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혹은 임진년 조일전쟁을 류성룡과 이순신으로 볼 수도 있지만 류성룡 대신 콜럼버스로 이해할 수도 있다. 콜럼버스와 이순신으로 이해하는 임진년 조일전쟁은 좀 더 세계사적 시각을 넓힐 수 있다. 김경집 저자는 『생각의 융합』에서 당시 조선을 둘러싼 명나라와 일본 정세를 살피는 데 그치지 않고, 서구의 대항해 시대로부터 생긴 막대한 은이 어떻게 조선과 일본 그리고 명이 참여한 국제전을 일으켰는지를 알려준다.
1장이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역사적 소재인 임진왜란에서 출발했다면, 3장 역시 눈여겨 볼 만한 내용이다. 에밀 졸라와 김지하를 엮어 쓴 3장은 지금 대한민국이 어떤 사회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지식을 단순히 축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의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게 인문학의 사명이라면 이 책은 그러한 본질에 충실하다.
도처에 잠복해 있는 악의 세력은 언제든지 인간의 존엄성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망가뜨릴 것이다.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조작하여 정권을 유지하고 공포와 위기감을 조장하려는 짓은 단순히 내가 당하지 않았다고 해서 남의 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드레퓌스 사건은 그 이유를 분명히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정권의 안위를 위한 온갖 조작과 무리한 기소와 패소에도 불구하고 담당 검사가 책임을 지기는커녕 오히려 그에게 승진의 기회가 주어지는 작금의 현실은 스스로 법질서와 정의를 파괴하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173쪽)
김경집 저자는 서강대 영문과와 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한 뒤 가톨릭대학교 인간학 교육원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안정된 곳에서 연구할 수 있는 특권을 그는 스스로 버리고 지금은 저술과 일반인을 향한 강연에 매진 중인 그와 이야기를 나눠 봤다.
25년은 배우고, 25년은 가르치고, 나머지 25년은 글 쓰는 게 꿈이라고 하셨는데요. 최근에 많은 책을 내셨습니다. 그중에서 ‘생각의 융합’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가 있는 책인가요.
강단을 떠나 본격적으로 인문학 책을 쓴 것은 『인문학은 밥이다』였습니다. 흔히 문사철로 정의하는 인문학은 사실은 19세기 후반의 매우 좁은 의미였는데,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선 인문학의 대상과 범주에 대해 다루고 싶었고, 그 기준은 어떤 분야나 주제건 인간에서 출발해서 인간으로 귀결한다는 점을 밝히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12개의 주제를 다뤘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문화나 교육은 빠졌는데, 그것은 그 주제 자체가 매우 혼합적이어서 자연스럽게 다뤄야겠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책에서는 인문학의 ‘기본 메뉴’를 중심으로 식탁을 꾸몄습니다. 『생각의 융합』은 본격적으로 그 메뉴들을 중심으로 어떻게 새로운 식탁을 차릴 수 있는지, 그 레시피를 다룬 것입니다. 저로서는 이 책이 인문학의 구체적 방법을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제목, 내용도 ‘융합’을 테마로 하고 계십니다. 이 책의 성격이 문사철, 동서양의 융합 같이 느껴졌는데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융합’은 어떤 뜻인가요?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인문학은 문사철의 좁은 개념이 아닙니다. 인문학을 제대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을 먼저 읽어야 합니다. 융합은 단순히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섞고 어울리게 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식 체계를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는가, 상상력은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 것인가를 제시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기존의 지식을 시간과 공간으로 가로지르며 그 결절점을 찾아내 엮고 해석하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미래의 삶의 방식이자 대안인 ‘창조적 방식’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쓰신『인문학의 밥』과 마찬가지로 『생각의 융합』은 인문 사회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두루 읽으면 좋을 책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염두에 두신 독자가 있나요?
솔직히 이 책은 직장인들을 염두에 두고 썼습니다. 정보와 지식의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고 이미 기업 환경도 변했습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조직이 ‘팀’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 사례일 겁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왜 팀으로 재편했는지는 정작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보입니다. 팀은 수직적 구조가 아니라 수평적 구조여야 하며, 팀원은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독립적이어야 합니다. 그 자유로운 개인들의 역량과 상상력들이 결합해야 단순한 산술적 합 이상의 시너지가 발생합니다. 『생각의 융합』은 그런 시너지를 체감하는 도화선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기업과 기관에서 지속적인 교육을 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일종의 직무 직능을 위한 교육이지 각 개인을 위한 것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흔히 착각하지요. 그 교육을 통해 자신의 역량이 성장한 것처럼 말입니다. 진정 자신의 역량을 기르는 것은 바로 자유로운 개인들이 독립적으로 자신의 영감을 이끌어내고 그것들을 상호 결합하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이런 점들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보통 인문학 입문서는 시대순으로 사상사를 서술하거나, 문학 / 철학 / 예술 사조 등으로 분과 학문 체제로 소개하곤 하는데요. 『생각의 융합』은 역사적 사건을 여러 가지 지식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 책의 독특한 점 같은데요. 선생님께서는 ‘생각의 융합’의 장점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생각의 융합』은 일반적 카테고리를 파괴하려는 의도를 갖고 썼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범주 속에 가둬놓은 것은 이해의 용이성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그것을 현재의 환경과 상황으로 이끌어내 미래를 가늠하는 역할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 교육은 철저하게 상호 융합하는 훈련은 거의 배제한 채 각 과목의 전문적 텍스트 추종만 가르쳐왔기 때문에 상상력과 창의성을 결핍시켰습니다. 그런 태도에 대해 이 책은 매우 낯설지만 신선한 충격(?)으로 느껴질 겁니다. 이 책은 카테고리의 울에 갇힌 지식을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해석하며 스스로 재구성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는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여러 장에서 선생님의 비판적 현실 인식과, 현실에 참여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지금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누가 봐도 지금 우리나라는 정상이 아닙니다. 경제적으로는 양극화가 극에 달했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유린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절망적입니다.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이라면 어찌 지금의 현실에 대해 맹목적으로 지지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 자체가 일종의 범죄입니다. 당연히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싸울 것은 싸워야지요.
대안을 구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큰, 그리고 유일한 힘은 ‘연대’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치 담론이 아닙니다. 앞에서 팀제에 대해 말씀드렸지요? 왜 팀제로 전환했을까요? 스티브 잡스는 이미 일찍이 “사업에서 대단한 일은 결코 한 사람이 아니라 팀이 해낸다는 것이다”라고 갈파했습니다. 그 발상이 바로 팀제로의 전환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팀들은 어떤가요? 팀은 수평적 구조여야 하는데 우리의 팀들은 여전히 수직적 구조로 운용됩니다. 유연성과 탄력성도 없고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는 소대(platoon)의 역할만 맡습니다. 수평적 체제로 완전히 정립되어야 팀의 장점이 살아납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더 이상 정치 담론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존의 방식입니다. 민주주의의 실현을 통해 팀제의 본래적 가치를 실현하지 않으면 미래는 참담할 뿐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민주주의를 어렸을 때부터 교육하고 실현해야 합니다.
그리고 탐욕스러운 1%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각 시민들이 연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의 탐욕부터 어느 정도 덜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큰 가치를 위해 연대하고 그것을 실현해야 합니다. 미래를 위해,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 반드시 해내야 합니다. 인문학은 바로 그러한 가치를 깨닫고 실현하려는 의지를 이끌어내는 아주 큰 힘이 될 바탕입니다.
제가 앞에서 『생각의 융합』이 직장인들을 우선적 염두에 두고 썼다고 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명령이나 지침, 규율과 체제에 따라 순응하는 것은 결국 개인과 조직 모두를 죽이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결코 미래를 낙관할 수 없습니다. 창조의 가장 큰 힘인 상상력은 ‘자유로운 개인’에서 나오는 것이지 결코 ‘통제된 조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IMF를 기점으로 인문학을 향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진단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무엇으로 보시나요. 우리가 인문학을 알아야 할 당위성을 말씀해주신다면?
흔히 1997년의 IMF를 경제 문제로 국한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리고 그 체제를 3년만에 졸업했으니 그 문제는 일단 끝났다고 여깁니다. 큰 착각입니다. 1997년의 문제는 단순히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산업화시대의 프레임인 ‘패스트 무빙(fast-moving)' 사회의 유일한 가치 척도인 ’속도와 효율‘의 일방적 추종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이미 세계는 그 틀을 벗어나고 있는데 우리만 그 틀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자초한 불행입니다. 결국 이전의 한국 사회 구조가 전체적으로 붕괴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실제로 IMF가 초래한 대량 해고와 직업에 대한 불안정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계발서에 몰두하게 만들었지요. 그러나 그 책에서 하라는 대로 해서 살림살이가 나아졌습니까? 아무리 용을 써도 그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문제는 개인의 나태나 무지 때문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한계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자기계발서 수십 권 읽어도 삶은 나아지지 않지요. 그렇게 5~10년쯤 하면서 지치게 되자 ‘위로’에 관한 책들이 쏟아집니다. 그러나 그 위로는 달달한 위로나 격려에 그쳤습니다. ‘사회적 위로’가 없었습니다. 사회적 위로는 바로 복지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자기계발처럼 개인의 문제로 치환시켰지요. 그리고 ‘사회적 위로’는 우리가 산업화 시대를 겪으며 잃고 잊고 지냈던 인간의 가치와 인격성 등을 회복하는 반성으로 이어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런 위로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이어지는 힐링도 소셜힐링이 되지 못하고 ‘셀프 힐링’에 그쳤습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삶을 다운사이징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자 사람들이 묻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도대체 뭐야?’ ‘내 인생은 뭐야? ’세상을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 거야?‘ 이런 질문들은 결국 철학, 문학, 역사의 문제입니다. 자기계발서나 위로와 힐링을 다룬 책은 읽을 때뿐인데 반해 이 책들은 생각할 것도 많고 머리와 가슴에 남는 것도 제법 묵직하지요. 그러면서 인문학 열풍이 일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나 문사철의 좁은 의미로 접근했고, 왜 인문학인지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결여된 상태에서 그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떨칠 수 없습니다.
인문학은 최소한 97년 체제 이전과 이후에 대한 진지한 반성적 성찰에 기초해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의 삶의 방식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대안입니다. 미래는 ‘퍼스트 무빙(first-moving)'의 프레임으로 바뀝니다. 97년 이후 현재까지 이미 그렇게 가고 있어요. 그 패러다임은 무엇일까요? 바로 ’창조, 혁신, 융합‘입니다. 이게 빠지면 미래는 없습니다. 인문학은 그런 의미에서 품위 있는 교양이 아니라 진화하는 삶을 위한 기초입니다.
많이 들으신 질문일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시 여쭙자면, 선생님께서는 강단에 서기를 자발적으로 그만 두셨는데요. 깊은 고민이 있었을 듯합니다. 많은 학자들이 원하는 교수 자리를 스스로 버리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런 생각을 30대 초반에 혼자 속으로 막연하게 동경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저지른(?)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대수명이 길어진 현재와 미래의 삶에서 힘이 있을 때 삶을 전환(turn around)해야 그 다음 단계의 삶의 추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는 정말 평생 꿈꾸던 나의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책 마음껏 읽고 자유롭게 글 쓰며 문화운동을 하고자 했던 꿈을 이루고 싶었습니다. 둘째는, 가르침의 설렘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연구실에서 강의실로 갈 때마다 늘 설렜습니다. 마치 연애하러 가는 청년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대학은 이미 취업을 위한 간이역으로 전락했고 학생들은 수업의 내용과 자신의 지적 성장보다는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강박에 휩쓸려 수업 시간에 스파크가 생기는 활력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설렘은 사라졌어요. 그 설렘과 떨림이 없는 학교와 강의는 회의적이었고, 그렇다면 그런 환경을 조금이라도 개선시키기 위해 밖으로 나가 교류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중 강연을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기도 합니다.
출판계에서는 인문 교양 책이 많이 나오지만, 한편으로는 일부 대학에서 인문학 관련 학과가 폐지되고 있는데요. 앞으로 인문학 관련한 교육 및 제도는 어떻게 정비되어야 할까요?
일종의 과도기 현상이라고 보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참혹한 게 작금의 대학 인문학 현실입니다. 기초 학문이 없이 실용 학문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최근 각 대학이 경쟁적으로 학과를 통폐합하는 것은 대부분 교수 인력을 줄이기 위한 일종의 경영적 시각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음모는 거의 보지 못하고 그저 인문학 관련 학과가 통폐합되는 것을 현실 사회에서 요구하는 학문으로 개편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겁니다. 저는 앞으로 대학의 절반은 개방대학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개방대학들은 일반인들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관심 분야를 개발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현실적인 다양한 과목들을 개설해서 졸업 이후에도 새로운 학위를 취득하여 미래의 선택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을 외면하면 절반 이상의 그 대학들은 파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살아남은 대학들은 지금의 이상한 명칭들의 학과를 다시 해체하여 기초 학문을 독립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때가 되면 오히려 독립된 인문학 관련 학과들로 돌아갈 텐데, 지금처럼 그것을 말살시켜버리면 과연 그게 가능할까요? 저는 바로 그런 점을 우려의 시선으로 봅니다. 살고자 하는 꼼수가 결국은 자멸의 자충수가 될 것입니다. 대학은 본연의 기초 학문의 보루며 진원지의 역할을 수행해야 미래가 요구하는 다양성과 창조성의 바탕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쓰시고 계신 책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150~180쪽 가량의 책을 하나 구상하고 있습니다. 아직 제목은 정하지 않았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정치 담론으로 접근하지 않고 삶의 방식,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래 경제를 위한 가장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필연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할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정치 담론으로 삼으면 늘 진영 논리에 빠지거나 그 논쟁에 휘말려 본의를 상실하게 되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해야 팀제가 제대로 운용됩니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의 삶의 방식이며 미래의 필수입니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97년 체제에 대한 반성적 비판과 미래의 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 하는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특히 내년과 내후년에 중요한 선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의 올바른 선택과 미래의 책임을 제대로 인식하자고 하는 권고이기도 합니다. 아주 짧고 명료하게, 그러나 메시지는 또렷하게 담아서 일종의 사회적 화두를 던지는 팸플릿처럼 써보려고 합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생각의 융합 : 인문학은 어떻게 콜럼버스와 이순신을 만나게 했을까김경집 저 | 더숲
인문학자 김경집의 신작 『생각의 융합』은 최근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융합적 사고에 대한 시대적 요구들을 인문학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그런 융합적 사고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흥미롭고 다양한 지식과 생각의 이야기들을 통해 엮고 있으며 이런 지적 자유로움의 과정들이 얼마나 사고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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