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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 기자 “경제도 다양한 2등이 존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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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을 승리로 이끈 이 문구는 20년이 훌쩍 넘은 시간동안 거의 빛을 잃지 않은 듯 유효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경제는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는 가장 확실한 지표 중 하나가 아닌가. 그런 경제가 지금 뜨거운 용암처럼 들끓고 있고, 이는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세계 경제는 계속해서 위기의 신호로 깜박이고, 경제적 요인들은 세계 열강 구도를 바꾸기까지 하는 중이다. 

 

각종 경제 지표들이 하나같이 우울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지금, 경제학 박사기도 한 박종훈 KBS 경제부 기자는 한국 경제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9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재벌 우선주의가 경제에 치명적인 이유’, ‘사기극을 닮은 부동산 부양책’, ‘청년을 버린 나라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등 쉬운 언어로 세계 각국의 경제 정책들과 사례를 인용해 문제를 꼼꼼하게 짚었다. 무엇보다 그는 “우리 경제의 10년~20년 뒤 동력이 될 아동과 청년, 미래세대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청년 정책은 사람이 거의 유일한 자원인 한국에서 그 자원에 투자하는 가장 합리적인 정책이라는 것이다.


최저임금 6,030원, 청년층 체감 실업률 22.4%(한국경제연구원 9월 발표), 절반에 달하는 노인빈곤율 등 한국 경제는 깊은 수렁에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있다.’ 박종훈 기자가 말하는 희망에 귀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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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상태


무엇보다 ‘임계상태’라는 단어에 집중하게 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국내 사정을 보면 거의 대부분의 분야, 아니 거의 모든 분야가 임계상태에 가까워지지 않았나 생각하게 돼요.


박사학위 받을 때 전공이 진화경제학인데요. 복잡경제학과 직접적 관계가 있어요. 이쪽의 경제학에서 굉장히 관심 많은 게 임계상태예요. 정통 주류 경제학에서는 사실 크게 관심이 없어요. 경제가 균형에서 벗어나 있어도 돌아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임계상태 자체를 연구할 필요가 없죠. 그러나 역사에서 경험했지만 임계상태에서 아주 작은 변화만으로도 변하는 게 정말 많거든요. 대표적인 예로 든 것이 베를린 장벽 붕괴잖아요. 동독 서기장이었던 귄터 샤보브스키(Gnter Schabowski)라는 사람의 한 마디로 그렇게 됐죠. 기자회견에서 ‘베를린 장벽 언제부터 개방하나?’ 물었더니 이 사람이 너무 피곤하고, 짜증나니까 ‘당장’이라고 아주 작게 말했거든요. 이탈리아 기자가 현장에 있다 그걸 잘못 이해하고 오보를 냈죠. 평상시였다면 수많은 오보들의 하나로 우습게 지나갔을 거예요. 문제는 당시 동독 상황이 임계상태, 즉 언제든 아주 작은 충격만으로도 무너질 상태였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죠.


임계상태를 쉽게 말하면 물이 끓기 직전의 상태, 어떤 물성이 변하기 직전 상태예요. 그런 상태에서 거대한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거예요.

 

한국 경제를 예로 들어 설명해 주신다면 어떨까요?


끊임없이 양적완화를 하고, 금리를 낮추고, 빚더미로 경제 위기를 막는 일을 해왔어요. 끝없이 반복하니까 이제는 더 이상의 정책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된 거예요. 쓸 만한 것을 다 쓴 거죠. 이걸 엔드게임(endgame) 상태라고 얘기해요. 체스 게임에서 말을 다 잡아서 움직일 수 있는 말이 거의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요. 이제는 경제에서도 가끔 사용해요. 지금 엔드게임이라 할 수 있는 게 모든 정책을 다 썼는데 경제가 안 살아나요. 그렇다면 이제 작은 충격에도 무너질 수 있는 상태가 된 거죠.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래요. 거의 모든 정책을 다 썼거든요. 남은 정책이라고는 금리를 조금 더 낮추는 정도일 텐데, 이런 상태에서는 지금 혹시 다시 경제에 문제가 생긴다면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이 거의 없어요. 상당히 위험한 상태라고 할 수 있죠.

 

대안이 될 만한 제안들을 책에 내놓으면서 이것이 ‘백신’, ‘예방주사’지 치료책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경기 부양책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고 필요할 때가 있지만요. 반복적으로 사용하다보면 마약처럼 돼요. 경기가 일시적으로 나빠졌을 때 부양책으로 경기를 살리는 건 괜찮지만 구조적으로 경제가 굉장히 안 좋은 상탠데 여기에 끊임없이 경기 부양책을 쓰면 딱 마약처럼 아주 위험하거든요. 언제든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는 예방주사, 백신을 놓아야 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종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거예요. 1등만 중요한 게 아니라 다양한 2등이 경제 내에 존재해야만 경제가 위기에 강해지고 어떤 위험이 닥쳐도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 돼요. 우리 경제는 1등에게 몰아주는 정책을 쓰고 있잖아요.

 

여러 2등을 키우는 방법들에는 뭐가 있을까요?


첫 번째가 사회안전망 확보라 할 수 있겠죠. 한 번 낙오 돼서 다시는 극복하지 못하는 상태라면 2등은 다 죽어요. 그렇게 1등만 살아남은 경제는 1등 자체가 죽어버리면 핀란드에서 노키아가 무너졌을 때처럼 나라 경제 전체가 무너지게 돼요. 1등만 키우는 정책이 얼마나 위험한 정책인지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요. 두 번째는 패자부활전이에요. 미국 같은 경제 강국들의 가장 큰 특징이 재기가 쉽다는 것이거든요. 패자부활전을 통해 끊임없이 재도전이 가능하니까 종의 다양성이 유지되고 건강한 생태계가 되는 거예요. 세 번째가 공정한 분배인데요. 이건 똑같이 나누자, 이런 것과 전혀 관계가 없어요.(웃음)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 만큼 자기 몫을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최선을 다할 것 아니에요? 지금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해도 보답 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요. 1등은 노력한 이상을 가져가는데 말이죠. 그러니까 중견기업, 중소기업이 도태되고, 대기업만 살아남는 구조가 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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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자원은 사람


실업부조, 아동수당, 공공보육, 공공주거 등을 미래 세대에 투자 하는 정책들로 명명했어요. 사실 이것들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이미 선진국 등에서 실행되고 있는 정책들이지요. 각종 지표가 긍정적인 방향을 가리키기도 했고요. 이런 정책들을 우리는 그저 좌편향 되었다, 는 식으로 정치적인 구분만 할 뿐이에요. 답답함은 없으신가요?


우리가 잊고 있는 게 뭐냐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 사람이라는 점이죠. 사람이 중요한 나라에서 사람에 투자하는 게 정치 문제가 돼버리는 것, 너무 저는 안타까워요. 지하자원도 없고, 그렇다고 금융 강국이라 엄청난 자본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사람밖에 없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청년이 21세기에 가장 강력하고, 소중하고, 희소한 자원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청년을 자원으로 본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독일은 자국 청년들에게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고, 그 청년들이 결국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마이스터가 돼서 기업에도 보답을 하고 있죠. 그들에게 투자한 기업, 국가 전체에 보답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청년에게 투자하는 것을 자꾸만 정치 프레임으로만 접근해요. 이건 앞으로 백 년 안에 국가가 생존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기 때문에 더 이상 정치문제로 보지 말았으면 해요.

 

최근 청년희망펀드가 이슈죠. 재벌들에게 펀드 기금을 기부하라고 하고 있는데, 사실 그 재벌들이야말로 청년 고용이나 노동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주체들이에요. 기금을 따로 만들 필요 없이 기업이 바로 행동으로 옮기면 된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잖아요.


청년희망펀드는 이렇게 평가하고 싶어요. 우리나라처럼 청년의 가치에 대해서 망각하고 있던 나라가 그나마 청년희망펀드라도 한다니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지만 청년희망펀드는 구조적 접근이 아니에요. 구조 개선이 아니라 일종의 보여주기 식이 되어버릴 수 있는 거죠. 일시적인 정책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정책으로 정말 청년들을 발굴하는 구조적인 접근은 불가능해요. 한계가 너무 명확한 거예요. 구조적인 모순이 해결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찌 보면 회피하는 길이 될 수 있어요.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제도 설계라고 하죠. 매커니즘 디자인, 인간 심리에 기초한 행동경제학을 기반으로 해서 청년들이 정말 자신감을 되찾고 다시 떳떳한 경제 주체로 활약할 수 있는 경제적 시스템, 제도를 설계해서 만들어내야 하는 거예요. 그걸 회피해선 안 돼요. 청년희망펀드 같은 것으로 면죄부를 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시스템을 만들지 못하는 이상은 말이죠.
 
일본의 사례를 많이 다루셨어요. 보면 일본의 과거도 그렇지만 마쿠도 난민, 사토리 세대 등 일본의 현재가 우리에게 시사점을 주는 부분이 무척 많은 것 같아요.


89년부터 일본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하니까 얼마나 일본을 놀렸는지 몰라요.(웃음) 선진국도 그렇고, 우리도 그랬죠. 『일본은 없다』이런 책도 유행하고요. 일본은 사실 같은 방식으로 먼저 무너진 나라가 없어요. 즉, 청년 인구가 감소해서 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일본보다 먼저 경험한 나라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예측하지 못한 충격을 받은 거죠. 25년 정도 흐르고 난 지금, 우리 경제 구조도 같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어요. 우리에게는 일본 사례가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일본이 무너지는 방식을 봤잖아요. 어떻게 청년을 잃었고, 청년을 버린 나라가 어떻게 경제가 무너져서 지금까지 25년에 걸친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지를 봤어요. 일본이 그렇게 고통 받는 걸 보면서도 똑같은 길로 가서 똑같이 무너진다면 그건 정말 바보 같은 거예요. 그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해요. 같은 실수를 한다면 이제 변명의 여지도 없어요. 우리에게는 일본뿐 아니라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 같은 방식으로 무너진 사례들이 있으니까요. 청년 자원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기 때문에 무너진 나라들을 보면서 우리는 정확하게 원인 분석도 못하고 있는데, 진짜 중요한 건 바로 청년 문제예요.

 

그런데 우리는 이른바 ‘골든타임’을 헛되게 보내고 있다고도 하셨죠.


일본에 아무 노력이 없었던 게 아니에요. 출산율이 1.57로 떨어졌을 때 그걸 ‘157쇼크’라고 부르면서 노력을 했어요. 그런데 돈을 투자하지 않고 캠페인을 했죠.(웃음) 신엔젤플랜, 그래서 주로 언론사에 돈을 줬어요. 광고비용으로 쓰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을 안 내놨거든요.


출산율 제고 정책은 단순히 돈만 줘서 되는 게 아니에요. 지금은 모든 걸 현금으로 해결하려고 해요. 당장 가시적인 효과를 낼 수 있고, 인기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진짜 애를 낳게 하는 정책은 역시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해요. 제도 설계가 참 중요해요. 아이를 낳으면 프랑스처럼 국가가 키워준다는 정도가 돼야 출산율 제고가 되는 거지, 한 20~25만 원 줬다고 해서 애를 낳는 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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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이 더 거센 도전을 하느냐


무엇보다 재벌문제에 대해서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앞서 종의 다양성을 말하기도 하셨고요. 1970년 기업하기 혹독했던 환경에서 지금의 재벌들이 성공한 것이라는 진단 등이 눈에 띕니다. 결국 지금 재벌은 오히려 ‘적’자본주의의 모습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해요.


흔히 아담 스미스에 대해 오해하는 게 ‘보이지 않는 손’이라 하니까 시장만 강조했다고 생각해요. 당시 경제 상황은 대상공인, 대재벌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왕권과 결탁해 있었던 상황이에요. 그러니 뛰어난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신규 창업이 이뤄지면 왕권과 결탁한 대재벌이 권력을 이용해 신규 기업 성장을 저해시켰거든요. 아담 스미스가 그걸 보니 너무 답답한 거예요. 영국이 경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왕권과의 결탁이 깨져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시장에 맡기라고 한 거거든요. 세월이 흐르니까 그런 역사적 배경은 다 사라지고 시장만 남았어요. 그런 면에서 정말 답답하죠.


현재 재벌을 지원하는 다양한 정책들이 있죠. 대표적인 게 삼성 법인세 실효세율이 중소기업의 그것보다 낮은 거예요. 같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 낮아요. 그렇게 재벌을 밀어주면서 ‘재벌을 키워야 한다’고 말하죠. 그런데 재벌이 더 거센 도전을 하느냐 되묻고 싶어요. 지금 재벌 2세, 3세들은 커피 전문점을 한다든가 빵 가게를 하는 식이에요. 도전은커녕 영세 자영업자들과 경합을 하고 있어요. 재벌하기 편한 환경은 오히려 온실을 만들어요. 온실에서 누가 박차고 나가 바이킹처럼 세계 바다를 제패하겠어요. 재벌이 소중한 만큼 적절한 텐션은 필요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히 하는 착각이 ‘기업하기 편한 나라를 만들어야 국가 경제가 더 발전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중략)하지만 이는 마치 자녀를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우면서 아이를 망치는 부모와 같다.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경쟁 시대에 기업들이 너무 편하게 장사할 수 있도록 하면 더욱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작은 환경 변화에도 무너질 만큼 나약해진다. (270쪽)

 

그럼에도 여전히 ‘낙수효과’ 같은 말로 친 재벌정책이 계속되고 있어요.


낙수효과는 가난한 나라,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는 일시적으로 적용이 돼요. 초기 단계에는 사회간접자본(SOC)이 없으니 이때는 저축이 더 중요하거든요. 우리나라처럼 자본 시장이 고도화된, 경제발전이 고도화 된 나라에서는 낙수효과는 일어나지 않아요. 소비가 훨씬 중요하니까요. 외환위기 처음 터졌을 때 이런 위기에도 젊은이들의 소비가 줄지 않는다는 리포트들이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소비의 중요성을 몰랐던 거예요. 외환위기 같은 상황에서 젊은이들조차, 돈 있는 사람조차 소비하지 않는다면 경제는 진짜 마비되는 거였어요. 하지만 그때는 이런 의견이 설득되지 않았죠. 사실 우리 경제는 1998년 외환위기 때부터도 소비가 중요한 단계였어요. 이 단계로 접어들면 소비가 견인차가 돼야 하고, 낙수효과보다 분수효과가 중요한 세상이 되는 거죠. 중산층들이 소비를 하고 이를 통해 기업도 더 잘 살게 되는 식으로요.


헨리 포드(Henry Ford)를 강조했는데요. 1914년 컨베이어 벨트 설치를 완료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노동자 임금을 두 배로 높인 거예요. 자기가 생산하는 자동차를 이 노동자조차 사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죠.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는 것은 자선이 아니라 가장 이윤을 많이 내는 비즈니스”라고 포드가 말을 하거든요. 우리나라처럼 이미 개도국을 벗어나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나라에서 낙수효과를 적용하려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에요. 세상은 변해가고 있는데 정부의 눈은 계속 과거에만 향해 있는 거죠.

 

‘한강의 기적’이라고 할 만큼 한국 경제가 무척 빠르게 성장했잖아요. 혹시 경제 성숙 기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에, 아직도 개발도상국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정책 결정권자들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제자리걸음인 걸까요?


그건 저도 생각 못했는데 좋은 지적이신데요.(웃음) 선진국들은 길게, 100년 가까이 발전해왔기 때문에 변화에 적응할 시간이 있었다면 우리는 빨라봐야 1970년부터 발전했다고 본다면 50년도 안 됐으니 그 경험을 하신 분들이 지금도 과거의 방식으로 성장하려고 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놀랍습니다.(웃음) 강력하게 동의합니다.

 

제대로 된 진단, 그 진단을 바탕으로 한 제대로 된 경제 정책의 부재가 그 긴급성에 비해 너무 미흡한 상황이란 생각이 거듭 드네요.


청년 정책을 제대로 쓰지 않는 건 전형적인 님티(NIMTE, Not In My Terms)라고 생각해요. ‘내 임기만 아니면 돼’라는 전형적인 생각이죠. 예를 들어 건설경기 부양책을 쓰면 임기 내 1~2년 안에 성과가 나오니까 자꾸 돈을 거기에 쓰고자 하는 거죠. 그런 정책들은 일시적인 효과밖에 없어요. 그에 비해 청년 정책, 국가 미래의 기둥을 세울 정책들은 슬프게도 최소한 5년, 10년은 지나야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임기 내에 결과를 볼 수 없는 거죠. 너무 안타까워요.


주택 정책만 해도 그래요. 당장 내 임기 때 주택 가격을 올리는 정책은 굉장히 많이 있었는데요. 저 역시도 주택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무척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동산 정책 자체를 잘못됐다고 말하기는 힘들죠. 그럼에도 10년~20년 뒤 집값을 올리는 정책은 청년들이 돈을 모아 그 집을 살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지금의 정책은 당장 집값을 지탱하는 정책일 뿐이죠. 요즘 서울에 있는 집을 중위 소득자가 사는 데 최소 40년 이상 걸린다잖아요. 지금 같은 경우는 내일의 집값은 올릴 수 있어도 10년 뒤의 집값은 폭락시키는 정책인 거죠. 이런 식으로 근시안적인 정책만 나오고 있으니 많이 답답한 거예요.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 교수의 『위대한 탈출』의 국내 번역책 오역 문제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앵거스 디턴은 국내 번역서에 대해 전량 회수를 요구하기도 했고요. 정치, 경제 영역에서 이 ‘오해’를 다분히 의도적으로 크게 홍보하기도 했지요. 이런 일련의 촌극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도 매우 관심을 가졌던 사안인데요. 아무래도 경쟁 책(웃음)인 관계로 좀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대가 이미 바뀌었는데 우리의 시각이 얼마나 과거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돼요. 이렇게 경제 생태계가 세계적으로 급변하면서 석학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각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데 과거에 얽매인 색안경으로 지금의 세상을 바라보다가는 마치 과거에 멸종한 공룡처럼 시대에 도태되어 퇴보의 단계로 들어서지 않을까 걱정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최저임금이 1달러 늘어나면 근로자 가구의 분기당 소비 지출이 800달러 증가한다는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의 경제학자들의 연구 결과 같은 것들은 꽤 의미 있는데요. 이런 대목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언론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언론인으로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해요.


그래서 책의 제목이 ‘대담한 경제’가 된 건데요. 세계 언론들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주는 좋은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보도가 절반씩 나오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부작용만 보도되고 있어요. 이렇게 천편일률적으로 모두 같은 방향으로 뛰는 상황, 전 세계 언론과 우리 언론이 굉장히 다른 거죠.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같은 경우, 시카고는 신자유주의의 본산이죠.(웃음) 거기 있는 학자들조차 그런 연구를 내놨고, 미국에 있는 650만 경제학자들이 백악관으로 탄원서를 냈어요. 적절하게 최저임금을 올리면 경제활성화에 큰 도움이 된다고요. 거기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5명이나 포함돼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보도들은 우리 언론에 솔직히 잘 나오지 않아요. 사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요. 이런 중요한 연구결과들이 잘 보도되지 않는 이런 상황에서 다른 얘기를 전하는 데 ‘대담함’이 필요했어요. 저는 원래 굉장히 소심하거든요.(웃음) 소심한데 모든 언론이 하지 않는 얘기를 하려니까 제목을 ‘대담한 경제’라 붙이고 제 스스로 매일 대담해져야겠다고 되뇌는 거죠. 계속 채찍질하고, 다짐해요. 어려웠어요. 저도 쉽지 않았어요.


안타깝죠. 다른 나라 언론들이 보도하는 만큼이라도 비슷한 비율로 보도를 했으면 좋겠어요. 아쉬움이 좀 있죠.

 

언론이 대중에게 끼치는 엄청난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책무를 더 무겁게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죠. 대표적으로 청년 이슈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청년실업률이 높은 게 청년의 눈이 높아서라는 진단이 있었잖아요. 최근 3년 간 저도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요. 9시 뉴스 통해서도 계속 내보내고, 칼럼을 통해서도 많이 말을 했죠. 청년들을 전적으로 비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요. 그렇잖아요. 청년이 아무도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면 시장 원리에 의해 청년이 노동력을 기꺼이 공급할 만큼 임금이 올라야죠. 그게 우리가 배운 시장 논리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3D업종에 최저임금을 주고 있단 말이에요. 대표적인 예로 호주를 들었죠. 호주 광부들은 평균 연봉이 1억2천만 원이에요. 호주 청년들은 광부를 기피하지 않아요. 충분히 대우를 받고, 직장이 안정적이라면 3D업종이라고 해서 우리 청년들이 꺼릴 리 없다고 생각해요. 나약한 청년들이라며 모든 문제를 청년들에게 뒤집어씌워 왔는데 그걸 뒤집는 데 걸린 시간이 3년 정도인 것 같아요.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개인적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웃음) 이제는 그런 진단이 많이 줄어든 것 같고, 이런 변화들을 볼 때 저도 굉장히 기뻤습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 빚 관리


경제정책, 기업, 부동산, 복지, 청년 등 모두 아홉 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중 가장 개선이 시급한 주제를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경중을 가리기는 힘든데요. 가장 중요한 문제와는 또 다르지만 시급한 문제는 빚을 관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빚더미는 정말 무서운 거거든요. 아까도 말했지만 경기부양책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에요. 그러나 경기가 둔화됐을 때 끊임없이 경기부양책을 쓰면 옐로스톤과 똑같은 문제가 생겨요. 옐로스톤에 화재가 날 때마다 인위적으로 불을 껐더니 옐로스톤 내에 불에 타기 쉬운 수종으로 나무들이 바뀌어버렸어요. 보통 수준의 벼락이 내리쳤는데 공원 3분의 1을 태울 만큼 대재앙이 일어났거든요.


빚을 점점 축소시켜 나가야 하는데 너무 슬프게도 빚을 급속도로 키워왔어요. 빚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건 당연한 거예요. 경제규모가 커지면 빚은 항상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게 돼 있어요. 문제는 빚이 증가하는 속도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거예요. 증가 속도가 이렇게 빠르다면 언젠가 문제가 생기거든요. 시급한 문제는 빚을 통제하는 거예요.

 

가장 중요한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미래에 투자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경제의 10년~20년 뒤 동력이 될 아동과 청년, 미래세대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예요.

 

개별 사안보다 구조적인 부분을 계속 짚으시는데요. 아이슬란드와 그리스의 사례를 보면 국가 정책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바뀌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너무 쉽게 정부 탓만 해요. 국민들은 무력하고, 할 수 있는 게 없다고요. 큰 착각인 것이,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렇지가 않았어요. 아이슬란드 정부는 경제 위기가 닥치자 너무도 당연하게 그리스와 똑같은 정책을 내놨죠. 은행을 구제하겠다고요. 그런데 ‘주방용품 혁명’이라고 하는 시민의 반대가 있었던 거예요. 시민들이 깨어있었기 때문에 다른 정책으로 갈 수 있었고, 아이슬란드가 그리스와 같은 실패를 하지 않을 수 있었죠.


독일 취재를 갔을 때 독일 상원의원과 인터뷰를 했어요. 독일 정부가 잘한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독일 청년 스스로 개혁을 했고, 시민이 주도한 거고, 그 과정에서 많은 갈등, 싸움이 있었지만 끝없는 대화와 노력이 개혁을 만들어낸 거지 결코 정부가 해낸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 문제들을 계속 제기하고, 깨어있는 시민들이 의견을 냄으로써 지금의 독일을 만들었다는 거예요. 아이슬란드와 독일의 사례를 보듯이 깨어있는 시민들이 지금을 만들었지 정부가 지금의 구조를 거저 준 게 아니라는 거죠.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어려움도 있죠.


안타까운 건 자신감이 없을 뿐이에요. 성공한 적이 많이 없잖아요. 역량은 충분한데 작은 성공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성공에 목마른 거예요.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으니까 패배감이 있거든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제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대안들을 자꾸 찾아나간다면 윈윈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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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박종훈 저 | 21세기북스
때로는 냉철하게, 때로는 대담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저자의 글을 두고 사람들은 “시간을 내서 봐야 할 글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라도 봐야 할 글”이라며 추천했다. 경제학 박사이자 오랫동안 경제 분야를 취재해온 박종훈 기자는 이 책에서 각 출입처를 거치며 직접 체득한 한국 정부의 경제 정책 흐름과 함께 현재 경제 상황을 날카롭게 진단한다. 또한 해박한 경제 지식과 이론을 바탕으로 해외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여러 가지 경제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고 곧 우리에게 다가올 최악의 장기 불황의 위협 속에서 한국 경제를 구할 대안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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