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바쁜 일상에서 위로를 받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책, 영화, 음악, 커피, 산책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명화’가 있다. 명화라니, 미술관 가야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생각보다 명화는 멀리 있지 않다. 미술관에 가서 직접 보는 게 제일 좋겠지만, 짬이 나지 않는다면 책으로 명화를 접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이소영 저자가 쓴『출근길 명화 한 점』은 입문자가 읽기에 좋은 책이다. 입문서 중에서도 미술사조와 미술사 중심으로 써진 책은 다소 어렵기 마련인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명화 에세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저자가 독자에게 건네는 말은 친근하면서 쉽다. 저자의 일상을 공개하기도 하고, 편지와 일기 형식의 글쓰기도 시도했다.
그렇다고 이 책을 입문자만 읽을 필요는 없다. 저자의 개성이 반영되어 주류 미술사조에서는 벗어나서 소외되었던 예술가도 소개한다. 덕분에 편히 읽을 수 있되, 다른 입문서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생소한 작품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맞춤형 명화 소개가 인기 비결
처음으로 쓴 책입니다. 책이 나오고 난 뒤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일단은 신기했고 뿌듯했죠. 블로그와 포스트에 명화 일기를 쓰던 중에 제안이 들어와서 책으로 만들게 됐어요. 책으로 나온 뒤 동생이 읽고는 자기 검정고시 보고 나서 아픔을 딛고, 좋은 대학 갔는데, 검정고시 이야기만 써놓았다고 삐쳤더라고요. 이렇게 솔직하게 써도 되느냐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 기록이니까 괜찮았어요.
블로거의 글이 책으로 나오는 경우가 드물지는 않은데요. 『출근길 명화 한 점』은 블로그를 시작하고 1년도 안 돼 책으로 나온 점이 특별하네요.
블로그보다는 포스트덕분에 나온 책이죠. 블로그보다 포스트 구독수가 10배는 많아요. 블로그가 개인적이라면 포스트는 책처럼 발행하는 건데요. 좀 더 책같은 느낌이 강하죠. e북같이 출판 형태니까요. 시작은 올해 4월부터 했는데 몇 가지 시리즈를 열심히 했어요. 책이 나올 줄 생각은 못했고요. 알고 있는 명화 이야기를 쓰는 것이 재미나서 매일 매일 했어요. 지금도 매일 올리고 있고요.
운영한 지 1년도 안 된 기간에 인기를 끈 비결은 역시 독특한 콘텐츠 덕택일까요.
명화를 시즌에 맞게 소개했어요. 비오는 날에 어울리는 명화, 눈오는 날에 어울리는 명화. 그리고 고 신해철 분이 돌아가셨을 때는 천국을 주제로 한 명화를 다뤘어요. 특히 비오는 날 명화가 유독 인기가 많았죠. 비오는 날이 되면 사람들이 좀 더 감성적이 되어서 그런가 봐요. 그때는 하루에도 구독자 수가 몇천 명 늘었어요. 운도 있었고요.
책에 그러한 장점이 있을 것 같네요.『출근길 명화 한 점』이 다른 미술 입문서와 다른 점은?
저는 일반인과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잖아요. 성인들은 작품을 보고 자신의 감상평을 말하지못해요. 틀릴까 봐 무서운 거죠. 그래서 대개 “이게 맞는지 모르겠는데…”로 말을 시작해요. 사실 예술에는 답이 없는 건데요. 사조를 알아야 말할 수 있고, 화가의 생애를 아는 사람만 비평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는 현실이죠.
『출근길 명화 한 점』에는 딱딱한 내용이 전혀 없어요. 저도 미대를 나왔지만 제가 보기에 좋은 그림, 제 기억과 만나는 그림을 솔직하게 쓴 편이어서 다른 입문서에 비해 무게로 치면 훨씬 가벼울 수 있겠죠. 왜 가볍게 썼느냐면, 제 삶도 무거워서 저 역시 무거운 책을 안 보게 되더라고요. 명화를 일기 쓰듯, 쉽게 편하게 소개하고 싶었어요. 이 책을 읽고나서는 명화를 볼 때 기존의 해석이 아니라 자신만의 해석을 할 수 있는 주체적인 감상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실제로 친구나 대학원 동기들도 일기를 쓰듯 시작했다는 친구도 있다고 들었어요.
『출근길 명화 한 점』은 처음과 끝이 없는 책
요일별로 감상하는 명화로 구성했습니다. 이렇게 구성한 이유는?
현대인이 시간이 많이 없잖아요. 휴가가 아니라면 책 한 권을 쭉 읽기가 쉽지 않아요. 저도 소설을 좋아하지만 중간에 끊기면 계속 읽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처음과 끝이 없는 책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요일별로 나눠 놓으면 수요일에 시간이 나면 수요일을, 일요일에 시간이 나면 일요일 부분을 읽을 수 있겠죠.
생각하시기에 명화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뜻만 보면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는 의미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명화는 다른 사람이 좋다고 말해도, 내 기준에 감상하는 것이 어려우면 명화가 아니에요.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고, 그 그림이 힘들 때 생각난다면 그게 명화라고 생각해요. 모나리자나 고흐의 해바라기같이 유명한 작품이 아니더라도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나에게 위로를 주고 영감을 준다면 명화죠.
다른 작가는 대개 한 번 등장하는데 고흐를 여러 번 다뤘어요.
고흐를 특별히 좋아한다고 생각 안 했는데 짝사랑했나 봐요. 고흐의 삶 자체가 드라마틱하죠. 사람들이 고흐, 하면 보통 권총자살시도(자살을 시도했는데 실패하고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서 권총자살시도라도 해야할 것 같아요. 고흐가 팬이 많아서 이거 잘못 이야기하면 말이 많아요. (웃음)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런 걸 쓰고 싶지는 않았어요. 고흐가 좋아했던 책, 연인, 카페, 이런 내용을 다뤘어요. 사실 고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사랑도 많이 했던 사람인데, 이런 부분은 잘 알려지지 않았거든요. 이런 부분을 조명하려고 했어요. 제가 좁고 길게 들어가는 걸 즐겨요. 몇 년에 태어나서 몇 년에 죽었다가 아니라, 특정한 시기에 여행지에서 어떤 걸 그렸다, 이렇게 좁고 깊게 다루는 걸 좋아합니다.
고희 외도 좋아하는 작가는
책에 다룬 화가는 다 좋아해요. 그중에서 두 명만 꼽으라면 라울 뒤피와 피에르 보나르요. 미대를 나오면 특이한 그림을 좋아할 것 같지만, 저도 정서적으로 환기되는 작품을 좋아해요. 어렵게 파고드는 게 아니라 보기만 해도 좋아지는 그림을요.
『출근길 명화 한 점』도 어떻게 보면 미술 평론집이잖아요. 그림을 글로 설명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듯합니다.
어렵죠. 한때 꿈이 미술 비평가였어요. 어떻게 하면 미술평론가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평론을 보는데, 미대 출신인 제가 보기에도 정말 어렵더라고요. 글의 80퍼센트 이상이 한문이고요. 학문적으로 필요한 평론이 있고 사람과 가까워야 하는 평론이 있다면 제게는 후자가 더 좋았어요. 이 책이 평론치고 너무 가볍지 않냐고 하는데 평론도 시대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문가가 보는 평론도 있어야겠지만, 단순한 소개말이상이면서도 일반인이 볼 만한 평론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래서 ‘아트메신저’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요.
매일 명화를 보면 세상 보는 눈이 푹신해지지 않을까요
우리가 명화 작품을 감상해야 하는 이유는?
아직 아이가 없는데 아기가 태어나면 어떤 직업을 갖든 명화를 볼 줄 아는 어른으로 만들고 싶어요. 명화를 보는 사람이 세상을 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세상에는 나쁜 일도 많고 삭막해져가지만 화가가 남겨놓은 명화를 보면 누구든지 그 순간만큼은 감성적으로 변해요. 좋아하는 명화가 한 편 정도 있으면 힘들 때 위로가 되죠. 요즘 기업에서는 감성 리더, 감성 마케팅 이런 이야기도 하는데, 혁신의 밑바탕에는 감수성이 있어요. 스티브 잡스도 창의적, 감성적이 되려면 예술을 좋아하라고 했잖아요. 어떤 자리에 있든 한 가지 지식만이 아니라 예술적 지식과 문화가 바탕이 되어야 하죠. 매일, 주기적으로 명화를 보며 생각하면 뇌가 말랑말랑해지고 세상 보는 눈이 푹신해지겠죠.
미술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팁을 알려주신다면?
우리나라에서 명화라고 하면 비싸고 외국에서 빌려온 전시회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동시대 살아온 사람 작품을 명화라 생각 안 하죠. 그런데 찾아보면 곳곳에 작품이 있어요. 청계천만 해도 미국의 올덴버그의 스프링과 같이 길거리에서도 조형작품을 찾아볼 수 있고요. 현대 작가의 작품은 시립미술관 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어요. 『출근길 명화 한 점』을 보셔도 좋고요. (웃음) 우리나라 전시문화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외국 유명 작가의 작품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리니까 줄 서서 본다든지 들어가도 빨리 나와야 한다든지 하는 것이죠. 프랑스에서는 전시장에서 모작해도 아무 말 안 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빨리 들어가서 줄 서서 보고 나와야 하는 분위기가 자주 형성이 되기도 해서요. 모작은커녕 천천히 보기도 쉽지 않죠.
언제부터 미술을 좋아하셨어요?
어머니가 미술을 전공해서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게 됐죠. 국문과와 미대를 고민했지만 미대를 가서 글을 쓰기로 했어요. 미대를 안 가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어요. 미대에서 학부는 금속디자인을 전공하며 쥬얼리도 만들고 큰 조형물도 제작했어요. 몸으로 작업하다 보면 이론적인 것에 목이 말라서 미술교육대학원에서는 미술사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됐죠. 교육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동시에 시립 미술관의 도슨트로 합격해서 전시해설에 참여했어요. 도슨트 하면서 점점 더 현대미술과 미술사를 좋아하게 됐고요.
이 세상에 안 좋은 책은 없어
책읽기도 즐긴다고 들었어요.
하루 10분, 20분이라도 책 읽는 시간을 만들어요. 카페에 들러서 본다거나, 일부러 지하철을 타서 책 보는 짬을 냅니다. 제가 워낙 극단적이라 모르는 분야는 잘 몰라요. 정치, 물리, 경제 이런 분야의 책을 몰아서 사기도 하고요. 다 읽지 않아도 쌓아놓고 좋아하죠. 젊은 사람일수록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요즘은 SNS 영향으로 글도 짧아지고 그래서 생각도 깊지 않잖아요. 이 세상에 안 좋은 책은 없는 것 같아요. 좋은 독자가 좋은 책을 만들 듯, 안 좋은 책이라도 좋게 보려는 마음이 있다면 배우는 게 있어요.
최근 재밌게 읽은 책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돈보다 운을 벌어라』에서 감동받았던 구절이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야 운이 생긴다는 문구였어요. 운을 믿는 사람에게 행운이 오지. 행운이 없다고 생각하면 행운은 영원히 없다는 내용도 좋았고요. 제목이 웃긴 책인데『9할 : 걱정하는 일의 90%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모든 근심과 스트레스가 안에 있다고 말해요. 사실 이런 내용은 완전 새롭지는 않죠. 심지어 제 책에도 있을 걸요. 하지만 사람들이 잊잖아요. 세상 모든 책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지만,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매일 어떤 책이든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20대는 여행과 사랑에 매진했다고 책에 쓰셨는데요. 지금은 30대입니다.
30대는 미술과 관련한 일에 좀 더 매진하려고 해요. 글 쓰는 일도 그 중 하나고요. 20대는 방황하면서 진짜 좋아하는 일과 평생 해야 하는 일에 관해서 방향을 잡았어요. 여행하면서도 미술관을 많이 봤어요. 여행가는 목적이 미술관 보기였으니까요. 20대는 가난하니까 한 번 미술관에 가면 나오기가 아깝잖아요. 아침부터 밤까지 보면서 그때 깨달았던 게 돈을 좀 못 벌더라도 미술 공부하면서 하는 일은 재밌겠다 싶었죠. 30대 길은 더 좁혀진 거죠. 지금 고민은 저도 결혼했으니, 육아입니다. 어떤 엄마가 될 것인가가 미리 공부한다고 될 일은 아니겠지만 엄마라는 역할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출근길 명화 한 점이소영 저 | 슬로래빗
네이버 포스트 인기 연재, 『출근길, 명화 한 점』과 『아침, 명화 배달』을 한 권으로 엮은 책으로, 명화로 일상을 사유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아트 메신저 ‘빅쏘’의 명화 힐링 에세이를 담았다. 저자는 하루하루 경쟁을 강요당하는 우리에게 ‘달려라! 뛰어라!’ 채근하지 않고 본연의 모습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따뜻하게 어깨를 다독여주고, 부모님, 형제, 연인, 배우자 등등 항상 곁에 있는 소중한 이들을 다시금 돌아보라고 가슴에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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