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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빛을 본 펑크 록 앨범, 더 모노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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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한 소문과 함께 어마어마한 크기의 기대감이 밀어닥쳤다. 전설로 남은 초기 노브레인의 지휘자이자 20세기 한국 록의 마지막 기타 히어로인 차승우와 한국 언더그라운드 록 역사에 굵직한 획을 그어온 베이시스트 박현준의 조우에. 이들이 만든 밴드 모노톤즈의 숨소리 하나하나에 인디 록 신의 시선이 따라 다녔다. '과연 어떤 음악을 보일 것인가, 어떠한 작품을 갖고 나올 것인가'

 

그러길 꼬박 3년이 반복되고 나서야 모노톤즈의 첫 정규 음반은 비로소 빛을 볼 수 있었다. 허나 이들의 모습은 많은 관심을 모았던 결성 초기와는 많이 달라져있었다. 보컬은 수십 차례의 오디션을 재차 반복해 건져 올린, 경력이 전무한 뉴페이스였던 데다 박현준은 공식 탈퇴를 한 상태였고 원년 멤버인 차승우와 최욱노의 얼굴은 꽤나 피곤한 표정을 띤 상태였다. 부정할 수 없는 수작 < Into The Night >을 내놓기까지, 모노톤즈의 긴긴 밤, 그 검은 베일 사이에서는 대체 어떠한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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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기간에 비해 음반이 늦게 나온 편이다.


차승우 : 햇수로 3년이 걸렸다. 그간 안팎으로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고 그런 희로애락들이 앨범에도 고스란히 반영됐을 거라 생각한다.

 

공을 많이 들여 나온 음반인데 만족도는 어떠한가.


차승우 : 대체로 만족한다. 믹싱의 경우 미국에 있는 엔지니어와 원거리로 연락해가며 작업했기에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일단은 되게 잘 나왔다고 느낀다. 한 공간에 옆에 앉아 작업했다면 개인적으로 모자라다 느끼는 15% 정도의 공백을 채울 수 있지 않았을까. 「The beat goes on」의 경우에도 조금 더 공간감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다만 어디까지나 디테일 수준의 얘기다. 크게 보자면 웬만큼은 좋다.

 

다른 멤버들은 어떤가.


조훈 : 승우 형 말이 맞다. 하지만 원거리 소통이라 가능했을 장점도 분명 있다. 우리가 레퍼런스로 삼았던 보 디들리나 푸 만추, 밤비 몰레스터스 같은 아티스트 예시들을 그 쪽에서 꼼꼼하게 듣고 체크해 더욱 공이 크게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나름 장단이 있는 방식이다.


최욱노 :나는 일단 감개무량하다. 멤버 구하는 시절서부터 지금까지 같이 쭉 함께 했기에 감정적으로 짠한 것도 있다. 한편으로는 작업이 자연스럽게 진행된 부분도 있어서 좋았다. 현준 형이랑 승우 형 만나 술 마실 때마다 비틀스 얘기를 해대서 비틀스처럼 치밀하게 일들이 진행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스톤스처럼 굴러가더라. 난 이런 점이 오히려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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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

 

보컬리스트 조훈은 공식적으로 뮤지션으로서 첫 레코딩이고 첫 음반이라 소회가 또 남다를 것 같다.


조훈 :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일산에서 지낼 때 승우 형이 찾아와서 연습시키고 합주도 정말 많이 하고 이런 저런 공연 기획하고 진행해가며 바삐 지냈지만 다 좋았다. 배운 것도 많았고. 앞으로 더 잘 하고 싶다.

 

보컬이 들어온 뒤 음반 제작에 속도가 붙은 셈인가.


차승우 :맞다. 그 직전까지만 해도 우리 불씨가 금방 꺼져버릴 것 같았다. 그러다 이 친구를 만나고 우리 보컬이라고 결론을 내린 그 순간에 '바로 음반 작업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조훈이 음반의 사운드를 최종적으로 완성시킨 셈인데, 보컬로서 어떤 매력, 장점을 가졌기에 마지막 수를 둘 수 있었나.


차승우 : 근자에 쉬이 찾아볼 수 없는 저음 음색에서 먼저 끌렸다. 또 스스로 「Into the night」을 유튜브에서 보고 다 커버해 데모를 만들어 우리한테 보낸 것에도 감동을 받았다. 사실 내 취향의 보컬이 아닌데도 말이다.
최욱노 : 우리 노래들이 대체로 다양한데 조훈은 거기에 맞게 소화할 수 있는 너른 구사 범위를 갖고 있다. 다각도로 활용이 가능했다. 도구 다루듯 말했네. (웃음)

 

노브레인 시절에는 펑크 음악을, 문샤이너스 시절에는 고전적인 로큰롤 음악을 했다. 그간 특정 장르를 명확하게 구사하는 행보를 보여 온 차승우인데 이번에는 조금 모호하고 다양하게 음악들을 뒤섞는 모습을 보였다.


차승우 : 내 스스로도 이번 음악을 규정하기 어렵다. 아마 다들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1950년대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로큰롤 역사 가운데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 코드 등을 여기저기서 뽑아다 재조합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널찍이 접근해보면 개러지 록, 세밀히 접근해보면 비틀스, 롤링 스톤스 식 로큰롤, 비치 보이스 식 서프 팝, 딕 데일 식 서프 록 등 수십의 요소가 모노톤즈 음악에 들어가지 않았나.


차승우 :말한 대로다. 1960년대 개러지 록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었고 음악사에 굵직한 기록을 남긴 비틀스, 비치 보이스에서도 레퍼런스를 많이 얻었다.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에서도 마찬가지고. 더 나아가, 일례로 'A'의 경우에는 벌스 부분에서는 보 디들리 식 정글 비트를, 나머지 리프 부분에서는 푸 만추 식의 육중한 느낌을 이용했다. 또 기타 솔로 파트에서는 오아시스의 「Columbia」에서 보이는 그 무렵 맨체스터 풍의 리듬 라인과 비슷하게 비트를 가져갔다.

 

음악이 상당히 독특하고 다채롭다.


차승우 : 여태까지 들어온 음악을 가지고 말도 안 되게 조합해보자는 생각을 우리끼리 항상 해왔다. 다른 노래들도 그렇게 만들어졌고. 그러다보니 중구난방이 된 구석이 없잖아 있다. (웃음)

 

개개의 곡이 가진 기본 틀은 상당히 직선적인데 공간감 섞인 사운드가 더해지며 큰 그림은 상당히 복잡해졌다. 서로 다른 성격의 것들이 섞인 느낌이랄까.


차승우 : 레고를 만들 때 맨 처음에는 설명서를 따라 경찰서나 소방서 모델을 만들지 않나. 하지만 그렇게 만들고 난 다음에는 보통 갖고 노는 재미가 떨어진다. 그 뒤에 여기에다가 블록 끼워보고 저기에다가 블록 끼워보면서 소방서로 감옥도 만들어보고 색다르게 짜 맞춰야 또 다른 재미가 튀어나오듯 우리도 그런 식으로 송 메이킹을 했다.

 

한편으로는 1950,60년대 사운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결과물이 상당히 세련됐다.


차승우 : 1950,60년대 사운드를 레퍼런스로 삼는 것은 문샤이너스 때도 해왔던 작법이다. 다만 당시에는 '내가 이런 음악을 하고 있다'는 함의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는데, 이번에는 정반대로 이질적인 요소들을 융합해 우리의 함의를 최대한 감추고 감추는 방향으로 작업을 했다. 우리끼리의 짓궂은 재미 요소를 넣은 부분이다. 그렇기에 앞에서 말했던 대로 이 밴드가 어떤 사운드를 내는지 모르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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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우

 

정말 복합적이다. 이쯤에서 차승우의 곡 쓰는 방식이 궁금하다. 리프나 전반적인 곡 진행을 보면 스트레이트한 편이지만, 보컬 멜로디를 따로 떼어보면 섬세함과 유려함도 느껴진다.


차승우 : 전체적인 흐름이나 틀을 잡고 노래를 만들지는 않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팟'하고 떠오르는 한두 소절 멜로디를 기본적인 뼈대로 삼는다. 그렇게 얻은 멜로디들 중에서 써먹을 수 있겠다 싶은 건 아이폰에 녹음했다가 차차 확장시켜서 커다란 노래로 만든다.

 

멜로디 작업이 우선인가.


차승우 : 그렇다. 특히 이번에는 더욱 그랬다. 예전에는 기본적인 비트와 리듬을 짜놓고 그 토대 위에 멜로디를 얹었는데 이번 음반을 작업하면서는 대체로 멜로디를 먼저 고려했다.

 

그럼 밴드 단위로 확장해서 곡 작업을 할 때에는 파트 별로 각자 구성을 가져와 설계를 하는 편인가 잼을 통해 즉흥적으로 결과를 뽑아내는 편인가.


차승우 :잼으로 하는 방식에서는 한계를 느꼈다. 모노톤즈가 가져갈 음악에는 그다지 효율적이지는 않은 방식인 것 같다. 편곡이나 사운드 구성 면에서 정교함을 추구하기 위해 로직으로 밑그림을 먼저 그린 뒤 연주해가며 틀을 잡아갔다.

 

크레디트를 보니 편곡에서의 최욱노의 지분도 상당하다.


최욱노 : 승우 형과 현준 형 사이의 음악적 공감대가 넓게 형성돼있으면서도 개인적으로는 둘이 추구하는 음악 성향이 다르다고 생각해왔다. 그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맡지 않았나 싶다.


차승우 : 욱노와 훈이 실제로도 음악 공부를 해서 편곡을 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현악 3중주 같은 스트링 파트나 혼 섹션 같은 요소를 이 두 친구가 맡았다. 악보까지 그려가면서 현악 하는 사람한테 넘겨야하는 작업이었던지라. 그리고 욱노 군이 오르간, 피아노 같은 건반 악기도 다 책임졌다.

 

음반을 만들며 특히 어떤 점을 주안점으로 두었나.

 

차승우 : 편곡적인 얘긴데, 세부 단위를 살리려고 많이 시도했다. 레이어도 쌓아보고 여러 조화도 이뤄내며 사운드적으로 재미를 주어야겠다 싶었다. 기타도 파워 코드로 잡고 사운드도 큼지막하게 단위를 설정했던 과거와 반대된다. 전처럼 호쾌하게 밀어 넣는 노래는 많이 없는 것 같다. 나름 드라이브를 사운드에 걸어놨던 「A」의 경우에도 전개에 변칙을 부여했으니.

 

각자가 좋아하는 곡, 혹은 음반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곡을 꼽는다면.

 

차승우 : 다른 인터뷰들에서는 기르는 강아지에 대한 노래인 「K군의 어느 하루」를 애착 있는 곡으로 꼽아왔는데 이번에는 「Into the night」을 내세우고 싶다. 보컬을 여러 번 교체해가며 고생했던 시기에 만든 노래이기도 하고, 만들 당시의 기억도 짙게 남아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10개월 정도 영종도에 들어가 칩거 비슷한 생활을 하며 느꼈던 감성이 트랙에 담겨있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영종도의 매일 낮에 느꼈던 밤의 정서가. 이 노래를 만들고 나서 우리가 이런 음악을 할 수도 있겠구나하고 스스로 확인하기도 했다. 덕분에 모노톤즈가 유지될 수 있었다.


최욱노 :좋아하는 트랙이라고 한다면 계속 「Watchman」을 꼽아왔다. 승우 형, 현준 형이랑 합주하면서 손 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만든 거라 큰 의미가 있다. 「A」도 그런 식으로 만들었다.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노래라 이 곡을 듣고 있으면 3년 간 겪었던 고생의 타임라인이 눈앞에 쭉 보인다. 약간 슬프게도 들린다. 그런 면에서 「A」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리는 것 같다.

 

조훈의 경우에는 < Into The Night >이 음악인으로서의 첫 작품 아닌가. 어떤 곡으로 앨범을 요약하고 싶나.


조훈 : 「Into the night」이 정말 중요하다. 밴드에 들어오기 전에 이 곡으로 데모를 만들었고 밴드에 들어와서는 전임 보컬이 했던 스타일을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좀 더 잘 대표할 수 있는 곡이라면 「The beat goes on」이 제격이지 않을까 한다. 가사부터 보컬 멜로디까지 승우 형의 아이디어가 확고했던 곡인지라 모노톤즈에 대한 형의 스케치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가장 마지막에 녹음 작업을 진행했던 노래이기도 해 기억에도 잘 남아있고 공연에서 연주한 적도 거의 없어서 앨범 듣고 있으면 이 트랙에 손이 많이 간다.

 

차승우에게 조금 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커리어를 보면 각양각색의 음악 스타일이 담겨 있는데 그 핵심에는 항상 펑크적 기질이 있는 것 같다.


차승우 :늘 펑크 록을 한다고 생각한다. 거시적인 시점으로 보면 모노톤즈에도 펑크적 의미가 분명히 실려 있다. 우리 스스로도 우릴 펑크록 밴드라 부르고 있고.

 

펑크 록을 가지고 다채로움을 뽑아낼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하다.


차승우 :유명한 얘기고 진부한 얘기지만 비틀스도 여러 노래를 커버하던 초기에서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넓은 바운더리를 보여준다. 베사메무초를 연주하기도 했다가 로큰롤을 연주하기도 했다가. 아마 비틀스의 창작력도 그런 데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모든 뮤지션이 마찬가지다. 자양분이랄 게 있어야 토대로 삼고 발전할 수 있다. 우리도 그렇고.

 

< Into The Night >이라는 결과물이 반가울 것 같다. 후련하기도 할 테고.


차승우 :그간 내 스스로 위태로운 느낌을 많이 보여줬나 보다. 주변에서, 특히 지인들 중에서 비슷한 얘기를 해준 사람들이 많았다. '우려했던 것 보다는 매끈하게 나왔다', '다행이다'라는 말도 많이 해줬고.

 

모노톤즈라는 밴드로 음악하기 정말 어렵지 않았나.


차승우 :어려웠다. 3년간 변변한 결과물을 못 낸 채로 굴려오지 않았나. 특히 밴드의 간판인 보컬을 구하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했던 것 같다. 서교그룹사운드의 김세영 군을 맞이하며 본격적으로 활동할 수도 있었는데 그 찰나에 그 친구가 떠났다. 이후에는 세 명으로 밴드 포맷을 맞춰 구성해보기도 했고 다른 보컬들을 다시 찾아보기도 했다. 한참을 그러다 조훈이 들어오게 된 거다. 그쯤부터 음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밴드를 하기 앞서 맨 처음 박현준과 만나며 그렸던 구상이 궁금하다.


차승우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나나 현준이 형이나 각자 음악 활동에 휴지기가 와 낭인처럼 살 때라 “놀기만 해서 뭐하냐. 뭐라도 해야 되지 않겠냐”며 밴드 제의를 했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 현준 형 연주를 인상 깊게 봐왔고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독자적 매력을 가진 아티스트라 생각했고, 또 자주 술도 마시면서 친해진 상태기도 했고. 그러고 나서 욱노 군에게 드럼을 부탁해 3인조 대형을 짜면서 기본 틀을 만들었다.

 

초기 공연에서는 이기 팝, 데이비드 보위도 커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차승우 :그 때 이기 팝 커버했던 게 각인이 많이 됐던 것 같다.

 

사실 모노톤즈에게 집중됐던 큰 관심 가운데에는 차승우-박현준의 만남도 존재했는데, 앨범을 발매하기 직전 박현준이 탈퇴했다. 박현준과는 어떻게 헤어지게 된 건가.


차승우 :어두운 기가, 짙은 아우라가 있는 사람이다. 형이 어느 정도 나이도 있었던 지라 밴드 안에서의 세대 차이도 무시하기 어려웠다. 물론 현준 형이 꼰대라는 얘긴 절대 아니다. 다만 편히 대하기에 약간의 거리도 있었고, 우리들 사이에 묘한 텐션감이 있었다. 당혹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이게 창작력을 위태롭게 하는 순간부터는 피로가 쌓이기 시작한다. 형이 먼저 그만 두겠다 선언을 하셔서 우리도 막 붙잡진 않았다. 물론 밴드를 하면 다들 겪는 종류의 문제다. 우리로서도 낭패였지만 오래 갈 성질의 데미지는 아니었다.

 

박현준이 연주한 트랙을 두고 사용 여부에 대해 고심하지는 않았나.


차승우 :아무 고민 없이 고스란히 실었다. (박현준이) 워낙 그루브를 잘 뽑아내지 않나. 아홉 곡에 담아냈고 나머지 세 트랙을 작업할 때에는 현준 형이 밴드를 떠난 상태였던지라 다른 사람이 베이스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베이스 멤버를 다시 채울 생각인가.


차승우 :일단은 객원 체제로 갈 예정이다. 정규 라인업을 만들기 위해선 사람들끼리 여러 번 캐치볼을 해봐야 한다.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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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욱노

 

밴드를 하며 겪었던 고민과 갈등, 긴장의 나날이 다큐멘터리에 담겨 내년쯤 공개된다고 들었다. 다큐멘터리 제작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나.


차승우 : 자잘한 표정서부터 갈등의 서막까지 다큐에 다 투영이 됐을 것 같다. 처음 밴드를 만든 그 순간서부터 카메라가 있었다.

 

처음부터?


차승우 : 다큐멘터리 감독이 내 중학교 동창이다. 원래 음악을 좋아하던 사람이라 현준 형과 음악을 하게 됐다고 하니 관심을 갖고 앞으로 밴드 활동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해서 밴드 활동 처음부터 카메라가 돌아가게 됐다. 촬영 초기에는 '모노톤즈라는 밴드가 있었다' 정도의 기록물 차원에서 영상을 제작하려했는데 점차 의도가 바뀌었다. 그 친구가 우리 역정을 쭉 보더니 영화감이라더라. (웃음)


최욱노 : 카메라에 대해 원체 신경을 쓰지 않았다. 너무 자연스러운 우리 모습이 나갈 거 같아 걱정된다. 그렇다 해도 사실 이렇게 밴드가 갈등하는 모습을 그대로 담은 영상은 잘 없지 않았나. 밴드를 해본 사람들은 특히 공감 많이 할 거다.

 

갈등이 정말 많은 편이었나.


차승우 :아무런 갈등이 없고서야 정규 멤버 둘이 탈퇴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다들 겪는 고난이다. 그리고 그 고난 속에는 살자고 열심히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 있다. 돌이켜보면 그네들과 진하게 연애를 한 것 같다. 밴드 하는 게 사실 연애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먼저 공개된 짧은 트레일러 영상을 보니 (차승우가 예전에 출연했던 영화) < 고고70 >을 4분 버전으로 압축시킨 것 같았다.


차승우 :거의 실사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계속 신경질 내고 하는 내 모습들에서 < 고고70 > 만식이가 떠오르더라.


조훈 : 실제로 어떤 공연에서 소란이 있어 경찰이 전원 뽑겠다고 들어온 적이 있었다. 무대 위에서 “이거 < 고고70 >에 나오는 장면 아니냐며 관객들이랑 같이 막 웃었다. (웃음)

 

각자의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아티스트, 앨범이 궁금하다.


조훈 : 원래는 마이크가 아닌 기타를 잡고 있었던지라 친구랑 같이 기타 치면서 이리저리 커버해 녹음해봤던 비틀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기도 하다. 비틀스 음반을 단 하나 꼽는 건 정말 못 하겠다. 「If I fell」 같은 곡을 가장 좋아하고. 그리고 미국에서 자랐다보니 조니 캐시의 컨트리도 좋아한다. (차승우 : 미국 남부 감성을 갖고 있다.) 또 머디 워터스나 버디 가이 같은 시카고 블루스 계통 아티스트들도 좋아하고.


차승우 : 나도 비틀스를 꼽겠다. 팝 많이 듣던 누나의 테이프 컬렉션 중 CM송 모음집에서 「I wanna hold your hand」를 접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던 것 같다. 심지어 그 광고가 상일가구 광고였던 것까지도 기억한다. 그 때 겪었던 혼이 쭉 빨려나가는 느낌이 지금도 로큰롤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남아있다.

 

비틀스가 연속해 나왔다. 이번 음반을 얘기하면서 많이 언급된 밴드기도 하고.


차승우 : 말도 못 한다. 3일 밤새면서 얘기할 수도 있다.


조훈 : 진짜 그렇게 될까봐 술 마실 때 승우 형은 비틀스 음악을 못 틀게 한다. 너무 비틀스 얘기만 해댔다. 사실 비치 보이스나 스톤스도 좋아하는데.

 

최욱노는 어떠한가.


최욱노 : 스물한 살 쯤 홍대에서 밴드하면서 너바나 쪽에서 시작점을 잡았던 것 같다. 페이브먼트도 많이 들었고 알이엠도 많이 들었다. 비틀스도 좋아하지만 내 베스트는 아니다.

 

끝으로, 향후 활동이 궁금하다. 첫 음반이 잘 나온 만큼 다음 음반이 벌써 궁금한데.


차승우 : 다음 작품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대해 차츰 고민할 날이 올 텐데 지금 당장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분명한 건 이번에 작업하고 녹음하며 우리 각자 나름의 가능성을 스스로 읽었지 않나 싶다. 우려나 걱정은 없고... 이번 음반에 투입되지 않은 곡들도 있는데 그게 2집에 사용될지 안 될지는 잘 모르겠다. 자연스레 잡히는 것들을 가공하고 잘 연마해서 풀 렝스 2집을 만들겠다. 당장은 공연이 주된 계획이다.


조훈 :원래 1집이 더블 앨범 형식으로 나올 수도 있었다. 승우 형이 비틀스 화이트 앨범처럼 갈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곡들을 많이 추려서 만든 게 지금 이 앨범이다.

 

풀 렝스로 바로 가는 건가. 요즘은 이피 발매가 성행하지 않나.


차승우 : 하긴 이 바닥에서는 요즘 천 장만 팔려도 대박 소리를 듣는다. 음반이란 게 작품이라기보다는 명함에 가까워진 시기지 않나 지금이. 그런 현상에 대한 반작용을 개인적으로 크게 갖고 있다. 21세기를 사는 20세기 사람인지라. 어렸을 때부터 음반만이 가진 가치를 들으며 커왔고 이에 대한 내 생각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거 같다.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남기는 게 가장 멋있다. 그게 밴드가 할 일이고.


인터뷰 : 신현태, 이수호, 이택용
정리 : 이수호
사진 : 이한수
2015/12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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