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펼치는 순간, 가슴이 출렁이는 책이다. 아직 겪지 않은 일인데, 알 것 같은 이야기와 풍경들. 눈으로 보고 있는 그림이 마치 어제의 우리, 내일의 우리 집 모습인 것 같다. 화가 강진이의 첫 책 『너에게 행복을 줄게』는 오랫동안 그림일기를 써온 작가의 그림과 글을 수록한 책이다. 퇴근한 아빠의 팔에 매달리는 두 딸과 그 예쁜 모습을 놓지 않고 싶어 국자를 든 채 현관으로 쪼르르 달려가는 엄마의 모습을 그리며, 작가는 ‘가족’이라는 단어 앞에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표지 그림을 보자. 작품명은 ‘빨래’, 글 제목은 ‘산처럼 쌓여 있는 빨래하는 날’이다. 분홍색 꽃무늬 이불을 아파트 베란다에 널고 차를 한 잔 하는 주부. 내가 혹은 내 엄마가 분명 겪었을 모습이다. 빨래를 너느라 녹초가 되었어도 가지런히 일광욕을 하는 빨래들을 보면, 고단한 일상이 꽤 살갑게 느껴진다. 풍경이 그림으로 옮겨지면, 내 모습을 독자로서 읽어낼 수 있다. 또 다른 감흥이 찾아온다. 이 그림이 위대한 까닭이다. 강진이 작가는 책 제목을 ‘너에게 행복을 줄게’로 하자는 편집자의 제안에 오랫동안 망설였다. “제가 어떻게 감히 행복을 줘요. 그리고 ‘줄게’는 반말인데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무명작가의 첫 책이 입소문을 타고 금방 4쇄를 찍었다. 읽고 나니, 선물을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책이었던 것이다.
2004년 9월, 작가는 ‘나는 행복한 엄마가 되었다’라는 제목으로 일기를 쓰면서, “행복한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었다. 요즘은 행복한 엄마로 산다”라고 적었다. 그로부터 1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다. 지금 작가의 일기장에는 “행복한 엄마로 살았더니, 행복한 작가가 됐다”라고 써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은 모두 말한다. 참 행복해 보인다고. 그러나 그 어느 누구의 삶이 행복만으로 채워질 수 있을까. 나 역시 버겁고 지쳐 아이처럼 엉엉 목 놓아 울고 싶어질 때도 있었고, 자존감과 의욕이 바닥으로 가라앉고 가라앉아 땅속으로 꺼져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 그림을 그렸다. 엄청난 작품도, 위대한 순간도 아니지만 내 기억 속 행복한 시간들을 눈앞에 펼쳐놓았다. 그러곤 새삼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깨닫곤 했다. 선을 그으며, 하나하나 색을 입히며 나는 하나씩 깨달아갔다. 그렇게 마음의 평온이 찾아왔다. (20쪽)
나중에 보면 좋은 추억이라는 걸, 그때도 알았다면
『너에게 행복을 줄게』를 읽고 나면, “지인들에게 선물을 안 할 수 없다”고 하던데요.
감사하죠. 카카오스토리에서 일기를 구독해주셨던 분들이 많이 읽어주셨어요.
그림도 좋지만 글이 참 좋았어요. 책 서문에 고은 시인의 「순간의 꽃」 시구(급한 물 떠내려가다/ 닿은 곳에 / 싹 틔우는 땅버들 씨앗 / 이렇게 시작해보거라)를 소개하며, 그림일기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하셨어요.
정말 그랬어요. 그 시를 딱 읽는 순간, 왈칵 하더라고요. 제 모습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기를 쓴 건 초등학교 때부터였는데요. 대학 시절 그림 작업 일지로 채웠던 일기장, 연애 일기, 결혼해서 쓴 태교일기와 성장일기, 그리고 제 자신의 그림, 신앙, 미래에 대해 쓴 일기까지, 한 상자에 가득해요. 육아나 살림으로 바쁘다가도 내 정체성, 내 존재를 잃고 싶지 않아서 내면의 몸부림을 쳤던 것 같아요. 마음을 치유하는 건, 우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하는데. 제게 일기가 그랬던 것 같아요.
카카오 스토리에는 어떻게 그림일기를 올리게 되셨나요?
어느 날 친구한테, 일기를 쓰고 있다고 말했더니 “카카오 스토리에 올려보는 게 어떠냐”고 하더라고요. 이런 평범한 이야기에 사람들이 관심이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정말 많은 분들이 좋아하셨어요.
구독자가 약 5만 명인데, 댓글 수도 굉장하더라고요. 젊은 엄마들뿐만 아니라 남성 독자들도 꽤 많던데요.
독자 분들이 공감하는 부분이 저에게는 굉장히 색달랐어요. 전 그냥 평범한 제 삶을 드러내서 알린 건데, “저도 그래요”라는 댓글이 제일 많았어요. 사실 처음에는 저 좋자고 그린 건데,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응원해주시고 표현해주셔서 저로서는 힘도 나고 기분도 좋고 그랬죠.
태교로 읽어도 좋을 책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젊은 예비 엄마들이 태교로 읽는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었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좋아서 닭살이 돋아요. (웃음) 저도 사실 첫 애를 낳고 한동안은 우울했어요. 산후우울증이라는 게 있잖아요. 아이는 너무 예쁘지만, 시시때때로 잠 못 자고,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으면 우울할 때가 있었어요. 모유수유를 하면서 미역국을 커다란 대접으로 먹고 있으면 내가 동물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긍정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아닐 때도 많았어요. 그런데, 지나가보면 다 추억이거든요. 이런 것도 나중에 보면 좋은 추억이라는 걸, 미리 알아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림만 보면, 참 행복하고 따뜻한데. 사실 사는 게 그렇게 녹록하지만은 않잖아요. 힘든 시간도 많았을 텐데요.
힘들 때, 더 많이 그렸어요. 최근에 중고등학교 시절 성당 친구들을 만났는데, 한 남자애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 친구가 결혼을 안 한 친구거든요. 솔로니까 주변에서 자기를 많이 찾는대요. 한풀이를 할 상대로요. 그래서 자기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제 책을 보더니 “너도 어지간히 사는 게 힘들었구나.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나올 정도면”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남자애인데도 손을 덥석 잡고 싶었어요. (웃음) 되게 고맙더라고요. 뭉크는 자기의 삶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워서 그런 그림을 그렸지만. 저는 힘들 때마다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 같아요.
어떤 때, 특히 그림이 많이 그려졌나요?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을 때 있잖아요. 대화를 좀 하고 싶어 방에 들어갔는데, “엄마, 나가”라고 했을 때. (웃음) 그럴 때 일기를 쓰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림을 그렸어요. 좋을 때도 물론 그림을 그렸지만, 힘들 때 그림을 붙들고 있으면 조금은 치유가 되더라고요. 그런 시간이 있어야, 다시 일어나서 아이들 밥도 해줄 수 있고요.
그림을 보면, 되게 행복해 보이세요. 물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있어서겠지만요.
사람들이 “넌 남편이랑 되게 사이 좋은가 보다”라는 말을 자주해요. 그런데, 어제도 싸우고 수시로 말싸움을 해요. 아무리 사이가 좋은 부부라도 결혼생활을 하다 보면 섭섭하고 기분 상하는 일, 많잖아요. 감정이야 깊게 안 좋을 때도 있고, ‘다 이러고 살지’ 뭐 이러면서 훌훌 털어버릴 때도 있고요.
남편이 끊임없이 미소를 짓더라고요
책에 실린 작품 중에 특별히 많이 기억나는 그림은 어떤 작품인가요.
둘째 아이 돌잔치를 했을 때, 정말 정신이 없었거든요. 첫째가 어렸을 때, 둘째를 되게 시기했어요. 둘째한테 머리띠를 해놓으면 자기 것이라면서 꼭 빼앗고. 자기가 입던 옷을 동생이 입고 있으면 성화를 하고. 두 살때까지 엄마, 아빠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동생이 생기니까 샘이 많이 났던 것 같아요. 둘째 돌잔치를 하는데, 둘째만 예쁜 한복을 입혀놓으니까 첫째가 난리가 난 거예요. (웃음) 저는 음식하고 상을 차리느라 정신이 없는데, 남편은 많이 거들어주지도 않고. 정말 어렵게 어렵게 사진까지 딱 찍고 났는데. 몇 년이 지나고 사진을 다시 보니까 되게 마음이 찡하더라고요. ‘이때, 그랬지. 좋았네’싶고. 정말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감정이 훨씬 크더라고요.
한밤 중에 두 아이를 재우고 창 밖을 바라보는 그림도 정겨웠어요.
둘째는 갓난아이니까 자주 깨서 저랑 작은 방에서 잤거든요. 그런데 꼭 큰 애가 자기 먼저 재워달라고 작은 방으로 오곤 했어요. 다독다독 애들을 재우고 창 밖을 보는데, 문득 제 일상이 너무 감사하고 좋더라고요. 저는 그때가 되게 좋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남편은 정말 힘들었던 때였대. 남편이 영국에서 일하던 때인데, 미래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둘째가 태어났으니까 힘들었나 봐요.
화장실 청소하는 그림도 되게 좋았어요. 익숙한 일상인데 그림으로 보니 새롭다고 할까요. 지저분한 화장실 청소가 향기롭게 보이더라고요.
“저도 막 이러고 나왔어요”라는 댓글을 많이 달아주셨어요. 누구나 그렇게 살잖아요. 주부들이 집에만 있다 보면 ‘나는 뭐지? 나는 뭘 하는 사람이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림으로 보면 ‘이 일도 참 중요한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이고요.
장면은 한 컷인데, 그림이 세밀해서 실감나요.
물건을 버리는 걸 제가 잘 못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뭔가를 버리기 전에는 꼭 사진을 찍어요. 언젠가는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이들 장난감을 버릴 때도 사진을 찍고, 동생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그래요. 사진 자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화장실 청소하는 그림은 스케치를 하다 보니까 제 손이 어색하더라고요. 동작이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운 것 같아서, 저 포즈를 하고 나서 남편한테 “빨리 사진 좀 찍어봐”라고 해서 나온 그림이에요. (웃음)
이불 빨래를 하고 차를 한 잔 하는, 표지 그림도 되게 와 닿아요.
여자들이 되게 알법한 순간이잖아요. 이 이불이 극세사인데 겨울 이불이에요. 봄까지 덮었는데 비싼 게 아니라서 그런지 보풀이 꽤 있더라고요. (웃음).
메모도 많이 하시고, 책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남편도 책을 좋아해서 집에 책이 좀 많은 편이에요. 신문이나 잡지 같은 걸 읽을 때도, 제 생각이랑 같다는 생각이 들면 메모를 자주해요. 그림 작업을 하다가 일기를 뒤적거리는 경우가 있는데, 오래 전에 썼던 일기를 보면서 ‘내가 이런 걸 썼구나’ 싶기도 해요. 새롭게 제 것으로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꼭 메모를 많이 하려고 해요.
남편 분은 책을 보고 어떤 반응이던가요.
책을 보면서 끊임없이 미소를 짓더라고요. (웃음) 사실 출판사에 글을 하나하나 써서 보낼 때마다 남편을 보여줬거든요. 그런데 자꾸 지적을 하는 거예요. 이런 표현은 굳이 안 들어가도 괜찮다면서. 그냥 읽어만 봐주면 좋은데, 지적을 할 때는 기분이 나빴어요. 속으로 ‘자기가 편집자인가?’ 구시렁댔죠.
두 딸의 반응은 어때요?
큰 애가 고등학생 2학년인데 미술 전공을 준비하고 있어요. 둘째는 중학생인데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해요. 자기가 쓴 소설을 포털 사이트에 올리기도 하는데, 나름대로 문장이나 맞춤법 같은 걸 많이 신경을 쓰더라고요. 그래서 둘째 아이한테는 책이 나오기 전에도 “엄마 글 좀 봐달라”면서 조언을 구했어요. 첫째는 이번에 책으로 처음 본 건데, 울컥했나 봐요. 자기 어렸을 때 이야기고 하니까 “엄마, 되게 그렇더라”라면서, 새삼 좋았다고요.
‘나의 인형 이야기’를 쓸 계획이에요
대학에서는 서양화를 전공하셨고, 최근 몇 차례 전시회를 열기도 하셨는데요.
제 그림이 작잖아요. 동문전을 몇 번 했는데, 개인이 할당 받는 기준이 50호 정도에요. 저는 하나만 걸면 작으니까 여러 그림으로 50호를 맞춰요.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이 그린 큰 그림을 보면, 근사하고 멋져요. 반면 저는 생활일기잖아요. 처음에는 부끄럽고 창피한 것도 있었는데. “어, 이런 그림도 있네?”하면서 관심 있게 많이들 봐주시더라고요. 조금씩 용기가 났던 것 같아요. 아직 쑥스러운 마음이 아예 없진 않은데, 그래도 좋고 뿌듯해요.
결혼을 하고 육아를 거의 바로 시작하셔서, 작가로서의 활동을 아주 활발히 하신 편은 아닌데요. 동기들이나 선후배들이 작품활동을 하는 걸 보면, 아쉬운 마음이 들 것 같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기억의 밑바닥에서부터 화가를 꿈꿨어요. 중간에 유치원교사로 장래희망을 바꾼 적이 있지만, 유치원에서 뭐를 가르칠까?를 생각해보면 그림이었어요. 공부는 열심히 안 했지만 그림은 정말 열심히 그렸거든요. 대학에 가서도 정말 치열하게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요. 남편도 대학 때 만났기 때문에 결혼도 자연스럽게 순서를 밟는 것처럼 하게 됐는데, 육아 기간 동안에도 그림을 놓지 않고 싶어서 일을 계속 했어요. 잡지에 나오는 그림도 그리고, 학습지 컷도 그리고. 이따금 친구가 자기 원고를 주면서 일러스트를 그려달라고도 했고, 기업 사보 표지도 그렸어요. 물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온전히 몰입하면서 작품을 하긴 어려웠어요. 그래도 계속 일기를 쓰면서 붓을 놓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동화를 그리셔도 좋았을 것 같아요.
어린이책 준비를 하다가 몇 번 어그러졌어요. 제 글이 어린이책에 맞지 않았는지, 전문작가가 다시 글을 다듬어주신 적도 있는데, 이상하게 저는 온전히 제 글이라는 생각이 안 들면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이건 아닌가 보다’ 하고, 어렵게 무릎을 꿇게 된 일이 몇 번 있었어요.
『너에게 행복을 줄게』를 첫 책으로 내려고, 그런 과정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그 생각 여러 번 했어요. 많이 산 건 아니지만, 살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건, ‘내가 그 힘든 시기를 보낸 게 지금 이 시간이 오려고 그랬나 보다’라는 거예요. 정말 비참하게 깨졌던 적이 있었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있어서는 칭찬만 듣고 자랐는데, 어린이책을 준비하면서 많이 좌절했어요. 책이 되려면 독자들을 만족시켜야 하니까 출판사에서 책을 되게 꼼꼼히 보더라고요. 저는 정말 정성껏 준비를 해갔는데, 모든 사람들 앞에서 저를 깨시더라고요. 그때 정말 내가 저 사람들 보란 듯이 좋은 작품을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반드시 일어서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죠. 그런데 이 책을 내고 나니까, 저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힘든 시간을 극복해줘서 고맙고, 이 책이 나에게 오려고 그런 과정들이 있었나 싶고. 지금 새로 준비하는 이야기가 인형에 대한 책인데, 예전에 어린이책을 기획했을 때 썼던 이야기에요.
인형 이야기요?
인형을 무지무지 좋아해요. (웃음) 어렸을 때 갖고 싶었는데 못 샀던 인형들을 딸들에게 사주기도 했는데, 딸 아이들도 참 좋아했어요. 남자 역할을 했던 인형, 엄마 역할을 했던 인형, 할머니가 베고 자서 코가 납작해진 곰 인형 등 아직도 집에 많아요. 『너에게 행복을 줄게』가 하나의 에피소드 형식으로 쓴 책이잖아요. 인형을 소재로 각각의 에피소드를 만들어내서 저만의 동화책을 쓰고 싶어요.
『너에게 행복을 줄게』가 일기를 쓰지 않았더라면 나올 수 없는 책이잖아요. 일기를 쓰고 싶은데 막상 글을 쓰기가 어렵고, 그림을 그리기가 낯선 독자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요즘은 재주 있는 분들이 너무 많잖아요.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처음 그림을 그릴 때는 지금처럼 스케치부터 시작하지 않았어요. 일기를 쓸 시간이 없으면 간단히 장을 보고 돌아오는 내 모습을 메모장에 그려본다던가. 외출하려고 평소에 안 입던 옷을 입고 예쁘게 꾸몄을 때는 거울에 비친 모습을 따라 그려보기도 하고 그래요.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에 화장지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요.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요. 본인이 만족하면 되는 거잖아요. 처음부터 누구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니까요. 저는 머리맡에 늘 작은 수첩이 있어요. TV를 보다가 생각나는 것도 적고 신문을 보다가 좋았던 기사를 오려 놓기도 하고요.
혹시 오늘도 메모를 하셨나요?
지하철을 타고 왔는데, 갑자기 콩밥이 생각났어요. 제가 콩밥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완두콩, 서리태, 온갖 콩을 다 좋아해요. 오늘 메모장에는 이렇게 썼어요. “콩을 넣어 밥을 지을 때,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익어가는 밥 냄새에서 나는 단 콩 내음이 나는 너무 좋다. 김이 빠지고 착 하고 신호추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흰 주걱을 들고, 뽀얗게 뿜어지는 김을 온 얼굴로 맞는다. 이게 나의 수분 공급 노하우다.”
아! 한 편의 시 같아요.
(웃음) 요즘 너무 좋은 게 글 쓰고 그림 그리는 데에 있어서는 머리 회전이 빨라요. 책상 앞에 앉아서 작심하고 쓰면 머리가 딱딱해질 때가 있거든요. 멍 하고 있다가도 뭔가 떠올려질 때 한 문장이라도 써놓아야 해요.
너에게 행복을 줄게 강진이 저 | 수오서재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행복을 주는 책입니다. 삶에 대한 감사, 깨달음, 지혜…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라는 이해인 수녀의 추천의 글처럼, 강진이 작가의 그림일기는 메마른 시대에 단비 같은 기록들이다. 날마다, 순간순간 찾아오는 작은 깨달음과 행복을 펼쳐놓은 이 시대를 사는 ‘어른을 위한 그림일기’. 수만 명의 SNS 구독자가 공감하고 사랑한 글, 그림이 80여 편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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