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 기고] 일본에서 미야베 미유키를 만나다 에서 이어집니다
내가 SNS를 하지 않는 이유
정림: 선생님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시나요?
미미: 아직 없어요.
정림: 인터넷 사회의 발전에는 아무래도 스마트폰의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속에서도 개인정보나 풍평피해(소문으로 인한 피해) 문제가 등장합니다. 선생님은 책이 출간된 이후에 인터넷에 올라온 독자평을 모니터하시나요?
미미: 인터넷에 올라온 독자평을 직접 읽어 보진 않습니다. 제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예를 들어 독자들의 불만이 어떤 부분에서 나왔는지, 어떤 부분이 좋았다고 하는지 담당 편집자와 이야기를 하곤 해요. 아무래도 직접 읽게 되면 말이죠, 제가 정말 마음에 드는 소설을 만나게 됐다든지 재미있는 영화를 보게 됐을 때, 또는 기대했는데 막상 보고 나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럴 경우 최초의 단계에서는 감정적이 되기 쉽기 때문에 그런 상태로 무언가 글을 쓴다면 실제 감정보다 과장되게 표현될 것 같아요. 날선 말을 하게 되죠. 칭찬이든 실망했다는 평이든 강하게 정보가 올라오니까요. 그런 걸 계속 보게 되면 칭찬을 받았을 때는 기고만장해지고 안 좋은 평을 들으면 축 처지니까 직접 날것의 정보는 보지 않으려고 해요.
요즘은 SNS를 많이들 하실 텐데, 이건 누구든지 바로 발신할 수 있으니까 굉장히 감정적인(emotional) 도구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것만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제가 트위터에 뭔가 쓰고 싶어졌을 때, 지금 감동받았으니까 이런 말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말도 어쩌면 무상한 것일 수 있죠. 조금쯤 말을 참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정림: 선생님의 경우는 직업적 습관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미미: 그렇죠. 원래 우리 작가들은, 자신의 원고를 쓸 때도 ‘이 단어로 괜찮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습관이 배어 있으니까요. 소설가가 되는 사람 대부분, 감정 표현이 풍부한 사람이 많아요. (감정이) 단조로운 사람은 별로 없죠. 항상 담담함을 유지하던 사람이 굉장히 감정적인 소설을 쓸 수는 없으니까요. 제 자신이 감정적이 되기 쉬운 성향이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머릿속 생각을 그대로 입 밖으로 내뱉는 건 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굉장한 칭찬의 말도 빗나간 것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늘 냉정하게 생각하려는 습관이 배어 있어요.
또 제가 SNS를 하지 않는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요. 제 생활이 너무 단조롭기 때문에 쓸 말이 없어요. ‘오늘 하루도 어제와 같음’, ‘이번 달도 지난달과 같음’ 이런 수준이거든요(웃음). 아주 가끔 어딘가 놀러가도 그렇게 눈이 번쩍할 만큼 새로운 곳이 아니기 때문에 쓸 말이 없어서 안 해요. 그래서 사무실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에도 쓸 소재가 없어서 전부 스태프에게 맡겨 버렸어요. ‘요즘에는 이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소개 정도뿐, 저에 대한 새 소식은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SNS를 매일매일 업데이트하고 또 그 내용을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고, 그렇게 활발하게 SNS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절대 못 해요.
정림: 동감입니다.
미미: 동지가 있어 다행이에요.
28년 동안 전혀 달라진 게 없는 출판계의 여성 차별
정림: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속에 여성에 대한 차별 내용을 짧게라도 넣으신 것은 의도하신 건가요.
미미: 그렇죠. 일본은 아직 멀었어요. 지금 아베 수상은 ‘여성이 활기차게 일할 수 있는 사회’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거짓말만 한다는 느낌이에요. 전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아요. 출산 휴가도 받기 힘들고……. 그래서 지금 10대, 20대의 젊은 여성들은 차라리 전업주부를 하고 싶어 한다고 들었어요. 사회에 나가 일해도 힘들기만 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회사에서 그만두라고 하니까. 그렇게 돈이 많지 않아도 되니까 차라리 전업주부를 하겠다, 남편과 아이를 돌보며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더군요.
제가 있는 출판계도 상당히 보수적이에요. 물론 우리는 기본적으로 실력주의라서 일을 잘하면 남자, 여자로 차별받는 일은 없습니다만 아무래도 어딘가에 아직도 남아 있다는 느낌이에요. 예를 들어 “이런 소재의 글을 쓰는 건 여성 작가가 잘하지”라는 식의 발언은 역시 차별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소재는 여성 작가에게 맞지 않다”라든가, “여성 작가치고는 선이 굵직한 작풍이다”라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저한테는 다 차별로 들려요. 그런 거 상관없잖아요. 출간된 작품을 읽고 “와! 선이 굵직한 작품이네”, “어쩜 이렇게 나이브할까”, 이렇게 느낀 다음에 작가를 판단하면 좋은데, “여성 작가가 이런 작품을 쓰는 건 별난 일이네요” 같은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걸 보면 정말 기가 막히죠. 저는 데뷔한 지 28년이 되었는데요, 그 28년 동안 전혀 달라진 게 없어요.
그럼, 이런 것이 완전히 근절된다면 사회가 좋아질까?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는 점이 어려운 것이죠. 그래서 이런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아요. 아주 친한 관계의 편집자가 아니고서는 하지 않아요. 출판계가 아직까지도 보수적인 세계라는 이야기는 좀처럼 하기 힘들죠.
서영: 음, 오늘 꺼내기 어려운 얘기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작품 『누군가』와 『이름 없는 독』에 이어서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도 드라마로 만들어졌잖아요. 자신의 소설이 드라마로 만들어질 때 ‘이런 정도는 지켜주면 좋겠다’는 것이 있나요?
미미: 시나리오를 읽어도 뭐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영화든 드라마든 시나리오를 읽지 않아요. 이게 영상이 되면 어떻게 만들어질지가 상상이 가질 않아요. 예를 들어 대사나 내용만을 가지고 “이 부분은 틀렸어요”라고 말하는 것도 좀 핀트가 안 맞으면 별로잖아요. 권리관계의 계약 때문에 사무실의 스태프분들은 시나리오를 읽지만 저는 읽지 않아요. 일단 제 의도와 너무나도 맞지 않는 에피소드가 추가되면 안 되니까 그런 정도는 사무실 스태프분들이 체크해 주셔요. 그래서 시나리오는 ‘뭐, 아무 상관없으니 영상에 맞게 써 주세요’, ‘이렇게 많은 등장인물이 전부 영상에 나올 수는 없으니까 생략하는 것도 당연히 상관없고요’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정말 유일하게 캐스팅만은 신경 써요. “누구누구로 해 주세요”가 아니라 “저는 이런 이미지의 인물로 글을 썼습니다”나 “이런 이미지의 배우는 안 될 것 같네요”라는 식으로 감독님께 말씀드리는 정도긴 하지만요. 이게 작가 개개인에 따라 다 달라서 시나리오를 전부 보고 수정하는 분도 계시고 촬영 현장에 가시는 분도 계셔요. 저는 견학 삼아 촬영 현장에 가본 것밖에 없어요. 뭐, 놀러간 거지요.
그래서 저는 맨 처음에 감독님과 이야기할 때, 스기무라 같은 경우는 기본적으로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갖춰 입고 회사를 가는 이미지가 잘 어울리는 배우로 해 주세요, 라고 이야기했어요. 딱 봐도 멋있는 연예인 같은, 물론 샐러리맨 중에도 ‘이 사람 미용사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사람도 있지만, 그런 느낌이 아니라 스기무라는 진짜 성실하고 평범한 샐러리맨이니까 그런 분으로 캐스팅해 주세요, 라고 부탁드렸죠. 배우분들 중 몇 분인가가 이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너무 기쁜 일이지만 제가 상상한 이미지보다는 연령대가 좀 높았어요. 스기무라는 좀 더 젊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동요하지 않는 타입은 곤란하니까 진중한 이미지가 아닌 배우로 찾았죠. 최종적으로는 고이즈미 고타로 씨가 해 주신다고 하셔서 정말 기뻤어요. 새로운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는 완전히 머릿속에 고이즈미 고타로 씨를 떠올리면서 쓰고 있을 정도거든요.
정림: 한국에서도 선생님의 작품이 영화화됐지요.
미미: 네. <화차>를 정말 훌륭한 영화로 만들어 주셨어요. 저는 이때까지 만들어졌던 어떤 영화보다도 한국에서 만들어진 <화차>가 정말 좋아요.
정림: 그때도 캐스팅 같은 것에 관여하셨나요?
미미: 아니요, 그때는 감독님에게 전부 다 맡겼죠.
정림: 배우분도 연기를 굉장히 잘하셨죠.
미미: 사채업자로 나오는 분은 정말 무서웠고 생활력 있는 연기를 보여 주셔서 진짜 훌륭했어요. DVD로 몇 번을 돌려봤는지 몰라요. 마땅히 볼만한 게 없으면 아, <화차> 봐야지, 하고 볼 정도였어요.
정림: 변영주 감독님이 기뻐하실 것 같아요.
미미: 영화가 너무 멋져서 변영주 감독님을 뵀을 때 정말 눈물이 날 뻔 했어요(웃음). 그때 저는 감독님에게 전부 맡겼는데 마지막까지 시나리오를 20번 이상 수정하셨다고 듣고 놀랐어요. 저도 물론 원고를 수정하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20번까지는 한 적이 없거든요. 그렇게 계속해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기 때문에 영화가 근사해진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서영: 사실 저희 엄마가 드라마 작가세요. 이 질문도 엄마가 대신 해달라고 부탁하신 건데요. 대본이 잘 안 써지면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저는 어릴 때부터 항상 봐왔거든요. 그럴 때 미야베 선생님은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알고 싶어요. 참고로 저희 엄마는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주무십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신대요.
미미: 어휴, 저도 어머님과 똑같아요(웃음). 오늘은 진짜 안 되겠다고 생각하면 먹고 싶은 거 먹고 느긋하게 목욕하고 휴대전화 게임 같은 걸로 좀 놀다가 그냥 자 버려요. 물론 다음날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건 아니더라도 기분전환이 되니까 다시 한번 긍정적으로 임할 수 있게 돼요.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아, 이렇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써야할지 곤란하면 그냥 오늘은 자 버리자 하고 자고, 다음날 일어나면 일단 이런 식으로 써봐야지 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돼요. 여러분들이 오시기 전에 질문지를 받아서 읽었을 때, 아, 저도 이렇게 자버려요, 하고 생각했어요(웃음).
서영: 저희 엄마도 게임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해서 대본이 잘 안 써지면 만날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시거든요.
미미: 그렇죠. 그게 아마 두뇌의 완전히 다른 부분을 쓰는 거잖아요. 글이 잘 안 써지거나 스토리가 잘 연결이 안 되거나 하면, 그걸 한번 풀어 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목욕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고요. 심지어 저는 목욕을 하면서도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는데요(웃음). 긴장이 풀리면서 뭔가 아이디어 같은 게 떠오를 때가 많아요. 다만 옛날에는 목욕할 때 떠올랐던 것들을 다 기억할 수 있었는데 요즘엔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서둘러 목욕을 마치고 메모를 한 후에 옷을 입어요. 안 그러면 다 잊어버리거든요(웃음).
서영: 아이고,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일동 웃음).
미미: 이건 뭐 어쩔 수가 없어요, 나이를 먹은 거니까요(웃음). ‘막히면 그냥 자버린다’는 어머님의 행동에 저도 엄청나게 공감하더라고 전해 주세요.
박: 엄마가 기뻐하시겠네요(웃음).
미미: 다행다행(웃음).
미야베 미유키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독자원정대 인터뷰 전경
일본 미스터리의 성장은 작가들의 결속력 덕분
정림: 한국에서는 선생님의 작품을 비롯해서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나 요네자와 호노부 작가 등 일본의 추리소설이 굉장히 인기가 있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것 중에 답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한국은 추리소설 작가들의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 또, 여성작가 중에 미스터리 장르를 쓰는 작가가 거의 없거든요.
미미: 아직은 그렇군요.
정림: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이 일본은 물론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데,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미미: 저도 이 질문을 처음 받아봤을 때 이건 정말 답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왜일지 의외로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고 생각해 봐도 이유를 모르겠더라고요. 영화의 경우는 한국이 더 훌륭하거든요. 일본 영화는 뭐, 완전 지고 있죠. 제 소설이 영화화된다고 했더니, 실명을 말할 순 없지만 어느 여배우가 “그렇다면 한국에서 만드는 편이 더 낫다”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예요.
정림: 일본 여배우분이요?
미미: 예, 일본 여배우요. 지금 활동하고 있는 배우예요. 그 업계에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말을 할 정도구나 싶기도 하고, 역시 그런가 하고 생각했어요. 제가 보는 TV채널 중에 wowwow라는 채널에서 한국 영화를 꽤 많이 방송해 줘요. 한국 영화를 일본에서 리메이크한 경우도 있는데, 너무 재미가 없어지더라고요. 뭔가 박력이 사라진달까. 신기하죠. 한국 영화는 이렇게 재밌는데 일본 영화는 왜 이렇게 맥을 못 출까요.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일본의 미스터리가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한국은 왜 미스터리 작가가 별로 없을까 하는 것도 역시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일본은 전쟁이 끝나고 바로 자유주의라는 정치 체제를 택해서 무엇을 쓰든지 검열당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한국의 경우는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으니까요. 거기서부터 조금 시간이 지나면 발전하지 않을까요. 일본도 처음에는 미국이나 영국으로부터 점차 수입하기 시작했고 그걸 읽은 사람들이 쓰기 시작해서 현재 일본의 미스터리의 맥을 잇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한국도 눈 깜짝할 사이에 미스터리가 번영하고 한국의 미스터리가 엄청 재미있어져서 저 같은 사람들이 조금 기력을 잃을지도 모르죠. 10년밖에 안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변화는 언제나 빠르니까요.
정림: 역시 일본의 미스터리는 시간을 축적해서 쓰는 것일까요.
미미: 지금은 많이 옅어졌지만 미스터리가 쇼와 시대, 그러니까 20세기까지는 좋게 말하면 서브컬쳐, 나쁘게 말하면 통속문학으로 일컬어졌기 때문에 문학작품으로서는 2류라고 할까 소모품으로 보이던 시기가 길었어요. 제가 데뷔한 지 28년 되었는데요. 제 세대에도 처음 10년간은 그런 분위기가 남아 있었으니까, 저보다 더 윗세대의 미스터리 작가들한테는 더 힘들고 분한 일들이 있었을 거예요. 좋은 작품을 써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요? 노골적으로 오락용 문학이라고 취급받았다든가. 그러지 않은 작가들도 있었지만 그 수는 정말 적죠.
이런 상황이 바뀐 게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인 것 같아요. 그렇게 ‘너희는 통속문학을 쓰는 사람들이야’라고 밖으로 밀려났기 때문에 그와는 반대로 미스터리를 쓰는 작가들끼리는 사이가 정말 좋았어요. 우리의 선배는 자신들이 엄청 고생했으니 그 밑 세대에게는 그런 분한 경험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 많은 것들을 해주셨죠. 제가 신인으로 등단했을 때도 미스터리 세계의 거물이셨던 분께서 자신의 담당 편집자에게 흥미로운 신인이 나왔으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도와주라는 식으로 말씀해 주시기도 했어요. 정말 결속력이 강했죠. 서로를 지지해 온 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성장하는 것도 빠르지 않았나 생각해요. 지금은 또 반대로 미스터리가 일본 문학의 중심처럼 되어 버려서 많은 사람이 쓰게 되었죠. 원래부터 미스터리가 좋았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문학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글쓰기가 결과적으로는 미스터리가 돼 버리는 등 굉장히 많은 분이 폭넓게 쓰게 되었어요.
정림: 선배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알고 있는 에도가와 란포나 마쓰모토 세이초 같은 작가분들이 떠올라요…….
미미: 아, 그렇군요. 그분들은 정말 전설적인 선배님들이시고 제가 말한 선배는 부모님 세대 정도의 분들이에요. 다들 돌아가셨지만요. 제가 데뷔했을 때 딱 지금 저 정도의 나이거나 그보다 좀 위였던 분들요. 완전 베테랑이셨던 분들이 많은 편집자를 알고 계시고 많은 일들을 해 주셨어요. 정말로 이 미스터리계를 지탱해 주셨고 그 후에 배출된 젊은 작가들을 응원해 주셨죠.
서영: 멋있는 분들이시네요.
미미: 그렇죠. 그래서 그런 시기에 있을 수 있던 게 정말 행복한 거구나 하고 느껴요. 그 시절이 행복했기 때문에, 선배들이 70대 후반, 80대가 되어 차례로 돌아가셨을 때 부모님이나 사이가 좋던 친척, 예뻐해 주시던 학교 선생님이 돌아가신 것만 같아서 울면서 날을 지새우곤 했어요. 점점 더 외로워졌고요. 지금은 반대로 제가 후배들이 곤란에 처하면 도와줘야 하는 입장이 되었는데 지금 후배들은 알아서 잘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뭘 해줄 게 없어요.
서영: 예를 들면 요네자와 호노부 선생님 같은 분들이신가요?
미미: 아, 요네자와 작가는 같은 게임의 팬이라서 저랑은 친구예요. 저도 요네자와 작가의 팬이라서 거의 모든 작품을 다 읽었어요. 굉장히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에요.
편집자가 의견을 주지 않으면 나는 실망한다
정림: 북스피어 편집부에서 제일 궁금해할 질문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선생님께서 『외딴집』을 집필하실 때, 이 질문지의 내용이 정확한진 모르겠습니다만……, 몇 번이나 연재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어느 편집자 덕분에 무사히 작품 연재를 끝마칠 수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일본 작가들의 후기를 읽다보면 편집자의 역할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요. 선생님에게 편집자는 어떤 존재인가요.
미미: 마라톤을 함께 뛰어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에 저를 길러내 주셨던 편집자분도 저보다 나이가 많으셨고, 동년배였던 분들도 지금은 출판 업계에서 은퇴했지만 훌륭하신 분들이 많았어요. 지금은 제 원고를 가장 먼저 읽는 분들이 모두 저보다 나이가 어려요. 그래서 어찌 됐든 사양하지 말고 이 부분을 좀 더 읽고 싶다든지, 이 부분은 알아듣기가 힘들다든지, 흐름이 좀 빠른 편이 낫다든지, 뭐든 좋으니까 꼭 말해 달라고 이야기해요. 젊은 편집자들은 아무래도 조심스러워하니까요. 아무 얘기가 없으면 저는 실망하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그렇게 부탁을 드려요.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말해 달라고요. 재밌게 쓰도록 노력할 테니까. 그렇게 말해도 화 안 낼 거라고 말하죠. 제일 먼저 내가 쓴 걸 읽어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재밌어하거나 무서워하거나 이 사건의 범인은 대체 누굴까 하고 생각해 주는 것이 원동력이 돼요. 그 정도로 중요한 존재예요.
꼭 많은 경험을 쌓아야만 좋은 편집자가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젊은 편집자만이 알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 입사한 지 2년밖에 안 된 편집자예요’라는 젊은 분이라도 ‘이 부분이 굉장히 감동적이었고 이 캐릭터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요’라는 이야기를 해 주시면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게 돼요. 그러니까 경험이나 연령이라든지, 순문학이 좋아서 미스터리는 잘 모른다든지, 미스터리는 좋아하지만 연애소설은 잘 모른다든지 하는 취향을 신경 쓸 필요는 전혀 없어요. 그 순간 그 작가와 호흡이 맞으면 될 것 같아요. 이 작가는 아마 이렇게 해주길 바라는 걸까, 이 부분을 알아줬으면 하는 걸까를 알아준다면 분명히 좋은 관계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반대로, 감사합니다, 하고 원고를 받고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 사람과는 일할 수 없어요. 그건 정말 허무한 일이죠. 정신 차려 보니 교정지가 와 있더라고요, 같은 느낌으로 재밌었다, 재미없었다 한마디도 말해 주지 않는 것은 씁쓸해요. 그도 그럴 게, 담당자가 첫 독자이자 그의 의견을 듣고 처음에 쓰는 거라는 생각을 저는 하고 있거든요. 처음에는 당신을 향해서 이야기를 쓰는 거니까 사양 말고 좋고 나쁜 점을 말해 주세요, 라는 느낌으로요
그때 마지막까지 저를 재촉하면서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만들어 주신 편집자분은 은퇴하시고 지금은 강아지를 매일 산책시키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계세요. 병을 앓고 수술을 하셔서 체력적으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셨대요. 회사에서는 남아 달라고 말했나 봐요. 1주에 두 번 정도라도 좋으니까 회사에 와 주세요, 라고 한 모양이지만 저는 오히려 은퇴하신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유유히 살아가셨으면 좋겠어요. 그때 편집자분은 저를 혼내면 제가 잘 못 쓸 거라고 생각해서 본인이 조심하셨나 봐요. 그래서 제가 못 쓰겠다고 말해도 절대로 혼내지 않으셨어요. 예를 들어 이번 달에 10페이지를 쓰기로 했는데 5페이지밖에 못 썼더라도 다섯 페이지를 썼다고 칭찬해 주셨어요.
저도 신인 때 편집자한테 크게 혼난 적은 없는데 그렇게 혼나는 편이 더 잘되는 작가도 있는 모양이에요. ‘아, 젠장’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엄격하게 말해 주지 않으면 ‘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한다나 봐요. ‘정말 진지하게 나를 생각한다면 가끔씩은 좀 혼내 봐요’라고 생각하는 작가도 있나 봐요. 그래서 뭔가 선생과 제자 같은 관계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부모 자식 같기도 하죠. 부부 이외의 모든 관계이지 않을까 싶어요. 형제 같기도 하고. 아, 그런데 실제로 편집자와 작가가 결혼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부터는 담당 편집자를 맡지 못하죠. 부부가 되어 버리면 객관적이지 못하게 되니까요. 또 반대로 간섭하면서 너무 심하게 말할지도 몰라요. 작가가 이건 내 세계다, 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말을 들어 버리면 상처를 받겠죠. 저야 전혀 그럴 일이 없었지만, 실제로 제 동세대의 작가들이 담당 편집자와 결혼하는 경우가 꽤 있어서 엄청 놀랐어요. 그렇게 되면 담당 편집자는 완전 다른 분야의 편집자가 되어서 떨어져서 일을 하고 그 부부는 원만하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한다나 봐요.
무슨 일이 일어나도 걱정 마시고 읽어주시길
정민: 이제 슬슬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인터뷰가 글로 정리될 즈음이면 『십자가와 장미의 초상』의 한국어판이 완성될 거예요. 한국의 독자 분들에게 한마디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미미: 어찌 됐든 주인공의 신변에 굉장히 큰 변화가 일어나니까 그 점에 대해서 다행이라고 느끼는 분들도 계실 거고 아, 역시 이렇게 되는 구나, 하고 느끼는 분들도 계실 거고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시는 분 등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을 것 같지만 스기무라가 살아가는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므로, 그가 그것을 잘 극복해 내서 사립탐정이 될 수 있도록 시리즈를 쓰고 싶습니다. 무엇이 일어나도 걱정하지 마시고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건 자체는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밀접하게 느껴질 수 있을 거예요. 좀 두꺼워서 하루 만에 읽는 건 무리일진 몰라도 서스펜스도 있고 인질들이 서로 사이가 좋아지는 모습은 느긋하게 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서 읽어 주신다면 그 이상으로 기쁜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독자: 감사합니다.
미미: 인터뷰 후에 관광이나 그런 예정이 있으신가요?
독자: 내일 진보초에 가보려고 해요. 처음인데, 선생님은 자주 가시나요?
미미: 가끔씩 가보고 싶어지죠. 뭘 사는 건 아닌데 그냥 걷는 것도 재밌고 의외로 대학이 주변에 많아서 싸고 맛있는 식당도 많아요. 그 주변에 출판사도 많고요. 슈에이샤(집영사)에 들르는 일이 최근에 많아서 돌아오는 길에 들르거나 해요. 서울에도 책방이 즐비한 거리가 있나요?
정림: 없어요. 서점이 그다지…… 인터넷으로 사니까요.
미미: 역시 그렇군요. 최근에 인터뷰했던 건데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편의점 세븐 일레븐에서 받아갈 수 있다고 해요. 오, 그거 좋네 하고 생각한 게 집에 아무도 없으면 못 받잖아요. 몇 권이나 주문하면 우체통에 못 넣으니까요. 편의점에서 받아볼 수 있다니 진짜 좋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아이디어네, 하고 느꼈어요. 전에 인터뷰하러 오셨던 분이 세븐넷에서 서적 담당이셨는데 책을 엄청 좋아해서 많이 읽고 오셨어요. 그래서 세븐넷의 광고지도 만드셨던데 그게 엄청 멋지게 잘 만들어졌더라고요. 이건 우리에게 진짜 편리하지만 출판업계 분들은 힘들겠구나 싶었어요. 일본에서도 도쿄나 오사카는 괜찮은데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는 점점 책방이 사라져서 통신판매만이 살길인가 봐요. 그런 식으로 큰 도시에서는 책방, 지방 도시는 통신판매로 어떤 책이든 다 판매할 수 있다고 해요. 그거는 그거대로 또 즐겁다고 생각했어요.
정림: 그렇군요.
미미: 아 혹시 스카이트리는 안 가시나요? 제가 사는 곳에서 가까워서 지하철로 한 역이에요. 제가 밥 짓는 주방에서 너무 잘 보여요. 너무 그렇게 잘 보이니까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상품이 너무 귀여워서 좀 준비해 봤어요. 가급적이면 한국으로 돌아가실 때 들고 가기 편한 걸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웃음).
일동: (완전히 감격해서 눈물!!!) 아 너무 귀여워요. 정말 감사합니다(웃음).
이상은, 당초 ‘야매 장르문학 소식지 <Le Zirasi> 특대호’에 실린 인터뷰 가운데, 분량 및 작품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일부를 축약한 내용입니다.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미야베 미유키 저/김소연 역 | 북스피어 | 원제 : ペテロの葬列
인질 전원이 무사한 채로 사건은 종결되는 듯 보이지만 진짜 수수께끼는 이제부터다. 인질이었던 승객들 앞으로 죽은 범인이 보낸 거액의 위자료가 도착한 것이다. 죽은 노인은 어떻게 이토록 큰 금액을 인질들에게 보낼 수 있었을까. 대관절 왜 보냈을까.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는 주장과 ‘정당한 대가이니 그냥 가져도 된다’는 주장으로 나뉘어 동요하는 승객들 사이에서 스기무라는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나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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