나더라도 내 선택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돌아가신 아버지나, 주변에 임종하시는 분들을 볼 때 ‘나도 저렇게 죽는 거구나. 그러니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놀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나도 저렇게 죽을 텐데 80-90세 신경 쓰지 말고 재미있게 살다가 죽어야겠다고요.
예전에는 저를 욕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습니다. 인맥에 기댔다고 말하고, 뭐를 해도 비난을 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다 내려 놓고 제가 스스로 선택을 하고 모든 것이 깨져도, 망해도 상관없다고 마음먹어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너는 그런 불안감이나 막연함을 감당할 수 있냐고 묻고 싶습니다. 저는 사라지고, 망하고, 깨져도 괜찮습니다. 내 이름으로 책도 나오고,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신문에 연재도 할 수 있는 것이 제 인생에 가장 최고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인생은 덤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잘되면 보너스 같은 것이고, 제 인생의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도전 『D. P』
두번째 만화 연재 『D. P』 또한 군대에 대한 독특한 소재라고 들었습니다. 한겨례 토요판에서 첫화를 보고 왔습니다. 그림체가 또 바뀌셨네요.
『아만자』를 그릴 때도 그림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내 그림이 어떻다고 실제로 고민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일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만화를 그리면서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만화도 또 다르게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아만자』는 파스텔톤에 무채색의 느낌이었다면, 『D. P』는 아예 검정색에 닫혀있는 선으로 그렸습니다. 한겨례 연재 시작 전날까지도 매일 계속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했습니다. 사실 일화 그림과 이화 그림도 다릅니다. 선 두께, 칸을 나누는 방식이 바뀌었고, 삼화 콘티는 또 바뀌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연습을 하면서 자기그림을 찾아가는 과정을 저는 운이 좋아서 연재를 통해서 배워 나가고 있습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만화와 함께 성장하는 느낌이 듭니다.
많이 컸다고 느끼겠죠. 일화에는 말풍선도 없었는데요(웃음).
『D. P』는 어떤 이야기인가요?
『D. P』는 탈영병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사람들이 내 일이라고 생각은 하지 않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아만자』는 암으로 인한 육체적인 고통 이외에 가족들에 대한 두려움, 재발에 대한 공포, 상실감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듯 『D. P』에서는 탈영병들이 왜 탈영을 하고 그 뒤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가족들은 또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야기 합니다. 사람들은 모릅니다. 탈영병은 그저 범죄자, 낙오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들은 그런 사람들인지.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재미있어하는 주제는 아닙니다만, 일반적인 시선을 갖지 않고 그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D. P>의 뜻은 무엇인가요?
제목 또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다른 분들은 구체적이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저는 짧은 제목이길 바랬습니다. D.P는 Dirty Play의 약자입니다. 이중적인 의미로,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는 것을 dirty play라고 불렀고 사실 탈영을 하게 만드는 행동 또한 dirty play이기도 하구요. 더 나아가 그런 잘못된 시스템을 운영하는 군대 자체도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dirty play는 너무 상투적일 것 같아 약자로 D. P로 정했는데 검색을 해보니 동대문플라자 약자인 DDP만 검색이 되네요(웃음).
한겨례 연재는 어떻게 하시게 된 건가요?
한겨례에서 제안이 왔습니다. 『인천상륙작전』후속으로 들어가진다는 말씀을 듣고 감히 해보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윤태호 작가님은 만화가 분들 중에도 위에서 세는 게 빠른 분인데 그 분 다음으로 연재를 하는 데다 지면에 연재를 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습니다. 신문 보시는 분들 중에 만화를 잘 안 보시는 분들도 읽어주시니까요. 콘티를 급히 보내드렸고, 『인천상륙작전』후에 기간 없이 바로 들어가자고 해주셨는데 조금 미뤄서 11월 중반부터 연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다른 분 들은 걱정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포탈 연재가 모든 면에서 인지도나 모든 면에서 중요한 것인 것 왜 시대를 역행하는 일을 하냐고 걱정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다지 똑똑한 사람이 아니어서 그저 제 만화가 신문에 실리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윤태호 작가님 다음으로 연재를 했다는 것을 죽을 때까지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레진 코믹스에서도 12월부터 동시 연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신문은 지나간 것을 다시 사볼 수도 없고, 한겨례 온라인에서도 볼 수 없으니 레진코믹스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주셨습니다. 여러 가지 편의를 아주 많이 봐주셨고 저는 감사하는 마음뿐입니다.
만약 일년밖에 못살아도 만화를 그릴 겁니다
김보통이 본명은 아니신거죠? 어떻게 보통이라는 이름을 택하셨나요?
본명이라고 믿어주시면 좋습니다. 영어로 써보면 스펠링이 예쁩니다. 동그라미가 다 들어가서 동글동글한게 예쁩니다. 또한 영어인지 한글인지 알 수가 없고 한국어로도 뜻이 특별하지도 않아 좋았습니다. 이렇게 써보면 느낌을 알 수 있으실 거에요.
굉장히 열의가 느껴집니다. 작품에서도 그렇고 인터뷰로 만나 뵈니 더 그렇네요.
저는 다른 작가님들이랑 비교해봤을 때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기가 10-15년가량 늦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얼마 안 남은 거죠.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다가는 못 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만약 일년밖에 살지 못한다면 어떻게 사실 건가요? 주인공처럼 시베리아로 떠나실 건가요?
아니요. 저는 만화 그릴 거에요. 제가 정말 재미있게 설명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죽고 싶습니다. 그걸 안하고 죽는다면 억울해 죽을 것 같습니다. 시한부인걸 안 그날부터 계속 그리면서 재미의 포인트가 이거니 주변에도 계속 그리라고 할겁니다. 사람에게 여러 가지 본능이 있겠지만 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고, 사람들이 재미있어하기를 바라는 욕망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재미있게 들어줄 때 짜릿하죠. 그래서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혼자서만 이야기를 갖고 있는 것만큼 미련한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또 그려보고 싶은 작품이 있으신가요?
『아만자』는 굉장히 개인적인 작품이었고, 제 스스로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였습니다. 앞으로는 꼭 세가지 이야기는 하고 싶습니다. 군대, 학교, 회사. 삼 년 정도는 그렇습니다. 한국 사람(남자)들이 태어나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조직들에 대한 이야기를 우선 하고 싶습니다. 회사 이야기는 가능하면 미루고 싶습니다. 잘할 것 같기도 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지만 그러자면 기술적인 면이 성숙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가장 마지막에 하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작가가 있으신가요? 좋아하는 작가 또는 작품 소개 좀 부탁 드립니다.
최규석 작가님, 윤태호 작가님, 권가야 작가님, 김수정 작가님 존경합니다. 아부가 아니라 예전부터 워낙 좋아했었습니다. 한겨례 연재 덕분에 윤태호 작가님을 동료 작가님이라고 감히 언급하는 것 자체가 감회가 새롭습니다. 마치 마이클 잭슨이나 폴 매카트니를 만나는 기분입니다. 그런 분들께 선배님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습니다.
책은 어떤 걸 좋아하시나요?
사실 작업 중에는 책을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회사 들어와서도 별로 못 읽었었네요. 다독을 한다기보다 책이 물리적으로 많은 걸 좋아합니다. 너무 많이 사서 못 읽고 집에 쌓인 책이 천 권이 넘습니다. 그래서 지방으로 이사를 가면 작은 상가를 얻어서 마을 문고처럼 해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학창시절 등록금 면제 때문에 도서관근로장학생을 했습니다. 점심시간과 방과후에 책정리를 하면 되었는데 책도 많이 빌리고 책을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연재할 때는 시간도 없고 남의 작품을 읽지 않습니다. 다른 만화를 보게 되면 생각만 많아지고 머리만 복잡해 진다고 최규석 작가님도 그러시더군요.
저자는 운이 정말 좋다고 계속 겸손히 마무리 하셨다. 여러 사람들의 호의와 운으로 이렇게 잘 된 것이 모두 운이라고. 만화를 그려보지 않은 사람이 처음으로 100회가 넘는 작업을 한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그런데도 그런 것보다는 그저 겸손히 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 다시 또 연재를 한다면 응원해야지 하게 만들었다. 끝까지 사막의 왕을 찾아가는 것처럼, 꾸준히 계속 힘내시길.
가수 요조씨가 이런 말을 했더군요. “노후를 위해서 오늘의 아메리카노를 아끼지 말아라”라고요. 내일 죽을 수도 있는 거고 다음달에 죽을 수 도 있는데 왜 우리가 닥치지도 않은 미래를 대비하느라 오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미뤄야 하냐고 말하셨습니다. 과연 아메리카노를 아꼈다가 늙어서 먹으면 맛있을까요? 저는 대책이 없습니다. 그런데 대책이 없이 살면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저의 계획이 되고 대책이 되고 전략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뭐든 다 잘해내 보자고, 생각합니다.
아만자김보통 글,그림 | 예담
『아만자』는 사막의 왕을 찾아 숲을 여행하는 주인공의 꿈속 이야기가 때로는 귀엽게, 때로는 저릿한 슬픔으로, 때로는 스펙터클한 모험담으로 등장하며 우울과 슬픔을 뛰어넘는 한 편의 환상적인 만화로 완성되었다. 스물여섯 살 말기 암환자의 투병기라는 어찌 보면 만화로 보기에 쉽지 않은 소재와 내용이지만, 여운을 주는 그림과 마음을 건드리는 서정적인 문장, 숲속 친구들과 힘을 모아 사막의 왕을 물리치려는 독특한 스토리를 통해 자신의 지친 일상과 마음을 도리어 치유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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