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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구 감독 “맞아요. 저는 쿠바 예찬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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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와이파이는 고사하고 인터넷도 쓰기 어려운 나라다. 이메일을 쓰려면 5성급 호텔의 비즈니스룸에 가야 한다. 정승구 감독이 묵언을 하고자 쿠바로 떠난 건 아니었다. 지난해, 혼란스러운 한국 사회를 마주하면서 ‘특별 시기’를 이겨낸 ‘레솔베르(resolver)’의 나라, 쿠바를 떠올렸다. ‘레솔베르’는 쿠바가 특별 시기에 썼던 구호이자 삶의 방식이다. 정승구 감독은 한 달 반 동안 쿠바에 체류하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걸 느꼈다. 검색창 없이 대화를 이어나가자, 생각의 호흡이 길어지고 집중력도 높아졌다. 무엇보다 쓸데없는 걱정을 안 해서 좋았다.

 

어제(7월 20일), 쿠바는 수도 아바나에 주쿠바 미국대사관을 재개설했다. 지난해 12월 17일, 54년 만에 미국과의 역사적인 국교 정상화 선언 이후 6개월여만이다. 정승구 감독은 ‘미국의 손길이 닿기 전, 자본주의의 때가 묻기 전’의 풋풋한 쿠바의 마지막 모습을 포착하고 왔다. 쿠바에서 받은 영감을 어떻게 풀어낼까 고민하다, 『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을 썼다. 정승구 감독은 “이제는 맥도날드, 스타벅스가 있는 쿠바를 상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꽤 서운한 표정이었지만 쿠바의 달라진 풍경을 벌써 궁금해 하는듯했다.

 

2009년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를 연출, 제작한 정승구 감독은<비열한 거리> 제작부로 충무로에 입문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도쿄, 보스턴, 시카고 등 세계 8개 도시에서 살았고, 지금까지 90여 개국을 여행했다. 지난해 장편과학소설 『영원한 아이』를 펴냈고, 현재 《중앙선데이》에 쿠바의 문화, 역사와 정치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쿠바 사람들은 자기만의 연출력이 있어요


“한 편의 로드 무비 같다”는 리뷰, 많이 들으셨죠?


엇, 그런 이야기 좀 들었어요. 뭐,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갔으니까 로드 트립이라고 하면 로드 트립이죠. 사실 쿠바는 정말 오래 전부터 가고 싶었던 나라였어요. 우리에게는 되게 미지의 섬? 환상의 섬? 이런 피상적인 이미지만 있잖아요. 관광객으로 가서 찔끔찔끔 보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최소한 한 달 넘게 체류해보자는 기분으로 떠났어요. 작년 9월에 갔는데 10월 중순까지 있었어요.

 

쿠바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많은데, 실제로 가본 사람은 많지 않아요.


제가 처음 쿠바에 대해 인지한 게 중학생 때였던 거 같아요. 서양사 시간에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해 들었는데, 그때 관심이 갔고. 또 1997년에 체 게바라의 유해가 발견됐잖아요. 그 때 한국에서도 체 게바라 평전이 유행하면서 언젠가는 쿠바를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2000년에 갈 기회가 두 번 정도 있었어요. 미국에서 지낼 때 멕시코를 통해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스케줄이 어긋나서 못 갔어요. 지난주 뉴스를 보니까 뉴욕과 쿠바의 수도 아바나 간에 직항이 생겼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관광객으로 쿠바를 들어가는 게 힘들었는데, 이제 관광객들이 대폭 늘 거예요.

 

취재비자가 없이는 취재가 불법이었는데, ‘페페’라는 친구 덕에 쿠바의 속살을 볼 수 있으셨던 것 같아요.

『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을 쓸 수 있게 된 것도 마찬가지고요.


항상 느꼈던 게, 우리나라 여행 책을 읽어보면 뭔지 모르게 단조로움이 느껴졌어요. 현지 사람들이랑 직접 소통하는 이야기를 쓰면 좋을 것 같았죠. 아무래도 모르는 반찬에는 젓가락이 선뜻 안 가는 법이잖아요. 하지만 용기를 갖고 현지 사람들에게 말도 걸어보고 연애를 하듯이 적극적으로 다가가면, 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어요. 페페는 쿠바에서 만난 어린 친구인데, 영어도 엉터리이고 딱히 하는 일이 없었어요. 시간이 날 때마다 같이 밥을 먹고 쿠바 이야기를 나눴는데, 제가 영화감독이라고 하니까 페페도 호기심을 보였죠. 쿠바 사람들은 외국인을 만나는 걸 좋아해요. 통제된 국가에서 살다 보니 자유롭지 못하지만, 문화적으로는 굉장히 열려 있어요.

 

예상과 달랐던 쿠바의 모습도 있었나요.


일단 저는 예상이나 예측을 많이 안 하는 버릇이 있어요. 지식과 정보는 기본적으로 알고 가지만, 선입견이 많을수록 여행의 재미는 떨어지잖아요. 너무 쿠바 찬양을 해서 좀 그렇지만. (웃음) 쿠바의 첫인상은 되게 깨끗하다는 거였어요. 쿠바가 아름다운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굉장히 깨끗하다는 것도 빠질 수 없을 것 같아요. 쿠바인들은 되게 부지런하고 적극적으로 살아요. 그리고 자기 연출력이 있어요. 멋있고 우아한 게 아니라 자기만의 연출력이 있어요. 그런 미학적인 것에 완전히 매료될 수밖에 없었어요. 또 좋았던 건, 생각보다 굉장히 열려 있고 사교적이라는 점이에요. 제가 생각한 것보다 세상물정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유럽, 멕시코, 캐나다 여행객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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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가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사람이었나요?


맞아요. 사람들이 가난하지만 찌들지 않았어요. 교육, 문화수준도 높고. 제가 이방인으로 그 곳에 들어갔지만, 한 달 반을 체류하면서 ‘아, 사람이 이렇게 살 수도 있지’ 그런 걸 깨닫게 됐어요. 건축물, 음악, 자연도 다 아름답고 좋은데 결국 잔상에 남는 건 사람이었어요. 쿠바 사람들에게는 때묻지 않은 순박함이 있었어요.

 

여행을 하는 가운데 감독님의 절친은 ‘페페’였잖아요. 페페 덕에 알게 된 ‘다리아나’ 이야기도 재밌었어요. 대부분의 쿠바 젊은이들이 미국을 선망하고 있었는데, 다리아나는 예외였잖아요.


다리아나는 발레리나였어요. 그런데 교통사고로 트럭에 발이 깔려 반년 이상 입원을 했죠. 결국 그녀는 발레를 포기했는데 지금은 암시장 상인으로 일해요. 저는 페페와 다리아나 커플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한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보는 방법은 고리타분한 정치가나 연예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라, 그곳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들에게도 저는 호기심의 대상이었죠.

 

페페와 다리아나와 대화를 하면서, ‘교양’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타인에게 관심과 배려를 갖고 다른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교양’이라고요.


우리는 뭔가 아젠다가 있어야 만나잖아요. 인터뷰를 하든, 소개팅을 하든. 그런데 쿠바 사람들은 삶의 여백이 있어서 대화를 하다 보면, 생각하지 못했던 세계관에 대해 듣게 돼요. 상당히 열려 있어요. 교양이라는 게, 유명인사의 예술작품을 읊는 게 아니에요. 타인에 대해 배려하고, 모르는 것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고, 동의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 담론을 만들어가는 자세가 교양이라고 생각해요.

 

쿠바에 체류하면서 실망한 부분은 없었나요?


기대나 예상을 안 했기 때문에 실망 같은 건 별로 없었어요. 만약 제가 쿠바의 기업과 일을 한다면 골치 아프겠죠. 쿠바의 국민 스포츠가 ‘기다림’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여행자잖아요. 비즈니스를 하면 화병이 나겠지만 저는 받아들이면 그만이에요. 쿠바에서는 불편한 게 많아요. 인터넷 와이파이는 말할 것도 없고, 지방 교통도 정말 안 좋아요. 또 웬만한 곳에서는 화장지를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해요. 주유소에 갔는데 기름이 없을 수도 있고. 현지에서 살면 힘들겠지만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고 넘기게 되는 것 같아요.

 

『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을 보면, 쿠바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꽤 많이 쓰셨어요. 쿠바를 말할 때는 ‘체 게바라’를 빼놓을 수 없는데. 책에는 ‘피델 카스트로’ 일화가 더 많이 등장해요.


쿠바는 뼛속까지 체 게바라로 도배가 되어있는데, 체 게바라는 예수그리스도이자 제임스딘이에요. 그런데 피델은 아직까지 살아 있는 권력이에요. 쿠바에 가기 전에는 피델에 대한 자서전 몇 개만 읽은 수준이었는데, 실제 쿠바에 가보니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독재자에도 급이 있다고 하잖아요. 김일성, 전두환 같은 독재자가 있는가 하면 이들과 차원이 다른 독재자들이 있어요. 재밌는 건, 피델은 용인된 독재자라는 거예요. 참 묘한 지점인데요. 존경하지만 무서운 인물인 거죠. 쿠바에서 피델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 자유는 없어요. 친구들끼리 집안에서 럼을 마시면서 피델 이야기를 할 때도 판토마임으로 그를 지칭해요. 국제적인 파워블로거 ‘요아니 산체스’가 스위스 서버를 통해 피델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는데도, 피델은 훨씬 고단수에요. 언론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걸 보여주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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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에서 받는 색다른 자극


쿠바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본 적이 있나요?


아니요. 한 명도요. 지난 10년간 한국인 입국자가 5천 명이 넘지 않아요. 제가 4천 몇 백 번째였을 거예요.

 

쿠바는 모든 책을 종이값 정도면 살 수 있다고 하던데요.


저작권협회에 가입이 안 되어 있으니까, 그냥 찍으면 다 내는 거예요. 그래서 책을 많이 읽기도 해요. 날씨가 좋을 때 광장을 가보면, 상인들이 헌책을 책장에 쌓아놓고 팔아요. 물론 대부분의 책들은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빼돌린 거죠. 플라자 데 아르마스에 갔을 때, 보물을 한 권 찾았어요. 체 게바라 사망 직후 출간된 볼리비아 게릴라 일지 초판본과 1921년 마드리드에서 출판된 소설책이었어요. 치열하게 흥정해서 적절한 가격에 그 책을 샀는데, 책 파는 아저씨의 엄살과 익살이 예술이었어요. ‘’남는 게 없다, 쿠바에 처음 온 것 같아 기념으로 거저 준다, 문화교류 차원이다, 자본주의 나라에서 온 사람한테 털린 것 같다’’며. (웃음)

 

한국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요?


우리나라가 쿠바 공중파에 드라마를 무상으로 지원해요. 그래서 드라마를 통해 많이 알려져 있고. 한국 영화도 많이 봐요. 쿠바에서는 박찬욱, 김기덕, 봉준호 감독님 작품이 좀 알려져 있어요. 재미있는 건, 남한과 북한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다는 거예요. 공산국가지만 사상적인 것에 관심이 크게 없어요.

 

쿠바 여행을 꼭 추천해주고 싶은 대상이 있다면요.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야기지만, 몸에 이상이 없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정말 가보면 좋을 것 같아요. 사업하는 분의 경우에는 단순히 시장조사를 떠나서 정말 색다른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유럽, 뉴욕, 중국, 호주 같은 나라를 여행하는 것도 좋고 먹방 여행을 하는 것도 좋지만, 조금이라도 젊을 때 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서 자극을 받는 것도 굉장히 유의미한 여행이 될 것 같아요. 저는 쿠바 예찬론자에요. (웃음)

 

진지하게 쿠바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


전 계획이라는 단어는 안 좋아하지만, 준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강조하고 싶은 건, 서바이벌 스페니쉬 정도는 공부하고 떠나라는 거예요. 한 달 정도만 공부해도, 쿠바의 10배, 20배는 더 들여다볼 수 있어요. 우리가 외국인과 말할 때, 한국말을 조금이라도 들을 줄 아는 외국인이면 더 열린 마음으로 대하게 되잖아요. 영어를 잘하는 쿠바인들도 많지만, 사교를 쌓고 싶으면 조금이라도 언어를 공부하고 가면 좋을 것 같아요. 또 현지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여행할 수 있고, 치한이 좋은 나라니까 대중교통으로 국토 여행을 해도 괜찮아요. 쿠바가 미국과 외교 정상화가 되면서 이제 경제개방이 될 테니 많이 달라지겠죠. 더 많이 달라지기 전에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 어떤 고난에도 찌들지 않고 유머를 잃지 않는 그들만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쿠바를 찾아왔다”(32쪽)고 하셨어요.


아무래도 쿠바를 갈 때는 한국에서 여러 가지 안 좋은 일도 많았고 환멸 같은 걸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럴 나이가 되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제가 대안 같은 걸 찾았던 거 같아요. 사람들이 막막하고 답답할 때, 역사 책을 보잖아요. 우리가 왜 이 모양인지를 알려면, 과거의 연역이 있을 테니까요. 언젠가 페페가 제게 “글을 왜 쓰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쿠바를 다녀 오고 나서 책을 쓴다는 계획 같은 건 없었어요. 다만, 쿠바의 이야기와 잔상이 망각으로 달아나기 전에 곁에 잡아 두고 싶었어요. 저는 쿠바에서 자극이 아닌 영감을 받았던 거 같아요. 그게 가장 큰 수확이에요.

 

영감의 결실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지금 시나리오를 한 편 쓰고 있어요. 조선시대 배경의 사극인데 현재의 이야기를 빗대서 작업하고 있어요. 책도 한 편 준비 중인데, 한 도시 이야기에요. 한 도시의 예술, 건축, 문화 이야기를 제 개인사와 엮어서 써볼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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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 정승구 저 | 아카넷
2014년 가을, 저자는 취재 비자를 받지 않고 쿠바에서 아는 인맥을 통해 사람들을 만날 계획을 세우고 여행을 떠났다. 이렇게 해서 현지인들과 좌충우돌 부대끼며 그동안 언론과 책에 소개되지 않은 쿠바 사회의 이모저모를 체험했다. 미국과 쿠바가 국교 정상화에 합의한 이후 한국 제품의 수입을 원하는 쿠바와 시장 확대를 바라는 한국의 수교가 시간문제인 시점에서 출간된 이 책은 쿠바에 관한 가장 최근의 정보와 분위기를 담은 책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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