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방랑기’, 여성학자 오한숙희가 책을 펴내며 보탠 말이다. 힐링은 뭐고 방랑은 뭘까? 방랑은 안 좋고 힐링은 좋은 게 아닌가? 궁금한 독자라면 『사는 게 참 좋다』를 펼쳐봐도 좋겠다. 언제나 호탕하게 여자들의 이야기를 대변했던 여성학자 오한숙희는 지난해, 돌연 제주에 터를 잡았다. 팔순 넘은 어머니를 모시고 자폐성 장애를 가진 작은딸을 키우면서도 언제나 1초의 망설임 없이 “난 행복해요”라고 말했던 그가 매일 새롭게 아팠기 때문이다. 한 선배는 그를 두고 “동의보감 맨 첫머리에 적힌 말이 뭔지 알아? 모든 병은 마음에서 생긴다”고 말했다. 오한숙희는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가족을 떠나 강원도로 옥천으로 방랑을 시작했다. 내륙을 돌고 돌다, 며칠 놀다 가라는 선배의 권유에 들린 제주 서귀포. 그곳에서 ‘신의 한 수’를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방랑은 그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사는 게 참 좋다”고 말할 수 있게 된 오한숙희는 지금, 인생의 변곡점을 지났다.
자기 이야기를 교환하는 일이 필요한 시대
2010년에 출간된 『너만의 북극성을 따라라』이후, 5년 만입니다. 『사는 게 참 좋다』는 그간의 책들과는 좀 달라요.
‘내 인생의 책’ 같은 느낌이에요. 그동안 책을 쓰면 ‘내가 쓴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그냥 내가 쓰고 있구나’ 싶었어요. 『사는 게 참 좋다』는 제가 만났던 신의 한 수를 가진 사람들 이야기예요. 한동안 마음과 몸이 힘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잘 못했는데요. “그동안 저 이렇게 살았어요”라고 안부를 전하는 책이기도 해요. 책을 보신 분들이 “지금까지 여성학자로서 쓴 책이라기보다 한 인간으로서 쓴 책이라서 더 마음이 따뜻해지고 촉촉해진다. 너에 대해서도 안심이 된다”고 말하시더라고요.
“사는 게 참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흔치 않은 시대라서 제목이 오히려 낯선 느낌이에요.
제목을 놓고 친구들에게 물었어요. 4,5개 정도 후보가 있었는데, 막판에는 ‘오늘이 좋다’와 ‘사는 게 참 좋다’로 축약 됐어요. 제목이 결정되고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어, 내가 좋다고 해서 이 제목으로 한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 때는 설왕설래했는데, 책이 나오고 보니 딱 맞는 제목이었구나, 싶어요.
프롤로그 제목은 ‘내가 사는 게 참 좋은 이유’예요. 강연을 하러 가서 자주 듣는 단골 질문이 “지금 행복하세요?”라고요.
많은 분이 물으세요. “지금 행복하냐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힘든 문제가 있잖아요. 그래도 티를 안 내고 사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게 참 좋은 거다”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지금은 위로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교환하는 시간이 필요한 시대예요. 주변 친구들을 보면 다 아파요. 내가 약해지면 나만 아파하는 것 같은데, 세상 사람들은 다 아프고 다 안 좋아요. 모임에 한 번 나가봐요. 다들 아프대요. 그런데 어떡해요? 그러면서 사는 거죠. 하지만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감동과 힘을 얻어요.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다들 그렇구나’ 하고요.
책에 등장하는 ‘신의 한 수’를 가진 분들의 이야기가 재밌습니다. 언제나 호쾌하게 웃는 하하 여사, 항상 ‘콜’을외치는 태권도 사범님, 눈 밝은 친구 ‘우영’, 마사지사 동생, 기다림의 지혜를 아는 식당 주인 ‘송희’ 씨 등. 책을 읽는 내내 유쾌했고 찡했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어요.
책을 다 쓰고 나서, 몇몇 분을 다시 만났어요. 힐링 방랑 복귀 여행을 한 거죠. 하하 여사는 여름에 사줬던 팥빙수를 겨울에도 똑같이 사줬어요. “이렇게 나를 잘 써놓으면 앞으로 내가 어찌 사노?”라고 하더군요.
어떤 질문에도 ‘콜’이라고 답하는 태권도 사범님은 잘 계시나요?
(웃음) 잘 지내세요. 이 분은 강원도 영월 산골에서 태어나 한 번도 육지로 나와본 적이 없는 분이에요. 보통 우리는 도시를 선망하고 열망하잖아요. 그런데 사범님은 아니에요. 강원도의 바위 같은 사람이에요. 제가 책을 보냈더니, 한과를 한 가득 보내줬어요. 검정 비닐에 싸져 있었는데, 완성품이 아니라 방앗간에서 모양을 만들기 직전인 한과였어요. (웃음) 선물을 받고 사범님과 전화 통화를 했어요. “언제 또 놀러 갈게요”라고 하니까, “콜! 만사형통”이라고 답하셨어요. 사범님이랑 전화를 하면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나눈듯한 아쉬움이 없는 충만감이 느껴져요. 이 분을 통해 배운 건 굉장한 단순함이에요.
우영이라는 친구 분 이야기도 인상에 깊게 남았어요. “친구의 이죽거림이 내겐 안심이 되었다”고 하셨어요.
저에겐 되게 특별한 친구예요. 남다른 가족사에 20대부터 긴 터널을 지나온 친구라서, 우리랑은 역방향에 앉은 경우예요. 우영이는 지금 어떤 것도 자기를 심각하게 만들 수 없대요. 어릴 때부터 워낙 많은 일을 겪어서요. 우영이는 정신 없이 팽팽 돌아가는 사람을 뚫어봐요. 저 사람 ‘조증’이라는 거죠. 이 친구한테 받은 선물은 관점 이동이에요. 저로서는 몸이 너무 아프고 행복하지 않으니까 큰일이 났다 싶었는데, 얘는 이러는 거예요. “넌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새 길로 가야 하는 거야. 죽음의 길에서 삶의 길로 가는 거야. 지금까지 내가 본 네 모습 중에 지금이 진짜 좋은 모습”이라고요. 당시에는 얘가 나를 위로하려고 이런 말을 하나 싶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아니었어요. 우영이의 명언은 “인생, 너무 심각할 거 없다”는 말이에요.
“인생에서 낄낄대는 시간은 아주 중요하다”는 말도 해주셨고요.
우영이의 낄낄거림은 마음을 쓰다듬는 소리였어요. 자신의 마음을 쓰다듬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쓰다듬는 소리였어요. 우영이의 꿈은 소설가였는데, 자기 꿈을 이루지 못한 걸 전혀 아쉽다고 말하지 않아요. 요즘은 대학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는데, 자기 몫은 저마다 제 삶의 소설을 쓸 수 있도록 돕는 거래요. 우영이를 통해 멈추는 걸 두려워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멈춰 서는 건, 자기 내면을 여행할 때가 왔음을 알리는 축복의 메시지니까요.
부럽더라고요. 이런 분들과의 인연이.
그래서 사람이 재산이에요. 아이고,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사실 사람들이 좋을 때는 친구가 많아도, 힘들 때는 친구가 되어주기 어렵잖아요. 특히 저처럼 세상에 조금 알려진 경우에는 힘든 모습보다 재밌고 즐거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대개 힘든 사람을 보는 건, 피하고 싶은 즐겁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런데 이분들은 저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게 해줬어요. 이런 게 인생의 내공인 것 같아요. 자기가 힘들어 봤기 때문에 고마움도 알게 되는 거잖아요. 1년간 책을 쓰면서 다시 그 사람들을 봤을 때, 고마움이 몇 배로 증폭돼서 실감이 났어요. 나를 변함없이 똑같이 받아준다는 게, 얼마나 감동스러운 일이에요. 돈이 부자가 아니라 사람이 부자다, 재복보다 인복이 더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싶어요.
책을 읽으면서 3부작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자아가 너무 강했어요. 내가 느끼고 체험한 것을 사람들에게 준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 책은 바깥에 있는 것들이 나에게 들어왔다는 느낌이 들어요. 여기저기에서 한 바가지씩 물을 길러와서 내가 흡수한 느낌이랄까요? 또 이 책을 쓰면서 느낀 건, 편집자는 저자에게 ‘러닝 메이트’ 같은 존재라는 거예요. 글을 쓰다 보면 자기 속에 빠지거든요. 그런데 책은 돈 주고 팔아야 하잖아요. 나는 재밌고 유익해도 상대에게는 효용과 가치가 있을까 의문이 드는데, 그럴 때마다 편집자의 피드백이 큰 도움이 됐어요. 글 한 꼭지가 끝날 때마다, 자기도 비슷한 인생을 사는 사람으로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를 덧붙여줬거든요.
“이야기를 교환해야 한다”는 말과 이어지네요.
사람하고 소통할 때, ‘그래도 살아있으니까 이런 것도 나누는구나, 사람이 행복이구나’를 느껴요. 저는 일용직 노동자잖아요. 강의도 한 달에 한 두 번 할 때가 있고 안 할 때도 있으니까, 계절 고용도 아니죠. 더욱이 근 1년 동안은 강의를 안 했고요. 일종의 아르바이트 같은 개념인데, 이 직업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는 몰라요. 사람은 직업으로 일로, 자기의 삶을 지탱해 나간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내 삶을 지탱해가는 건, 결국 하루 24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사느냐예요.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 말고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책에 ‘말 무당’이라는 표현을 쓴 것처럼 사람들과 말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에요. 거기서 만족이 오고 의미가 부여될 때, 다른 가치들의 결핍이 결코 부럽지 않아요.
순간순간 결핍이 느껴지기도 하실 텐데요.
결핍이라고 느끼기보다, ‘다 그런 거지 뭐’하고 넘어가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은 돈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악의적인가를 생각해요. 사람들이 모든 것의 초점을 돈으로 맞추잖아요. 걱정의 90%도 돈, 싸움의 90%도 돈, 대개 돈과 얽힌 갈등과 충돌이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제주 난산리예요. 여기는 정말 돈이 크게 필요 없는 동네예요. 그냥 간단히 먹고 살면 되는 거예요. 도시에서 살면 돈이 많이 필요하지만, 시골은 돈이 적어도 사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어요. 자연이 무상으로 베풀어주는 게 꽤 많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제가 제주에 있다고 하면 “뭐하고 먹고 사냐?”고 하는데, 그래도 굶지 않아요. 강연을 하면 노동 단가는 나름 고액이란 말이에요? 그 고액의 노동 단가를 가지고 와서 이렇게 평범하게 일상으로 녹여서 살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요. 늙으면 점점 죽음을 향해 가는데, 그 사실이 전혀 두렵지 않아요. 어차피 늙고 죽을 거니까, 하루하루 살아있는 날이 참 좋다는 걸 느끼면서 살아야지 싶어요.
불과 2년 전만 해도 건강 염려증 환자였다고 하셨는데요. 피가 가려운 병, 뇌가 곪는 병이라는 병명을 지었을 만큼요.
제주에서 처음 알게 된 사람이 제 첫인상을 “얼굴에 다섯 컬러가 있다”고 표현한 적이 있어요. 노랗고 검고 붉고 푸르스름하다고요. (웃음) 마사지를 받으면서 피까지 가려웠던 그 길었던 건강 염려증의 끝이 보였어요. 그것도 따지고 보면 생각의 병이었어요. 마사지를 해주는 동생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뭉친 데를 풀 때, 손님이 누구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남 탓을 하면 잘 안 풀린다. 그런데 자기 잘못이라고 인정하면 풀기가 쉽다”고요.
지금은 어떠세요?
근본 불안, 이라는 건 아주 없어지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것도 결국 일종의 허상이에요. 그동안 살면서 조금씩 두려워하고 불편했던 것들이 뭉쳐져서 근본 불안으로 자리 잡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근본 불안이 엄청난 게 아니라는 건 감을 잡았지만, 그럼에도 수시로 불안해지기도 하죠. 징검다리를 건널 때 사뿐히 갈 때도 있지만, 머뭇거리게 될 때도 있잖아요. 모든 사람의 불안도 마찬가지예요. 특별하지 않은데 자꾸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면, 살이 붙으면서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 같아요.
관점을 이동해야 지속 가능하게 행복하다
강연장에서 청중에게 자주하는 질문은 “언제 행복하세요?”라고 하셨어요. 보통 어떤 대답을 하시나요?
“네, 행복해요”라고 하세요. 지금 강연을 들으러 온 순간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런데 “이 행복이 얼마나 지속적인 행복인가요?”라고 물으면, “에이, 여기서 일어나면 다 끝이죠”라고 해요. 실제로 사람들이 살면서 좋은 순간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하루에 한 번이라도 ‘그래도 사는 게 참 좋은 거야’라고 느끼면, 그걸로 사는 것 같아요. 걱정만 살짝 내려놓으면 이게 크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걱정의 90%도 돈, 싸움의 90%도 돈”이라고 하셨는데요. 돈 때문에 행복한 일들도 꽤 많아요.
그렇죠. 많은 것이 주어지고 돈으로 교환하는 재미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돈도 좋은 사람과 나눌 수 있을 때 가치가 있어요. 며칠 전에 딸이랑 친한 후배랑 같이 아구찜을 먹으러 갔어요. “야, 이거 너무 맛있지 않냐?”라면서 호들갑을 떨면서 먹었는데, ‘아 돈이 있어서 참 좋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돈으로 이 행복을 산 게 아니라, 이런 것들을 누릴 수 있을 때 돈이 촉매가 되는 것 같아요. 조금 더 추동력이 커지는 거죠. 돈이 조금 부족해서 다른 메뉴를 먹었더라도 우리는 재밌고 즐거웠을 테니까요. 사람들은 ‘지금은 돈을 많이 벌고 나중에 분위기 좋은 데 가서 밥 먹어야지’라고 하는데, 가치관이 전도된 게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 포커스를 못 맞춰서 좋은 순간, 의미 있는 걸 많이 놓치는 것 같아요.
돈이 없어서 누리게 되는 것,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것도 있으니까요.
사는 게 좋다라고 느낀 것도 관점 이동이에요. 이를 테면, 지금 인터뷰를 하면서도 머릿속으로 ‘내 책 어필을 잘해야 해’라는 목적의식보다는 ‘내가 책을 낸 덕분에 어떤 사람과 인생 이야기를 잠깐 해보는 시간이 있었어’라는 생각을 한단 말이에요. 현대사회는 모든 걸 목적주의로 몰아가는데, 오히려 목적을 내려놓을 때 얻는 것이 꽤 많아요.
“1년짜리 연셋집에 살지만 나는 아무 걱정이 없다”는 책의 마지막 글귀가 생각납니다.
제주에 산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이왕 제주에서 살 거면 집을 지어라. 전망 좋은 곳에 땅을 사라”고 해요. “땅값 오르기 전에 2년만 더 일찍 내려오지 그랬어?”라면서요. 전 이렇게 생각해요. 제 몸이 가서 있으면 그게 다 제 거라고요. “누리되 소유하지 않는다”고 책에 썼는데, 특정한 땅과 집과 전망을 소유하지 않았기에 제주에 펼쳐진 자연을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어요.
아무래도 이 책은 조금 인생을 산,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이 더 공감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저자로서는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40, 50대 분들이 읽으면 “맞아, 이게 인생이야”라고 공감할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제 딸을 생각하면서 쓴 책이기도 해요. 딸이 지금 백수인데, 딸에게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숨 길게 쉬어, 너무 바쁘게 살고 뛰어다녀도 만나는 지점은 대개 같아. 모든 사람들은 만나기 마련이야.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힘 빼고 살아. 숨찰 때는 잠깐 부채질을 하면서 가야 해. 그래야 인생이 쉬워”라고요. 모든 사람이 시간에 휘둘리고 사는데요. 1분이라도 ‘아 사는 게 참 좋다’라고 생각이 들면, 나머지 23시간 59분을 견딜 수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 1분은 ‘신의 한 수’를 알려준 분들과의 인연이겠네요.
대개 사람들은 “당신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입니까?”와 같은 질문을 하는데요. 누구 한 명이라기보다는 이렇게 만난 모든 사람들 하나하나가 다 저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는 게 참 좋아요. 죽어서는 변화할 수 없잖아요. 살아 있기 때문에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다른 나를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
‘여성학자, 방송인이’라는 타이틀이 책에서는 많이 드러나지 않아요. 예전의 오한숙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조금 놀라기도 할 것 같아요.
그럴 거예요. 근데 이게 인생인 것 같아요. 젊은 시절의 저는 여성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주어지는 내 삶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어요. 지금도 그 마음이 없지 않고요. 다만 인생과 늙음이라는 숙제가 더해져서 새로운 과제가 생겼어요. 20대 때는 사회적 활동, 사회에 놓여진 장벽이 과제였다면 지금은 삶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내 앞에 놓인 과제들이 있어요. 20, 30대 때는 여성운동을 학교와 교과서, 선생님들에게 배웠다면 지금은 세상의 평범한 사람들이 제 스승이 됐어요. 교과서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생각해요. 또 제주라는 자연이 얼마나 큰 교과서인지 몰라요. 사람들이 가끔 “왜 요즘은 TV에 안 나오세요?”라고 물으면, “이제 제 시대는 갔어요”라고 말해요. 방송인으로서는 흘러간 사람인데, 나라는 관점에서는 방송이 흘러간 거예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여성학자로서 기대했던 것과 다른 이야기를 썼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어머 이 사람이 이렇게 다르구나’하고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것,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요. 사람의 표현방식은 달라지는 거니까요. 예전에 가해자 남성들을 공격하는 일이 제 역할이었다면, 지금 그 역할은 다른 젊은 친구들이 하고 있어요. 제가 앞으로 해야 할 역할은 가해자가 지속 가능한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제주에 작은 집필실을 겸한 게스트하우스를 마련했어요. 방랑 끝에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서요.
지금, 행복하시죠?
(웃음) 네, 저는 지속 가능하게 행복해요. 예전에는 행복 앞에 ‘지금 붙었다면, 이제 ‘지속 가능’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어요. 행복이 유지돼야 행복한 게 아니라, 어떤 상황이 닥쳐도 살아 있는 동안은 사는 게 참 좋다고 말할 수 있어요. ‘비로소’라는 제주 게스트하우스에서 글을 쓴 적이 있어요. 비로소(秘路笑), ‘비밀의 길 끝에서 웃음짓다’는 뜻을 가진 곳이었어요.
사는 게 참 좋다오한숙희 저 | 나무를심는사람들
삶의 무게를 1g이라도 줄이고 싶었다. 그래서 불현 듯 생각나는 사람들을 찾아 풍선처럼 전국을 떠돌았다. 서울, 경기, 전라, 충청, 강원, 경상도를 지나 대한민국 맨 끄트머리 제주까지. 그 길에서 만난 인생 고수들에게 한 수 제대로 배웠다. 《사는 게 참 좋다》는 오한숙희의 방랑의 기록이며, 그 길에서 자신을 회복하게 된 힐링의 기록이다. 방랑길에서 만나 인생을 가르쳐 준 사람들의 신의 한 수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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