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선 저자는 다양한 이력을 지녔다. 궁중음식의 대가인 황혜성 교수의 둘째딸로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이수자이자, 한본선식문화연구원장이다. 한식의 대중화를 위해 ㈜대복을 경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밥 하는 여자』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시인이자 미식 작가로 활동 중이다.
한복선 시인이 쓰는 시는 독특하다. 소재 면에서 음식을 다룬다. 많은 시인이 작품의 일부에서 음식에 관해 노래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시에는 음식이 빠지지 않는다. 또 하나 특별한 점은, 음식에 관한 입체적인 경험이 담겼다는 사실이다. 음식을 먹는 데 그치지 않고 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까지를 시에 담았다. 여기에 더해 한국 근현대사는 물론 음식에 얽힌 조선 역사도 시의 소재로 다룬다.
음식이라는 친근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저자의 경험을 구체적인 시어로 담은 만큼 『조반은 드셨수』는 난해하지 않다. 동시 느낌도 들고, 에세이처럼 읽을 수도 있다. 덕분에 시에 친숙하지 않은 독자도 그녀의 시를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저자가 직접 그린 민화가 시와 어울려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는 점도 시집이 지닌 매력이다.
음식 시야말로 인문학 중의 인문학
식문화 전문가로 활동해오시다, 시 쓰기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매일 음식만 강의하다가, 생각을 해 봤어요. 지금 내 나이에 어울리는 게 무엇일까. 글이더라고요.글은 오래 남고 시끄럽지 않잖아요. 그 동안은 시끄럽게 말을 많이 했다면, 이제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긴 글로 쓴다면 필요 없는 시끄러움이 더해질 것 같고, 시야말로 나를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형식 같았죠.
이번 시집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으셨나요?
문화와 철학이 함축된 게 인문학이라고 한다면, 시는 인문학이죠. 음식도 인문학이에요. 음식이라는 게 사람을 떠나서 만들어질 수 없으니까요. 이번 시집 역시 많은 사람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어요. 여성으로서의 삶,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자식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음식에 관해 썼어요. 이번 시집에서도 주된 소재는 음식이에요. 음식에도 사계절이 있잖아요. 그래서 계절도 책에 들어가 있어요. 또한 음식의 맛과 조리 안의 의성어, 의태어 등의 맛있는 표현에 사라져가는 우리의 맛과 멋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시상이 떠오르지 않아 어려웠던 적은 없었나요.
전혀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썼어요. 제 이야기를 하는 거니, 소재를 찾는 데 어렵지도 않았고요. 첫 번째 시집인 『밥 하는 여자』가 제 이야기잖아요. 제가 아는 음식의 종류도 많으니 소재 찾느라 고생할 일도 없죠. 첫 번째 책이나 두 번째 책에도 여러 가지 음식이 나와요. 음식 이야기를 하면서 제 추억도 넣고, 역사 속 이야기도 넣었어요. 제 시집을 읽고는 지인이 지식이 많이 들었다고 해요. 음식 만드는 사람들은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인데, 음식 안 하는 분들에게는 생소한 거죠.
한복선 시인의 시에는 희망과 측은지심이 공존
시집에 주로 담으려고 했던 정서가 있나요.
제 시는 우울하지 않아요. 동시 같다고도 하고요. 이 시집에는 희망을 담으려고 했어요. 희망도 있지만 삶에 대한 측은지심, 배려, 미안함도 있어요.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에는 살아 있는 것을 죽음으로 초래하는 무자비한 면도 있거든요.
많은 작품 중에 표제작을 정할 때 고민하셨겠어요.
시라는 건 나를 보여주는 것이니까, 가장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고르느라 첫 번째 시집은 『밥 하는 여자』로 정했어요. 그리고 누구나 밥을 먹고 살잖아요. 밥이라는 한 글자가 뭉클하니까 시집의 제목으로도 적당하겠다 생각했죠.
두 번째 시집인 『조반은 드셨수』는 시어머님이 하신 말씀이었어요.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한낮인데, 막내아들에게 “조반은 드셨수”라고 물었어요. 우리 엄마들은 항상 밥 타령이잖아요. 본인이 배불러도 자식이 밥 안 먹으면 항상 배고프잖아요. 우리 말에는 아랫사람이라고 해서 함부로 하대해서 말하지 않았어요. 자식에게도 밥 먹었냐고 안 하고 조반은 드셨냐고 공대했죠.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많은 사람이 공감할 제목인 것 같아 이 작품으로 표제작을 정했어요.
우리 어머니는 아픈 아기에게
어미 입에 밥 잘근잘근 씹어 먹이시며
밥 먹어야 힘 난다며 평생 부엌에서 사셨다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도
막내 아들 보며 “조반은 드셨수”
한낮인데 아침밥 걱정이다 (<조반은 드셨수> 중, 18쪽)
시와 함께 실린 민화를 직접 그리셨는데요. 민화는 어떤 계기로 그리기 시작하셨나요.
그림을 좋아했어요. 대학교 때는 유화를 그렸지만, 완성을 못 했죠. 궁중 음식을 하니까, 민화가 어울리겠다 싶어 그리기 시작했어요. 실용적인 목적도 있었어요. 연구원에서 1년에 한 번씩 전시를 할 때 병풍이라든지 필요한 게 있거든요. 그럴 때 쓰면 좋겠다 싶어 꾸준하게 그렸어요. 개인전이나 시를 염두에 두고 그린 건 아니지만, 시집에 민화를 붙이니 생각보다 잘 어울렸어요.
<물밥>, <젯날> 등에는 한국전쟁 이야기 나오잖아요.
우리나라 역사를 봤을 때는 항상 평화롭지는 않았어요. 영화 <국제시장>에도 나오듯, 지금 우리의 평화가 그냥 얻어진 게 아니에요. 저마다 불만이 있겠지만 한국은 정말 잘 살아요. 우리 선대가 전쟁터에서 물밥이라도 먹으면서 살아남았기 때문인데요. 이번 시집에서는 우리의 역사성도 조금 보여주고 싶었어요. 시 한 편 한 편이 『혼불』처럼 소설이 될 수도 있다고 봐요. 『혼불』도 우리 민속 문화에 관해 많이 썼는데, 이 시집에도 전통문화를 많이 담았죠.
그때 이야기를 해 주실 수 있나요.
한국전쟁 때, 갓난아기였으니 기억은 안 나죠. 커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머님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돈암동에서 태어나서 충청도로 피난을 가는데, 남자들은 먼저 피했어요. 아버지가 큰아들만 데리고 먼저 갔고, 어머니가 저랑 언니를 데리고 피난을 갔죠. 논바닥에 버려놓은 솜이불을 기저귀 삼아 채우고 그렇게 갔대요. 하루는 우마차에서 언니를 잃어버려서 하룻밤 자고 나서야 찾기도 했다고 해요. 우리 둘은 자전거에 태우고 어머니는 걸어서 충청도까지 가셨어요. 그렇게 고생해서 가시다가, 밤에 갑자기 눈이 안 보였대요. 영양실조 때문에요. 그런데도 저는 식충이처럼 엄마의 젖을 먹었죠.
음식은 규격 없는 서로의 어울림
<깨진 그릇>과 <준치 새>는 젊은 세대를 향한 조언 같이 들렸습니다.
<깨진 그릇>은 100년 계약을 맺어 선서했더라도 삶에 희망이 안 보인다면, 새는 그릇 사이로 물을 줄줄 흘릴 게 아니라 팍 깨고 나가라는 시죠. 누구를 위해 사나요? 나를 위해 살아야 해요. 예전에야 자식, 부모 때문에 울고 참고 살았지만 그게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나를 위해야 다른 사람도 나를 위해줄 수 있어요.
아버님은 딸기, 어머님은 생란을 떠올리셨는데요. 선생님 자신은 어떤 음식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시에도 썼듯, 저는 유자이고 싶어요. 유자는 전통적인 우리의 과일이지만, 레몬과 오렌지 계통의 서양적인 맛이 나잖아요. 가시가 있는 은장도처럼 함부로 접할 수 없는 고귀함도 있고요.
<내연의 MSG>를 재밌게 읽은 독자가 많을 것 같아요. 이 시는 어떤 경험으로 떠올리셨나요?
오늘의 영양학은 영원하지 않아요. 와인이 좋다, 커피가 좋다 이런 이야기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흔들리죠. MSG가 죽일 놈이라고, 한 사람이 이야기하면 MSG 장사는 하루아침에 망하는 세상인데요. 정작 식약청에서 조사했더니, 좋은 천연 재료에서 나온 거라고 밝혀졌잖아요. 음식 만드는 사람들이 조금씩 다 쓸 거예요. 그런데도 MSG가 몸에 안 좋다고 하니까, 말을 못해요. 내연 관계죠. 숨겨둔 애인.
MSG를 사용하면 김치찌개든, 된장찌개든, 순두부든 맛이 획일화된다는 비판도 있잖아요.
사용하는 법을 몰라서 그래요. MSG 넣는다고 다 맛있는 줄 알지만, 아니거든요. 탕수육 소스 이런 데는 MSG 넣으면 더 맛이 없어져요. 양념은 물감 팔레트 같아요. 본인이 원하는 초록을 내기 위해서는 그때그때 다르게 섞어야 하는 것처럼, 양념도 마찬가지예요.
음식은 규격 없는 서로의 어울림(12쪽)이라는 말씀과도 통하네요.
음식이 예술이라는 말은 조선 요리 강령에도 나와 있어요. 우리나라 음식은 레시피가 없어서 음식이 아니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레시피가 없다는 건 가장 고차원적이라는 뜻이에요. 파스타는 누구나 만들 수 있죠. 실제로 아르바이트생이 서양 요리를 만들기도 하잖아요. 우리나라 음식은 반찬도 쉽게 못 만들어요. 음식은 첫째가 재료, 둘째가 지식, 그다음이 정성 이 세 가지가 합쳐져야 나오는데, 예술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한식 세계화, 우리가 먼저 한식을 알아야
재료를 말씀해주셨는데, 먹거리 안전성에 관해 불안한 소식이 자주 들립니다.
마일리지 적은 음식, 로컬푸드 이야기가 결국은 신토불이일 텐데요. 자연의 기를 받은 음식이 옳은 길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이제 다민족국가인데 우리 것만 고수할 수는 없어요. 다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 것만 찾는 건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사람을 믿고 싶어요. 나쁜 음식 만들면 잡아내잖아요. 현실적으로 내가 다 키워 먹을 수 없는 세상이니, 서로가 믿어야죠.
김치와 갈비를 상품화하는 활동도 활발히 하고 계신데요.
제가 홈쇼핑에 출연하니까 상업에 팔려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우리 음식을 상품화해서 주부의 일손을 덜어 줄 수 있거든요. 음식 만드는 걸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집에서 쉬고 싶고, 그 시간에 친구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우리 음식을 쉽게 구입하고, 음식 만들 시간에 딴 일을 할 수도 있겠죠. 옳은 길을 갈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은 평소에 어떤 음식 드시나요?
어떤 사람은 제가 궁중 요리를 하니까, 한국 음식만 먹을 거 같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아니에요. 아침에 빵 먹으면, 점심에는 밥, 그리고 저녁에는 국수든지 딴 걸 먹어요. 다변한 걸 좋아하죠. 머리 스타일도 저의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거예요. 경직되지 않은 생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한류를 이야기하면서 한식의 세계화가 빠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전문가로서 한식의 세계화에 관해 고견을 들려주신다면.
저도 지금 상품화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개인사업자인데요. 궁중음식연구원에서는 교육도 하고요. 한식의 세계화가 가능하게 하려면 우선은 우리가 우리 음식을 사랑하고 잘 알아야겠죠. 다음에는 나라가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아도 전문가들이 알아서 잘할 거예요. 물론 국력, 경제력도 받쳐줘야 하죠. 한국이라는 나라도 모르는데, 사람들이 한식이 뭔지 알 수 없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자동차도 많이 팔고, TV도 많이 팔면서 우리가 잘살고 볼 일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비타민 A, B와 같이 서양적인 영양학만 배우지, 동양의 영양학은 너무 몰라요. 동양 철학으로 봤을 때는 중용이 제일 편한 것이고, 편한 음식이 건강한 음식, 건강한 음식이 계절 음식인데 이게 다 자연 섭리, 음양오행, 대우주와 소우주와 이어지는 이야기거든요. 이런 쪽으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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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은 드셨수한복선 저 | 에르디아
조선왕조 궁중음식의 대가인 고 황혜성 교수의 둘째딸이자 궁중음식 전문가인 한복선 시인이 음식을 주제로 한 시를 엮어 두 번째 시집인 [조반은 드셨수]를 내놓는다. 이번 시집에서는 1집 출간 이후 새롭게 모은 시 80편을 묶어 궁중음식을 향한 애정,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자식과 손주에 대한 사랑 등을 담아 한층 더 깊은 향을 내는 시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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