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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원 “우리나라 사람들이 점집을 왜 좋아하는지 궁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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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그 사람을 반영하지 않습니다. 아니, 글이 그 사람을 반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글은, 어떤 사람을 알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단, 단서가 붙습니다. 글쓴이 자신이 보고 느낀 세상을, 문장 안에 굴절 없이 담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런 문장 안에는 글쓴이의 어린 시절, 글쓴이의 성격, 글쓴이의 성격적 취약점 등까지 미묘하게 배어있어 독자들은 어느덧 그 사람을 상상하게 됩니다.
<채널예스>는 그런 글을 쓰고 있다고, 또는 쓰게 되리라고 여겨지는 남자 몇 명을 여러분께 소개하려 합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오직 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편집자 주

영화를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언젠가 ‘적정관람료’라는 특별한 칼럼을 만나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겨레 ESC 섹션에 4년 넘게 연재한 후 현재 딴지일보에서 볼 수 있는 영화평론가이자 소설가인 한동원의 적정관람료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는 독특한 형식의 칼럼이다. ‘적정관람료’를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극장관람료 8천원을 기준으로 영화의 인상 요인과 인하 요인을 종합해 그 영화의 적절한 관람료를 산출하는 칼럼이다. <베를린>의 경우 밀도 높은 액션 설계 100원, 화려한 캐스팅 150원, 남북 국가권력 어느 쪽도 이상화하지 않은 균형감 70원, 기본적으로 본 시리즈의 향취 후끈 -120원, 일부 첩보 액션 디테일에서의 설득력 부족 -30원 등으로 8510원이 적정관람료라는 평이 나왔다. 참고로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7250원, <더 헌트>는 8910원, <라이프 오브 파이> 10,080원(3D감상 시)이 책정됐다.

이 독특한 칼럼을 만들어낸 주인공, 한동원이 궁금했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돌직구 스타일의 어법, 적당한 무게의 유머는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그의 필자 데뷔기가 예사롭지만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채널예스> ‘글 쓰는 남자 인터뷰 시리즈’ 네 번째 인물로 한동원을 만나기로 했다. 스마트 폰을 쓰지 않아서 아직도 011 번호를 사용하는 남자, 2009년 작 『삐릿』으로 고교생 록밴드의 딴따라 행보를 소설로 써낸 작가 한동원은 2002년 영화 소개 프로그램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결정적 장면’ 코너를 진행해 화제를 모았던 주인공으로 그의 칼럼 앞에는 언제나 ‘무규칙, 도발’이 따라붙는다. 한동원의 색깔이 궁금하다면 그의 홈페이지(http://www.handongwon.com)를 먼저 방문해도 좋다.




9000원 이상의 영화는 가족이랑 다시 본다

2011년 9월에 개봉한 영화 <도가니>의 적정관람료 칼럼에는 다소 눈에 띄는 문구가 있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나 청소년 알아서들 관람 권장’. <도가니>의 원작자인 공지영 작가는 한동원의 칼럼을 ‘ㅋㅋ’라는 코멘트와 함께 리트윗했고 포털 검색어 순위에도 올랐다. 그리고 얼마 뒤 영화제작사에서는 <도가니>를 청소년들이 관람할 수 있는 등급으로 순화시킨 버전으로 상영할 계획을 발표했다. 적정관람료가 이 일에 얼마나 순기능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도가니>를 보고 싶어하는(그리고 봐야만 할) 18세 이하들의 정당한 여망을 조금이나마 반영하지 않았을까.

“적정관람료라는 칼럼은 한 마디로 ‘게으름의 소치’라고 볼 수 있어요(웃음). 그동안 영화와 관련된 방송 프로그램이나 영화평을 쓰면서 일반적인 형식, 즉 산문 형식의 글을 썼는데 벅차더라고요. 쓰고 싶은 영화들은 많은데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간략하면서도 편하게, 재밌게 소개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봤죠. 보통 독자들이 영화 리뷰를 읽으면서 ‘그래서 이 영화를 보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라고 하시더라고요. 예비 관객들이 영화를 선택하기에 앞서 자신의 취향에 따라 영화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깊이 있는 해석, 전에 보지 못했던 영화평보다는 ‘내 친구한테 이 영화 어땠어’라고 소개해주는 영화평을 쓰고자 했다. 관람료를 정할 때는 기본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한다. 그래야 독자들이 ‘이 영화를 볼지 말지’ 선택할 수 있기 때문. 한동원 작가는 보통 기본 관람료에 1000원 이상을 기록한 9000원 대의 영화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꼭 다시 본다고 한다.

“내 취향에만 의존해서 친구한테 영화를 잘못 추천했다가는 욕 먹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 걸 감안해서 각자의 취향 하나하나를 일관적으로 드러내면서, 그걸 기준으로 영화를 판단할 수 있게 쓰려고 해요. 기본적으로 영화를 본 다음 바로 평을 쓰려고 하진 않아요. 하루 이틀 지나, 일주일 지나 그 영화를 생각할 때 느끼는 바가 다르더라고요. 적정관람료가 매우 짧은 평이지만 설익은 판단으로 평을 쓰는 건, 그 영화를 만든 제작자에게도 관객들에게도 예의가 아니니까요. 최소한의 이야기를 하되 최대한의 시간을 들여서 가능한 설익은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해요.”

요즘, 한동원은 ‘나의 점집문화답사기’를 한겨레에 연재 중이다. 영화전문기자가 웬 점집? 점집마니아였냐고 오해하면 조금 섭섭할지도. 마니아는 커녕 오히려 ‘점집 기피자’인 한동원은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점집에 내방하고 있다는 작금의 현실” 때문에 점집 답사 칼럼을 쓰고 있다. 지난해 2월, 새 칼럼을 시작하면서 쓴 출사표에 의하면 이 칼럼은 ‘너의’도, ‘남의’도, ‘우리의’도, ‘니네들의’도 아닌, ‘나의’ 점집문화 답사기. 즉, 한동원이 방문한 점집에 대한 지엽적이고도 근시안적인 답사기다. 그는 “만에 하나 당 칼럼이 너의 점집 문화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깊이 있고도 거시적이고도 포괄적이고도 문화인류학적인 통찰 뭐 이런 걸 하려 들면 그 즉시 가까운 군부대나 파출소에 신고해주시기 바라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2년에 한 번쯤? 제가 예약하지는 않지만 가끔 지인들에 이끌려 점집을 간 적이 있었죠. 좋아하고 싫어하고 그런 건 없었는데 점집문화답사기를 쓰면서 뭐랄까, 점집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 건 맞아요. 점집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질, 사회분위기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됐죠. 여러 가지 장르(?)의 점집을 돌아다니다 보니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더라고요. 각 점집마다 잘 보는 점도 따로 있고 손님 연령층도 다르고요. 다 나름의 재미가 있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요즘 세대는 점집을 아주 결정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심각한 마음으로 간다기 보다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측면이 강해진 거 같아요. 점을 보는 사람들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인테리어나 음악 등도 신경 쓰고. 왜 이런 분위기가 생겼을까, 보면 영화를 보는 행위, 소설을 읽는 행위, 테마파크에 가는 것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점집문화답사기를 연재하면서 그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첫째 점집에 대한 정보, 그리고 ‘점쟁이가 손님 외모로 대충 때려잡은 거 아니냐’는 것. 최근 조교 투입에 맛들인 한동원은 성형수술한 전적이 있는 지인과 동행해 관상으로 유명한 점집을 방문했다. 과연 주인공은 ‘외모로 때려잡기’ 신공을 발휘했을까? 결론은 한동원의 칼럼에서 공개된다.




공대 출신, 딴지일보 공채 1기 영화기자

한동원의 학창시절을 엿보자. 대학에서는 기계공학을 전공했는데 소위 딴짓(?)을 많이 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학교에 상시적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동기들과 의기투합했는데, 졸업 후에야 시네마테크가 생겼다. 결론적으로는 후배들에게만 좋은 일을 한 셈.

“영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학내 시네마테크를 만들기 위해서 한마디로 용을 썼죠(웃음). 당시에는 단과대 강당을 빌려서 영화를 틀곤 했어요. 그 때는 저작권의 지배를 받지 않던 시절이라 열심히 틀어댔죠. 영화아카데미를 갓 졸업한 봉준호, 정지우, 이재용 감독의 단편도 틀고 인터뷰도 하고 그랬어요. 지금 이렇게 다들 거물들이 될 줄은 몰랐죠(웃음).”

그가 학부를 졸업했을 때는 호황기였다. 대기업을 골라서 들어가던 때였으니 취업 걱정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회사를 고르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계공학에 미래를 거는 건 아니다 싶었다. 당시 삼성은 새로운 직장문화 바람이 불어 반바지를 입고 출근을 해도 될 것처럼 광고를 했는데, 막상 들어가보면 복장 규정이 엄격했다. 한동원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대기업 입사를 거부했지만 억지로 들어갔어도 김어준 총수처럼 몇 개월 일하다 때려 쳤을 것 같다”고 했다.

“무작정 마음에도 없는 직장생활을 하는 건 아닌 거 같아서, 취직 말고 다른 걸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대안은 대학원이었죠. 자동차 디자인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알아보니 엔지니어링를 먼저 공부하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산업디자인대학원을 가려다가 꼬임에 넘어가 기계공학으로 석사까지 전공했어요(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 허송한 것 같지만, 제 글 쓰는 스타일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받은 거 같아요. 제가 소재를 찾는 방법이나 사물을 보는 법들이 기본적으로 공돌이들의 접근방식이거든요. 학생일 때는 내가 가진 딴따라 기질이 합쳐지지 못하고 상충했는데, 적정관람료 같은 칼럼을 보면 제가 논문을 썼을 때 문체나 특유의 말투들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어요.”

대학원 석사를 마친 이듬해는 IMF가 터졌다. 아무도 취직이 되지 않던 시절, 그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무작정 노느니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 싶어 이태원 블루스 클럽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고, 이후 인터넷영화전문사이트 회사에 들어가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98년에 창간된 딴지일보에서 99년에 유일하게 영화전문기자를 공채로 뽑았는데 그가 덜컥 붙었다.

“딴지일보에서 영화기자, 편집장으로 있다가 KBS <문화지대>, CBS 라디오 영화프로그램에서 패널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프리랜서로 일하게 됐어요. 원고 의뢰가 끊임없이 들어온 건 아니지만, 희한하게 끊길 만하면 들어오고 조금 쉬어야 하나 싶으면 또 들어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신기했어요. 과연 내 글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을까 의문이었는데, 누군가는 보고 있구나 싶었죠. 가끔 독자들로부터 피드백을 받고 그러면 업계에서도 복이 있구나 싶어요.”




작가는 책을 재미로 읽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프리랜서 글쟁이로 활동한 지 7년. 2009년에는 소설집 『삐릿』을 펴냈다. 정식 등단한 작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실천문학사는 한동원의 작품을 흔쾌히 출간했고 반응도 꽤 좋았다. 『삐릿』은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 'BEAT IT'에서 따온 제목으로 비주류에 속하는 아웃사이더 명랑 남고생들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담은 작품. 학교와 록 밴드라는 소재를 통해 학교 내 권력싸움, 혹은 제도권의 교육현실을 풍자했다.

“소설을 쓰고 싶다, 소설집을 내고 싶다 이런 것 보다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욕구가 있었어요. 대학교 동아리 시절, 영화를 열심히 보던 때도 ‘나도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은 없었어요. 다만 스토리 창작에 대한 열망만 있었던 거 같아요. 영화평이나 방송, 교양 프로그램에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불충분하다는 느낌이 있었죠. 완전한 나의 스토리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는 결국 소설이라는 결론이 났고, 어느새 소설을 쓰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어느 날 영화 <스쿨 오브 락>을 보다가 밴드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써보자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제 학창시절과도 영향이 있고 몇몇 인물은 제 고등학교 친구들의 캐릭터를 빌려오기도 했지만, 주인공은 절대 제가 아닙니다(웃음).”

현재 두 개의 소설이 완성 단계에 있다. 하나는 옴니버스로 펼쳐지는 단편집과 분노를 소재로 한 장편소설. 한동원은 우리나라 사회에 공기처럼 떠도는 분노가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묻지마 살인사건이 일어날 때 그런 분노가 가장 폭력적이고 돌발적인 방법으로 표출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결국 제 생계를 해결해주는 일이 글 쓰는 일이니까 전문분야라고 할 수 있는데, 적어도 글 쓰는 일에 대해서는 프로가 되야 한다고 생각해요. 프로다, 아니다의 차이점은 그냥 재밌어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건 취미인 거고, 돈을 받고 그에 따른 역할을 해야 하는 게 프로인 거죠. 내가 가진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쓸 수는 없지만, 매체가 원하는 것과 독자에게 마땅히 전달해야 할 바를 전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글을 쓸 때 자기검열은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일단 쓰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써놓은 후 다듬는 과정을 갖는다. 야구에서 투수가 공을 던질 때 체중을 실어 던지듯, 한동원은 체중을 실어 글을 쓰고자 한다. 체중이 실리지 않는, 무게나 관성이 느껴지지 않는 글은 함부로 내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 글쟁이 한동원의 원칙이다. “작가는 책을 재미로 읽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는데, 동의합니다.”한동원의 글에 대한 철학의 근거가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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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릿한동원 저 | 실천문학사
미니시리즈 「돌아온 일지매」의 나레이션을 집필한 한동원의 첫 장편소설. 영화평론, 드라마 및 문화 소개 프로그램, 쇼프로 대본, 인터넷 칼럼 등 장르를 불문하는 종횡무진 글쓰기로 우리를 매혹해온 그는 시청각을 자극하는 문체와 분야를 막론하는 무한 조합의 상상력, 풍자적 시선으로 무장한 특유의 내공을 아낌없이 발휘하며 1980년대, 고교생 록 밴드-딴따라들의 행보를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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