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파문, 지난 6월 이 역설적 수식이 어울리는 인물이 진보진영에서 작은 화제가 됐다. 신문들은 그에 대해 여러 논평을 냈고, 혹자는 박원순, 손석희 등과 그의 이름을 한 자리에 놓기도 했다. 이른바 ‘대안’으로 조성주라는 이름을 주목하게 만든 것은 바로 정의당 당 대표 출마선언문 덕이었다.
보수양당체제의 협소한 민주주의를 평범한 시민들을 위한 민주주의로 확장한 것은 1세대 진보정치의 정치적 성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루어낸 성과에 안주하고 서로 다투는 사이에 민주주의의 광장은 좁아졌고, 우리가 보호해야 할 시민들은 광장 밖으로 쫓겨나고 있습니다. 2세대 진보정치는 그 광장 밖의 사람들의 삶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현실을 냉정히 진단하고, ‘민주주의 밖의 시민’들을 대변해야 합니다.(214쪽)
조성주는 ‘광장 밖의 사람들’에 주목했다. 2010년, 청년유니온을 설립해 청년 문제를 양지로 끌어올린 그답게 ‘좁아’진 ‘민주주의의 광장’을 가리키며 많은 사람들의 인식을 확장시켰다. 알려진 대로 청년유니온은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왔다. 피자배달 30분 제한을 폐지시켰고, 미용실 인턴 노동자 문제를 지적해 ‘열정 페이’에 대한 문제제기에 앞장섰다.
『청춘 일기』는 그가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으로 일하며 만난 청년들의 솔직한 이야기다. 내밀한 민낯은 따갑고 시렸다. 그러나 그는 절망보다는 희망을 말한다. 세상은 “느리지만 좋아지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절망할 수 있다. 다만 절망만 하지 말자는 것.
“이 시대의 전태일이란 지금 여기 있는 친구들”이다. 작고 미미해 보이지만 분명히 이룬 변화들은 훗날 선명한 역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불안하게 발 딛고 선 땅일지라도 “정직하게 절망하고, 적당하게 희망하”는 태도는 그 자체로 어떤 구원보다 의미가 크다는 생각이다.
지금은 실패가 훈장이 아니라 낙인
제목 먼저 따져볼게요. ‘청춘’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어떤 면에서는 요즘 가장 논쟁적인 단어란 생각도 들거든요. 어느 작가는 그만 징징대라고, 청춘은 누구나 힘들었다고 하던데, 청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요새는 청춘이란 단어가 참 슬픈 단어가 된 것 같아요. 애틋하고요. 심지어 저는 최근에 청춘이란 단어를 탁 떠올리면 비정하다는 느낌까지 들었어요. 옛날에는 ‘청춘예찬’이라는 소리도 했죠. 싱그럽고, 봄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단어였는데요. 이제는 외롭고, 쓸쓸하고, 병 든 것처럼 좀 아픈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것 같아요. 시대가 보여주는 것 같아요. 옛날보다 당연히 훨씬 풍요롭죠. 커피 한 잔도 그렇죠. 단순히 물질적인 부의 차이나 편리성에 있어서는 월등하겠지만 지금 청춘이라고 할 때 아프고, 비정해지고, 쓸쓸해지는 것은 물질적 부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미래. 지금 가난해도 발전할 가능성, 삶의 변화, 개선, 이게 너무 막혀있고 가능성이 너무 좁아졌다는 걸 청춘들이 다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그때부터 남는 건 자학, 자조였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다 가난해도 꿈은 크고, 실패해도 또 도전하고 그랬잖아요. 마치 실패가 훈장처럼 인식됐죠. 지금은 실패가 훈장이 아니라 낙인이 되어버렸어요.
한번만 실패해도 바로 낭떠러지잖아요.
네, 그게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아요.
청춘이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말씀처럼 변화한 시점을 언제로 보고 계세요?
연도로 딱 자르는 것은 어렵겠지만요. 한국 사회에서는 아마도 1997년 IMF 사태가 지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경제, 사회 시스템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고,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를 준 게 아닐까 생각해요. 한일합방 때 그런 걸 느꼈을까요? 나라가 망할 수 있구나, 누구나 노숙인이 될 수 있고, 부모님이나 나도 길거리에 나앉을 수 있구나, 세상이 이럴 수 있는 거구나, 하는 것을 느꼈죠. 그동안 몇 십 년은 성장만 해온 거잖아요. 그게 아니고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걸 사람들이 느꼈을 때 가지는 심리적인 부분을 생각하죠. 그 이후 경쟁이나 생존 본능이 심해졌잖아요. 비난할 수도 없죠. 기점은 1997년, 충격이 본격적으로 특정 세대에게 내면화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중반 시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굉장히 생생한 이야기들입니다. 밖에서는 알 수 없는 얘기들도 많아요. 청년유니온을 통해 만난 청년들의 이야기인데요. 이야기를 들으며 혹은 쓰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모두 그 세대의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나선 조직인 청년유니온에서 일을 하면서 만난 친구들이고요. 가깝고, 깊은 속 얘기를 많이 나눴던 친구들이었는데요. 제일 안타깝고 답답했던 건 이 친구들의 삶이 당장에 개선되지 않을 거라는 걸 서로가 알 때였어요. 나도 이 친구의 삶에 큰 개선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걸 알고요. 결국 다른 방식으로 삶이 변화할 수밖에 없고 당분간은, 적어도 오랜 기간 이 친구가 스스로의 힘으로 버틸 수밖에 없다는 거죠. 같이 하는 동료, 친구가 생기게 되면 그 안에서 좀 보호 받을 수 있고, 안정을 느끼겠지만 어쨌든 결정적인 부분은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단 걸 결국 인정할 때가 제일 답답했죠. 해줄 수 있는 게 없을 때요.
그런 공감이 서로에게 있는 거군요?
네, 서로가요. 어느 순간이 지나면 알게 되죠. 사람이란 존재는 겉으로는 다 밝고, 때론 용기 있는 척해도 누구나 내면의 어떤 아픈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친구들도 결국 그걸 인정하게 되는 과정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미 안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존감 무너지는 경험들이었는데요. 그게 결국은 연대를 막거나 사회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키는, 혹은 그런 사람들을 양산해내는 것 같았어요.
정확하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냉소로 빠질 때 연대가 잘 안 돼요. 냉소에서 혐오로 빠지는 바로 전 단계가 자존감이 무너지는 때예요. 냉소나 혐오가 아니면 지근거리에 대한 공격성으로 나타나는 것들을 많이 봤어요. 청년유니온의 어떤 조합원은 가는 곳마다 임금체불을 경험하고, 계속해서 자존감이 떨어지는 상황에 처하고, 미래는 너무 불투명한 상황에서 청년유니온을 만났어요. 조금씩 다 자기가 잘못한 것이 아니란 걸 깨달으면서 회복하긴 했지만 언젠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청년유니온을 만나지 않았으면 나도 일베가 됐을지 몰라”라고요. 그때 진짜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어요. 한 사회가 병든다는 건 단순히 물질적인 부분만 있는 건 아닐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죠.
그렇다면 청년유니온은 사회나 구조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세요?
감상적으로 얘기하면 용기를 갖게 해준 것 같아요. 당장 내 삶이 크게 변하지 않을 테지만 우리의 힘을 모으면 사회의 불합리한, 우리를 억누르는 어떤 부분을 개선해낼 수 있다는 용기요. 아주 큰 개선은 아닐 수 있거든요. 대단한 법 제도가 바뀐 건 아니지만 어쨌든 싸움에서 이겨본다는 게 무척 중요해요. 그게 크죠. 한 발이라도 가본 사람이 할 수 있거든요. 그런 경험을 갖기 너무 힘든 사회가 됐기 때문에 대부분이 모르는 거죠. 또 작은 성공을 했다 하더라도 사회는 크고 신화적인 성공과 비교해서 별 것 아닌 걸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 소중한 것을 깨닫고 용기를 갖게 되고 자존감을 찾게 된 것, 감상적인 부분에선 이게 컸던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사회적 메시지겠죠. 특정 청년 세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요. 그것은 우리 사회의 근간을 잇는 문제라는 인식이었죠. 이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노동의 일부분을 이 친구들이 이미 담당하고 있는 거라는 인식 말이에요. 사람들은 자꾸 청년들이 밖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미 안에 있는 사람들인 거예요. 우리가 그것을 노동으로 불러주지 않고, 노력으로 불러주지 않았을 뿐이죠. 그걸 인식시키게 했던 게 제일 컸던 게 아닐까 싶어요.
‘노동’이라고 이름 붙여주는 것이 정말 중요했던 것 같아요. 이름을 붙이는 순간 문제가 양지로 올라올 수 있잖아요.
그게 첫 걸음인데, 또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시간제 노동, 아르바이트가 모두 노동이라고 얘기했을 때 기존 노동계에 계신 분들조차 ‘그게 어떻게 노동이냐, 사회 경험이지’라고 하셨거든요. 평생 노동운동을 하신 분들도 말이에요. 그것이 처음 맞닥뜨린 가장 큰 벽이었어요. 우리가 스스로를 호명하지 못하고, 남들이 ‘88만원 세대’니 뭐니 해서 이름 붙여주는 이유를 알게 됐죠. 우리도 노동자다, 우리가 하는 것도 노동입니다, 이걸 처음에 이름 붙이기 시작했죠. 제일 넘기 힘들었던 첫 걸음이었어요.
숨이 막히네요. 기존 노동계의 시선에서조차 벗어나 있었다는 사실이 말이에요.
처음에 저도 정말 숨이 막혔었어요. 그건 무슨 말이냐면 이름을 붙이기 전에는 나의 존재를 개별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거예요. 모든 행위 하나하나를 다 설명해야 하니까 그때는 정말 숨이 많이 막혔던 것 같아요.
“현실이 변화하는 속도가 느린 것은 미치도록 짜증나는 일이지만 변화 자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19쪽)이라고 하셨어요. 세상이 과연 바뀌었느냐,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라고 반론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세상이 나빠지는 속도가 좋아지는 속도보다 빠른 것 같아요. 목도하는 게, 세상이 점점 나빠지는 것들이잖아요. 노동의 질도 계속 나빠지고요. 나빠지는 건 빠른데 좋아지는 건 안 보이니까 상대적으로 세상이 안변하고 나빠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요, 사실은 느리지만 좋아지고 있어요. 사회의 아주 중요한 부분들이 바뀌고 있는 거예요.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안 돼요. 아주 느리지만 굉장히 큰 역사의 변화고 사회의 전진이라는 거죠. 어렵기 때문에 여기에 힘을 많이 쏟아야 해요. 그게 나빠지는 속도를 회복시키는 유일한 힘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해요. 상황에 대한 건 정직하게 비관할 수 있죠. 그러나 변화의 가능성을 기각하는 건 안 돼요. 그 순간 냉소와 허무로 가고, 그건 반드시 정치적 편집증을 낳는다고 생각해요.
정치적 편집증이요?
일베 같은 거죠. 극단적인 형태로요. 좌든 우든 마찬가지예요. 저는 좌의 정치적 편집증을 개인적으로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더 비판하는데요. 그쪽에 날을 많이 세우기도 하고요. 어쨌든 양 극단의 정치적 편집증은 너무 위험하죠.
『디 마이너스』손아람 작가가 <한겨레> 인터뷰에서 멋진 말을 했더라고요. 정치나 운동이나 가장 심각한 것은 무관심과 냉소와 싸우는 것이라고요. 진보나 보수와 싸우는 것보다 그것과 싸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 말이 정말 많이 와 닿았어요.
세상이 나빠지고만 있다고 생각하다가 ‘아, 그런 게 있었지’하게 된 일들이 있어요. 청년유니온에서 일궈낸 성과들, 가령 피자 배달 30분 제한 폐지나 미용실 스태프 노동 문제 등을 다시 떠올리면 분명 좋아진 것들이 있는 거였어요. 분명히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 역시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은 성공들을 많이 부각시키는 게 중요해요. 그게 모여서 사람들에게 용기가 되고, 그것들이 쌓여서 결국은 큰 성공이 되는 거죠. 이론적으로는 정치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는데요. 한 번에 큰 변화, 큰 한 방에 대한 경향이 심한 것 같아요.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아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나 민주주의는 느린 변화만을 허용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느리지만 확실한 변화죠. 우리는 민주주의 역사가 워낙 짧고 민주화 과정에서 한 방에 변화한 경험들이 크다보니 그런 면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역설적으로 다이나믹 코리아를 만드는지 모르겠지만요.(웃음) 느리지만 지속되는 변화가 있죠.
저희가 했던 것 중에 커피 전문점 주휴수당 지급 문제가 있었거든요. 1958년 근로기준법이 만들어질 때 있었던 주휴수당을 커피 전문점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 지금은 거의 다 주거든요. 그걸 금액으로 따지면 전체 월급의 16%예요. 작은 게 아니죠. 아무리 센 노동조합도 16% 임금인상 한 번에 못 해내잖아요. 우리는 그걸 한 거예요.(웃음) 어떻게 보면 우리 삶과 가까이 있어서 안 느껴질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역설적이죠.
참여의 비용을 치르지 않으면 변화는 오지 않아
정치인을 무조건 욕하거나 특정 정치인을 무조건 지지하는 것은 둘 다‘구원’을 바라는 마음의 연장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영웅이 모든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준다, 는 상상은 문제를 쉽게 해결하려는 게으름의 반증이기도 한 것 같고요. 여기에 ‘구원은 없다’고 하셨죠.
정치에 대한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바라보는 정치는 그렇습니다. 메시아를 바라는 순간 비참해진다고 생각해요. 그의 구원을 기다리는 비참한 존재들이 되어버리죠. 정치는 그렇지 않거든요. 민주주의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기초 아래, 때로 최선이 나오지 않더라도, 변화의 넓이가 대단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모은 힘으로 바꾸는 거예요. 그 안에서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지 않고 메시아가 세상을 바꿔준다? 있을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아요. 참여의 비용을 치르지 않으면 변화는 오지 않죠.
반대로 정치인들도 바뀌어야죠. 자기가 메시아, 구원자처럼 굴면 안 돼요. 그러는 순간 내면에서 동정과 시혜의 시선으로 사회의 약자를 바라보게 되니까요. 평등한 존재가 돼서 때로는 싸우더라도 그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웅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언제나 완벽하지 않죠. 그렇다면 그가 무슨 얘기를 하느냐, 어떤 정책을 내놓느냐를 봐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안 그랬던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등장하면 그가 세상을 바꿔줄 것처럼 여기죠. 이런 것들이 사회적인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한국 정치의 비극인 것 같아요. 민주주의는 결사의 자유에 기초해요. 다양한 결사체를 만들 수 있죠. 나의 권리를 위해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면, 수만 조직할 수 있다면 이것이 이 사회에 의미 있는 목소리가 될 수 있는 거잖아요. 계급이 아니라, 수만 조직할 수 있다면요. 그런 조직, 정당에 기초하지 않고 의인화된 정치인에만 기대면 그 순간 강력한 팬심(웃음) 같은 것만 남죠. 그건 순식간에 다른 집단에 대한 증오로 돌변할 수도 있고요. 그렇게 해서 사회가 좋아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국회에서 보좌관 생활을 그만두고 청년유니온을 하면서 오히려 정치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국회에 있을 땐 정치를 몰랐던 거예요. 법안을 만들면서도 정작 정치의 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공학적으로만 생각했죠. 진보정당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청년유니온을 하면서 정치의 본질이 뭘까 생각했어요. 우리 같은 존재들한테 정치인들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를 진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거예요. 왜 이 목소리들은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가, 왜 이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될 때는 팬으로만 돌변해서 참여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정작 겪고 있는 사회적 문제 그 자체로는 왜 목소리가 되지 못하지? 이게 청년유니온을 마치고 정치로 넘어오면서 가졌던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책 뒷부분에 실린 당 대표 출마 선언문에서 좁아진 광장, 민주주의 밖의 시민을 가리킨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그것이 많은 청년들의 그와 같은 질문을 건드린 것 같기도 해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때 세운 몇 가지 원칙이 있어요. 먼저 거짓말 하지 말자,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얘기하지 말자는 거였죠. 또 정치 언어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왜 한국에는 정치인의 글이 아름답지 못하고 센 언어, 공격적이고 조롱하는 언어만 존재할까 생각했죠. 그렇다면 이 존재들, 우리가 만난 사람들을 어떻게 표현할지가 아주 오래된 고민이었어요. 비정규직이라는 표현은 너무 일면적이죠. 노동문제를 다룰 때는 쓸 수 있겠지만 그게 모든 정체성을 담아주진 않잖아요. 그때 광장 밖으로 추방된 사람들을 처음 생각했고, 그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면 청년 세대만이 아니라 다양한 존재들을 같이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순간 연대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죠. 언어라는 건 상상력을 넓혀주잖아요. 그게 말의 힘이고 글의 힘이라고 생각하고, 정치는 말과 글로 싸우는 거라고 생각해요. 주먹으로 싸우지 않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치의 말과 글이 나빠진다는 건 곧 상상력이 부족해진다는 것이고 그만큼 사회와 유리된다고 생각해요.
소외당한 목소리들이 다시 광장에 들어서도록 하려면 가장 먼저 무엇이 준비되어야 할까요?
너무 많아요. 그만큼 우리 사회 곳곳이 무너졌다는 얘기겠죠. 요즘 많이 주력하고 있는 건 실업안전망인 것 같아요. 모두 당장 정규직이 될 수 없고, 고용시스템이 당장 바뀔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가운데 개혁해 나가야 하지만요. 당장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도 그렇고, 일을 하고 있어도 일상적으로 실업의 공포에 사람들이 놓여 있잖아요. 이직도 많고요. 그 이직이 비자발적인 경우도 많아요. 사람들이 이런 불안과 공포 속에 계속 있는 거잖아요. 그걸 일단 줄여주는 게 첫 번째가 실업안전망이라고 생각해요.
당분간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다음을 준비할 시간을 국가가 준다면 불안, 분노도 훨씬 줄어들고 더 건강한 직업 선택도 가능하겠죠.
선택의 기회가 생기죠. 어떤 분들은 왜 멋진 출마 선언문을 써놓고 그렇게 작은 정책 의제를 던지느냐고 하세요. 저는 ‘이게 작아 보이느냐, 그게 우리 존재가 서 있는 곳이다, 당신과 우리의 차이다’라고 했어요. 정년이 보장된 직장을 다니는 사람에게 실업이란 회사가 망하거나 퇴직하는 경우뿐이겠지만 이곳에서 실업은 일상화된 것, 당장 내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요. 진짜 속상했었어요. 이 의제가 작은 건가, 싶어서요.
그러나 밤 10시에 수업이 끝나게 되면서 강사들이 집에 가기 시작했다. (중략)술자리가 있어도 자연스레 12시를 넘기지 않게 되면서 학원 강사들의 건강은 날이 갈수록 좋아져갔고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정작 진보교육감의 밤 10시 이후 학원 수업 금지 정책의 최대 피해자는 학원버스 운전사들이었다. 밤 10시에 학원 수업이 끝나면서 학생들이 추가로 돈을 내고 학원버스를 탈 필요 없이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128쪽)
‘구조’ 안에서 문제는 한 가지만 바꾼다고 해결되진 않잖아요. 가령 학원 수업 10시 제한의 엄청난 나비효과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크게 다가오죠. 이것이 정책 수립이나 제안의 어려움일 텐데요. 언제나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고, 부수적 피해를 필연적으로 발생시켜요.
그런 것들이 제게도 좋은 경험이었어요. 이 입장에 서서 얘기하지만 이것도 일면적일 수 있는 거구나, 생각했죠. 세상에는 여러 존재들이 여러 상황에 연쇄적으로 있기 때문에 말이에요. 어떤 것을 추진하면 늘 부수적 피해자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부수적 피해자가 약자일 수도, 강자일 수도 있고, 여러 문제가 발생하죠.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용기 있는 타협이 중요하다, 생각해요. 원래 원하던 것을 100% 밀어붙일 것인가? 그렇게 될 수는 없어요. 내가 추구하는 것은 있지만 이것은 상대나 나, 누구 하나가 죽어야 하는 싸움이 아니기 때문에요. 정치가 싸움의 성격이 있긴 하지만 상대를 죽이는 싸움이라기보다 스포츠에 가깝죠. 룰 안에서 더 나은 대안을 선택하고, 다른 좋은 대안이 나오면 그걸 또 선택할 수 있어요. 결국 용기 있는 타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타협하고 다음을 잘 준비하는 게 중요해요.
투사가 되라는 게 아니야
우리 일상이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하셨죠. 정치에 대한 오해가 워낙 넓고 깊기도 한데요. 일상을 정치적으로 산다는 것, 어떤 것인가요?
특별한 의미를 담은 건 아니고요. 정치를 정치인들만 하는 특별한 영역으로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정치 엘리트는 필요해요. 모두가 정치인이 될 순 없잖아요. 우리는 일상의 삶을 살아야 하니까요. 누구나 정치인이 된다면 오히려 돈 많고 시간 있는 사람들이 좌지우지하게 되겠죠. 그래서 엘리트주의는 반대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을 대표하는 정치 엘리트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말은 사람들은 평범하게 자기 일상만 살고 어떤 사람에게 모든 걸 위임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연결되어 있어야 해요. 일상이 정치적이라는 건 결국 아주 고전적으로 조직으로밖에 가능할 수 없다는 거예요. 공동체를 통해 일상이 정치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두려워하지 말자고요. 노동조합에 가입하라는 건 투사가 되라는 게 아닙니다.(웃음) 내가 경험하고 살아가는 세계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많은 지혜를 얻을 수 있어요.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정치가 일상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건 우리 일상도 정치의 영역으로 올라간다는 의미 같아요. 더 나은 시민이 되고자 하는 거죠. 그 길을 기존 정치가 막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을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어줘야 하고, 호명해줘야 해요. 정치를 혐오하면 안 된다, 그러면 좋아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웃음)는 거죠.
각 일기 앞에 전태일의 글을 인용했어요. 특별한 의도가 있었을 것 같아요.
연재 당시는 청년유니온을 할 때였어요. 우리를 어떻게 호명해야 할지가 제일 어렵고 가장 중요한 문제였어요. 노동계에서도 너희가 하는 건 노동이 아니라고 얘기하니 고민을 많이 했죠.
노동운동에서 전태일이라는 이름은 상징이잖아요. 『전태일 평전』을 전에도 여러 번 읽었지만 문득 다시 읽으니까 또 달랐어요. 생각해보면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게 스물세 살이에요. 40~50대의 노련하고, 산전수전 다 겪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거예요. 바로 이 옆에 있는 청년유니온 조합원 보다 더 어렸던 거죠.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어쩌면 우리조차 다르게 전유해온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됐어요. 『전태일 평전』을 다시 읽으면서 굉장히 많은 영감들을 얻었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때 전태일 열사가 하던 일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죠. 오히려 책을 보면 그 당시 스물세 살 청년이 가진 허세와 이상이 있거든요. 이런 면은 그동안은 별로 조명되지 않았던 건데요. 그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죠. 이 시대의 전태일이란 지금 여기 있는 친구들이란 걸 느꼈어요. 그렇게 연결 짓고 싶었어요.
『청춘일기』를 누가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요?
당연히 지금 젊은 친구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이제 막 사회에 발 딛는 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해요. 책이 좀 우울해서 미안하기도 한데요.(웃음) 경험할 얘기들, 피할 수 없는 얘기들이기 때문에 읽어주길 바라요.
책으로 계속 만날 계획도 있으신가요?
욕심은 있어요. 글에 대한, 책에 대한 욕심은 있는데 어떤 책을 쓸까에 대한 고민이 많이 돼요. 계속 글을 좋은 글을 쓰고 싶고, 그렇게 독자와 만나고 싶은 욕심이 가득 있습니다.(웃음)
청춘일기조성주 저 | 꽃핀자리
진보정치 2세대 조성주의 청춘르포, 『청춘일기』가 출간되었다. 고시원 방세를 마련하기 위해 바닷가 피서객들을 상대로 한 철 장사를 하는 ‘들치기’ 알바생, 가계부까지 써가며 투잡을 뛰는데도 좀처럼 적자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해 울상 짓는 대학생, 인간 컨베이어 벨트가 되어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마치 그랜드캐니언을 드는 것처럼 혹독한 무게의 짐을 밤새 나르는 일당벌이 청년 등 이 책에는 조성주가 만난 우리 시대 청춘들의 ‘쌩얼’이 아플 만큼 생생하게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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