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식물에 매료되었는데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 아마 씩씩한 생명력, 혹 변화무쌍함, 무엇보다 평화로움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몇 가지 표현으로 적긴 했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이유로 가슴이 뛰어서 나는 그저 식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한 나절을 보내고 싶다는 열망을 늘 가슴에 품고 있다. 이런 소망이 미완성인 이유는 도시에 살기 때문이며, 곁에 스마트폰을 두고 있기 때문이며, 막상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순간이 왔을 때 내 자신이 그 순간을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낭비라고 말하는 세상에서, 행복을 수치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 세상에서 어떤 숫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무위의 시간을 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고독의 힘』을 쓴 원재훈 작가는 “고독은 위로고 위안이고 치유”라고 힘주어 말한다. 고독의 시간을 애써 두고, 그 시간을 견뎌낸 사람은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까지 달리 할 수 있다고 말이다. 고독은 관계를 더욱 건강하게 하며, 종래에는 행복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을 작가는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함부로 타인의 영역에 나를 들여놓지 않고 나의 영역에도 섣불리 타인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내 삶을 풍부하게 하는 자양분이다. 풍요로운 숲을 이루는 잘 큰 나무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지 않다. 나무들은 제각기 그리움의 간격으로 아름답게 서 있을 뿐이다. (54쪽)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한 정현종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근본적으로 고독한 존재들이다. 고독하므로 관계에 얽매이고, 고독하므로 고독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그러나 작가는 고독 자체는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며 “고독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두려운 것”이라 설명한다. 고독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던 위대한 인물들은 고독으로 인해 삶의 진실을 찾아냈다. 고독이 없었더라면 결코 성취하지 못할 것들을 성취했다. 고독한 사람이 모두 위대한 인물은 아니라 할지라도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고독했다!
그러니 고독해지자. 고독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고독을 피하지 말자. 고독은 삶을 고양시키고 북돋우며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 우리를 데려갈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삶은 훨씬 단단해질 것이다. 잠시 멈춤이 더 힘찬 동력을 만들어내는 역설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 작가는 굳게 믿는다.
『고독의 힘』을 읽고, 나는 식물을 관찰하는 시간이 늘었다.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온 주제 ‘고독’
시인 보들레르는 이미 19세기에 “혼자 있을 줄 모르는 불행이라니!”라고 쓰며 한탄을 했다고요. 이런 탄식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더욱 유의미한 문제의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독은 시대의 문제가 아니고, 유사 이래 계속 되어왔다고 봐요. 동아시아 창조 신화 중 ‘반고 신화’가 있는데요. 반고가 혼돈 속에서 혼자 수천 년을 있다가 고독을 깨고 나와요. 고독의 시선으로 보면 모든 게 설명이 돼요. 보들레르를 이야기한 이유는요. 19세기는 가장 자본 등이 발달하던 시기, 인간이 뭔가를 이뤄낸 시기잖아요. 그것은 물론 가치가 있죠. 반드시 필요하고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진짜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보들레르는 한탄을 한 거예요. 『악의 꽃』이라는 산문집 중 ‘고독’이라는 챕터에 나온 글인데요. 대단한 천재 시인의 눈에 세상 사람들은 고독을 몰라서 불행하다고 생각한 거죠.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상했겠죠. 고독해야 불행하다, 고독이 병이다, 하는 이야기는 익히 알았지만 고독하지 못해 불행하다고 말을 하니 참 이상했을 거예요. 하지만 보들레르가 위대한 시인인 이유는 고독의 힘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작가님은 고독에 대해 꽤 오랫동안 생각해온 듯해요. 작가 개인에게도 고독을 통해 구원 받은 어떤 경험들이 있었던 것이겠죠?
가장 고독과 친해야 할 사람들이 작가예요. 예술가들은 고독과 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연예인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혼자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어떻게 다른 사람과 함께 하겠어요? 사람이 사랑하는 데도 마찬가지겠죠. 누군가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은 자기가 고독해지는 거예요. 자기 혼자서 잘 살아야, 고독하고, 혼자인 상태를 잘 견뎌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어요. 혼자를 견디지 못하고 주변에 기댄다고 생각해보세요. 못 살아요. 스스로 지낼 수 있어야 서로 사랑할 수 있어요. 에리히 프롬도 그렇게 말했어요. 두 사람이 얼마나 사랑하느냐는 얼마나 외로운가의 증거라고요.
일상생활에서도 고독을 견뎌야 자기 일을 할 수 있어요. 조직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더 하겠죠. 내구력이 강한 사람들은 주변에 크게 영향 받지 않거든요. 곁에서 보면 고독을 잘 견디는 사람들이 탁월한 경우가 많더라고요. 또한 고독은 제가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온 거예요. 직전에 썼던 『단독자』 역시 고독한 사람들의 이야기고요. 출판사에서 『고독의 힘』제안을 받았을 때 아주 흔쾌히 책을 쓸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기가 막힌 타이밍 덕분이었죠.
반복해서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기를, 산책을 하기를 권하셨어요. 쇠이유 사례도 흥미로웠고요.
메스너의 사례도 그렇죠. 산악인 메스너(Reinhold Messner)는 고독의 제왕이에요. 셰르파도 없이 혼자 등반한 사람이죠. 『검은 고독 흰 고독』을 쓰기도 했는데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혼자 등반하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엄청나게 고독한 일이죠. 세계적인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도 마찬가지예요. 마라톤은 말할 것도 없죠. 철학자들, 예술가들이 산책을 많이 하는 이유가 있어요.
중요한 것은, 고독은 절대 방치나 격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격리의 상태는 감옥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사회적 약자들에게 고독을 이름 붙이는데 그것 역시 고독과는 다른 것이죠. 또 다른 차원이에요. 고독은 스스로 선택하는 거예요.
흔히 고독을 외로움, 슬픔, 우울처럼 부정적인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고독이란 무엇인가요?
영어로 생각하면 쉬워요. 고독을 두 가지로 번역할 수 있어요. loneliness와 solitude인데요. solitude가 고독이에요. 고독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속성이 있어요. 외롭고, 쓸쓸한 속성이 있죠. 그걸 전환시키자는 거예요. 그게 바로 행복으로 가는 길이니까요. loneliness를 생각하지 말자는 거예요. 고독이 사람이라고 칩시다. 똑같은 사람이 다가와도 각자 대응이 다를 것 아니에요. 그것과 똑같아요. 고독은 손님이에요. 손님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대할지는 내가 하기에 달렸어요. 내가 잘해드리면 그 사람이 나에게 금을 줘요. 고독이 무서워서 내쫓았다면 황금을 받지 못했겠죠. 차 한 잔만 주면 그가 갖고 있던 황금을 다 주려고 하는, 바로 그게 고독이에요. 우리는 고독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무섭다고 하지만 절대 아니에요. 고독은 위로고 위안이고 치유예요.
‘고독해야 고독하지 않다’(167쪽)고 한 역설이 그 때문에 가능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철학자 소로가 그랬죠. 세상에 노을이 진 하늘만큼 기품 있는 그림은 없다고요. 자연과 가까워지고, 고독해짐으로써 고독해지지 않은 거예요.
혼자 있을 때 행복한 사람
점점 많은 사람들이 행복에 대한 재정의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행복의 환상이 개인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인데요. 고독에서 행복을 찾는 것 역시 행복과 관련한 새로운 접근인 것 같아요. 고독의 관점에서 행복은 어떻게 가닿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결국 행복해지고 싶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행복하다는 게 무엇인지. 흔히 행복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잖아요. 그런데 한 단계 더 생각하는 거죠. 저는 혼자 있을 때 행복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싶어요. 스스로 찾아야 하지만 의외로 쉬워요. 혼자 있을 때 행복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들은 혼자 있을 때 많은 것들을 해요.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만들고요. 그 연장선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 관계가 튼튼하죠. 혹시 관계가 떨어져나가도 혼자가 행복하기 때문에 그 관계가 불행의 요인이 아니에요. 행복의 요인을 계속 밖에서만 찾으면 엄청나게 불안한 거죠. 『고독의 힘』이라는 책은 그런 관점에서 작가들의 이야기를 했어요. 책에 다루지 못했지만 고독의 관점에서 훌륭한 인물들을 다루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해요. 도스토예프스키, 베토벤, 모차르트 모두 그렇죠. 천재라는 건 얼마나 고독을 잘 견디는가에 있다고 생각해요. 고독의 힘이라는 것은 나비의 고치예요. 아주 간단해요.
책에 다루지 못한 사례도 많이 가지고 계시겠어요.
많죠. 스티븐 스필버그가 ET를 만들었을 때 어디서 만들었는지 아세요? 사막에서 만든 거예요. 사막이야말로 진짜 고독한 공간이잖아요. 고독한 상태에서 외계인을 왜 무섭게만 그리는지 의문이 생긴 거예요. 어린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귀여운 캐릭터를 만들어볼까 해서 쓴 것이 ET예요. ET는 당시 최고의 흥행수익을 거뒀죠. 도스토예프스키, 마크 로스코, 이순신 등 그 외에도 고독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가 정말 많아요.
“나는 오로지 꽉 물거나 쿡쿡 찌르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가 읽는 책이 단 한주먹으로 정수리를 갈겨 우리를 각성시키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책을 읽겠어? (중략)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이란 우리를 몹시 고통스럽게 하는 불행처럼,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우리가 모든 사람을 떠나 인적 없는 숲 속으로 추방당한 것처럼, 자살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책이야.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라야만 해.”(55쪽)
카프카의 사례를 보면 인간관계는 거의 없었지만 반면에 독서에는 무척이나 집중했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어요. 『고독의 힘』 역시 다양한 저작이 인용되어 작가님의 독서 편력이 엿볼 수 있기도 하고요. 고독의 시간과 독서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카프카의 유명한 말, “책은 도끼다”라고 했던 이전의 문장을 읽어야 해요. 일부러 책에도 길게 인용을 해놓았어요. 독서의 힘이 고독의 힘이라고 볼 수도 있을 거예요. 어떨 때 독서가 잘 되는지 생각하면 돼요.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읽는 건 힘들어요. 어려운 책은 방에서 읽고 또 읽어야 이해가 되죠. 방을 어둡게, 고독하게 해두고 읽어야 잘 들어와요. 힘들게 읽은 책이 오래 남고요. 고독할 때 메모하게 되잖아요. 뭔가 생각이 날 때는 고독할 때거든요.
가장 중요한 것은 독서예요. 책처럼 좋은 게 없어요. 독서를 많이 한 사람들이 강한 사람들이에요.
‘등대’에 관한 사유 부분이 계속 뇌리에 남았습니다.‘삶이 등대처럼 자신만의 빛을 발하며 어두운 세상을 뚫고 나가는 발걸음이어야’(109쪽)한다고 하셨는데요.
1년 반 동안 국내 등대를 다 돌아다닌 적이 있어요. 항만청에서 협조를 해주셔서 우리나라 등대 기행을 했어요. 남해, 무인도까지 다 돌아다녔죠. 독도는 접안이 안 돼서 못 갔지만요. 책에도 썼지만 기행을 하면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어요. 너무 어두워서 “바다가 참 어둡군요”라고 했더니 선장님이 “그건 갈 길을 몰라서 그런 겁니다”라는 거예요.
문학하는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했어요. 허구한 날 어둠 속에서 등대를 찾아다닌 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어요. 아주 인상적이었죠. 또 한 번은 어느 섬에서 등대지기를 하는 분과 술을 마셨어요. 그런데 그분은 술을 안 드시더라고요. 등대지기는 술을 마셔선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외로움을 못 견디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기쁜 일이 있어도 안 된대요. 자꾸 생각이 나니까요. 등대지기들 모두 등대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수행자들이죠. 간혹 그런 분들을 만났어요.
등대만큼 고독과 어울리는 게 또 있을까요. 등대의 불빛은 전 세계가 다 달라요. 어청도가 다르고, 부산이 다르고, 칠레가 다르죠. 그렇듯 자신만의 고유성을 가지면서 바다만 바라보는 거예요. 바다에서 바라보는 등대는 정말 달라요. 보지 않고는 모를 거예요. 등대에서 고독의 의미를 많이 깨달았어요. 많은 분들이 등대 이야기를 좋아하시더라고요.
작가님이 삶에 대한 자세가 엿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결국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는 거잖아요. 고독 그 자체만 얘기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고독을 통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이죠. 고독을 통해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까지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에요. 등대 기행을 하면 정말 사는 방법을 알게 돼요. 어쩔 수가 없어요. 마치 감옥 같은 상태니까요.
앞서도 감옥 이야기를 하셨는데, 도스토예프스키에게 감옥의 존재도 그렇고 감옥 역시 고독의 관점에서 의미심장한 장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바다만 해도 열려있는 공간이잖아요. 얼마든지 내릴 수 있고요. 가장 고독한 상태는 격리되고, 유배되고, 추방된, 감옥에 갇히는 상태예요. 저는 못 견딜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견뎌낸 사람들이 있잖아요. 넬슨 만델라,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등 유명한 사람들은 다 감옥을 겪었죠. 김대중 전 대통령, 신영복 선생 역시 옥중생활을 하셨잖아요. 보통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저는 만델라가 수감되었던 감옥에 직접 가봤는데요. 어떻게 지냈을지 상상이 안 돼요. 참고로 말하자면 만델라는 굉장히 낙천적인 사람이었어요. 미래를 어둡게 보지 않았어요.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을 때 “사형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했을 정도니까요. 반드시 걸어서 이곳을 나간다고 생각한 사람이에요. 이런 점은 반드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감옥에 갈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가장 좋겠죠. 하지만 그럴 때도 견딘 사람들을 보고 뭔가를 배워야 하는 거예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에요. 감옥에서의 고독은 고독의 최상급이죠. 될 수 있는 한 그런 상태에 빠지지 않아야 하지만 혹시 그런 상태가 된다면 이런 분들을 떠올릴 수 있겠죠.
나는 터널처럼 고독하다
‘희망 없는 상황에서 용기가 힘을 발휘할 때 인간은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162쪽)고 한 에릭 호퍼의 말을 읽고 또 읽는다고 하셨어요. 희망을 유행가처럼 말하는 세상에서 용기에 방점을 둔 삶이란 또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생활인으로서의 자세이기도 하고요. 특별히 이 문장에서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정확히 “자기기만이 없다면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시작해요. 희망이라는 건 자기기만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나를 살짝 속이는 거죠. 희망하는 것이 이뤄질 것이라고 자신을 속이는 거예요. 이 책이 당장 베스트셀러 1위가 된다는 것은 자기기만이에요. 하지만 책을 내고,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은 용기예요. 에릭 호퍼는 제가 무척 좋아하는 철학자예요. “돈은 악의 근원이다”라고 누군가 말했어요. 그걸 헛소리라고 해버리는 건 하수죠. 에릭 호퍼는 “그는 악에 대해서도 모르고, 돈에 대해서는 더 모른다”고 말해요. 기가 막히죠. 그야말로 신사예요. 우리로 치면 선비죠. 모두 고독한 사람들이에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평화라고 결코 말할 수 없듯이 고독은 과정이어야 하지, 종착점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요?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만으로 고독의 힘을 알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에 대해 기가 막힌 대답을 한 사람이 파블로 네루다예요. 나는 터널처럼 고독하다. 얼마나 기가 막힌 말이에요.(웃음) 고독은 터널이에요. 터널이 있어서 빨리 갈 수 있어요. 터널이 없으면 산을 넘어야겠죠. 그렇잖아요? 오히려 고독이 안전한 거예요. 어두운 터널을 가다가 끝에 빛이 다가올 때의 느낌은 대단하죠. 고독을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고독은 계속 와요. 우리가 열심히 운동해서 멋진 몸을 만들었다,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에요. 그 이후가 더 힘들어요. 인생에 터널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에요. 이 책을 읽고 ‘이 고독만 지나가면 나는 행복하겠다’고 생각한다면 확실하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요. 더 긴 터널이 또 나와요. 다만 터널이 나타났을 때 이것은 지나간다고 생각하면 돼요. 자연은 참 신비로워서 적당히 견딜 수 있는 터널을 주죠. 그 고독을 거쳐서 좋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시를 읽는 것에 대해 칼럼을 쓰시기도 했던데요. 시인으로서의 정체성도 크게 갖고 계시고요.
소설가로 등단했고, 소설을 쓰지만요. 시인이고 싶어요. 어렸을 때부터 정말 시가 좋았어요. 시집을 읽고 완전히 빠져들었어요. 김소월, 김수영, 정말 좋은 시가 많잖아요. 어렸을 때 시를 읽지 않았다면 지금 저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겠죠.
작가로서 고독을 처음 만났을 때가 언제인지 궁금했는데, 시를 만났을 때가 그때가 아니었나 생각이 드네요.
그렇죠.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었는데 얘기를 듣다보니까 그런 것 같네요.(웃음) 당시 맨 뒤에 앉아 있었는데요. 어쩌다가 여자 친구가 준 시집을 펼쳐 들었던 거예요. 운동을 많이 하고 체력이 좋았기 때문에 시를 볼 틈이 없었거든요. 그때 혼자 처음으로 진짜 책을 본 거예요. 교과서가 아닌 책을 말이에요. 그게 바로 시집이었어요. 그때부터 시를 읽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내 인생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 결국 그렇게 고독한 어떤 순간에 사람의 인생이 결정돼요. 그 고독한 한 순간이요. 자기에게 다가오는 고독이 분명히 누구에게나 있어요. 황제, 거지에게도 다가오죠. 고독이 다가올 때 어떻게 손을 잡느냐에 따라 황제도 되고 거지도 된다는 거예요. 기회라고 말하는데, 기회가 어디 있나요. 알아서 가는 거죠. 그저 외롭다고 생각할 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물론 힘들지만 지나가도록 견뎌야 해요. 누가 대신해주겠어요? 그럴 때 ‘이렇게 하라’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에요. 그런 말에 속지 마세요. 세상은 잔혹하고, 공정하지 않죠. 괴롭고 고독할 때, 그때 힘을 내야죠. 고독을 통해서 힘을 내야 해요. 다른 데 가거나 피해서는 절대 안 돼요.
책을 통해서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면 어떤 것인가요?
이 책을 읽고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세상이 힘들고, 거칠고, 야비하죠. 이 순간에도 배반을 당하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고독의 구렁텅이로 떨어졌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 사람들에게 여기야말로 치고 나갈 곳이라고 말을 하고 싶어요. 발상만 전환하면 세상이 달라질 거예요. 어떤 것 때문에 두려운 게 아니에요.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두려운 거죠. 시선을 잘 잡아주면 돼요. 고독을 바라보는 시선을 찾으라는 거죠. 고독을 달리 바라보면 역설적으로 고독도 외롭지 않게 되고, 더 이상 고독하지 않게 돼요. 소로처럼 말이에요. 소로가 자연에서 발견한 것을 여러분은 도시에서 발견하는 거예요. 일부러 그런 시간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하루에 5분 만이라도 고독한 시간을 만들길 바라요. 또 책을 읽으시길 바라고요. 책의 세계로 들어오셨으면 좋겠어요. 좀 더 바라는 게 있다면 이 책에서 다룬 니코스 카잔차키스나 보들레르, 카프카 등 유명한 작가들의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왜 그 작가들에게 감동했는지 알게 되셨으면 좋겠어요.
시인이나 예술가에게 고독은 반드시 필요해요. 시인,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위대한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그런 속성이 있으니까 고독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빌려오면 좋겠어요.
고독의 힘 원재훈 저 | 홍익출판사
고독으로부터 삶의 풍요를 발견하게 하는 인문에세이 《고독의 힘》은, 외로운 마음의 곳간을 긴 여운으로 남을 문학의 양식으로 채워주는 책이다. 상처로만 여겨왔던 고독에서 자기를 돌아보게 하는 귀한 시간을 통해 한층 더 성숙한 당신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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