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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우, 만년필로 기록한 여행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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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좋은 그림』은 선으로 기록된 여행의 기억을 담고 있다. 만년필의 예리한 펜촉에서 시작된 선들이 교차하고 덧대어지면서, 스쳐가는 순간들을 종이 위에 붙들어놓았다. 교토의 기요미즈테라, 터키의 아야소피아 성당, 부여의 무량사, 바티칸의 성베드로 광장, 홍콩의 푹와 노천 시장, 캄보디아와 인천의 골목길까지, 화려한 건축물과 복잡한 공간들이 모두 하나의 가느다란 선에서 탄생했다. 그 기록들은 체온처럼 따뜻한 온기를 머금고 있다. 카메라나 스마트폰 같은 간편한 방식을 마다하고 애써 손끝으로 적어 내려간 것이기 때문이다. 육필, 문자 그대로 몸으로써 기록한 것들에는 분명 그것만이 품고 있는 감성이 있는 법이다.

 

책에 담긴 스케치들을 그려낸 건 시간과 마음이다. 대상을 응시했던 많은 순간들과 그 안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던 마음들. 그것들이 한 데 어우러져 『아무래도 좋을 그림』의 풍경과 사유가 되었다. 긴 세월을 이겨낸 건축은 자신이 기억하는 역사를 들려주고 이름 모를 골목길은 일상을 말한다. 때로는 여행의 의미에 대해, 또 때로는 살아가는 일의 본질에 대해 묻기도 한다.

 

이렇게 색다른 방식으로, 그래서 반가운 이야기로 여행의 기억을 나누어주는 저자 정은우는, 이미 ‘솔샤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유명한 파워블로거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7년 연속  에세이와 예술 분야의 파워블로거로 선정되었고 약 370만 명의 네티즌과 소통해왔다. 그가 보여주는 만년필 스케치와 감성에 매료된 이들은 왜 이제야 책으로 출간된 거냐며 아쉬움을 토로했을 정도다.

 

『아무래도 좋을 그림』이 품고 있는 또 다른 감성은 애정이다. 저자가 흠모하는 만년필과 여행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으니. 이상한 일은, 그 애정이 독자에게로 옮아온다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좋을 그림』을 읽노라면 “서로 만날 일 없던 것들”에도 기꺼이 시선을 빼앗기고 사유의 공간을 내어주는 여행을 꿈꾸게 된다. 이토록 찬찬히 마음을 나누는 떠남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까닭이다. 이런 이야기에 애정을 갖는 건, 막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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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좋을 그림』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


만년필만이 가진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저는 만년필이 필기구 중에서 가장 번거롭기 때문에 써요. 물론 연필도 쓰려면 깎아야 하고 다른 필기구도 준비에 필요한 과정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만년필은 가장 번거로워요. 잉크를 채워야 하고, 그 과정에서 흘러 넘치기도 하고, 그러면 손에 묻고 닦아내야 되고, 심지어는 오랫동안 쓰지 않으면 막히기도 해요. 그럴 때는 따뜻한 물에 헹궈준 다음에 하루 정도 기다려야 돼요. 만년필을 쓰지 않는 분들은 번거롭고 불편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그런 부분들이 강제적으로라도 여유를 만들어줘요. 저는 그렇게 강제된 여유가 좋더라고요. 지금 우리는 모눈종이처럼 바쁘고 촘촘한 일상을 살아가잖아요. 그런데 바쁜 와중에도 아무 생각 없이 잉크를 넣고 닦고 헹구는 일들을 하다 보면, 정신의 객석이 마련돼요. 그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스케치는 장소의 구조나 색에 대한 관찰을 끊임없이 품게 만드는 반면, 카메라는 사진을 찍음으로써 할 일 다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러스킨의 주장에 동의한다고 하셨어요. 작가님께서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여행을 기록하시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맞아요. 하지만 저는 사진이 인스턴트적이거나 일회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림보다 하위에 있는 문화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각자 가진 의미가 분명히 있는데, 대상을 조금 더 관찰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그림이 좋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특별한 장면을 추억하기에는 사진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요. 저도 사진을 많이 찍거든요. 그런데 예전에는 어릴 적 사진을 보면 그 안에 있는 제 모습에 대해서 생각했다면, 요즘에는 사진에 없는 것들이 보여요. 사진을 찍어주던 아버지나 그때 제가 앉았던 자리에서 바라보던 풍경들 같은 걸 생각하는 거죠. 사진의 진짜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사진을 통해서 딸려 나오는 추억 타래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걸 보면서 기억이라는 게 잊히는 게 아니라 엉켜있는 거구나, 물꼬만 있으면 딸려 나오는 거구나, 라는 생각들을 해요.

 

 

『아무래도 좋을 그림』에서 말씀하시길, 여행기를 즐겨 쓰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기록 때문에 도시에 대한 기억이 지배당하고 왜곡된다는 강박” 때문이라고요.


기록을 해야 된다는 강박이 여행을 부자유스럽게 하는 것 같아요. 대부분 박물관의 티켓이나 브로셔를 일일이 챙겨오잖아요. 그런데 제 경우에는 그런 것들은 6개월만 지나도 추억이 되지 않더라고요. 그렇다 보니까 ‘추억이라고 생각하면서 가져왔는데 추억이 되지 않는 것들에 둘러싸여서 하는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여행기를 써야 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으면 느낀 것도 없는데 느낀 것처럼 써야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 솔직해지지 못하게 되고요. 그러면 무슨 의미가 있나,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꼼꼼하게 여행기를 쓰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블로그와 책을 통해서 들려주는 여행기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건가요?


그 중에서도 ‘이런 건 누군가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있는 거죠. 사실 10년 동안 여행을 다니고 그림을 그린 결과로 이 정도의 이야기가 나온 거고요.

 

책에 담긴 이야기들이 굉장히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고 있는데요. 그 모두를 관통하는 하나의 핵심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크게 한 가지로 말하자면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을 제외한다면, 제가 좋아하는 건축이나 그곳에서 만나는 음식 교통편 다양한 문화들이 결국은 그 지방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거니까요. 하나로 축약하자면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의식주가 될 수도 있겠네요. 건축이나 음식이나 어차피 다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사람을 많이 궁금해 하는 편이에요. 우리가 어떤 곳에 대해 별로였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생각해보면 사람한테 느낀 감정인 경우가 많거든요. 바가지를 썼다거나, 불친절을 경험했다거나, 극단적으로 말하면 인종 차별을 경험했다든가, 결국에는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들이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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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비결은 기차를 놓치는 것


어떤 풍경들을 만나셨을 때 펜을 들게 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좋을 그림』에서는 그 순간을 책을 읽다가 밑줄을 긋는 순간에 비유하셨죠.


제가 한 말은 아니고 박완서 작가님께서 하신 말씀인데요. 작가님께서 어렸을 때 헌책이나 친구들이랑 같이 돌려보는 책을 많이 보셨대요. 그러다 보니까 누군가 밑줄을 친 문장들을 많이 보게 됐는데, 어렸을 때는 ‘고작 이런 문장이 좋다고 밑줄을 그었나, 더 좋은 문장들도 많은데’ 하는 얄팍한 마음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누군가 밑줄을 긋는 건 그 문장이 당시 그 사람이 안고 있던 마음의 결핍에 와 닿았기 때문이지, 문장 자체가 셰익스피어나 피츠제럴드에 버금가는 문장이어서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셨대요. 저 역시도 제가 평소에 궁금해 했던 걸 잘 발라냈다고 느껴지는 문장에 밑줄을 긋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림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이시군요. 


비유하자면 그림도 그런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아무렇지도 않을 풍경 같은데 그려보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러면 한 번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되는 거죠.  사진으로 찍어서 예쁜 장면이 있고, 그림으로 그려서 의미가 있을 것 같은 장면이 있거든요. 그런 게 보이는 순간이 있어요. 그럴 때 스케치를 하게 되죠. 재미있는 건, 그렇게 그리다 보면 내가 중요하게 보는 것과 중요하지 않게 보는 것이 뭔지를 알게 돼요.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어떤 건 그냥 건너뛰고 어떤 건 정말 꼼꼼하게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이번 책을 엮으면서도 발견하셨을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 집중해서 바라보는 대상은 무엇인지요.


눈썰미가 있으신 독자 분들은 느끼셨을 텐데요. 『아무래도 좋을 그림』에는 기차 그림이 굉장히 많이 나와요. 책에는 실리지 않은 기차 그림도 많고요. 저는 열차를 보면 무조건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일단 기차역에서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고요. 그리고 기차가 주는 로망 같은 게 항상 있죠. 어렸을 적에 아빠와 타던 기차를 생각하면서 항상 그리워했다는 느낌 같은 거죠. 그리워하니까 남기고 싶다는 생각도 있는 거고요. 그리고 이건 결핍과도 조금 관련돼 있는 건데요. 우리가 어딘가에 묶여 있고 단속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까 기차를 보면 ‘저걸 타면 어디든 갈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엮여서 기차나 전차를 보면 굉장히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작가님만의 독특한 여행 방법도 눈에 띄었는데요. 일정에 구애 받지 않고 여행한 지 오래 되셨다고요.


일단 기본적으로 일정을 정해놓지 않고요. 여행을 간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우리는 여행 가기 전에 교통편, 숙소, 꼭 가야 할 곳들을 정해놓잖아요. 그런데 저는 숙소조차도 정하지 않고 가는 경우가 더러 있어요. 가보면 다 있거든요(웃음). 너무 많은 정보들을 가지고 가면 경제적인 여행은 될 수 있을 거예요. SNS에 올릴 사진이 남는 여행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한 여행도 될 수 있죠. 그런데 그건 내가 다녀온 게 아니라 나라는 이름의 로봇이 다녀온 거랑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친구들이 여행 비결에 대해서 물어오면 ‘네가 기차를 놓쳤으면 좋겠고,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으면 좋겠고, 굉장히 불친절한 아줌마를 만났으면 좋겠고, 생각지도 못한 메뉴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으실 것 같아요.


나중에 가서는 그게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여행을 가기 전에 일정을 짜고 숙소와 교통편을 예약하면서 설레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돌아온 뒤에도 그곳을 추억할 수 있으면 계속 여행 중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너무 모눈종이처럼 정교하게 여행을 다녀오면 금방 잊어버리게 되더라고요. ‘내가 성실하게 미션을 수행하고 왔어’ 정도의 만족감이 남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스토리텔링을 하려면 특별한 경험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특별한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람이 아니라 일상적인 걸 특별하게 볼 줄 아는 사람이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여행지에서도 특별한 걸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보러 가는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좋을 그림』을 통해서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하나를 꼽자면 이런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은 소박한 삶이라는 건 없고, 소박하다고 하더라도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의 이야기가 풍부해질 수 있다는 거죠.

 

건축을 전공하신 만큼 역사적인 건축물을 보기 위해서 여행을 가시는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는 어떠신가요?


건축물의 역사라든지 도시의 배경 같은 부분도 당연히 중요하죠. 아는 만큼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결국에는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당연히 풍부한 지식이 있는 게 좋고 ‘나는 그걸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합천 해인사에서 영지라는 작은 연못을 보고 느낀 게 있었어요. 그 연못은 물이 굉장히 맑아서 제 모습이 다 비치거든요. 그걸 보면서 ‘연못에 내 모습이 이렇게 비치는구나’라는 걸 느끼는 나의 시각도 있지만, 사실은 그 안에 물이 채워져 있기 때문에 그걸 볼 수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내 생각을 보려면 먼저 생각이 채워져야 된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배경지식에 대해 아는 건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 배경지식을 통해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바라보는 일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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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도장깨기가 아니잖아요


“요즘엔 차라리 꿈이 없는 사람이 더 건강해 보인다”고 하셨어요. “목표나 꿈이란 게 우리 살이에 얼마나 소용이 닿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도 하셨고요. 삶을 대하는 작가님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인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꿈이 있는 삶을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대로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데, 제 방식이 그렇지 않은 거죠. 우리에게는 ‘나이대별로 해야 되는 일들이 있다’는 생각이 있잖아요. 스무 살이면 좋은 대학교에 가야하고, 대학 졸업 후에는 취업을 해야 하고, 서른 즈음이 되면 결혼을 해야 하고요. 그런데 사실 인생이 도장깨기 같은 게 아니라는 거죠. 분명 그에 맞춰서 살아가는 삶도 가치가 있지만, 그런 강박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빨리 어딘가에 도달해야 된다’는 생각 속에서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언제 시작했느냐’보다 ‘언제까지 하고 있느냐’예요. 예를 들면 피카소나 세잔이나 샤갈 같은 사람들을 화가로 기억되는 건, 그들이 그림을 일찍 시작한 신동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다가 죽은 사람들이기 때문이거든요. 저는 좋아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를 보더라도, 연재중인 소설의 189회를 써야 되는 시점에서 원고지에 189라고 쓰고 죽었어요. 그렇게 죽으면 소설가로 죽은 거죠. 물론 제 작품이 세잔이나 소세키처럼 인류사에 엄청난 공헌을 한 건 아니지만(웃음), 저는 언제까지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느 시점에 어떤 걸 이루어야겠다는 꿈이나 목표가 소용이 닿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고요.

 

많은 분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보시면 좋을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과제를 강요하는 목소리들이 넘쳐나는 시대잖아요. 반드시 해야 되는 일들을 설명해주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이야기하죠.


그렇다고 집착을 버려야 한다거나, 그런 교조적인 이야기로 비춰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꿈을 좇을 것이냐 밥을 좇을 것이냐’ 같은 질문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당연히 꿈도 좇고 밥도 좇아야죠. 하나를 포기하고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잖아요.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갈 때 주급이 1억 6천만 원이었어요. 그렇다고 꿈을 포기하고 밥을 좇은 건 아니잖아요. 꿈도 좇고 밥도 좇은 거고, 우리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거죠. 요즘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강요하는 건 ‘너는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그만큼만 받아도 된다’는 식인데, 그건 꿈과 밥을 대척점에 놓고 보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열정페이 같은 것도 생기는 거고요. 그게 아니라 일을 했으면 당연히 돈을 줘야 하는 거잖아요. 좋아하는 일을 했다고 돈을 안 주는 게 어디 있어요.

 

『아무래도 좋을 그림』이라는 책 제목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그림을 잘 그려야 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으면 절대 잘 그리지 못하거든요. 그러면 그림 그리는 게 두려워져요. 제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 중의 하나는, 그림을 그리다 보면 대상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고 대상에 대해서 우리가 잘 몰랐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는 거예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대상도 막상 그리려고 하면 어떻게 그려야 할지 막막하거든요. 사실은 내가 대상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잘 안다고 지레짐작했던 것들이 사실은 잘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는 걸 비로소 깨닫는 거예요. 그걸 깨닫는 데 있어서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굉장히 지엽적인 문제예요. 결국에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려보면 된다는 걸 인정하게 되고요. 『아무래도 좋을 그림』은 그런 의미죠.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려보시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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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좋을 그림정은우 저 | 북로그컴퍼니
특유의 아날로그적 감수성과 날선 통찰력이 돋보이는 글도 매력적이다. 흔한 블로그 여행기가 어디서 뭘 보고 뭘 먹고 어떻게 이동하고 어디서 잤는지 등의 일상 글이라면, 정은우 작가의 글은 신변잡기적 수다를 일체 배제한 채 여행지의 건물 또는 사물의 역사가 가진 모순이라거나, 거기에서 읽어내야 할 의미 등을 뚜렷한 기승전결을 갖춘 한 편의 에세이로 완성시키고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맛보고 수정하고, 보태고 깎아낸 뒤 접시에 담아낸 정갈한 일품요리 같은 맛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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