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오년 전 쯤 일이다. 클럽 '올댓재즈'의 진낙원 대표가 문자를 보냈다. 토요일 밤 늦게 클럽에 한 번 오라고. 정말 화끈한 밴드 하나가 등장했다고. 지금의 자리로 이사 가기 전, 어두운 3층의 '올댓재즈'로 늦은 토요일 밤에 찾아가봤다. 무대 위에서는 국내 재즈클럽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뜨거운 하드 밥 사운드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무대의 주인공 진킴이 그로부터 5년 만에 자신의 첫 음반을 발표했다. < 재즈유닛 The Jazz Unit >. 푹푹 찌던 여름 날 오후 세 시에 그를 만나러 그가 자주 가는 연남동의 한 바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 오랫동안 김진영이란 이름으로 알고 있었는데 앨범이 나오면서 진킴(Jin Kim)이라고 부르려니 어색하다. 본인은 익숙한가?
(웃음) 몇 년 전 미국에서 생활할 때 쓰던 이름이었는데 그곳에서도 '진'이라고만 부르지 성까지 부르지는 않았다. 김영진이란 이름으로 하자니 너무 평범해서 기억에 남지 않을 것 같아 진킴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 '재즈유닛'은 앨범 제목인데 밴드 이름도 되지 않나?
그렇다. 우리 밴드를 '진킴 재즈유닛'이라고 부르시면 될 것 같다.
- 밴드 결성한 지 몇 년 되었나?
그간에 멤버 변동이 있었지만 트럼펫-색소폰을 앞세운 5중주단을 결성해 활동해온 것은 5년 되었다.
- 재즈를 연주한 지는 몇 년 되었나?
15~16년 된 것 같다.
- 첫 음반이 왜 이토록 늦었나?
그 사이에 전공악기를 바꾸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원래는 기타 전공이었다. 10대 때부터 록을 좋아해 기타를 연주했는데 2004년에 트럼펫으로 전공을 바꿨다. 트럼펫 실력이 그래도 앨범에 담을 만큼은 돼야 녹음을 할 수 있었는데 그때를 기다리다 보니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지금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더 이상은 늦출 수 없어서 올해 녹음에 들어갔다.
- 기타에서 트럼펫으로 왜 바꿨나?
2002년에 재즈 기타를 공부하러 보스턴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갔다. 그때 재즈기타의 첨단은 커트 로젠윙클이었다. 나도 그처럼 연주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속에 갈등이 있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내가 아무리 노력 한들 커트처럼 칠 수 있을까? 심지어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는 누구인가 자문해 보면 나는 커트보다는 그랜트 그린이나 웨스 몽고메리를 더 좋아했다. 올드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당시 재즈동네의 분위기는 커트처럼 연주해야만 되는 분위기였다. 아직 피터 번스타인도 각광받기 전이었기 때문에 복고풍으로 연주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와중에 보스턴에서 내가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람이 먼저 그곳에 와있던 달균이 형(트럼펫/ 색소폰 주자 임달균)이었다. 그런데 그와 한 집에 살던 사람이 대런 바렛이었다. 대런은 엘빈 존스 재즈 머신 멤버로 활약한 바 있는 뛰어난 트럼펫 주자였다. 그가 부는 트럼펫 소리가 너무 멋져서 나도 재미삼아 트럼펫을 불어봤다. 그랬더니 대런이 내게 트럼펫에 소질이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작심하고 연습을 했는데 원래는 6개월에 걸쳐 익혀야 되는 과정을 난 단 2주 만에 끝냈다. 옆에서 보던 대런도 놀랐다. 그래서 트럼펫으로 악기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펫으로 녹음하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나?
그렇다. 맨 처음에는 트럼펫이 쉬운 줄 알았다. 그런데 조금 더 해보니 어림없는 생각이었다. 우선 기타 전공으로 버클리에 4년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는데 3학기까지 기타를 전공하다가 4학기 때부터 트럼펫으로 바꾸니 장학금이 안 나오는 거였다. 난 그걸 몰랐었다. 학교를 찾아가 떼를 쓰고 사정사정하여 4학기까지는 장학금을 받았지만 나머지 4학기는 장학금 없이 공부해야 했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처음에 조금 빨리 진도가 나갔다고 트럼펫을 우습게봤다는 거였다. 어림없는 생각이었다. 가면 갈수록 트럼펫이 어려워졌다. 지금도 하루에 몇 시간씩 연습하는데 좌절할 때가 많다. 조금 연습을 게을리 하면 되던 것도 금세 안 된다. 굉장히 열심히 해서 조금 실력이 향상되면 그 부분 때문에 더 많은 연습을 해야 한다. 모든 악기가 그렇겠지만 할수록 어렵다.
- 특별히 무엇이 어려웠다고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잠시 생각하다가) 트럼펫을 연주한 지 2년 쯤 되니 이 악기는 아무리 재능 있는 사람이라도 절대적으로 거쳐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어느 악기에나 그 시간이 필요하지만 특히 트럼펫, 프렌치호른과 같은 금관악기들은 그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본다.
- 소리를 내기가 어려워서 인가?
그 점 하고도 관련이 있다. 좋은 음색을 만들기도 어렵고. 우선 주력(奏歷)이 짧은 사람들은 아무리 테크닉이 좋아도 큰 볼륨으로 세 곡 정도 불면 더 이상 불지를 못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야 요령껏 큰 소리를 내고 길게 호흡해도 지치지 않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 그것은 자기 스스로가 깨우쳐야 하는데 그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작년까지만 해도 녹음은 엄두가 안 났는데 올해가 되어, 그래 한 번 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더 걸린 것 같다.
- 2002년에 미국으로 갔다가 언제 한국에 돌아왔나.
2010년에 왔다. 기타에서 트럼펫으로 바꾸면서 학교 다니는 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한 학기 다니고 그 다음 학기는 휴학하고 보스턴이나 뉴욕에서 학비 벌고. 나머지 4학기를 이수하고 그곳에서 생활하다가 8년의 시간이 흘렀다.
- 굳이 트럼펫을 선택하면서 인생의 발목이 잡힌 것 같다.
그렇다. (웃음)
- 한국에 와서 어떻게 활동했나?
클럽에서 연주하다가 색소폰 주자 유종현을 만났다. 내가 좋아하는 하드밥에서부터 콜먼 호킨스, 벤 웹스터 스타일도 소화하는 이 색소폰 주자를 보고 함께 팀을 만들자고 했다. 그래서 트럼펫, 색소폰을 앞세운 오중주단을 만들었다.
- 어떤 곡을 주로 연주했나.
거의가 하드 밥 스타일의 곡이었다. 여러 곡이 있었는데.......웨인 쇼터 곡 중에 「밤의 어린이들 Children of the Night」, 「하나씩 One By One」 또는 시더 월턴 곡 「시더 나무 그늘 The Shade of Cedar Tree」 같은 곡들이 생각난다. 이런 곡들은 당시 국내에서 우리만 연주했던 것 같다.
- 미국에서도 이제는 하드밥의 기세가 많이 꺾인 것 같다.
윈턴 마설리스가 1980년대 초에 등장한 후 하드밥은 재즈의 중심에 다시 돌아왔다. 재즈 르네상스 시대가 온 것인데 내가 미국을 갔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그 기운이 남아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지난 10년 간 이 스타일이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재즈 전체도 침체기에 들어서는 것 같다. 아마 현재 뉴욕에서 활동하는 재즈밴드 가운데 하드밥을 추구하는 밴드는 30% 미만일 것이다.
- 그런데 국내에서는 애초에 이런 음악을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고 본다.
그렇다. 그런데 그것은 국내에 재즈가 들어온 경로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유학을 떠나기 전에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듣던 재즈를 생각해 보면 주로 ECM 혹은 GRP 레코드의 음악이었다. 이 레이블의 음악들은 마니아들이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나왔다. 하지만 정통 재즈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없었고 자연히 그런 음악을 듣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예를 들어 피아노에는 키스 자렛, 기타에는 팻 메시니가 전부였다. 그러니 베니 그린이나 피터 번스타인이 들어설 자리가 너무 좁았던 것이다. 재즈 기타를 처음 연주하던 시절에 내게도 팻 메시니는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이 재즈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 기타에서 트럼펫으로 악기를 바꾸면서 취향도 바뀐 것인가?
그것보다는 유학 시절에 재즈 전통의 중요성을 보다 깊이 알게 된 것이 이유인 것 같다. 모든 음악들은 전통에 닿아 있다. 오늘날의 스타일을 주도하고 있는 연주자들도 그 출발점은 기본적인, 옛날 재즈다. 예를 들어 월터 스미스 3세, 애런 파크스와 같은 연주자들도 덱스터 고든과 레드 갈런드를 최고의 연주자로 꼽는다.
- 진킴 재즈 유닛의 연주를 클럽에서 보면 늘 마지막에 블루스를 연주하더라.
정확히 블루스 형식의 곡은 아닐지라도 재즈는 블루지한 느낌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본다. 블루스의 느낌을 빼면 재즈는 거의 모든 것을 잃는다. 세상에 즉흥연주를 구사하는 음악은 참으로 많다. 그중에서 재즈를 재즈답게 해주는 것은 블루스와 스윙이다. 리듬에서 스윙의 느낌도 블루스만큼 중요하다. 이 이야기는 내가 한 것이 아니고 윈턴 마설리스가 늘 주장하는 것이긴 하지만.
- 그렇다면 블루스와 스윙이 빠진 재즈는 재즈의 퇴보라고 보는가?
꼭 옛날 스타일대로 블루스와 스윙을 구사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그것은 지켜져야 한다, 요즘 각광 받는 트럼펫 주자 앰브로스 아킨무시르의 음악도 상당히 파격적인 것 같지만 그 핵심에는 블루스와 스윙이 있다. 그것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 그렇게 되면 재즈라는 음악의 폭이 너무 좁아지는 게 아닌가?
재즈의 범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핵심을 말하려는 거다. 또 윈턴 마설리스 이야기를 또 인용해서 그렇지만.......유튜브에 검색해 보면 윈턴이 고등학생 재즈 연주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 올라와 있다. 거기서 한 학생이 케니 G도 재즈가 아니냐고 묻는다. 그러자 윈턴은 그 사람의 음악에도 즉흥연주가 있고 재즈의 요소들을 어느 정도 갖췄으니 재즈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재즈의 진수에서는 거리가 멀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비유하는 것이 지난 5월에 있었던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와의 대결이다. 누가 보더라도 그 경기는 권투경기가 맞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경기는 진짜 싸운 경기가 아니었다. 권투의 핵심이 빠진 것이다. 블루스와 스윙은 그 핵심을 말하는 것이다.
- 이제 앨범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기본적으로 국내 앨범에서 보기 드물게 재즈다운 사운드가 녹음되었다고 본다. 특별히 신경을 썼나?
사실 국내에 재즈전문 엔지니어가 아직 없다는 게 어려움이었다. 한참 주변에서 함께 일할 엔지니어를 물색하다가 경험이 많으신 박혁 씨를 소개 받았다. 이 분은 과거 헤비메탈 밴드 크래시의 음반을 녹음하신 분인데 비록 종류가 다른 음악이지만 서로 의사소통을 충분히 하면 좋은 사운드를 만들어 낼 줄 아는 노하우를 가졌다고 믿었다. 박혁 씨는 인내심 있게 제 이야기를 들어주셨고 흡족할만한 사운드를 녹음할 수 있었다.
- 녹음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었나?
내가 듣기에 국내 재즈 페스티벌이나 음반을 들어보면 해외 녹음과 가장 차이가 나는 것은 드럼이다. 재즈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탄력 있는 드럼 사운드가 있는데 그것이 국내 녹음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페스티벌 가서 들으면 거의 록 드럼 같다. 내 생각에 재즈 밴드에서 사운드의 중심은 드럼이다. 그리고 전체 사운드에서 절반을 차지한다. 드럼이 촘촘하게 사운드의 밑그림을 깔아줘야 하기 때문에 드럼 소리 하나 잡는 것만 두 시간이 걸렸다. 두 시간 동안 박혁 씨에게 여러 주문을 드렸는데 경험이 많은 분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금세 판단을 내렸다.
- 믹싱이나 마스터링 과정에서 소리가 많이 좋아졌나?
물론 그 과정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어쿠스틱 사운드를 추구하는 밴드는 원래 녹음 소스가 좋아야 한다. 후반 작업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녹음 당시에 공을 많이 들였다.
- 원래 녹음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
정오에 시작한 녹음이 그 사이에 식사도 하고 담배도 피우고 휴식도 취하고 모두 하니까 자정에 끝났다. 하루에 여덟 곡 모두를 녹음했다.
- 연주를 수정, 편집하는 과정도 거쳤나?
아니다. 내가 허밍 보컬을 한 「레인 워크 Rain Walk」에 오버더빙이 들어갔을 뿐 나머지는 라이브 녹음이나 다름없다. 테이크 3까지 녹음했던 곡이 한 곡 있고 나머지는 모두 테이크 원투에 끝냈는데 두 개를 합쳐서 편집하거나 하는 일 없이 마음에 드는 테이크를 하나 골라 통째로 음반에 실었다. 한 마디로 옛날 방식인데 그래야 연주가 자연스럽게 들린다.
- 아트 블레이키와 재즈 메신저스가 연주했던 「서커스 Circus」만을 제외하고는 수록곡 모두가 오리지널 넘버다. 평소에 작곡을 많이 해두었나?
여러 곡을 써 놓았다. 하지만 앨범에 담으려고 보니 모든 곡들이 다 마음에 안 들더라. 그래서 3~4주 만에 곡들을 다시 만들었다. 수록곡 중 「페미닌 Feminine」만 이전에 써 놓았던 곡이고 나머지는 앨범을 위해 다시 썼다.
- 밴드 전체가 팀워크가 참 좋다고 느꼈다. 리듬이 탄탄하고 앙상블도 치밀하다. 이 멤버들은 언제 한 팀이 되었나?
아까 말한 대로 맨 처음 유종현을 만났다. 그는 정말 나와 잘 맞는 연주자다. 특히 앙상블 연주할 때 잘 맞는다. 틀려도 같이 틀린다. (웃음) 그리고 이듬해에 베이스 연주자 김대호와 드러머 김민찬을 만났는데 이 젊은 연주자들의 실력에 깜짝 놀랐다. 이들의 스윙을 들으면 한국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난 대호를 '소울 대디'라는 애칭으로 부르는데 그의 연주에는 정말 소울이 넘친다. 나나 종현이와 같은 관악기 주자들이 훌륭한 리듬섹션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우리는 대호-민찬 위에 올라타기만 하면 좋은 연주는 저절로 나온다. 반면에 밴드 멤버 중 피아니스트는 가장 늦게 확정 되었다. 전용준, 오영준 등 훌륭한 피아니스트들이 우리와 함께 했지만 그들도 각자 자신의 음반들을 발표하면서 우리와 오랫동안 함께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스코틀랜드에서 한국에 온 폴 커비가 작년부터 우리와 함께 했는데 그는 솔로도 좋지만 정말 컴핑(comping: 반주)에서 탁월했다. 우리들의 솔로가 뭔가 어색한 음악을 내면 그의 컴핑이 그 부분을 교정해 주거나 채워준다. 이 멤버들이면 녹음 한 장해도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앨범에는 김이지라는 보컬리스트가 객원으로 참여했다.
앨범 전체가 하드 밥 스타일이지만 그녀가 참여한 <레인 워크>만 조금 예외인 곡이었다. 그녀는 꽃잠 프로젝트의 보컬리스트인데 이 곡의 성격과 잘 어울릴 것 같아 초대했다.
- 조금 전에 이야기했듯이 한국의 재즈 취향은 하드 밥과 거리가 멀다. 클럽에서 연주 할 때 반응은 어떤가?
한국의 재즈 취향이 ECM 혹은 GRP 스타일로 흘렀다는 것은 정통재즈를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지 그것이 고정 불변의 취향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2005년도에 처음 퀸텟으로 연주를 시작하자 박력 있는 사운드에 모든 클럽 매니저들이 매료되었다. 당시에는 특정 요일에 고정으로 출연하는 '레귤러 긱'이 있었는데 우리는 네 개의 클럽에서 레귤러 긱을 가질 정도였다. 클럽에 온 관중들의 반응도 상당히 뜨거웠다. 그때 생각이 들었다. 아, 우리 음악도 열심히 하면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겠구나.
-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재즈동네에는 재즈의 메인스트림이 잘 정착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재즈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음악의 대용물로 받아들이는 게 이유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재즈를 팝 음악보다 조금 더 세련된 음악으로 인식하면서 배경음악으로 듣거나, 실내악처럼 숨죽이고 조용히 듣는 음악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재즈의 즉흥연주, 블루스, 스윙과 같은 핵심적인 요소들은 다 멀리하는 것이다. 그것은 재즈클럽의 경영난과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재즈클럽에 가면 그만의 독특한 흥, 즐거움을 맛봐야 하는데 그런 즐거움을 전해주는 밴드가 별로 없다. 재즈의 기본적인 성격을 추구하는 밴드가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음악을 하면 옛날 음악이니, 창의성이 없다느니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이해할 수가 없다.
난 재즈 연주자들이 좀 더 관객에게 가까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앙코르 곡에서 무대에서 내려와 객석을 돌아다니며 트럼펫을 분 적이 있다. 사람들이 박수치며 환호하는 가운데 즐겁게 무대를 마쳤다. 그런데 며칠 뒤 그 자리에 있던 한 뮤지션이 내게 메일을 보냈다. 그런 싸구려 행동으로 진지한 재즈 연주자들의 이름에 먹칠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그 메일을 받고 정말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다르구나. 재즈시장이 침체 되어 있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재즈에 대한 지나치게 심각한 태도도 한 몫 한다고 본다.
- 가장 좋아하는 트럼펫 주자는?
클리퍼드 브라운, 도널드 버드, 윈턴 마설리스, 로이 하그로브
- 가장 좋아하는 재즈밴드는?
아트 블레이키와 재즈 메신저스, 60년대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 (마일스-웨인-허비 핸콕-론 카터-토니 윌리엄스), 재즈 앳 링컨센터 오케스트라.
- 인터뷰, 정리: 황덕호
- 사진: 이한수
2015/08 황덕호(saturnman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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