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을 말했던 김정운 저자가 2016년에는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을 권한다. 4년간의 일본 생활을 마무리하는 책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는 꽤 단호하다. 외로워 미치겠다는 사람들에게 ‘격하게’ 외로워하라고, 사람도 좀 적게 만나고, 바쁠수록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자고 조언한다. “왜?”라고 묻는 이들에게는 “외로움이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김정운은 그간 심리학교수, 지식에듀테이너, 문화심리학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등으로 살았다. 그러나 많이 유쾌하지 않았다. 주변에 그를 찾는 사람이 들끓었지만 외로움은 여전했다. 결국 4년 전, 교수직을 그만두고 일본 유학을 떠나 미술학도가 됐다. 사람들은 용기가 대단하다며 그를 추켜세웠지만, 김정운은 “용감한 게 아니라 비겁한 거다. 은퇴교수의 비참한 삶이 겁나서 도망갔다”고 말했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는 도망자 김정운의 일기다. 50세 중년이 돼서야 진짜 공부를 시작한 복학생 김정운의 가장 정직한 책이다.
내 삶과 연결되는 심리학, 사회학, 철학
‘그리고 쓴’ 책이다. 그림도 있고 글도 있고 사진도 있다. 심리학 이론도 있고.
책이 자기계발로 분류됐지만, 복합적인 책이다. 정해진 카테고리로 들어가는 게 진부하다는 생각이다. 가장 중요한 건 재미, 그리고 독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내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섞은 까닭이다. ‘저 사람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구나’라는 공감이 있어야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다. 대화로 초청하는 글쓰기를 하고자 했다.
일본 생활이 그대로 담긴 사진들이 특히 인상적이다.
중년 남자가 일본에서 혼자 살았으니 얼마나 궁상맞고 구질구질 했겠나.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는 이야기를 확인시켜주고 싶었다. 글만 쓰면 책이 논리적이고 계몽적인 느낌을 주지만, 그림이 같이 가면, 설득보다는 말을 거는 형태가 된다. 그래서 그림과 사진을 곁들었다. 또 책의 내용 자체가 논리적인 글이 아니다. 느낀 대로 썼으니까 논리적 비약이 많은데, 그림을 통해 보완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재밌는 결과물이 나왔다.
표지 그림도 직접 그렸다. 제목이 ‘외로움과 그리움 사이’다. 마음에 드나?
내 그림이니까 당연히 마음에 든다. (웃음)
책 제목은 어떤가? 단호한 느낌이 들었다.
가제도 같았는데, 전작 『에디톨로지』의 에필로그에 나온 문장이다. 『에디톨로지』는 학술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가서 좀 딱딱한 느낌이 있었는데, 다음 책은 일본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일찍부터 마음속으로 정해놓았던 제목이다.
『에디톨로지』에서는 창조방법론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전작들에 비해 무겁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람들이 창조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하는데, 창조방법론은 말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고 지적 담론을 강조했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에도 지적인 이론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지만, 우리의 일상과 학문적인 내용이 만나는 접점에서의 글쓰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실험해본 책이다. 지식인의 글쓰기라는 게, 자기들만 알아듣는 언어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독자에게는 불친절한 글쓰기다. 하지만 사람들은 글을 쉽게 쓰면 정말 우스운지 알고 우습게 본다. 전문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책을 폄하한다. 나는 아무리 어려운 철학, 심리학 이론이라고 해도 내 삶과 연관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챕터가 내 일상의 소재로부터 출발한다.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심리학, 사회학, 철학 이론과 삶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나로서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책이다.
쉽게 읽히는 글도 있고 천천히 읽어야 하는 단락도 있다. 심리학 이론을 설명한 부분은 글자 크기가 작게 표시했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더 깊이 들어가라는 뜻이다. 책을 꼭 끝까지 한번에 읽을 필요는 없다. 책은 원래부터 다 읽는 게 아니다. 띄엄띄엄 읽는 거다. 그래서 목차가 있는 거고. 어렵게 느껴지면 건너뛰면서 천천히 읽는 게 좋다.
출간 4주만에 예스24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독자들로터 리뷰를 들었나?
다들 재밌다고 하더라. 그렇게 웃기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웃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버스 안에서 읽다가 웃어서 창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목차만 쭉 읽어도 재밌다. “불안하면 숲이 안 보인다”, “남에 의해 바뀌면 참 힘들다”, “’뒤로 자빠지는 의자’를 사야 한다” 등. 짧은 문장 하나가 주는 파동이 꽤 크다.
내가 광고 카피를 했어도 잘 어울렸을 것 같다. (웃음)
내가 주인이 돼서 잘 살수 있느냐
4년간 일본에서 혼자 살았다. 주로 그림을 그렸다.
일본 교토사가예술대학 단기대학부에서 일본화를 전공, 지난해에 수료했다. 최종 학력은 전문대 졸업이다. 나에게는 가장 자랑스러운 학위다. 원래는 만화를 공부하려고 했다. 노인용 성인만화, 변태 만화를 그리려고 했는데 지도교수님이 내 그림 실력을 보더니 정말 잘 그린다고 일본화를 배워보라고 했다. 만화는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일본화를 배울 기회는 다시 없을 것 같아서 일본화를 전공했다. 내가 정말 좋아서 한 공부였기 때문에 독일의 박사 학위보다 훨씬 자랑스러운 학위다.
그림 그릴 때, ‘오리가슴’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어떤 의미인가?
지적인 오르가슴, 예술적인 오르가슴이라는 뜻이다. 독일에서 공부했을 때부터 사용한 말이다. 진짜 즐거움은 공부하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노는 것을 좋아하는 ‘재미스트’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공부파다. 그런데 가르치는 일이 몹시 싫다고 고백했다. 듣기로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교수였다.
강의는 인기 있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걸 해야 지속적으로 가능하지, 내가 잘된다고 인기 있다고 돈이 잘 벌린다고 해서 지속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성과가 좋고, 인정을 받으면 대개 잘하는 일에 몰두하게 되지 않나?
그건 일시적이다. 내가 재미가 없으면 계속 잘할 수 없다. 교수되기 어려웠을 때 교수가 됐으니까 열심히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체질에 안 맞더라. 경제학에 ‘지속가능경영’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지속가능한 경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삶이 중요하다. 내 삶에 내가 주인이 돼서 잘 살수 있느냐, 이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내가 좋아하는 걸 해야 한다.
2012년 1월, 다이어리 첫 페이지에 “난 이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한다”라고 썼다. 하기 싫은 일의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첫째가 ‘만나기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 둘째가 ‘일찍 일어나지 않는다’, 셋째가 ‘쓰기 싫은 원고는 쓰지 않는다’였다. 지금은 정말 쓰고 싶은 원고만 쓰나?
쓰고 싶은 글만 쓴다. 내가 재밌어 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면 실력이 계속 향상된다. 그래서 『에디톨로지』도 쓰고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도 쓰지 않았나? 내가 재밌어 하는 걸 공부하고, 내 안에 일어나는 것들을 밖으로 꺼내는 것. 즉 외화 시키고 생산하는 일이 가장 재밌다. 사람들이 왜 노동을 싫어할까? 노동의 결과물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소외론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생산과정이 나와 상관 없는 일이 돼버리니까 노동을 고통스럽게 느낀다. 하지만 과정이 아무리 힘들어도 결과물이 제대로 나오면 그것처럼 행복한 일이 없다. 남들로부터 인정 받고 돈도 잘 벌어도, 이게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사람은 절망한다. 스스로 소외됐기 때문이다. 내가 그림 그리는 일이 즐거운 까닭은 결과물이 바로 보이기 때문이다. 내 안의 느낌이 밖으로 드러나니까 너무 행복한 거다. 논문은 아무리 열심히 쓴다 해도 대학원생 몇 명 읽고 끝이다. 그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체질은 아닌 거다.
ⓒ김춘호
프로필 사진으로 그림을 그리는 뒷 모습 사진을 넣었다. 책 제목과 이어지는 사진이다.
내가 보기엔 라면 끓이는 사진으로 보이더라. (웃음) 외로움을 보여주는 사진이긴 하다.
나름 폼 나는 사진으로 보였는데, 마지막 장에는 제주도에서 말을 타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사진을 실었다. 역시 유머를 잃지 않았다.
외로움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의미로 고른 사진이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피아제는 ‘도덕성 발달 이론’을 규칙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설명한다. 가위바위보를 했을 때, 주먹이 가위를 이긴다는 규칙을 인식하는 걸 도덕성이라고 말한다. 나는 유머도 같은 차원으로 본다. 주먹이 가위를 이긴다는 이 가상의 법칙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유머다. 삶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한발자국 거리를 두고 상대화시킬 수 있을 때, 유머가 생긴다. 고독도 그렇다. 늙으면 누구나 고독해진다. 하지만 미리 연습을 하면 고독조차 상대화시킬 수 있다. 더 외로워야 덜 외롭다.
자발적으로 외로워지는 일이 쉽지는 않다.
의도적인 외로움을 경험하면, 당연히 겪을 수밖에 없는 처절한 외로운 상황에서 성찰적인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그러면 내 삶을 상대화시킬 수 있고. 외로움을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덜 외롭다.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과거 평균 수명이 짧았을 때는 이런 연습이 필요하지 않았다. 바쁘게 살다 죽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으니까 암에 걸리면 수술을 받고 100세까지도 산다. 대책 없이 100세까지 살게 됐으니, 늘어난 수십 년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문제는 스스로가 외롭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고독저항사회’로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서 외로움은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질병이 됐으니까. 이 강박에서 벗어나는 게 노후준비의 급선무다.
일본 생활이 TV 다큐멘터리로 방송이 되기도 했다. 일본 생활을 부러워하는 지인, 독자도 많았으리라 본다. 교수, 베스트셀러 작가 생활을 누려본 이후의 삶 아닌가?
그런 마음이 들 수 있다.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반대로 이 질문을 하고 싶다. “당신이 내 삶을 살았더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겠냐?”고. 누구나 자기 삶에서 뭔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나 역시,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와 안정된 월급을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 사표를 던졌다. 내가 다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가진 사람만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인가? 중요한 것은 외로움은 이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누구라도 어떤 상황에도 주어지는 게 외로움이다. ‘고독도 사치’라는 말이 있다. 왜냐 먹고 살기 바쁘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절대빈곤인 상태에서의 고독은 정말 사치가 맞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바쁠까? 이런 질문을 하는 당신이 절대빈곤인가? 묻고 싶다. 내가 말하는 외로움은 돈이 있고 없음을 떠나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문제다. 외로움을 돈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본다.
회피하고 싶은 게 아닐까. 이래도 저래도 외롭지만, 외로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누구에게라도 인정 받고 싶은 욕망일 수도 있다.
절대빈곤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존재론적 문제.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존재론적인 질문으로 환원시키는 것을 미국 심리학에서는 ‘심리학주의'라고 한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전혀 건드리지 않고 모든 문제를 개인 책임으로 환원시키는 매우 바보 같은 논리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회구조로 환원시킬 수 없는 존재론적 문제가 있는데, 이런 문제조차도 사회구조로 설명하려고 한다. 자기 눈앞에 닥친 문제들을 회피하려는 거다. 외로움이라는 문제는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데 말이다.
내 삶을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이 주체적인 삶
지난해 특히 ‘불안’에 관련된 책이 많이 나왔다.
사람들이 과녁을 못 맞추고 있다. 모든 핵심은 외로움이다. 외로워지는 일에 대한 불안이다. 외롭지 않으려고 관계에 도피하는데, 관계 속에 살다 보면 사람들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러니 관계 속에서 상처 받지 않으려고 애쓴다. 모두 본론을 피해 가는 이야기다. 사람은 어떻게든 외로운 존재인데, 인정하기 싫어한다. 물론 구조적인 문제로 인한 고립도 많다. 이런 고립은 여러 각도로 이야기해야 하지만, 존재론적 불안은 결국 고립에 대한 불안이다. 내 결론은 고립은 피해갈 수 없다는 거다. 내가 박인환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인환은 「목마와 숙녀」에서 고립을 피하면 시들어간다고 했다.
자발적인 외로움을 택했지만, 저자 역시 일본에서 무수한 외로움을 겪었다. 책 속에 담긴 일상만 봐도 외로움이 다각도로 느껴진다.
일본에서 혼자 있다 보면 너무 외로워서 미친다. 그래서 카카오톡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을 하나하나 다 열어본다. 누구 말 걸 사람 없나 하고 말을 걸면, 친구 차단으로 끝났다. 왜냐 내가 말 거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젊은 여자이기 때문이다. (웃음) 나 같아도 일본에 있는 노인네가 말 걸면 대답 안 한다. 이런 에피소드를 책에 쓴 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대개 심리 관련 도서는 여자들이 많이 읽는데, 저자의 주 독자층은 남자다.
남자들이 내 책을 많이 본다. 나는 여자에 대해 관심 없다. 내가 여자가 아닌데 어떻게 여자를 아나? 한국사회에 일어나는 많은 문제는 남자가 찌질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본다. 그런데 사회는 이 문제와 직접 대면하지 않는다.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나 역시 대한민국의 무수한 찌질하고 허접한 남자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문제를 성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설명하려고 했던 시도들이 책으로 나온 거다.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대한민국은 시기 사회, 인간 문명은 시기 혹은 질투의 역사”라고 했다.
문명의 핵심은 질투 관리다. 질투는 인간의 본성이다. 내가 프랑스 출신의 철학자, 르네 지라르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다.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은 여느 프랑스 철학자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쉽고 명쾌하다. 지라르 이론의 핵심은 ‘욕망의 모방’이다. 우리가 그렇게 집요하게 추구하고 원하는 것이 실제로는 남들의 욕망을 흉내 낸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의 욕망은 영원히 충족될 수 없다. 흉내 내야 하는 타인의 욕망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매커니즘은 사회적 갈등을 끊임없이 야기한다. 이 갈등은 결국 희생양을 찾아 집단 폭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해소된다. 나는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 문제를 보수, 좌파 문제로 보지 않는다. 똑같은 이데올로기 틀을 쓰고 행해진다고 본다. 핵심은 질투 관리다. 문명은 질투 관리가 제도화되고 세련돼지는 거다. 그래서 사회보장제도가 등장한 거고.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론에서는 날 것의 정서를 순화시키는 것을 문명화 과정이라고 본다.
연예인을 쫓아다니는 팬들의 심리를 질투와 샤덴프로이데로 지적했다. ‘샤덴프로이데’는 상처나 아픔을 뜻하는 샤덴(Schden)과 기쁨을 뜻하는 프로이데(Freude)가 합쳐진 독어다. 저자는 ‘쌤통이다, 고소하다’는 말로 해석했다.
인디밴드가 서서히 인기를 얻을 때, 사람들은 열광한다. 하지만 인디밴드가 톱스타가 되면 인기가 떨어지기만을 바란다. 일방적으로 열광했다가 혼자 질투해야 하는데, 망하기를 바란다. 요즘은 인터넷 시대이기 때문에 팬들에게 도구까지 주어졌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톱스타의 인기와 나락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나? 내 삶의 문제를 도피하기 위한 왜곡된 욕망을 스타에게 투사해서 생기는 결과일 뿐이다. 내가 주체적인 삶을 살면 남의 성공과 실패에 휘둘릴 이유가 없다. 왜곡된 욕망으로 휘둘릴 시간이 없다. 주체적인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내 관심사를 끊임 없이 공부하는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끊임없이 좋아하는 걸 공부하고 있으면 불안하지 않다. 내 실력이 끊임 없이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면 자신있다. 불안하지 않다.
“행복한 사람일수록 사소한 리추얼이 많다”고도 지적했다.
행복은 아주 구체적인 감각적인 경험이다. “당신은 행복하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행복한 순간들이 곱씹고 떠올려 보는 건, 행복한 게 아니다. 내가 안정된 직장이 있고 돈을 웬만큼 벌고, 자녀들이 잘 자라고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아니다. 이 질문을 받았을 때, 감각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떠올라야 한다.
저자는 어떤가. 언제 행복감을 느끼나?
지적 호기심이 생길 때, 가장 행복하다. 책을 보다가 내가 원하는 자료를 딱 찾았을 때, 행복하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발견할 때도 행복하다. 공부가 가장 행복한 이유다. 사람들이 공부를 싫어하는 건, 남의 돈을 따먹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걸 공부하면, 공부는 재밌고 행복하다. 나는 서점에서 책을 뒤지고 있는 게 가장 행복하다.
일본에서 미술을 공부했는데, 시작은 성인용만화를 그리고 싶어서였다. 언젠가 김정운의 만화도 볼 수 있나.
큰 범주 중에 하나일 수 있다. 여전히 작품 속에 에로티시즘을 담아낼 테니까. 더 과감해질 수 있지만 그게 재밌을까? 생각해보면 모르겠다. 가장 중요한 건 재미다. 내 삶을 상대화시킬 수 있는 재미가 중요하다. 서양 사람들은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두고 농담을 한다.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가장 훌륭한 수단으로 유머를 활용한다.
후회하는 일은 없나?
없을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하는 후회는 뭔가를 선택했기 때문에 생기는 후회다. 한 일에 대한 후회다.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바보 같은 짓이다. 시키는 삶에서는 후회가 없다. 후회하는 일이 많으면 그만큼 내가 주체적으로 살려고 노력했다는 증거다. 내가 교수를 그만둔 것도 그래서 한 거다. 어쨌든 내가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후회가 많은 건 건강한 일이다. 가장 나쁜 건,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가 많은 사람이다.
전남 여수에 집을 구했다고 들었다.
바닷가 근처에 조그만 아파트를 얻었다. 일본 짐이 다 여수로 들어갈 예정이다. 파도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하루 종일 그림 그리고 밤에는 책을 쓸 거다. 그림 그리다 졸리면 마루에 누워 낮잠도 자고, 가끔 찾아오는 친구들과 초등학생 수준의 음담패설이나 하면서 늙어갈 거다. 단 한 번밖에 없는 내 인생 아닌가. 내 맘대로 사는 걸 결코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일본 생활이 그립지는 않을까?
젊었을 때 독일 생활을 그리워했듯이, 일본 생활도 그리워할 것 같다.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는 젊었기 때문에 외로워도 그게 외로움인지 몰랐다. 나이가 들어 유학생활을 하니 정말 뼈가 시리게 외로웠다. 하지만 이것 또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름답게 기억될 것 같다. 뼈가 시린 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그림을 그렸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고 또 책이라는 생산물을 냈으니까. 지금까지 낸 책 중에 가장 만족스러운 책이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와 『에디톨로지』다. 두 권 모두 일본에서 낸 생산물이다. 이만큼의 책을 다시 또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외로웠기 때문에 가능했던 책이다. 외로우면 정말 많은 걸 얻을 수 있다. 관계에 허덕이는 것보다 훨씬 낫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김정운 저 | 21세기북스
표지 그림 ‘외로움과 그리움 사이’ 역시 김정운의 작품이다. 나이 오십 넘은 남자가 홀로 밥해 먹고 빨래하며, 남는 시간은 오롯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서툴지만 개성 있는 그림은 우리 삶에 대한 통찰을 이끌어내며, 심리학적 분석이 담긴 글을 통해 ‘자아’와 ‘세계’에 대한 주체적 성찰로 완성되었다. 거기에 일상의 찰나를 포착한 사진과 촌철살인의 유머가 더해져, 유쾌하고 편안한 ‘인간 김정운’의 면모까지 친근하게 담아냈다. 각 글의 말미에는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한 키워드들이 수록되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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