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20대는 청춘에 목말라 있다. 응당 청춘이라는 나이로 불려야 할 시기에 젊은이들은 돈과 취업과 미래에 대해 끝없이 두려움에 떨고 있으며, 약 10여 년의 세월 내내 ‘현실’이라는 주제에 대해 싸우는 중이다. 결국, 대부분이 ‘타협’이라는 보기 좋은 결론을 지으려 하지만, 그것이 진정 옳은 선택이었는지에 대해선 타협 이후에도 끝없이 고민한다.
9와 숫자들의 신보가 반가운 건 이러한 세태에 대해 공감해주는 가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직설적으로 ‘힘내’라고 전달한 것이 아닌, 서정적 단어들로 꾸며낸 표현들은 차가워진 마음을 조금씩 위로해준다.
1집 < 9와 숫자들 >(2009)의 성공 이후, 기나긴 시간이 지나 EP를 내놨음에도 콘서트의 매진과 연이은 평단의 정평은 이들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지표다. 방송 촬영과 콘서트 준비가 한창임에도 밴드는 한 카페에서 < 유예 >에 대한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냈다.
< 유예 >가 나온 지 시간이 꽤 지났다. 반응은 어땠나? 팬 분의 반응과 평단의 반응은 약간 달랐을 것 같다.
송재경 : 평단 내에서는 한층 좋은 방향으로 변해서 좋았다고 많이 말씀해주셨고, 원래 좋아하시던 팬 분들은 아쉽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앨범을 들으면서 버라이어티한 부분이 조금 떨어진 것 같다고요.
1집 < 9와 숫자들 >이 워낙 평단의 호평을 많은 덕분에 < 유예 >를 제작하면서 많은 부담이 있었을 것 같다.
송재경 : 부담 많이 됐죠. 그래서 오래 걸렸잖아요. 고민을 많이 하기도 했고요. 제일 큰 것은 동어반복을 피하는 것. 그것도 우리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완성도 부분에서는 부담이 조금 덜 했던 게, 사실 1집에서는 그런 고민을 덜 했었어요. 1집은 좋은 아웃풋을 보여 주자라는 생각보다는 그간에 있었던 것들을 정리하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고민을 많이 하고 신중하게 가보자는 생각을 많이 했죠.
색깔을 유지한다는 표현을 했는데, 9와 숫자들의 색깔은 무엇인가?
송재경 : 1집 때부터 항상 했던 이야기는 중용을 지키자는 것이에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옛 것과 요즘 것의 균형. 그리고 저희가 미국, 영국 인디 씬도 좋아하지만, 우리 로컬 씬 만의 색깔도 우리 팀에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기시감을 유발하거나 특정 밴드의 느낌을 떠올리게 하지 않으려고 저희는 많이 노력하고 있고요.
중용이라고 했지만 9와 숫자들은 대체로 복고적인 느낌이 많이 난다는 반응이 많다.
송재경 : 그것은 어떻게 보면 실패라면 실패일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은 모던한 면으로 가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는데. 제가 봤을 때는 보이스 컬러라든지 가사라든지 그런 게 소위 말하는 향수를 자극한다고 해야 하나? 그런 스타일이라서 복고적인 느낌을 많이 받나 봐요. 그런데 이번 앨범에서는 지난번에 비해서 편곡이나 복고적인 점을 부각하지는 않았거든요. 듣는 분들이 그렇게 반응하셨다면 중용이라는 점에서 실패했는지도 모르죠. 일부분들께서는 1집에 비해서 모던한 사운드가 가미된 것 같다고 이야기도 해주세요. 여전히 복고 이야기를 많이 하시기도 하고요.
앨범 분위기 자체가 약간 우울해지고 톤 다운된 느낌은 있다.
유병덕 : 원래는 처음 앨범 들어갈 때 뭔가 더 채우지 않은 스타일로 가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쿠스틱한 스타일로 출발하다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 있었던 것 같고, 하다 보면 욕심이 생기잖아요? 작업하고, 곡을 늘려가면서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았나…
송재경 : 저희가 생각이나 감성이 변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고. 기획하면서 다른 밝은 노래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감성적으로 통일성을 가져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어요. 그래서 이번 EP에서는 미뤄둔 밝은 노래도 있고요.
편곡의 측면에서 1집과 비교했을 때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하는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송재경 : 기본 방향은 멤버들이 자신의 의견이나 실력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했어요. 첫 번째 앨범은 저 혼자 작업이라고 보시면 되고요.
유병덕 : 개인적으로는 기본에 충실해지고 싶었어요. 앞으로 나가지 말고 뒤에서 밑에서 있고 싶었고요. 그런데 그걸 하는 작업이 오히려 더 힘들더라고요.
가장 반응이 좋은 곡은 어떤 곡인가?
유병덕 : 워낙 인디 씬이 넓지가 않아서 피드백이 많이 오는 것은 아니거든요. 엄청나게 쏟아지지는 않지만 「눈물바람」 이야기가 가장 많았던 것 같아요.
송재경 : 「유예」도 많았어요. 앨범의 타이틀이잖아요. 가사가 시대상황과 맞는지 SNS에서 많이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유예」라는 단어 자체가 요즘 청년세대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긴 하다. 생계를 위해서 소중한 가치들을 유예해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지 않나. 「유예」는 어떤 생각에서 시작되었나.
송재경 : 대단한 건 아니고요. 만들었을 때가 나이가 28~29살이었는데. 그때가 한국 남성들이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무렵이잖아요. 팍팍하더라고요. 여유 있게 고민을 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살 수 있는 여력이 없더라고요. 선택을 강요받았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살기도 하고. 꿀버섯이 예전에 ‘그림자 궁전’ 했을 때 저에게 한 이야기가 “생각하는 대로 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어버린다”였어요. 그게 저에게 항상 기억되는 말인데, 그게 나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 자체의 고민인 것 같아요. 여건이 되는 사람들은 일찍이 원하는 방향으로 성과를 내면서 살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원하던 꿈을 펼치면서 사는 게 너무나 어려운 것 같고. 대체로 자기가 뭘 꿈꾸는지도 모르고 성장해서 사회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길들면서 살아가잖아요. “나도 이제 그렇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게 완전히 망했다는 체념이 아니라 지금은 때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스스로 시간을 주자라는 의미에서 만들게 되었어요.
인디 씬에 관심이 그리 크지 않은 일반 대중은 「그대만 보였네」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앨범 내에서는 드물게 밝은 스타일의 곡 중의 하나다. 밴드가 의도한 바에 비춰보면 아이러니한 느낌일 것 같은데.
송재경 : 방송 쪽에서 「그대만 보였네」를 많이 틀어주신 것 같아요. 그리고 대부분 사람이 밝은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어두운 게 많아서 (웃음) 노래라도 밝은 것을 들으려고 하는 것 같고. 이질감이 있는 곡이라고 생각은 안 해봤어요. 곡 자체도 메시지 자체가 밝거나 샤방샤방한 건 아니거든요. 요새 말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가사이긴 하지만, 결혼이라는 주제를 만든 노래인데요. 밴드에서 결혼한 사람은 없지만 (웃음) 저한테 있어서는 무거운 주제였어요.
유병덕 : 이질감이 있다기보다 한 템포 쉴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대만 보였네」라는 트랙이 있으므로 앨범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막았다고 생각이 들고요.
「눈물바람」은 가사도 그렇고 여성적인 터치가 강한 곡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9와 숫자들에 있어서 작사 측면으로 특유의 필체가 있나?
송재경 : 서정시. 제가 김소월이나 윤동주 시인의 작품 같은 서정시를 많이 좋아해요. 1집 때는 가사가 상투적이라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교과서 같다거나, 날림으로 쓴 가사라는 말도 많이 들었고요. 제 딴에는 많이 정제해서 예쁜 말들을 골라서 썼던 건데. 지금은 다르긴 한데 그때는 상투성이 무조건 배척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만큼 말하고자 하는 것을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관용적인 표현이라고 해야 하나? 꽃이나 새, 노래라는 단어들. 아름다운 것을 표현하고 싶은데 굳이 복잡하게 더러운 단어나 표현을 쓸 필요 없이 자기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끌어와서 이야기하면 되잖아요. 요새 말하는 돌직구 스타일로. 직접적인 말투, 어떻게 보면 상투적인 표현들 좋아하는 편이에요.
조금 전에 가능하면 동어반복을 피하려고 노력을 한다고 했는데, 상투성은 동어반복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 상투성을 배척하지 않으면서 동어반복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송재경 : 그럴 수 있죠. 그런데 해결책은 간단해요. 그것은 작사에서 내가 동어반복을 안 하면 돼요. 가사를 쭉 써왔는데 똑같은 단어나 비유가 있었다면 다른 걸 고민하는 거죠. 말투도 마찬가지죠. 어미나 그런 것들이 반복적으로 나오거나 구조적으로 유사하다고 생각되면 다른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그러다 보니 만들어 놓은 콘텐츠가 많을수록 굉장히 힘들어져요. (웃음)
굉장히 피곤해지겠다.
송재경 : 굉장히 힘들어요. 그러다 보면 다행스럽게도 기발한 표현을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도 있고 그래요.
유병덕 : (송재경) 형 가사 중에 제가 좋아하는 방식이 수미상관이라고 하죠? 그런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요.
송재경 : 고리타분하죠. (웃음) 그런데 요즘 인디 밴드들 음악 한 번 들어보세요. 그렇게 고리타분하게 가사 쓰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오히려 그런 부분들이 매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수록곡 중에 「아카시아꽃」이 있다. ‘서정시’에 대한 추구와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되는가.
송재경 : 저는 「과수원길」을 어렸을 때부터 상당히 구슬픈 노래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구슬픈 노래로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씀드리자면 작업 과정이 많이 힘들었어요. 작사가(박화목)분이 돌아가시고 현재 아들 되시는 분이 목사님이신데, 그분한테 저작권이 있어요. 저희가 삼고초려를 해서 취지를 말씀드리고 음악을 들려드려서 허락을 맡았어요. 곡명이 원래처럼 「과수원길」이었는데, 목사님께서 직접 연락하셔서 가사까지는 쓰는 건 괜찮은데 제목은 좀 바꿨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아버님의 동요 한 곡으로 남겨뒀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그래서 재킷 인쇄 들어가기 하루 전에 제목을 바꿨어요.
< 유예 >의 주된 테마가 청춘인 것 같다. 30대로 넘어가면서 청춘의 의미가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나.
송재경 : 청춘의 현장을 직접 느끼면서 발산하는 것도 있지만 30대 중반 접어들다 보니 청춘을 말해도 별로 부끄럽지 않다고 느껴요. 들국화나 산울림이나 활동을 하는데 그분들이 노년을 이야기하진 않잖아요. 그래서 그분들이 계속 청춘이기도 하겠고 청춘을 20대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그 시절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달라졌을 수는 있죠. 청춘을 차갑게 이야기할 수도 있고.
청춘을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하는 편인가. 아니면 약간은 거리를 두고 3인칭적인 시점에서 이야기하는 편인가.
송재경 : 그런 식의 깜냥은 안 되는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우리들의 정서를 이야기하는데. 얼마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지는 모르지만. “너희는 힘을 내야지, 우리의 청춘은 힘들지만 극복해야지!” (웃음) 이런 식의 이야기를 전달할 만한 깜냥은 안 되는 것 같아요. 아주 특수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니까 다들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 비슷한 이야기를 하겠구나 생각은 해요.
2집 앨범도 작업 중인가?
송재경 : 네. 지금 작업 중에 있어요.
구체적인 콘셉트도 정해졌나?
송재경 : 네. 이 인터뷰에서 처음 말하는 건데, 2집의 타이틀을 < 근의 공식 >이라고 지었어요. 9와 숫자들의 언어유희이기도 한데. 근이 루트(Root)잖아요. 그런데 미국에서도 루츠 록이 있잖아요. 컨트리, 블루스부터 해서 쭉 이어온 음악이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밴드 중에 요즘에 윌코(Wilco)라든지. 우리 음악은 그런 부분이 단절된 부분도 많이 있고 음악적 유산도 지금 많이 폐허로 변했다거나 발굴이 덜 된 상황이에요. 체계적으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지 않고 힘들게 구해야 한다든지 괴상한 취향으로 오해를 받는다든지 그런 상황인데. 그런 상황을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이번에는 한국식 루츠 록을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죠. 이전에 ‘그림자 궁전’에서도 해오던 작업이지만 그동안 들었던 좋은 음악들을 가지고 이 시대에 어울릴 수 있는 음악을 해보자는 게 다음 앨범의 콘셉트에요.
EP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렸다. 왜 그랬나?
송재경 : 일단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고요. 제가 겸업을 하다 보니까 시간이 넉넉지 않았어요. 그것보다는 작업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 면이 큰 것 같아요. 1집 때는 사운드 퀄리티에 대해서 별로 무게를 안 뒀어요. 곡이 가진 핵심적인 감성만 전달할 수 있다면 편곡은 컴팩트하게 가자는 주의였는데. 이번에는 그게 아니라 결과물에서 얼마나 성과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세밀한 부분을 많이 신경을 썼거든요.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많이 늦어졌죠.
송재경은 2~3개의 일을 겸업 중인데. 음악 활동을 하면서 시간적인 여유가 당연히 없을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 음악적인 고민을 충족시키려 하나.
송재경 : 계속 생각을 해요. 출근하면서도 생각하고 밥 먹으면서도 생각하고. 생각날 때마다 기록하고. 저는 작업하는 방식 자체가 곡이 완결되기 전까지 편곡적인 면에서 손을 안대요.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머릿속에서 복기하고 완성되었다고 생각될 때까지는 끄집어내지 않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을 해요. 사색도 어디 펜션을 잡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삶의 현장에서 불쑥 번뜩일 때가 있는데 그런 것을 잘 기록해놨다가 하나의 곡이 완성되는 경우도 많고요. 곡을 만드는 데 있어서 시간의 부족함은 그리 크지 않은데 오히려 같이 해야 하는 작업들. 편곡 작업이나 실제로 레코딩하는 기계적인 작업들은 같이 시간을 맞춰야 하니까 그 점에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죠.
인디 뮤지션들이 생계를 위해서 겸업을 하는 형태를 많이 취하고 있지 않나.
송재경 : 힘들고 짜증이 나는데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다른 방법이 없어요. 진짜로 끝내주는 음악을 만들어서 많이 음반을 팔고 돈을 벌어야지.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것만을 바라거나 어떻게 머리를 잘 굴려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볼까 궁리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저는 떳떳하게 일을 하는 거예요. 아직 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음악을 못 만드니까.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음악적으로 고민을 많이 하는 것이고요.
개인적으로 이번 앨범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유정목 : 뭐가 있을까. 음악 작업을 할 때 아쉬운 게 있으면 그 상태로 내는 성격이 아니라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취향이 바뀌는 부분일 것 같아요. 사소한 것도 맞추려고 하거든요. 한 번 아쉬운 부분이 들리면 그다음부터는 그 부분밖에 안 들려요. “아 이거 고쳐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거죠. 물론 1년 뒤, 2년 뒤는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죠.
9와 숫자들은 곡 작업에서 완벽을 추구하려는 성향이 있는가.
송재경 : 정목이 말이 맞는 게 뭐냐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찾자고 해서 이번에는 많이 노력했어요. 이메일이나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통해서 정말 치열하게 고민을 나눴고요. 한 부분이 아쉬우면 벌떼처럼 몰려들어서 서로 의견을 나누고 그래서 이번에 정말 저는 리더로서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그거에요. 예전에는 한 멤버가 뭔가 부족하다고 이야기하면 “뭔 그런 것까지 이야기하고 그래?”라든지 내 것을 더 주장했을 텐데 이번에는 멤버들의 의견을 서로 많이 들었고 회사 쪽에서도 모니터링을 많이 해주셨고요. 시간이 더 들고 어렵다는 느낌이 들어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는 방식이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이건 좀 더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은 거의 다 반영이 된 것 같아요.
멤버들 각자 < 유예 >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곡은 무엇인가?
꿀버섯 : 저는 「플라타너스」요. 기타를 제가 쳤기 때문에 (웃음)
유병덕 : 계속 변해요. 원래는 노래스타일이나 편곡적인 면에서 「착한 거짓말들」을 제일 좋아했었는데 계속 연주를 하다 보니 지금은 「유예」를 제일 좋아해요. 감정이나 이런 게 너무 좋게 들리고 연주할 때도 좋고 해서. 그만큼 공감하시는 분들도 많아서 더 좋은 것 같아요. 별로 손 댈 게 없었어요. 제일 처음 곡이 나왔을 때 그냥 이대로 곡이 나가도 되겠구나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고요.
유정목 : 그냥 곡으로만 따졌을 때는 저도 마찬가지인 이유로 「유예」라고 생각하고요. 음악적인 면에서는 「눈물바람」이에요. 개인적으로 음악적인 욕심 때문이죠. 제가 기타라인을 만들어서 노래에 넣은 거잖아요. 어쨌든 노래가 있고 반주를 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 입장에서 작업하고 만들어 나갈 때 그 노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제가 치는 습관을 넣으려고 노력을 많이 하거든요. 곡의 처음부터 기타 솔로처럼 연주했어요. 그렇게 하는 게 재미있어요.
송재경 : 저는 「유예」가 좋아요. 1집 때를 물어보시면 「연날리기」가 되고요. 둘 다 제 개인을 위한 노래이기도 하고요. 스스로 위로할 수 있기 위한 노래거든요. 제가 곡을 썼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안 아픈 손가락이 없죠.
개인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은 아티스트나 앨범을 2~3개 정도 꼽을 수 있을까.
송재경 : 저의 절대적인 베스트는 아닌데요. 지금 시점에서 말씀드릴게요. 저는 일단 시인과 촌장 앨범인데요. 보통 「사랑일기」가 수록된 < 푸른 돛 >을 1집으로 아시는 분들이 많은데 지금은 절판된 < 시인과 촌장 > 앨범은 잘 모르시더라고요. 「꽃을 주고 간 사랑」, 「그대 목소리」가 들어가 있는 앨범이에요. 그 앨범 정말 끝내줘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인과 촌장의 이미지는 목가주의적인 포크잖아요. 그런데 그 앨범은 로큰롤이나 굉장히 다양한 시도들이 있어요. 서정적인 가사들의 원형도 볼 수 있는 앨범이죠.
그 다음에 외국 밴드들은 스미스(The Smiths). 모든 앨범이 좋지만 역시 < The Queen Is Dead >가 대표적이죠. 나머지 하나는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묘한 슬픈 사운드가 있는 것 같아요. 대놓고 우울한 감정으로 단조 코드로 절박한 보컬 창법이 아니어도 담담한 어조로 가는데도 슬픈 걸 보면 그런 게 놀라운 것 같고요. 다음 작업을 할 때 기술적으로 음반에 담아보고 싶어요. 아 무슨 숙제 같아. (웃음)
유병덕 :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제가 너바나 시대에요. 중학교, 고등학교 때 최고였어요. 음악이 세고 좋아요. 워낙 좋은 앨범들이 있지만, 저는 < In Utero >를 제일 좋아하고요. 물론 데이브 그롤이 이렇게 드럼을 쳤기 때문에 저 역시도 그런 스타일로 드럼을 친다는 건 아니에요. 전체적인 음악 면에서 워낙 임팩트가 컸기 때문에 빼놓을 수가 없어요. 그런 분들이 저뿐만 아니라 정말 많아요.
패기 넘치던 어린 시절에는 센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그런 성향을 바꿔 준 아티스트가 요 라 탱고(Yo La Tengo)였어요. 지금도 정말 많이 들어요. 이 음악을 듣고 뭘 느껴야지가 아니라 때가 되면 한 번 들어야 하는 음악이에요. 요 라 탱고 한 앨범을 석 장씩 사고 그랬어요. 너무 많이 플레이해서 CD가 긁힐 정도로 들었거든요.
너바나와 요 라 탱고의 두 가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고 그거를 변화시키면서 쭉 가고 있는 밴드가 라디오헤드라고 생각을 해요. 진짜 라디오헤드의 한 앨범을 뽑으라고 하면 정말 못 고르겠어요.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는 선들이 예뻐요. 그 중에 한 앨범을 뽑으라면 비교적 최근작인 < In Rainbows >를 말하고 싶어요.
유정목 : 개인적으로 절대적인 것은 라디오헤드고요. 저도 < In Rainbows >. (웃음) 그리고 이번 앨범 작업할 때 가장 많이 듣고 참고 했던 팀은 스웨이드(Suede)에요. 저는 버나드 버틀러(Bernard Butler) 정말 좋아하는데 앨범 들어보면 유려한 기타 선율이 계속 깔려요. 독창적인 특징이죠. 싱글을 모아놓은 < Singels > 다시 들으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걸스(Girls)요. 걸스는 음악적인 면보다는 전체적인 찌질함? (웃음) 이번에 저희 < 유예 >처럼 1집과 2집 사이에 < Broken Dreams Club >이라는 EP 앨범이 있는데, 그 앨범 좋아해요.
꿀버섯 : 저도 비슷하게 정서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게 1990년대에요.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의 < Jar Of Flies >앨범 좋아했고. 스매싱 펌킨스(The Smashing Pumpkins)의 <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많이 들었어요. 그 때는 학교 다닐 때 그 시끄러운 것을 밤에 불 꺼놓고 풀 볼륨 해놓고 들었으니까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죠. 두 번째 CD 정말 시끄럽거든요. 지금 음악 하는 것과는 전혀 연결은 안 되는데요. (웃음) 정서적으로만 영향을 많이 줬고. 그런데 정서적으로 영향을 준 게 정말 안 좋은 것 같아요. (웃음) 요즘 듣는 것은 기술적으로 좋은 앨범들을 많이 들어요. 좋으면 기술적으로 따서 “내가 해볼까? 이렇게 접목해볼까?” 생각을 많이 하고요. 그런 식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스미스고요.
이번에는 2집이 정해진 기간 안에 꼭 나오기를 빌겠다.
송재경 : 앞으로 계획된 공연도 잘 준비하고 열심히 앨범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 : 이종민, 홍혁의
사진 : 윤은지
정리 : 이종민, 홍혁의
사진 : 윤은지
정리 : 이종민, 홍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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