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 현미경을, 한 손에 망원경을 들고 있다. 두 기계 모두 배율이 아주 좋아 지금껏 인류가 확보한 지식을 모두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무기물에서 유기물로, 세포로, 복잡한 구조를 가진 생물로 진화하는 과정을 관찰한다. 발붙인 땅 위로, 하늘로, 대기권 밖으로, 태양계로 시선을 돌린다. 놀랍고도 아름다운 풍경들, 그 모든 것들에 관한 거의 모든 지식들. 그 가운데 인류가 있다. “지구 탄생 46억 년 만에 환경에 적응하지 않고 환경을 바꾸는 생명종이 등장”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자연사의 세 키워드 ‘공생’, ‘멸종’, ‘진화’로 생명 탄생의 결정적 장면들을 짚어낸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인용한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의 에필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종으로서의 인류를 사랑해야 하며, 지구에게 충성해야 한다. 아니면, 그 누가 우리의 지구를 대변해 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생존은 우리 자신만이 이룩한 업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인류를 여기에 있게 한 코스모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코스모스』, 682쪽)
이는 아주 자연스럽게 “꽃이 예쁜 이유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존재하기 전에는 어떤 동물도 저 꽃을 보고 예쁘다고 얘기한 적이 없잖아요. 인간이 있으니까 자연이 아름답고, 지구가 의미가 있고, 우주가 장엄한 거죠.”라는 이정모 관장의 말로 연결되었다. 우연으로 점철된 자연사 각각의 장면이 아주 세밀하고 유기적으로 얽혀서 현생 인류가 탄생한 것은 다시 생각해도 기적 같은 일이며, 이 기적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장엄한 우주와 지구의 역사에서 인류라는 종이 탄생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우주적 관점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저 먼 과거의 ‘결정적 장면’들을 가지고 현재 이후의 진화에 대해서도 상상해봄직 한 것이다.
앞서 말한 현미경과 망원경은 그러므로, 다름 아닌 인류, 인류가 쌓은 지식들, “인류를 여기에 있게 한 코스모스”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행운과 자부심
“생명의 진화에는 아무런 목적이 개입하지 않는다. 무수한 우연의 연속일 뿐이다.”라고 하셨어요. 이 ‘우연’한 사건들을 안다는 게 이렇게 흥미로운 일인 줄 몰랐습니다.
생명뿐 아니라 우주의 탄생도 우연의 역사잖아요. 우주가 뻥 터졌다는데 어떻게 터졌는지도 모르고, 우연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요. 우주가 폭발한 다음에 여러 가지 일어난 일들도 아주 우연의 연속이에요. 거의 일어날 수 없을 아주 작은 확률의 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지금까지 나타났잖아요. 생명이 등장했고, 그 생명이 지금의 인류가 될 때까지도 끊임없는 우연이 계속 모였어요. 어떻게 계속 우연으로 되느냐고요.(웃음) 그 우연이 또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지구가 생긴지 46억 년이고, 생명이 생긴 게 38억 년인데 이 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우연이 생겨 겨우 이 정도예요. 우리가 지금 이걸 아주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겨우’ 이 정도 생길 수 있었던 거죠.
우연이라고 해서 하찮다든지 덜 귀하다는 게 아니에요. 우연 속에서 이만큼 온 것은 우리에게 행운이고 일종의 자부심을 갖고 기뻐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죠.
이 경이로운 우연의 사건들이 또 필연적인 결과들을 낳았잖아요. 진화의 시계를 되돌려도 비슷한 조건이라면 지금과 비슷한 결과를 낳았을 것이라는 사이먼 콘웨이 모리스의 말도 눈길을 끌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요. 스티븐 제이 굴드 같은 사람은 이렇게 나올 확률은 없다, 라고 얘기하기도 하죠. 제 마음은요, 이랬다저랬다 해요. 정말 이렇게 꼭 됐을 것 같아, 라는 생각을 한 건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심하게 가질 때였고요. 좀 더 겸손한 자세를 가질 때는 다시 되돌아가도 우리가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하죠. 그런데 아주 옛날까지는 아니더라도 5억 년 전의 조건 정도라면 거의 비슷한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공룡들이 번창했을 때 포유류들은 주먹만 하게 살았잖아요. 순서가 바뀌어서 포유류가 먼저 번성했다가 소행성과 부딪쳐 포유류가 다 멸종하고, 지금 그 당시 숨죽여 살던 파충류들이 번성한다, 이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큰 줄기에는 큰 차이가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은 두 의견 중 어느 쪽에 더 기울어 있으신 건가요?
우연이다, 거꾸로 시계를 되돌린다고 하면 이렇게 안 생길 가능성이 훨씬 더 클 수 있다, 그래서 참 고맙다(웃음), 그 우연의 역사들이 참 고맙다, 이렇게 생각해요. 하필이면 이렇게, 내가 생기게 해줬으니까요. 반 세기 전의 일만 해도 그래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주무셨을 때 하필이면 그 몇 억 분의 일에 해당하는 정자가 닿았잖아요. 고마운 일이죠.
자녀가 있으시죠? 책에 잠깐 언급하기도 하셨어요.
리처드 도킨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상당히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이기적 유전자’라는 것이 무척 다가오는 게요. 그것이 ‘이기성’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거든요. 자기 유전자를 잘 보존하려다 보니 ‘이타성’이 드러난다는 얘기를 하는 건데요. 저도 자녀를 낳고 길러보니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이기성과 이타성의 구분이 완전히 달랐는데 어느 순간 되니까 그 구분이 사라져버리더라고요. 그렇게 된 매개가 나의 아이였던 거예요. 아이에 대한 애정이 확산이 돼서 다른 아이에 대한 것으로까지 넓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진화 심리학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렇다 보니까 진화 심리학도 자꾸 끌리는 거죠.(웃음)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또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진화 심리학은 왜요?
기본적으로 심리학에 대해서 신뢰가 없었어요. 그것이 과학일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과학은 재현 가능해야 하고, 그것을 또 수없이 많이 해서 그래프를 그릴 수 있어야 하는데 심리학은 한 번 해버리면 누가 못 하는 거예요. 다른 건 그렇지 않잖아요. 논문에서 반드시 재현해보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걸 따라 해본단 말이에요. 심리학 실험들은 재현해볼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아이랑 침팬지를 함께 키워보니 이렇더라, 하는데 다른 아이랑 키워보지는 않았거든요. 오로지 그 데이터 하나로 얘기하는데 그걸 믿어야 하나 생각이 드는 거죠. 진화심리학은 심지어 수만 년 전의 이야기를 해요. 볼 수도 없는 것들인데 말이에요. 환원주의에 빠지게 돼 있죠. 어떻게 뭐든 게 다 그럴 수 있냐 생각하는 거예요.
과학은 매 순간 의심해야 하는 것
환원주의라는 측면에서는 책 곳곳에 창조과학자들을 비판하기도 하셨죠.
항상 조심해야 할 게 환원주의잖아요. 편하거든요. 모든 걸 하나로 다 설명할 수가 있어요. 사람들도 좋아요. 일관성 있게 쫙 설명을 해낸다면 말이에요. 하지만 경계해야 할 것들이 있어요. 저도 자연선택으로 많은 걸 설명하려고 하지만 계속 의심을 해요. 매번 의심을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보다 더 좋은 설명이 없기 때문에 이걸로 설명하는 거거든요. 어느 날 공룡 화석 속에서 사람의 뼈가 나온다든지, 삼엽충이 있는 지층에서 고래가 나온다든지, 한 가지만 나와도 그동안 생각했던 진화 이론들을 다 버릴 수 있죠. 창조과학자들은 그런 점에서 무척 안타까워요. 의심을 하지 않아요. 저 교회 다녀요.(웃음) 창조에 대해 의심하지 않아요. 하지만 창조주의, 창조과학 이런 것은 안 믿거든요. 그건 이데올로기고, 문자중심주의라고 생각해요. 진화도 창조의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있어요. 그러려면 계속 의심을 해야 한단 말이에요. 그렇지만 종교에서는 보지 않고 믿는 게 복이 있다고 얘기하니까요. 그건 과학의 방법은 아니거든요. 과학은 매 순간 의심해야 하는 거죠.
대개는 믿음과 의심을 동일선에 올려놓지 못하잖아요.
그게 아주 옛날부터 있었던 거거든요. 이게 깨져나가는 데 사실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하지만 다 깨졌죠. 갈릴레오 때 한 번 크게 깨지고, 다윈 때 크게 깨졌어요. 그런데 여전히 그걸 믿고 있는 분들이 있는 거죠. 대화를 왜 안 하느냐고들 하시는데요. 많이 했었지만 층위가 달라요. 마술과 물리의 층위가 다르잖아요. 우리나라는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사람 수가 높아요. 유럽 정도는 아니지만 미국보다 훨씬 높고요. 60~70%가 받아들여요. 그런데 진화론을 믿는 사람의 60% 이상이 창조론도 함께 가르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는 거예요. 싸우지 말고 다 가르치면 되지, 하는 거죠. 화학시간에 연금술 같이 가르치자, 할 수 없는 거잖아요. 천문학시간에 점성술도 같이 가르치면 되지, 안 하잖아요. 진화와 창조과학이라는 것은 대개 그 정도 차이가 있는 거예요. 그걸 같이 가르치라는 건 사실 갑갑한 이야긴 거죠.
그렇게 안이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받는 진화론 교육의 깊이를 문제 삼아볼 수도 있겠네요.
독일 유학 때 교수님이 진화론 얘기하면 너는 어떻게 그렇게 무식하냐고 했어요.(웃음) 『종의 기원』을 안 읽었다니까 놀라셨어요. 여러 번 시도했지만 번역도 이상하고, 너무 지루한 책이었어요. 사실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같은 책들은 정말 문학적이고 좋거든요. 재러드 다이아몬드와 비슷하죠. 『제3의 침팬지』한 권만 읽으면 모든 얘기를 다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다윈도 그런 식이었죠. 저는『종의 기원』읽지 말라고 해요. 대신 윤소영 선생님이 쓴 『종의 기원, 자연선택의 신비를 밝히다』가 진짜 좋다고 하죠. 장대익 교수님이 쓴 『다윈의 식탁』은 왜 아직 외국에 번역이 안 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읽은 무수히 많은 진화에 관한 책 중 장대익 교수님의 이 책만큼 세상의 진화론을 다 모아둔 책이 과연 있는가, 없어요.
자연사, 인류를 위해 필요한 것
우리가 자연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저도 ‘자연사’라는 이름을 독일 갈 때까지 못 들어봤어요. 1992년 독일에 갔는데 가서 1년 쯤 지난 후 자연사박물관을 봤죠. 너무 궁금했어요. 자연사가 뭔지도 몰랐거든요. 가서 본 후 처음 생각을 하게 됐죠. 역사를 왜 배우나요? 그저 옛날이야기가 궁금해서 배우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를 생각하고, 찬란했던 나라들이 멸망한 이유를 배우려고 공부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 나라와 민족이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할까를 반면교사로 배우고 고민하자는 거죠. 자연사도 마찬가지거든요. 인류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알고 싶은 거예요. 옛날에 살았던 그 많은 동물들이 일일이 다 궁금해서가 아니라 고생대의 바다를 3억 년이나 지배했던 삼엽충이 왜 사라졌을까, 1억 5천만 년 동안이나 중생대 육상을 지배했던 공룡들이 왜 멸종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런 멸종에서 교훈을 얻는 거죠. 그 교훈으로 우리 인류가 얼마나 더 살아야 하고, 더 살아남기 위해 어떤 방책을 세워야 하는가를 고민하기 위해서 자연사를 배워야 하는 거죠. 국가, 민족을 위해 역사가 필요하다면 인류를 위해 자연사가 필요한 거예요.
자연사는 곧 멸종의 역사라고도 했듯이 ‘멸종’에 대한 다른 시선을 견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새로운 기회라고 하셨는데요.
자연사박물관장이라고 하니 환경 단체 등에서 강연 요청이 많이 와요. 제일 처음에 멸종 얘기를 하거든요. 멸종은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그러면 주최 측이 당황하죠.(웃음) 저는 멸종이 그렇게 심각하고 슬픈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따지고 보면 멸종은 다음 세대 생명에게 자리를 비워주는 거예요. 생태적 지위, 니치(niche)라고 하는 구성들이 있어요. 그곳을 다 차지하고 있는데 다른 종이 새롭게 생겨날 수가 없잖아요. 비워주면 새로운 게 생기고, 그러면서 생태계가 발전도 하는 거죠. 공룡이 지금까지 살고 있다면 포유류는 여태 주먹만 한 크기로 야행성으로 살고 있을 게 분명해요. 공룡이 사라지니까 포유류도 점점 커지면서 인류도 등장하게 된 거잖아요.
중요한 건 내가 살아남는 거예요. 이런 말하면 인간중심적이지 않느냐고 하는데요. 당연히 인간이 인간중심적이지 도롱뇽중심적인 게 말이 되느냐고 생각해요. 인간 없는 지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는 거예요.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고, 지금은 여섯 번째 대멸종을 걱정하는 건데요. 그간 대멸종을 보면 늘 최상위 포식자가 멸종했어요. 지금 최상위 포식자는 인류거든요. 여섯 번째 대멸종이 일어나면 인류가 멸종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문제인 거죠. 꽃이 예쁜 이유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존재하기 전에는 어떤 동물도 저 꽃을 보고 예쁘다고 얘기한 적이 없잖아요. 인간이 있으니까 자연이 아름답고, 지구가 의미가 있고, 우주가 장엄한 거죠. 인간이 버텨내야 하는 거예요.
칼 세이건은 우리에게 지구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하며 그것은 단지 인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주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 인류는 더 지속해야 한다. 인류가 태어나기 전까지 지구에는 어떤 생명도 이름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인류가 존재하기 전 우주는 단 한 번도 아름답지도 장엄하지도 못했다. (중략) 인류라고 영원할 수는 없다. 인류도 언젠가는 멸종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이제 생겨난 지 20만 년밖에 안 되었다. 우리는 훨씬 더 지속해야 정상이다. (8쪽)
그렇지만 상어, 고래, 석탄처럼 인간 존재로 사라져가는 것들에 아무래도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여섯 번째 대멸종이 너무 빨리 올 것이란 과학자들의 예측과 함께 생각한다면 시사점은 훨씬 많아져요.
인류에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인류가 없어지길 바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인류가 없어진 후 지구가 폭발하건 얼음덩어리가 되건 아무 관심이 없어요. 사람은 100~150만 년은 더 존재해야 하는 게 정상이에요. 호모 사피엔스는 20만 년 밖에 안 됐잖아요. 여섯 번째 대멸종이 길어야 만 년, 짧으면 500년이라고 하는데 이건 너무 짧죠. 인류가 사라진 후 인류와 비슷한 어떤 종이 나타나는 게 아니거든요. 어디로 갈지 몰라요. 영원히 등장 못할지도 모르죠. 다시 파충류의 시대가 될 수도 있고요.
최근 200년 동안의 일들은 너무 심각하죠. 기원전 만 년 전, 지구는 위기에 봉착했어요. 지구 탄생 46억 년 만에 환경에 적응하지 않고 환경을 바꾸는 생명종이 등장한 거예요. 물길을 바꾸고, 불을 질러 밭을 만들고요. 산업혁명 이후부터는 도저히 지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변하고 있는데요. 저는 인류가 지금 같은 소비사회를 지속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기술은 어마어마하게 발전했지만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자원이 있어야 하잖아요. 이 에너지와 자원은 정점을 지났어요. 우리가 쓸 수 있는 자원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거예요. 다시 신석기 시대로 돌아가진 않을 거고, 아마 다시 200년 전의 삶의 모습과 비슷하게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기에 적응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겠죠. 바느질, 놀이, 농사, 이런 거라고 생각하고요.
생명과 우주의 역사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눈의 탄생을 꼽으셨어요. 무척 감명 깊게 읽은 대목이기도 해요.
우리 감각 중 가장 중요한 감각이죠. 눈으로 얻는 정보들이 너무 많아요. 눈이 탄생하기 전 동물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거죠. 입을 벌리고 물을 떠다니다 누가 내 입에 들어오면 고맙게 먹는 거고, 누군가의 입에 들어가면 재수 없게 죽는 거였어요. 삶조차 우연에 맡기게 됐었는데요. 눈을 가지게 된 다음부터 무엇을 쫓고, 무엇으로부터 도망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됐어요. 그 다음부터 위장색이라는 것도 하게 되고 여러 전략들을 세워야 했죠. 생명이 드디어 전략, 생각이라는 걸 갖게 된 계기가 눈인 것 같아요. 눈은 지구가 생긴 지 41억 년쯤 지난 후, 생명이 생긴 지 33억 년 지난 후에 생겼어요. 눈 하나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지난한 일들이 있었느냐고요. 눈의 탄생은 정말 멋진 순간이죠. 그 순간이 없었다면 우리 같은 육상의 동물들은 존재할 수가 없어요. 지렁이 같은 삶이었을 거예요.
눈이 처음부터 지금 같은 형태는 아니었다는 사실도 흥미롭거든요. 처음 눈은 광물이었다고요.
창조과학자들이 눈에 대해 이렇게 정밀한 기관이 어떻게 만들어졌느냐고 말해요. 그건 진화 과정을 이해 못하시는 거예요. 이런 눈이 처음부터 딱 만들어진 게 아니거든요. 아주 단순한 것에 장치가 하나씩 붙어요. 다른 데 쓰던 장치가 조합이 돼 전혀 다른 게 생기기도 하고요. 눈이 만들어지는 데 33억 년이 걸린 거예요.
이 대목에서 눈먼 시계공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죠.
아주 멋진 논증이잖아요. 길을 가다 시계를 발견했다, 그 시계의 설계자가 어떻게 없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래서 페일리는 신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했던 거고요. 그 논증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다른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리처드 도킨스는 이에 대해 정말 시계공이 있다면 그 시계공은 눈이 멀었구나, 왜냐면 눈을 잘 못 만들었기 때문이다, 라고 했어요. 사람의 눈은 망막의 앞에 신경이 있기 때문에 빈 점이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볼 때 까만 점이 보이지 않잖아요. 그 이유는 눈이 계속 움직이기 때문이에요. 반면 오징어의 눈은 안 그래요. 오징어의 눈이 사람의 눈보다 좋죠. 그 논증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도킨스의 가장 중요한 책이 『눈 먼 시계공』이라고 생각해요.
같이 살자
‘캄브리아기 대폭발’과 관련한 부분이나 날렵한 사냥꾼인지 느림보 청소부인지 여전히 알 수 없는 티라노사우르스의 존재처럼 미지의 공백들이 있잖아요. 우연하고도 위대한 발견들이 기다려져요.
지금도 계속 발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 고생물학 쪽에 정말 많은 논문이 나오고 있더라고요. 특히 진화적 증거가 엄청나게 많이 나와요. 화석 같은 것이 말이죠. 중국과 몽골의 힘이 커요. 중국 사람들이 유학 후 귀국해서 보니까 어마어마한 화석들이 있는 거예요. 다른 나라에서 가설을 세우면 그 가설에 해당하는 화석을 다 찾아낼 수 있었죠. 실제로 무척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거든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모습들이 있죠.
공룡의 모습을 상상만 했었잖아요. 이제는 실제 공룡의 색을 알 수 있게 되었거든요. 피부에 멜라닌 색소가 들어있는 멜라노솜이란 조직은 화석으로 남아요. 그 조직이 색깔마다 조직의 구조가 다르거든요. 구조를 보면 색깔로 알 수 있는 거예요.
최근 본 것 중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뭐가 있었나요?
스테고사우루스라는 공룡이 있어요. 등에 뾰족뾰족하게 나와 있는 게 있거든요. 그걸 예전에는 방어용 무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옆구리에서 공격을 할 텐데 그건 위에 있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옆에서 공격하면 그게 쫙 펴진다고도 했죠.(웃음) 그러려면 인대가 붙어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인대 자국이 없었어요. 요즘은 CT가 발전해서 찍어보니까 거기 모세혈관이 많아요. 물리면 피가 줄줄 흐르겠죠. 그러니 이것은 방어용 무기는커녕 약점일 수가 있는 거예요. 도대체 뭘까 생각한 거죠.
스테고사우루스는 풀도 없던 시절 나무 따먹던 공룡이에요. 머리가 좋을 필요가 없었어요. 두뇌가 호두 한 알 크기 정도예요. 멍청했죠. 요즘의 가설은 그것이 짝짓기를 하는 데 필요했다는 거예요. 초식동물은 함께 살잖아요. 다른 종들이 섞여서 지낼 수 있죠. 멍청하니까 짝짓기를 엉뚱한 동물과 해버릴 수 있는데 그러면 안 되잖아요. 누가 보더라도 확실한 특징이 있는 공룡들이 선택돼서 살아남은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죠.
역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새예요. 공룡은 멸종한 게 아니라 새로 남아있는 거죠. 또 여전히 관심이 많은 건 최초의 생명체고요. 첫 번째 세포, 이런 데 관심이 많죠. 어떻게 처음 생명이 생겼을까, 이것이요. 얼음 속, 열수 분출구 등지에서 찾아내고 있는데 의외로 최근에는 많은 증거들이 나와서 서서히 그 모습들을 만들어내고 있죠. 이런 식이면 조만간 최초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걸리버 여행기』의 오류를 지적한 부분, 얼마 전 칼럼에서 슈퍼문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 등 반대되는 가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재미있습니다. 스토리텔링에 대한 고려도 좀 있으신 것 같아요.
그럼요,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죠. 재미로 사람을 끝까지 끌고 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 번에 되는 게 아니에요. 부모님들 중에 자연사박물관에 한 번 와서 뽕을 빼려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재미있게 잠깐 보고, 맛있는 거 사주고, 기념품 사고, 또 오고 싶어지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과학을 대중에게 전달할 때 많은 것을 주고 싶어서 얘기하지만 기억에 안 남잖아요.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주변 경험에서 하나 끄집어내면 돼요. 모든 건 이야기에요. 스토리텔링이 돼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어요. 그러려면 읽어야 해요. 저는 교과서 말고 차라리 소설을 읽으라고 얘기해요. 지금 필요한 건 새로운 첨단 과학 지식이 아니라 이걸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이죠.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는 어린이 도슨트가 있어요. 교육 프로그램이 참 좋아요. 몇 미터씩 맡아서 설명을 하는데요. 아이들이 처음엔 단순히 외운 얘기를 쭉 하다가 스스로 알게 돼요. 석 달만 지나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해요. 이 친구들도 아는 거예요. 다 전달하지 않더라도 흥미를 주는 요소들만 전달하면 된다는 걸 초등학생들도 알더라고요.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같이 살자’이다”라고 하셨죠.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밀한 먹이사슬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생태계가 잘 유지돼요. 그런 곳에서는 한두 종이 사라져도 빈 공간은 누가 다시 채워주니까요. 그런데 인간이라는 종이 먹이사슬을 너무 크게 차지하니까 먹이사슬이 느슨해졌어요. 도롱뇽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저 도롱뇽조차도 지켜줘야 하는 거죠.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주변에 있는 생명들을 살려내야 하는 거예요.
뭐든 연습이 필요하잖아요. 주변의 삶도 생각을 못하면서 어떻게 도롱뇽 생각을 하겠어요. 대학에서 청소 노동자들 휴식 공간을 안 줘서 화장실에서 밥을 먹는다는 뉴스를 볼 때 진짜 안타까웠어요. 같이 살고 있는,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나의 동료라고 생각 못하고, 같이 살자는 생각을 못하는데 어떻게 눈에 안 보이는 저 산 속의 도롱뇽과 같이 살자고 생각하겠어요. 결국 나를 위한 것으로 다른 생명과 같이 살아야 하는데 그 연습으로 우리 주변에 있는 이웃들과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고통을 나누고, 탐욕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앞으로 더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으신가요?
과학 전반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학만 대중화되는 게 아니라 대중도 과학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좀 더 깊은 이야기들이 나와야 하는 거예요. 목요일마다 교수님들을 모셔서 강연을 해요. 쉽게 강연할 필요 없다고 말씀 드려요. 사람들은 다 쫓아와요. 원래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간극은 계속 채워나가는 거고요. 대중의 과학화란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꿔나가는 거예요. 기존의 것들을 의심해 나가는 과정이고요. 그럼으로써 합리성을 갖게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 사회가 합리성을 갖게 되는 거죠. 합리성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예요.
공생 멸종 진화 이정모 저 | 나무,나무
자연사는 멸종의 역사다. 공생하지 않으면 멸종한다. 공생한 생명만이 진화로 이어진다. 공생 멸종 진화. 자연사를 이해하는 세 가지 키워드다.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이 쓴 책, 『공생 멸종 진화-생명 탄생의 24가지 결정적 장면』은 38억 년에 이르는 생명의 역사를 이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한다. 바다의 출현에서부터 현생 인류까지, 기나긴 생명의 역사를 조망하면서 이 관장은 공생을 통해서만 진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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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가 허영만 “나에게 커피란, 사랑할 수 없는 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