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카페에서 만난 개그맨 남정미의 가방 속에는 소설가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가 들어 있었다. “어려운 책 읽으시네요?”라고 물으니, 그녀는 “한글로 되어 있는 책인데 원서를 읽는 느낌”이라며 화통하게 웃었다. 2003년 SBS <웃찾사> ‘비둘기 합창단’으로 데뷔, MBC <개그야> ‘명품남녀’로 큰 인기를 얻은 남정미는 요즘 ‘웃기는 서평가’로 통한다. 남정미는 방송을 시작하면서 세 가지 꿈을 품었다. 첫째는 코미디언으로 상을 받아 보는 것, 둘째는 이름을 건 라디오 진행자가 되어보는 것, 셋째는 책을 쓰는 일이었다. 일찌감치 두 가지 꿈은 실현했고, 올해 4월 출판평론가 김성신과 함께 쓴 『북톡카톡』으로 마지막 꿈을 이뤘다.
『북톡카톡』은 김성신과 남정미가 실제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인 ‘카카오톡’으로 주고받은 ‘수다 서평’을 모은 책이다. 기존 서평의 틀에 벗어나 가벼운 대화체로 책 이야기를 나눈다. 책에 대한 엄숙주의를 탈피한 두 사람은 시트콤처럼 재밌는 대화를 통해 책을 소개한다. 15년차 노회한 출판평론가와 30대 개그맨의 만남.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시시콜콜 그들의 수다가 담긴 『북톡카톡』을 읽고 있으면, 책에 소개된 146권의 책들을 모조리 읽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두 사람의 대화가 코미디처럼 재밌기도 하거니와 각 분야의 양서만 골라냈기 때문이다. 봄, 놂, 앎, 변함, 깨달음 등 5가지 챕터로 책을 소개하면서, 챕터마다 ‘뭔가로 만들어주는 책 10 1’을 실었다. 남정미는 “『북톡카톡』은 책 146권에 대한 지도라고 생각하면 쉽다. 좋은 책을 소개해주는 기쁨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며, “100% 실제 입말 서평을 담았다. 비속어, 저렴한 외국어 등이 난무하지만 그만큼 솔직하고 재밌다. 웃긴 책, 하지만 뭔가가 남는 책을 읽고 싶으면 『북톡카톡』을 지하철노선표처럼 가지고 다니길 추천한다.”고 말했다.
『북톡카톡』은 지하철노선표 같은 책
얼마 전에 『북톡카톡』북 콘서트를 했다고 들었다. 트롯가수도 초대했다던데?
(웃음) 맞다. 특이하게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이런 북 콘서트는 지금까지 없었다고 하더라. 우리 아버지가 안동에서 미나리를 키우고 있는데, 오신 분들에게 모두 미나리를 대접했다. 무대에 나와서 인사를 한 마디 하셨는데, 내 자랑은 안 하고 미나리 자랑만 하셨다. “미나리 열심히 키웠다”고(웃음). 내가 방송에 나왔을 때도 좋아하셨지만 책을 내니까 더 좋아하시더라.
그동안 ‘웃기는 서평가’는 없었다. 출판계에서 남정미의 등장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북톡카톡』을 내고 칭찬을 많이 받긴 했다. 좋은 책들을 많이 소개해줬으니까. 재밌고 가벼운 대화체로 책 이야기를 풀었지만, 소개된 책들이 결코 편안한 책들만 있는 건 아니다. 나도 책을 잘 안 읽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쉬운 서평이 가능했던 것 같다.
카카오톡으로 서평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책은 김성신 평론가와 함께 선정을 한 건지.
김성신 선생님이 괜찮은 책들을 5권 정도 추천해주시면, 내가 그 책들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선생님한테 “이거 이해하기 되게 어려운데 왜 그래요?”라고 물으면, 저자가 어떤 의미로 이런 글을 쓰게 됐는지 정통서평가 입장에서 조근조근 설명해주셨다. 『북톡카톡』첫 챕터 ‘봄’에 소개한 『100명 중 98명이 틀리는 한국 맞춤법』을 읽고 나서는 별다방에 갔을 때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여자들의 수다가 마치 듣기평가처럼 들리더라. 이런 에피소드를 선생님한테 이야기하면, 그들이 왜 그런 단어를 사용하게 됐는지를 설명해주는 그런 방식이었다.
제목은 가벼운 느낌인데, 소개된 책들은 가볍지만은 않다. 고전도 들어가 있고.
신간을 주로 소개했지만, 평소 같았으면 읽어보지도 못했을『논어』도 들어가 있다. 선생님이랑 책 수다를 떨다 보면 어려운 책도 금방 소화가 되더라.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은 바로 잡게 되고. 『북톡카톡』을 하나의 지하철노선표, 그러니까 책노선표라고 생각하면 쉽다. 3호선을 타고 이 역을 가봤으니 저 역도 가봐야지, 그런 느낌의 책이다.
실제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눈 건가?
물론이다. 칼럼이 신문에 실리기 전 날, 밤 9시에 각자 집에서 카카오톡을 했고 김성신 선생님이 우리 대화를 정리했다. 원고를 신문사에 보내면 담당기자님이 지면에 맞게 분량을 조절해줬다. 처음에는 주간지 <M25>에서 연재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스포츠경향>에서 연재하고 있다. 처음에는 휴대폰으로 대화를 하느라 3,4시간 정도 걸렸는데 요즘은 카카오톡 PC 버전이 나와서 한 시간 반 정도로 끝난다(웃음).
서평을 하려면 굉장히 정의로운 사람이어야 한다
‘코미디 서평’의 문을 연 계기가 궁금하다. 책은 원래 좋아하는 편이었던 것 같은데.
좋아하긴 했지만 많이 읽지는 못했다. 나는 망가지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개그맨이었던 것 같다. 개그맨이 어떤 코너로 인기를 끌었으면 더 큰 캐릭터를 만들어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 예쁜 몸을 사용해야 할 때도 있는데, 나는 ‘뼈그맨’은 아니었다. 개그맨 생활이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2003년에 데뷔를 하고 2008년부터 이런 생각을 갖게 됐고, 조금씩 방송에 노출이 안 되다 보니 사람들에게 잊혔고. ‘나 개그맨 안 하면 뭐하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한국경제TV <줌마렐라의 도전>에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김성신 선생님을 만났다. 그 때 선생님이 ‘북앤트립’이란 코너에서 여자들이 읽으면 좋을 책을 소개해줬는데, 셰릴 샌드버그의 『린 인』을 읽어보라고 주셨다. 책을 읽고 “셰릴 샌드버그도 그렇고 마크 주커버그도 그렇고 벌레들이 참 일을 잘하네요”라고 했는데, 선생님이 “이렇게 피드백이 온 게 처음”이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말을 접으셨다. 또 며칠 후 책을 몇 권 더 주셔서 읽은 소감을 이야기했더니 “정미 씨, 짧은 시간에 그 책들을 다 읽으셨군요”라고 하셨다. “할 일이 없어서 읽었어요”라고 대답했더니, “서평을 코미디 쪽으로 해보면 어때요?”라고 제안을 주셨다.
『북톡카톡』의 공저자 김성신 평론가가 개그맨 남정미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준 셈인가?
(웃음) 그렇다. 그 때부터 김성신 선생님을 따라다녔다. 선생님이 출판계 분들을 많이 소개해주셨는데, 맨 처음 우리나라 1세대 출판평론가이신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님께 나를 데리고 가셨다. 서평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는데, 모두들 굉장히 환영해 주셨다. 본인들이 읽는 책들을 소개해주시면서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를 알려주셨다. 개그맨들은 밥그릇 싸움이 심하지 않나? 내가 가진 아이디어를 꽁꽁 싸매서 PD들한테 짜잔 하고 보여줘야 하는 직업인데, 출판계는 그런 게 없더라. 이것도 알려주시고 저것도 알려주시고. 뭔가 내가 할 수만 있다면 여기에 팔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서평가 선생님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궁금하다.
선생님들을 처음 만났을 때, 내가 했던 질문이 있다. “왜 이렇게 잘난 척하고 어려운 글 쓰세요? 서평을 읽다 보면 어려워서 책에 손을 못 대겠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서평 지면이 크지 않기 때문에 주어진 분량에 맞춰 쓰다 보니, 경제적인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하시더라. 깊게 들어가면 재밌게 쓸 수 있는데, 짧은 글에 핵심을 넣어야 하니 어려운 단어들을 쓰게 된다고 하셨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조언이 있나?
김성신 선생님이 해준 말이다. 나보고 대뜸 “정미 씨, 가난해요?”라고 묻더라. 그래서 “부자는 아니죠. 그런데 먹고는 살아요”라고 답했다. 선생님이 강조하신 말씀은 “그 어떤 출판사하고도 돈을 받거나 소개를 위해서 밥을 먹으면 안 된다. 서평을 하려면 굉장히 정의로운 사람이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 말을 듣고 되게 좋았다. 더 이 일을 하고 싶은 느낌이 들더라.
실제 서평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출판사들의 러브콜을 받았을 것 같은데.
책을 보내주시긴 하는데, 따로 만나거나 부탁을 받는 경우는 없었다. 항상 김성신 선생님이랑 다니니까(웃음) 따로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으면 선생님께 “이런 책 받았다”고 말씀 드린다. 처음에는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선생님이 “감사히 잘 읽겠다고 하고, 읽고 나서 책이 좋으면 소개하면 된다”고 하셨다. 또 “홍보비가 많이 없어서 마케팅을 잘 못하는 작은 출판사들이 많으니까 그런 책들도 관심을 많이 갖고 봐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책에서 강준만의『갑과 을의 나라』를 소개하면서, 개그감이 떨어진다고 걱정을 하던데. 서평가가 되기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어떤가? 개그감이 많이 떨어졌나?
(웃음) 대신에 책을 읽는 사람은 훨씬 더 많이 웃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지금 격주간지 <기획회의>에 원고를 쓰고 있는데 책 읽는 셀럽에 대한 이야기다. 가장 먼저 개그맨 전유성 선배님을 소개했고 배우 소유진 씨, 이번 달에는 아나운서 최희 이야기를 썼다. 피아니스트 진보라도 만났다. 예전부터 알고 있던 분들인데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 분들이다. 최희 씨는 요즘 철학에 꽂혔다고 했다. 그런데 산 책들이 너무 어려워 잠시 쉬었다가 읽을 생각이라고. 이렇게 읽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책을 샀다고 무조건 끝까지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쉬엄쉬엄 읽어도 된다. 사람들에게 책 읽기가 무겁고 심오한 취미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지금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를 읽고 있는 중인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닌데.
요즘 박상륭 작가의 책을 많이 읽고 있다. 어렵긴 하다. 한두 장 읽고 덮어놓을 때도 있다(웃음). 책 읽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지가 조금 지났으니까, 이제 게임 ‘테트리스’에서 말하는 하수, 바보 단계는 벗어난 것 같아서 ‘이 정도 책은 읽어도 될 거야’라고 생각했다. 서평을 하다 보니, 확실히 나에게 맞는 책을 추리는 시간은 훨씬 짧아졌다.
집에 책이 꽤 많겠다.
아빠가 며칠 전에 집에 오셔서 책장 구석에 철근을 대주셨다(웃음).
고명환, 정찬우, 김태균 선배에게 고마워
코미디 서평가가 됐다고 하니,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
나한테 책을 소개 받고는 “사기 당했다”고 한 분들이 조금 있다(웃음). 내가 수다를 떨면서 쉽게 설명을 해주니까 쉬운 책인 줄 알고 봤는데, 막상 읽어보니 어렵다는 거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다시 김성신 선생님한테 SOS를 친다. 우리 수준에 맞게 해석해주시면 그 이야기를 전해준다.
책 마지막 장에 ‘감사한 사람들’ 이름을 적었는데, 인맥이 대단하다.
연예인 분들은 많이 없다. 내가 살면서 신세를 진 분들, 한 번이라도 밥을 사주셨던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표시하고 싶었다. 고명환 선배 이름도 썼는데, 내가 가난하고 배고팠을 때 맛있는 걸 사주기 이전에 서점에 데리고 가준 오빠다. 당시 오빠 집에 봉천동이었는데, 서울대 근처 지하서점에서 책을 이만큼 사줬다. 너무 무거워서 낑낑대고 있으면 집에 데려다 주지는 않고 차를 타고 쓩 가버렸다(웃음). 근데 정말 되게 감사했다. 공지영 작가의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를 비롯해 정말 많이 받았다. 또 내가 컬투패밀리에 8년 동안 있었는데, 정찬우, 김태균 선배님한테 많이 배웠다. “왜 컬투패밀리는 가난한가요?”라고 하면, “돈 맛을 알면 사람의 가치적인 코미디를 못하고 건전한 코미디를 못한다”고 하셨다. 이를테면 누가 “남정미 씨, 용감한 시민상 받았다면서요? 미니스커트 입고 나가서”라고 말했을 때, 상처 받는 사람이 있으면 그건 건전한 코미디가 아니라는 말이다. 선배들은 성대모사를 해서 사람을 웃기지,, 누군가를 상처 주는 개그를 하지 않는다. 내 코미디의 평생 지론을 배운 곳이라서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북톡카톡』의 일러스트를 그려준 뚜루는 예스24 블로그를 통해 책을 출간한 작가다. 지금도
<채널예스>에서 지금도 카툰을 연재하는 걸로 알고 있다. 재밌게 읽고 있는 중이다. 작가님이 우리 책에 삽화를 그려주셔서 되게 영광으로 생각한다. 예전에 뚜루 작가님 책이 나왔을 때, 북콘서트 사회를 본 적이 있어서 얼굴을 뵌 적이 있다. 엄청나게 책을 많이 읽는 대단한 분이다. 뚜루 작가님이 그림으로 독자에게 다가갔다면 나는 수다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려고 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안 좋아하는 사람도 『북톡카톡』을 재밌게 읽을 것 같다. 특히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은 독자층이 있나?
내가 좋아하는 분들이 20대 후반부터 할머니까지, 여성 독자들이다. 나처럼 그동안 책을 많이 읽진 않았지만 관심은 갖고 있는 분. 그런 분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앞서 세 가지 꿈을 이뤘다고 했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우선 사람들에게 책 이야기를 재밌게 전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혼자 읽고 마는 게 아니라 책으로 대화의 장을 열어봤으면 좋겠다. 당장은 쉽고 재밌게 책을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10년쯤 하다 보면 나도 전문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두 번째 책 출간을 기대해도 좋을까?
<기획회의>에 연재하고 있는 ‘책 읽는 셀럽’에 대한 이야기가 책으로 나올 것 같다. 책 이야기는 언제나 재밌고 즐겁다.
북톡카톡 : 읽다 떠들다 가지다 김성신,남정미 공저 | 나무발전소
코미디언과 출판평론가! 세상에서 가장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만났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오직 독서를 즐긴다는 것 뿐. 하지만 그들은 곧 의기투합하여 전혀 새로운 서평을 시도한다. 이른바 ‘수다서평!’의 탄생이다. 신간 [(읽다 떠들다 가지다) 북톡카톡]은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자리 잡은 카카오톡을 두 사람이 실제로 활용하여 펼친 책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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