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이 충돌했던 지정학적 요충지였다. 지정학적 요충지에서 터전을 일군 탓에 한민족은 외세의 침입을 많이 받아왔다. 하지만 한민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었기에, 주로 침략을 당했지 다른 민족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이런 식의 이해가 한국사를 이해하는 주류 관점이었는데, 과연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정성을 잃은 다분히 민족주의적인 관점이다.
김시덕 교수가 쓴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는 우리의 민족주의를 거둬내고 이 지역의 역사를 바라본 책이다. 그는 국제전쟁으로서의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16~20세기 동부 유라시아 지역의 전쟁사를 연구해온 문헌학자이자 역사학자이다. 이 책은 그러한 저자의 연구 분야를 충실히 반영한다. 고대사에 관해서 짧게 설명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 책이 주로 다루는 시간대는 임진왜란에서 시작해 태평양전쟁까지다. 공간적으로는 러시아로부터 일본을 포함했다.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를 읽으면 우리가 비교적 잘 안다고 생각했던 임진왜란에 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되는 내용이 적지 않다. 또한 러시아, 대만, 오키나와처럼 한국과 가깝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공간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문순득처럼 잠시 잊혀졌지만 새롭게 조명되는 인물을 만나게 될 것이다. 조선의 천주교 박해처럼 아팠던 역사도 우리가 외면하면 안 될 엄연한 사실이다.
유라시아를 다뤘지만 결국 한국을 이야기하는 책
주간조선에 연재할 때 원래 제목은 ‘한반도와 유라시아 동해안 500년사’였어요. 제 관심사는 북쪽으로는 알류산열도부터 남쪽으로는 필리핀까지 포함한 지역입니다. 동아시아로 한정하지 않았어요. 이 책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사실도 한국인이 활동한 범위가 동아시아로 한정되지 않았다는 점이었고요. 동아시아라는 말이 많은 사람에게 익숙하긴 하지만, 한국과 중국을 주로 이야기하고, 일본마저도 곁다리로 취급하는 면이 있거든요. 그래서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에서도 동아시아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았죠.
한반도가 해안과 대륙이 충돌했던 지정학적 요충지라고 말하지만, 제가 하려는 말은 정반대입니다. 해안과 대륙이 충돌했던 게 사실이지만, 요충지로서 역할은 끝났습니다. 변방으로서, 그렇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힘이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고민해야겠죠. 그런데 책 제목 때문에 제가 하려던 말의 반대 반응이 나오고 있어 약간은 당혹스럽습니다.
서문에 쓰신 것처럼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명, 지명, 사건을 언급했는데도 청중이 당혹스러워하거나 심지어는 반발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글 연재할 때 독자 반응은 어땠나요.
제 연재에 관계했던 분이 카프카의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에 얼어붙어버린 바다를 깨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라는 말을 인용했습니다. 제 글이 도끼 같은 역할을 했다는 의미인데, 연재 때도 충격적이라는 독자들 반응이 많았어요.
이 책 주제는 무엇일까요.
결국 한국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국가가 아니라 한반도 사람이 어디까지 움직였는가를요. 문순득이 대표적인데, 묻혀버렸지만 지금 필요로 하는 사람 이야기가 이 책에는 많습니다. 문순득은 조선 시대에 가장 멀리까지 가 본 사람이죠. 꼭 역사가 교훈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지금 미국이나 인도 등 다른 세계에 갈 때 내가 처음이 아니라 조상이 왔다는 걸 알면 불안감이 없어지겠죠.
그렇다고 ‘위대한 한민족’을 이야기하자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재야사 쪽의 위대한 한민족 이야기는 경계해야 합니다.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배운 사람들도 대륙이 우리 거라는 식으로 주장합니다. 대륙 삼국설과 대륙 고려설 그리고 대륙 조선설까지 나왔어요. 루즈벨트가 한국민의 우수성을 시기해서 20세기에 대륙에서 한반도로 강제 이주 시켰다는 주장까지 있고요.
이런 황당한 주장이 왜 발생했는가를 생각해보면, 고대사에 제대로 대응 안 한 학계 책임도 있지만 아마 열등감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비틀어진 열등감이 우월감으로 전환된 거죠. 중국, 일본에 대한 열등감으로 우리가 그들이 되버리고마는 심리입니다. 작은 한국이 싫다는 건데요. 사실 작지도 않아요. 중간 규모 국가에서 잘 살았거든요. 왜 그걸 무시하려고 하는지, 있는 대로 봤으면 합니다. 문순득처럼 멀리까지 나갔다 살아온 사람도 있었고요.
만주가 우리 땅이었다는 시각은 잘못됐다는 말씀이죠.
고구려, 발해는 소수의 한민족과 다수의 말갈인이 공존하는 세계였습니다. 소수의 지배층이 한민족이었다는 이유로 만주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죠. 부여에서 고구려와 발해를 거쳐 지금의 한국에 이른다는 역사관은 19세기 러시아 학자들이 처음 제시한 것입니다. 이들은 한민족의 위대함을 입증하려 한 게 아니라 말갈족을 보려고 했습니다. 연해주가 러시아 땅이 됐기 때문인데요. 이런 맥락을 다 잘라버리고 저긴 한국땅이다고 하는 건 위험한 발상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러시아, 대만, 오키나와
책에서는 러시아를 다룬 부분도 많습니다.
동양사의 범위가 시간적으로는 전근대, 공간적으로는 주로 중국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죠. 중국은 남이 아니라 우리의 일부라는 생각도 강하고요. 한국 사회가 무의식적으로 한중일 삼국지적인 관점으로만 보다 보니 많이 놓칩니다. 그래서 일부러 러시아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책에서도『삼국지 연의』가 아니라 『열국지』나 정비석의 『소설 손자병법』을봐야 한다고 썼는데요.역사를 좀 복잡하게 봐야 합니다. 보르헤스의 『픽션들』의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를 보면, 백과사전을 누군가가 만들고, 그 내용이 서서히 현실로 침투해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한국사회에서 『삼국지 연의』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중일, 한미일, 제3당, 이렇게 꼭 3가지를 정립하려고 하는데, 『삼국지 연의』적 세계관은 폐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에서 시베리아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시베리아가 정말 광활한 영토인데도 역사의 공백 지대 같습니다.
역사의 공백지대가 아니라 우리 머릿속의 공백 지대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거죠. 왜 우리 머릿속에서 러시아 역사가 공백인지를 다룬 연구로, 씸비르쩨바 따찌아나의 <19세기 후반 조?러간 국교수립과정과 그 성격 : 러시아의 조선침략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라는 서울대 국사학과 석사 논문이 있는데요. 러시아에 적대감이 있는 중국과 일본 영향 받은 게 우선이고, 소련의 공산화와 한국 전쟁 때문에 적대감이 두 번째입니다. 이런 적대감이 무관심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해요.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점령하는 데 50년밖에 안 걸렸다는 게 신기합니다.
너무 사람이 안 살다 보니까 가능했습니다. 지금도 많이 안 살아요. 러시아도 처음에 원한 건 영토가 아니라 부드러운 금이라 불리는 수달, 단비의 모피였습니다. 곡물도 필요한데 없으니까 계속 가죠. 시베리아의 강에는 고기가 너무 많아서 발에 밟힐 정도였는데, 생선은 별로 안 좋아하니 곡물을 찾으려고 전쟁하고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습니다. 그런데 거기도 막상 식량이 없으니 북아메리카와 일본까지 계속 가죠.
정감록의 정도령과 대만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인 정성공이 연결되어 있다는 내용도 신선했는데요. 타이완에 대한 관심도 한국이 높지는 않은 듯합니다.
한반도 근처에 있지만 정치적 이유로 지워진 곳이 대표적으로 러시아와 타이완입니다. 대만을 모르는 건 정치 책임이 큽니다. 원래 한국 사회에서 중국이라고 하면 타이완을 의미했습니다. 중국과 수교를 맺으면서 타이완과 단교했는데, 그 과정이 폭력적이었죠. 갑자기 명동 타이완 대사관 철거를 통보했죠. 일본은 그렇게 폭력적으로 끝맺지는 않았습니다. 일본에서는 반공주의자 중심으로 타이완에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고요. 남한은 의리 없이 끊었지만, 일본은 자기나름의 양면 전략을 취합니다. 한국과 일본, 누가 이득을 볼까요? 타이완을 생각하면 복잡한 심정이 드는데요. 카이로 회담에서 한반도 독립 조항을 넣은 건 장개석(장제스)입니다. 하지만 국민당이 공산당에 패해서 타이완에 가지 않고 대륙에 그대로 남았다면, 남한이 이 정도로 번영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중국이 문화 혁명으로 정체된 사이에 한국이 번영을 누렸죠.
류큐왕국, 오키나와 역사도 이 책의 한 부분입니다.
역시 잘 안 가르치죠. 기껏해야 홍길동이 건너가 세운 나라다, 고려 적에 삼별초가 활동한 곳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모르는 나라를 접근할 때 우리의 뭔가와 관련 있다고 이해하는 태도는 제국주의적 접근이죠. 물론 오키나와가 한국과 연관성 있는 나라이긴 하지만, 그렇게만 가르치면 안 됩니다. 오키나와는 유라시아 동부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많이 했어요. 명이 해금 정책 취할 때 무역 국가로 번성한 나라이고 청일 전쟁과도 관련이 있고요. 우리는 이런 걸 너무 몰라요.
오키나와 사람을 만나보면 제주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한국인들이 일본 제국주의를 욕하는 데 공감 못한다고 해요. 오키나와가 보기에는 제주에 했던 한반도의 태도 역시 제국주의적인 거죠. 오키나와를 통해 세상을 보면 많은 게 보입니다. 초기에 위안부 문제가 밝혀진 곳도 오키나와였습니다. 이렇게 오키나와 사람들이 피해를 받은 사람을 향한 관심, 동정이 있거든요. 이런 의미에서도 오키나와가 중요해요. 홍길동이 지배한 나라라는 식의 가짜 역사 때문에 중요한 게 아니라요.
책이 태평양전쟁에서 끝나는데요.
어쩌다 임진왜란을 전공하게 되었지만 저는 고대를 좋아합니다. 중세 이전, 근세 이후도 다루긴 하지만 너무 현대 이야기는 제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그건 정치학의 영역이겠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최종 목적은 조선 아니라 세계 정복
영화 <명량>에 이어 드라마 <징비록>까지, 여전히 임진왜란을 향한 관심이 높은데요. 전공자로서 어떻게 이해하시나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다른 사회에 비해 전쟁사 이해가 한국사회에 없었기 때문에, 이를 메우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해석이 있고요. 그중에서 납득하기 힘든 게, 박정희 시대가 부활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인데요. 역사는 그런 식으로 반복되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영화 <명량>이 떴기 때문에 <징비록>도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늘 이순신에만 주목을 했으니, 이번에는 류성룡에 주목해보자는 거죠. 아직은 드라마 <징비록>이 영화 <명량> 만큼 인기를 끌지는 못하고 있는데요. 『징비록』은 굉장히 잘 쓰여진 책이기에, 드라마 작가 역량이 충분하지 않으면 류성룡 관점에 휘둘리기 쉽습니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처한 정치적 위기에 대해 분노를 품고 쓴 책이거든요. 독자는 자기 변론이 강한 책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징비록』을 봐야 합니다. 사람이 한을 품으면 400년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이 『징비록』이에요.
이 책에서도 임진왜란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원래 목적이 조선이고, 명을 친다는 건 구실이었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그런데 책에서는 히데요시의 목적이 처음부터 명이었고 명을 넘어 세계정복까지 꿈꿨다고 소개했습니다.
히데요시가 전쟁 도중에 죽었고, 전쟁이 끝나고 전쟁을 주도한 세력이 거의 다 척결되었기 때문에 전쟁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불확실한 면이 있습니다만, 여러 문서로 종합하면 명을 노린 건 확실합니다. 일본의 세계관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요. 일본이 보기에 중국과 한반도는 ‘진단(震旦)’이라고 해서 서로 구분되지 않는 공간입니다. 한편으로는 조선이 쓰시마의 속국이라는 전도된 인식이 히데요시에게 있었고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유품 목록 <<풍공유보도략>>에 실린 조선의 도자기 그림
흔히 고려다완이라 불린다
일본의 중화 의식도 설명해주셨는데요.
고대부터 있었습니다. 천황(天皇)이라는 말 자체가 그렇고, 고대 천황이 중국에 보낸 서간에도 나타납니다. 자기들이 북쪽으로 털복숭이를, 서쪽으로 오랑캐를 정복했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여기서 서쪽이 삼한이죠. 이게 일본만이 아니라 고려도, 고구려에도 나타납니다. 이성시 선생의 『만들어진 고대』를 보면, 광개토대왕비를 새롭게 해석합니다. 이 비석의 내용에서는 중국의 왕조들을 찾을 수 없는데요. 의도적 감춤이라는 거죠. 이게 소중화 의식입니다. 중국 빼고 내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거죠. 힘이 있는 주변 국가라면 누구나 갖췄던 소중화주의가 일본에도 있었습니다.
문헌학자이지만 역사학자로서, 사료를 보는 선생님만의 관점이 있을까요?
역사가 법칙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친 게 IS라는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역사 결정론자, 운명론자는 미국이 음모를 짠 거라 보겠지만, 인간은 예상하지 않은 형태의 결과를 초래하는 일을 저지르죠. 대체로 한 치 앞만 보고 움직입니다.
역사 하면 주로 큰 집단 이야기를 하면서 개개인 이야기가 묻힙니다. 저는 개개인을 보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역사학자는 아니겠죠. 개개인을 보려는 게 문헌학적 연구 방법일 텐데,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에서는 표류민 이야기가 그런 부분이죠.
이 책에 그런 인물이 여럿 등장하는데요. 선생님에게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누구인가요.
역시 문순득이지 않겠습니까. 21세기 한국이 발견한 한국인이죠. 이 사람이 밝혀진 건 1970년대이고, 해양 문학의 하나 정도로 묻혀 있다가 갑자기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왜일까요. 지금 우리가 그곳에 가기 때문이죠. 아직 접근은 못하고 있지만, 지금은 2차대전때 연합군의 일원으로 인도ㆍ버마 전선에 참전한 조선인 광복군에 관심이 있습니다.
조선의 가톨릭 역사도 비중 있게 쓰셨습니다.
1만 명이 죽었는데도 한국 사회에서 잘 가르치지 않죠. 종교를 떠나서, 인간을 다루는 게 역사라면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가톨릭에서는 우리 종교의 순교자라고 해서 중시하지만, 이 정도 규모라면 종교적 차원을 떠나는 문제죠. 책에서도 썼듯, 종교를 빌려와서 계급해방을 꿈꾼 건데요. 여전히 한국은 학계든 일반인이든 지배 계층에 관심 있다 보니 피지배층을 향한 관심은 약합니다.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연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주변의 연구자분들께 이런 말씀을 드리곤 합니다. 『한국 노비(문화)사』라는 두꺼운 볼륨의 책이 나오기 전까지 저는 한국학계를 온전히 인정할 수 없다구요.
전쟁에 관심이 많아서 저는 선생님이 무기에 관심이 많을 줄 알았습니다.
저는 사람 마음을 잘 못 읽습니다. 왜 똑 같은 걸 두고 서로 오해하고 싸우는지가 늘 궁금했어요.전쟁은 서로의 오해, 몰이해가 극단적으로 충돌하는 형태이죠. 그래서 전쟁에 흥미가 많아요. 비슷한 이유로 신흥종교에 관심이 많습니다. 왜 다 큰 어른이 저런 걸 믿을까, 궁금해요. 지금은 무교이지만, 고등학교 때에는 신학대를 가려고 했습니다. 제가 신학대를 갔다면 아마 성서고고학을 공부해서 서아시아 어딘가에서 땅을 파고 있을 거예요. 어릴 때는 실크로드 따라 이란으로 가서 땅 파고 싶은 꿈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책을 들이파고 있네요. 무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한국이 지정학적 요충지라고 과대 평가하지 말아야
한국이 지정학적 요충지라고 여전히 많이 생각하잖아요. 3차 대전은 한국에서 벌어질 수도 있다는 논의가 그런 예인데요. 앞서서 선생님은 이와 반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우리를 과대 평가하지 말아야 해요. 군사학적으로는 9.11을 3차대전으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이 전쟁은 전면전이 아니라 비대칭 전쟁이죠. 바로 오늘도 중동에서 4차 대전은 벌어지고 있고요. 이런 지역에 비하면 한국은 안정된 사회입니다. 1950년대 이후로 이렇게 전쟁 없는 지역이 어디 있나요. 국내 정치를 결집하기 위해 과장해서 공포를 조장하는 게 효과가 있지만, 그것이 반복되다보면 실제 외교 정책에서 실패를 하게 됩니다.
당장 지금만 봐도 시진핑이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아베와 악수하잖아요. 미국과 일본은 더 노골적으로 친해지고 있고요.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대한민국을 구애하고 있다? 아니죠. 오히려 줄 잘 서라는 협박을 받고 있다고 봅니다. 다른 나라가 우리의 진심을 알아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국제 관계는 냉혹하거든요.
앞서서 피해적 민족주의를 말씀하셨습니다. 역사를 보면 한국도 침략하기도 했잖아요.
최근 베트남 전쟁이 그렇죠. 여전히 학살을 부정하긴 하지만요. 조선시대 여진족을 보면 정말 불쌍합니다. 특히 요동반도 북쪽 건주 여진족에서 유능한 사람이 나왔다 싶으면 조선에서 사람 보내서 죽여버립니다. 우리는 평화 민족이라고 가르치지만, 이게 어떻게 평화 민족입니까. 잘했다 잘못했다 문제는 아니에요. 국가라면 자연스러운 건데요. 지금 미국도 일본의 위안부 문제를 인권 차원으로 문제 제기하지 일본의 조선 점령에 대해서는 아무 말 없잖아요. 조선이 여진족을 죽인 것도 비슷한 맥락인데, 우리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요. 여전히 일본 민족주의를 비판하면서 우리 민족주의는 나쁠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시장논리로 접근하지 않나요. 저기는 시장이 몇 억이다, 통일은 대박이다, 이런 논의요.
한국이 정치적 제국주의를 못하니까 경제적 제국주의로 가는 거죠. 한국에서는 자각을 못하고 있지만, 한국 기업의 “진출”이 마다가스카르의 정권을 뒤집어버린 사건처럼, 외국에서 보기에는 이미 한국은 상당히 제국주의적인 국가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죠. 어떻게 우리가 제국주의 국가인가, 피해 받은 민족이지. 이렇게 관념이 현실을 지배하면서 현실을 못 보게 만들어요.
학자가 아닌 일반 시민은 어떻게 균형 잡힌 관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세계 뉴스를 많이 봐야겠죠. 영어 외 외국어를 하나씩 더 하면 좋겠고요. 러시아, 중국 미디어가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해서 지금은 다양한 정보를 찾으려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약간만 관심을 더 가지면 학교에서 배운 걸로 끝나지 않고, 질적으로 다른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어요. 좋은 책도 많이 나왔습니다. 한국사회가 책을 안 읽는다고 하지만, 2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정말 좋은 책이 번역되어 많이 나왔습니다. 책을 직업적으로 볼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책을 많이 보다 보니 어느 순간 깨달음이 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많이 읽어야 합니다.
관련해서 책 한 권 추천해주신다면.
한국어 책 중에서는 최고로 여기는 김호동 선생의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몽골제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내용인데요. 몽골제국의 기억이 너무 강력했기 때문에, 언제든 중앙 유라시아에서 새로운 세력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계심이 대륙 지역의 여러 강대국들의 관심을 대륙으로 향하게 했고, 유럽은 그 틈을 타서 바다로 나왔습니다. 명나라, 조선, 러시아, 무굴 제국 모두 몽골제국의 후예라고 볼 수 있죠. 이런 넓은 시선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연구 주제는 어떤 분야인가요.
북이냐 남이냐, 어느 방향을 택하느냐인데요. 근세 일본 역사를 공부하려면 필요한 언어가 몇 가지 있는데 하나가 네덜란드어, 하나가 러시아어입니다. 남쪽이 네덜란드어고 북쪽이 러시아어죠. 이 책을 쓰면서 고민하다 러시아어를 택했습니다. 10년 쯤 뒤에 16-19세기 유라시아 지역에 관한 책을 쓰려고 합니다. 청, 조선, 일본, 러시아 쪽 지역인데요. 러시아어를 10년 정도 배우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요.
지금 당장은 다시 전공으로 돌아갔습니다. 조선비즈라는 매체에서 임진왜란 열전 연재를 시작했는데, 제가 국제적으로 임진왜란을 봤지만 한국사 맥락에서는 덜 봤더라고요. 그런 부분을 메우는 차원에서 한국 자료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임진왜란은 해석할 때 두 가지가 문제입니다. 첫째, 동인이냐 서인이냐인데 서인이 보기에는 조헌이 굉장한 영웅이죠. 둘째가 북쪽이냐 남쪽이냐인데요. 대표적인 예가 김응서입니다. 출신이 평양이라 남쪽에서는 잊혀졌죠. 이런 예가 북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거기서는 김시민을 몰라요. 그리고 이덕형 같은 인물이 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비둘기파는 잊혀지기 마련이죠. 이런 인물을 끄집어내려고 합니다.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김시덕 저 | 메디치미디어
한국은 해양과 대륙 사이에 있는 반도 국가로서 그 역할이 점차 커지고 있다. 21세기 한국에 걸맞은 역할이 필요하다. 대륙 일변의 역사에서 벗어나 해양을 중심으로 동아시아를 본다면, 당신은 오늘날까지 연속하는 해양과 대륙의 패권 대결을 현명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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