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수생각’ 박광수를 만났다. 오랜만에 그의 글을 읽고 든 생각은 ‘많이 화가 났었구나’하는 것이었다. 이에 “악에 받”쳐 보인다는 질문을 던졌더니 “악에 받친 것 없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자신이 “악에 받쳐서 행복하고자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모두가 행복해지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 모른다는 말과 함께 박광수는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를 하나씩 읊었다. 행복에 대해 오래, 깊이 생각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솔직함, 자기 고백, 행복에 대한 강박적 추구. 오랜만에 만난 박광수는 이 단어들로 요약할 수 있었다.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는 다정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야기와 재치 있는 언어로 킥킥대게 했던 ‘광수생각’과 꽤 다르다. 무엇보다 그는 솔직했고, 그 말이 편하게 들리지 않기도 한다. 가령 이런 글들.
‘이렇게 힘든 세상을 물려줘서 기성세대로서 미안하다’고 또 어떤 염병할 놈들은 짐짓 슬픈 눈으로 젊은이들에게 되지도 않는 위로를 건네곤 하지만, 짱구를 아무리 굴려 보아도 위로인지 놀리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중략)지금보다도 더 살기 어려운 그 어떤 시대에도 잘 살아 내던 사람들은 늘 존재했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어렵다고 이제 그만 징징대기를 바란다. 진짜 치열했던 사람들은 아픈 것, 힘든 것, 어려운 것을 느낄 사이마저 없었다.(155쪽~157쪽)
그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광수는 “기조 자체가 솔직하자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악플에 관한 개인적인 경험, 그 밖에 삶에서 받은 많은 상처들을 통해 느낀 것들을 나름대로 소화시키고 솔직하게 글을 적었다. 그리고 삶은 지옥이지만, 가끔 행복을 주며 불행을 가득 느끼게 하곤 하지만 지지 않고 언제나 행복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삶의 대원칙은 ‘행복’이라는 것. “그때 하고 싶은 것들, 그때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선택하고 살 거예요”라는 그의 마지막 말에서 그가 낭만주의자거나 현실주의자, 행복주의자 또는 그 모두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문학 장르 중에 시가 제일 좋아
무척 자기 고백적인 글입니다. 이런 글을 쓰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다 그랬던 것 같아요. 일간지 만화 그릴 때는 분명히 전달하는 게 있었죠. 하지만 만화 옆에 붙었던 글들은 다 지금 같았어요. 다만 변한 것은 세월이겠죠. 나이 먹고, 몸도 약해지고, 그런 것들이 글에 조금 반영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오래된 글이 아닌 것 같은데, 책 준비는 얼마나 하셨어요?
1년 정도요. 계약한 건 5년 됐고요. 두 권을 계약했었는데요. 다 원래 계약한 그대로 되지 않았어요. 『앗싸라비아』라는 사진책을 낸 후, 시를 읽고 나서 제 느낌을 칸 만화로 그렸었어요. 그걸 모아서 시집을 내려고요. 인터넷에 연재를 했고요. 원고가 다 모아졌는데 책으로 엮으려고 하니 제 처음 생각과 너무 다르더라고요. 제 칸 만화가 시를 읽는 느낌을 너무 방해하는 것 같아서 제가 하지 말자고 했어요. 사실 시를 출판사에 제가 제안한 것이거든요. 고민하던 차에 저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오던 걷는나무 출판사 대표님과 의견이 맞아서 그곳과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를 낸 거죠. 대신 이 책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여드렸죠. 좋다고 하셔서 이 책이 나오게 된 거예요.
시를 좋아하시나 봐요.
시가 참 좋잖아요. 문학 장르 중에 시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할 수 있고요. 어렸을 때 소설을 많이 읽었고요, 요즘은 작업량이 계속 있으니까 소설을 읽을 만한 시간이 별로 없어요. 에세이나 시처럼 그때그때 끊어 읽어도 단절되는 느낌이 없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시, 신문, 잡지, 에세이, 사실 활자가 들어가 있는 것들은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에요.
시를 읽는 것이 작업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나요? 그냥 작업과 별개의 취미인가요?
저희는 시 세대예요. 어렸을 때는 문방구에서 연습장에 「목마와 숙녀」가 적혀있는 것도 팔았고요. 지금보다 훨씬 더 시를 많이 접할 수 있었죠. 시화와 시가 적혀있는 연습장이 있었어요. 그런 연습장을 사서 썼고, 그게 거의 처음 시를 접한 느낌이에요. 시를 읽으면 일단 감성이 충전돼서 좋죠. 어떤 시들은 어떻게 이런 사물에서 이런 생각, 이런 상황에서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죠. 발상에 도움이 돼요. 김영승 시인의 시에서 특히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아요. 「취객의 꿈」 같은 시는 참 좋죠.
평소에 작업량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요. 이번 책도 써놓은 원고를 출판사에 보여줬다고 했는데요.
메모를 좀 해놔요. 그리고 출판사 미팅할 때마다 계속 ‘이런 책 어때요?’하고 물어봐요. 책 만드는 걸 좀 즐거워하는 것 같아요. 재미있고요. 초반의 제 책들은 정말로 다 모아서 불태워버리고 싶거든요. 지금도 글을 잘 쓰진 않지만 글을 너무 못 쓰고, 책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잘 몰랐었어요. 만들면서 조금씩 책 만드는 방법, 글의 함량, 그림의 함량, 이런 것들이 조금씩 높아가는 게 스스로가 좀 즐거워요. 다음 책은 또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하고요.
다음 책 구상도 있군요?
‘엄마의 물건’ 이런 걸 생각하고 있어요. 책에도 나왔지만 어머니가 아프시거든요.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의 자질구레한 물건을 다 모아 그것에 관한 에피소드와 추억을 사진과 글로 어우러지게 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아직 출판사가 정해진 곳도 없고 그냥 계속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포기를 모르고 말썽부리는 나를,
어머니도 포기를 모르고 안아 주셨다.
안아 주실 때마다 마치 주술처럼 “괜찮다, 괜찮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시커멓게 탄 가슴으로 나를 안아 주며 내 인생에 주름으로 남을 일들을 하나씩 정성스럽게 모두 펴 주셨다.
병원에 누워 계시는 어머니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면 미로처럼 주름이 이리저리 엉켜 있다. 그 주름을 보고 있노라면 내 인생의 주름으로 남을 만한 일들을 어머니가 펴 주시며 다 가져가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209쪽)
솔직하자
이번 책을 쓰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네요.
첫 번째는 일단 ‘솔직 하자’였던 것 같고요. 매번 책을 낼 때마다 비슷한 생각을 해요. 솔직하고자 하는데요. 거기에 대한 스스로의 의문점은 ‘나는 얼마큼 솔직해질 수 있지?’라는 생각이에요. 무엇보다 이런 건 되게 싫었어요. 요즘 청춘 위로하는 말들이 많잖아요. 그건 약간 어른들의 위선이나 위악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그들을 위해 무슨 생각을 하긴 하나 싶어요. 저는 미안하단 생각해본 적 없거든요. 나도 살기 힘든데 그들에게 미안해야 할 이유도 별로 못 찾겠고요. 물론 사회적 구조 자체가 이상하게 돼서 취업하기 어렵게 됐다고 하지만요. 늘 그래왔어요. 경중의 문제죠. 지금 청년들만 처한 현실이라고 위로 같은 건 정말 하기 싫었어요. 늘 힘들어, 그러니까 잘 버텨, 이 얘기를 꼭 해주고 싶었어요.
말씀처럼 청춘에게 한 말들이 무척 날카로워요. 책에서도 그만 징징대라고 매몰차게 말하는데요. 여기서 하고 싶었던 말은 뭔가요?
이런 얘기는 전에도 계속 쓰긴 했는데요. 스펙을 쌓았는데도 취업이 안 된다는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사실은 디자인계도 그렇지만 어느 분야나 좋은 인재를 찾기가 어렵거든요. 사람이 없어서 못 뽑아요.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대해 타당한 스펙을 쌓는지 봐야 해요. 단지 자격증 따는 것만을 위한 거라면 당연히 취업하는 데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서 이게 얼마나 필요한지 알고 나서 해야 하는데 그냥 자격증 몇 개라는 건 사실 필드에 가면 하나도 중요하지 않거든요. 심지어 디자인 대학 같은 곳은 굉장히 전문적인 걸 공부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졸업하고 나오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해요. 실전에서는 하나도 쓸 게 없어요. 대학 커리큘럼이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요. 특히 디자인 쪽에서는 잘 되는 친구들 중 대학 졸업장 없는 친구들도 많아요. 분야의 특수성이 있긴 하겠지만 오르고 싶은 산은 이쪽 산인데 다른 쪽에서 땅 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멘토란 말도 싫어하는데요. 누군가 주변에 좋은 형들이 그 산이 아니고 이 산이라고 알려주면 좋을 텐데 그런 사람이 없이 그냥 위로만 한다는 거죠. 미안하다고요. 그런 것보다는 정확한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계속 어깨 두드려주는 것은 계속 그 자리에 있게 만들어요. 누군가가 날 위로해주고 있으니까 여기에서 조금 더 슬퍼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건 낙오자를 양산해낼 뿐이라고 생각해요. 늙은이들이 제일 부러운 게 청춘인데 뭐가 불쌍하다고 위로를 하겠어요. 억만금을 주더라도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가고 싶죠.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가끔 그런 생각해요. 제 몸을 다 해체해서 뼈도 깨끗이 씻고, 연골도 새로 교체해서 다시 조립해줬으면 하고요. 노환이 온 건 한참 됐고, 요조 노래처럼 정말 ‘에구구’가 주술처럼 그걸 해야 아침에 일어날 수 있어요. 옛날엔 벌떡벌떡 일어났었는데 말이에요. 술도 어린 친구들에게도 절대 안 졌는데 지금은 백전백패예요. 싸우려고 하면 무조건 지니까요.
하지만 작가에게는 ‘박광수’라는 명함이 있잖아요. 명함 한 장 없어서 괴로운 게 청춘들이니까요. 적어도 벌어먹고 살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말들인데 그만 징징대라고 하는 게 독하게 들리기는 해요.
벌어먹고 살만한 일들은 엄청 많아요. 중소기업 같은 곳은 사람 엄청 찾아요. 화이트칼라 직종만 원하니까 그렇죠. 대학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들어가기는 쉽고, 졸업은 어려운, 취업이 위한 대학이 아니라 학문을 위한 대학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말 취업을 위한 곳은 전문학교 같은 것들이 더 활성화 되면 되죠. 지금은 대학교들에서 광고하는 게 전부 취업률이잖아요.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고졸, 대졸이라는 구분이 희미해져서 대학은 누구나 갈 수 있지만 그건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이 가는 곳이라는 공감대가 생겨야겠죠. 꼭 대기업이 아니어도 되잖아요. 그런 곳 아니면 갈 곳은 많이 있어요.
이런 것들은 사실 어른들이 잘못 만들어놓은 사회 구조긴 하지만요. 그래도 청년들에게 그렇게 미안해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 세대도 그랬고,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는 더 힘들었거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너무 못됐나요?(웃음)
작가의 청춘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저는 한 번도 취업해본 적이 없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저에 대해 항상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당시 사회적인 부분으로는 나는 직장인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만화하기 전에 제가 디자인 하는 것을 보고 한 출판사 사장님이 작은 오피스텔을 무상으로 대여해 주셨어요. 거기서 몇 년 지내다가 일이 많아져서 옮기고, 옮기고 하다가 만화하기 직전에는 직원 세 명 두고 디자인 회사를 했었거든요. 그건 큰 재능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오랜 시간 노력해왔다고 생각해요. 저만큼 노력하면 저만큼은 된다고 생각해요. 스페셜리스트도 있긴 해요. 하지만 시간과 노력을 이길 순 없어요.
대학 때는 3~4일 밤새고, 나머지 하루 이틀은 밤새며 술 마시고, 토론하고 그랬었어요. 밤새 술 마시고 ‘우리는 뭐가 될까’ 토론하는 것도 치열한 청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는데요. 성공을 부풀리죠. 실패한 사람들만이 실패한 것에 대해 통렬한 자기반성을 하면서 이야기를 해줘요. 그런 데서 훨씬 배울 게 많아요. 저는 실패를 많이 했던 사람이어서, 아직도 성공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내 삶의 성공, 행복하려고 하는 사람이고 비교적 다른 사람보다 행복한 것 같다는 면에서는 성공한 것 같은데요. 강연회를 한다든지, 사람들을 모아놓고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어떤 직장에 들어갈지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떻게 사는 걸 원하는지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군요.
그렇죠. 그게 가장 중요해요. 늘 하는 얘기인데요.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 하고 싶어 하지만 정작 내가 언제 행복한지 몰라요. 기성품인 행복, 그런 것들을 행복이라 믿고 사는 거죠. 행복의 빛깔은 엄청 다양하거든요. 한국 국민이 5천만이라면 행복의 빛깔은 5천만 가지 정도 될 거예요. 그게 지금은 열 개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해요. 5천만 가지의 행복이 모여 있을 때 예쁜 사회가 되고,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가 될 거예요. 행복의 너무 스펙트럼이 좁기 때문에 좁은 행복을 서로 차지하려다 경쟁도 심해지고, 누구 하나도 행복하지 않은 거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도 뺏길까봐 두려워서 행복하지 못하고 스트레스 받고요. 뺏고자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죠.
행복이라는 것을 찬찬히 적어보면 그렇게 거대한 것에 행복은 없어요. 저는 행복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엄마 다리 베고 누워 잠들다가 엄마가 슬쩍 다리를 빼고 베개 놓아주시고, 다 큰 아들을 깨워서 밥 먹으라고 하실 때예요. 그게 제일 행복해요. 만화가게에 가서 신간 만화책을 보며 주인아저씨에게 라면 끓여달라고 해서 먹을 때 엄청 행복하고요. 페라리를 산다, 행복하겠죠. 한 달 정도 행복하려나요? 실행해보지 않았던 행복들은 대부분 행복하지 않아요. 내가 더 가졌어, 라는 행복은 그렇게 오래 가는 행복들이 아니에요.
‘우리’의 행복이란 말 싫어해
또 작가가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요?
아이를 꼭 안아줄 때도 행복해요. 이혼을 해서 아이가 엄마랑 사는데요. 아이를 만날 때마다 늘 얘기해요. 아빠는 오직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고, 지금 행복하다고요. 너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죠. 또 착각하면 안 된다고 얘기해요. ‘우리’의 행복은 없다고요. 너의 행복, 나의 행복이 있을 뿐이라고요. 비록 따로 살아도 행복한 아빠, 행복한 아이, 행복한 엄마가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라고 얘기해요. 저는 ‘우리’의 행복이란 걸 되게 싫어해요. 그 말은 ‘그러기 위해 너의 행복을 좀 포기해라’라는 뜻이거든요. 개인의 행복이 가장 중요해요. 물론 그게 범법이 되어서는 안 되겠죠.
아이가 어느 장소에서 어떻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내가 그 아이가 뭐가 되고 싶은지는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어요. 아이가 뭐가 되길 바라면서 잘 안 되니까 부모들은 아이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데요.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는 것이라면 그 아이가 어떨 때 행복한지도 부모는 알고 있어야 해요. 그걸 맞춰줘야죠.
보통의 부모들은 자식이 행복하리라는 믿음 안에서 뭐가 되라고 강요를 하는 거잖아요.
학습된 거예요. 더 앞선 세대는 대부분 공부를 할 수 없는 환경이었고, 억척스럽게 일하고 부지런해야 한다고 얘기했었죠. 우리 아버지 세대들은 공부 잘하면, 소위 일류대 나오고, 상사맨이 돼야 행복하다고 눈으로 봐왔어요.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은 조금밖에 안 바뀐 거고요. 자기가 살면서 보아온 풍경들을 자식들에게 다시 주입하는 거예요. 시대가 바뀌는 것들을 열심히 잡아내려 하지 않는 어른들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겠죠. 그게 잘못됐다고 얘기할 순 없어요. 그래야 자식이 행복하다고 믿는 거니까요. 행위 자체를 나쁘게 얘기할 수 없긴 한데 인식 개선을 해줄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단 생각이에요.
제목도 그렇지만, 어머니 이야기도 있고, 어떤 상처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 밑에는 악에 받친 목소리도 깔려 있는 것 같았거든요.
악에 받친 거 없나요? 저는 악에 받쳐서 행복하고자 하는 것 같아요. 어려서 공부를 못하고, 안 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선생님들은 학생을 이분법으로 판단했어요. 공부 잘하는 애는 착한 애, 공부 못하는 애는 못된 애, 이렇게요. 저는 못된 애로 구분 됐죠. 그림만큼은 어려서부터 늘 전교 1등이었어요. 그럼 선생님이 저를 ‘광수는 그림 잘 그리는 애’로 분류해야 하는데 그냥 못된 애로 구분을 하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어려서부터 너무 싫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들이 집에 찾아와서 돈을 받아가는 모습도 봤고요. 그런 부조리들이 싫었어요.
성인이 돼서는 금전적으로, 세상으로부터 얻은 허명 같은 것으로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부침이 되게 심했죠. 디자인을 하다가 만화로 직업을 바꾸고, 작은 성공 때문에 도취돼서 정신 잃고, 이혼 했다가, 사업도 망했다가 그랬어요.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인데 다른 사람에 비해 풍파가 두세 배는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행복을 엄청 믿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서는 관조적인 면을 갖게 됐고요. 복합적인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버티기’를 여러 번 말하기도 하거든요. 삶은 누구에게나 힘든 것이다, 라는 인식이 도움이 될까요? 방해가 될까요?
저한테는 도움이 돼요. 후배들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천당과 지옥이 있을까 하는 질문이었는데요. 저는 둘 다 있다고 했어요. 죽으면 모두 천당에 가는데 못 되게 산 사람은 다시 환생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가 사는 곳이 지옥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내가 뭔가 잘못해서 이 지옥에 왔다면 이 삶을 즐겁게 살다 가는 게 나를 여기 보낸 누군가에게 지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삶은 대체로 힘들지만 잠깐 행복을 줬다 뺐잖아요. 그래야 온전히 불행해지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지옥인데, 여기서 절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거예요.
말씀드렸지만 개인적인 고백들이 많이 있거든요. 사소하게는 통풍이나 어린 시절 가졌던 도벽에서부터 이혼이나 어머니의 병환 이야기까지, 이런 내밀한 이야기를 하는 데 부담은 없나요? 워낙 사적인 이야기니까요.
기조 자체가 솔직하게 살자는 거니까요. 감춰진다고 감춰지나요.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는 맞는 것도 있지만 틀린 것도 굉장히 많아요. 지금은 연락 닿지 않지만 최근 만화가 강풀이 악플러 고소한다고 하는데, 연락이 된다면 고소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또 상처 입을 거예요. 악플에 초월할 수 있는 사람은 없죠. 저도 엄청 괴로웠는데요. 그 괴로움은 대부분 저 때문에 상처 입는 가족들을 보는 괴로움이거든요. 하지만 고소한다고 달라지는 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아버지나 아이에게도 더러는 거짓말도 있고 잘못된 것도 있지만 제가 해놓은 것들 중 일부니까 너무 개의치 말고, 상처 받지 말고 살라고 했어요. 아이의 경우 아빠의 이혼, 아빠에 관한 이상한 소문들로 주변의 괴롭힘을 받았을 때는 굉장히 곤욕스러웠어요. 나의 잘못으로 인해 상처를 준 것은 평생을 통해 갚겠다고 얘기하는데요. 고소한다고 아이의 상처가 없어지는 것 같진 않아요. 그냥 두려고 늘 생각하고 있어요. 그것의 단초는 늘 제가 제공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가해자, 피해자로 구분한다면 최초의 가해자는 저였을 테니까요. 이혼하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고요.
그냥 두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나요.
나이가 들수록 그냥 두는 것, 참 좋다고 생각해요. 애써서 뭘 한다는 것, 잘 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시간이 해결해주는 일도 드물지만 안 되는 일은 안 되고, 제자리를 잡는 것들은 자리를 잡기 때문에 말이죠. 애써서 되는 건 그렇게 못 봤어요. 일도, 사람도, 사랑도, 세상도, 그래요.
질문 하나가 인생을 5년 동안 소용돌이치게 해
세상 나이로 마흔 살이 막 넘었을 무렵 꽤나 할 일이 없던 나는 친구와 술집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별 생각 없이 술을 마시고 앉아 있었다. (중략)취한 친구가 갑자기 용수철처럼 튕기며 자신의 상체를 곧추 세우면서 내게 질문했다.
“이야~광수야아~너 이 다음에 크면 뭐가 되고 싶냐?”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나는 모든 동작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거의 10살 이후에는 들어보지 못한 신선한 질문이었다.(101쪽)
친구가 술 취해서 한 질문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냐?’ 에 답을 좀 찾으셨는지 궁금해요.
그것 때문에 책도 안 내고 5년 동안 다른 일을 한 적 있어요. 아무 일도 안 하고 5년을 영화 해보려고 했었어요. 원래 3년 간 해보자고 했었는데, 2년을 더 끌다가 돌아왔죠. 다시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금 바닥으로 돌아왔어요.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고요. 사람들이 그때 만든 이야기가 좋지만 너무 어두워서 흥행은 안 될 것 같다고 얘기해서요. 기회가 된다면 좀 더 공력이 있을 때 소설로 발표해보고 싶어요. 완전히 포기한 것도, 하고 있는 것도 아닌 그런 상태예요. 그 친구의 질문 때문에 5년 동안 그 바닥에서 굴렀어요. 허비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덕분에 좋은 사람도 많이 알게 됐고요. 나쁜 사람도 알게 되면서 이런 사람은 피해야겠다는 것도 알게 됐죠. 질문 하나가 제 인생을 5년 동안 소용돌이치게 했어요.
큰 용기였던 것 같아요. 걸어오던 길을 벗어나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요.
모르는 곳에서 뭔가를 한다는 건 여행하는 것 같아요. 여행의 가장 중요한 점은 별로 뛰지 않는 평상의 삶에서 내 가슴을 뛰게 한다는 거예요. 이 골목을 돌면 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거기에서 어떤 생각 같은 게 있을 수 없거든요. 모르는 게 여행이고, 새로운 걸 배우는 것 같아요. 전혀 모르는 길이니까 모르는 걸 부끄러워하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죠. 여행에 늦은 게 있나요? 노년에도 여행은 좋잖아요. 저는 여행이 제일 좋더라고요.
‘무규칙 이종 격투 문화가’로서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것들이 궁금합니다.
무계획이 계획이에요. 그때 하고 싶은 것들, 그때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선택하고 살 거예요. 삶에 있어 여러 선택들이 있다면 가장 기본 원칙은 행복이에요. 그게 될 것 같아요. 돈이 주는 것의 최대 장점은 내가 갖고 싶은 걸 갖게 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하기 싫은 것을 안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쓴 적이 있거든요. 그런 것 같아요. 적당히 돈 벌면서 하기 싫은 일은 쳐내고 하고 싶은 일,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 거예요. 그런 내 삶을 바라보는 제 자식들도 오직 행복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어요.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박광수 저 | 예담
우리 이웃이 느끼는 서러움, 삶의 버거움, 가족에 대한 사랑, 희망들이 고스란히 담긴 그림과 글을 통해 함께 하는 이들의 소중함과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임을 일깨워 주며 때로는 따스함으로, 때로는 발칙한 상상력으로 수백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박광수 작가가 이번에는 ‘세상을 경험해 보니 이제 조금은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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